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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한국어 배우기와 칠면조 굽기

 추사감사절에 우리 부부는 혼자 있는 조카, 다른 주에서 이날을 함께하려고 온 사위의 부모와 함께 큰 딸네 집에서 보냈다. 내가 젊었을 때는 큰오빠와 언니네가, 내가 중년이 됐을 때는 직접 추수감사절 상을 차렸다.
 
이때가 되면 갓난아이 큰딸과 우리 부부가 맞이했던 미국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이 생각난다. 남편과 나는 거의 반세기 전에 미국 의과대학에서 수련 과정을 이수하려고 도미했다. 매칭 프로그램으로 첫 번째 파견된 병원이 실망스럽게도 뉴욕 주에 있는 존슨시티라는 시골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도시 출신인 나에게 미국의 시골 생활은 상상했던 멋진 미국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또 친구나 친지가 가까이 없었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추수감사절이었지만 칠면조 요리, 호박파이는 만들 줄도 몰랐다.
 
덩그러니 우리 식구 셋이 맞이했던 첫 추수감사절은 서러울 정도로 쓸쓸했다. 그때 경험한 타향살이의 외로움은 뼛속 깊이까지 골을 팠던 것 같다.
 
추수감사절이 되면 노숙자들에게 칠면조 요리 등을 제공하는 기관이 많다. 그러나 길에 나앉지는 않았지만 가난으로, 또는 가족 없이 홀로 살아 명절 음식을 함께 만들고, 또 나누면서 지내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명절 때 오는 외로움은 타향살이 이민자들과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계층에 많다. 우리 가족 중에도 객지에 나가 있는 조카네와 둘째 딸네가 타향살이 중이다. 마음에 걸렸다.
 
이들과 함께 지내려 추수감사절 이전에 더블린과 바르셀로나를 다녀왔다. 코로나 사태로 걱정이 많은 여행이었다. 다행히 아일랜드와 스페인의 코로나 감염 정도는 미국보다 낮았다.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 ‘EPIC’이라는 뮤지엄에 들렀다. 이민역사를 테마로 만든 곳인데, 내가 봉사하고 있는 한국어진흥재단이 새로 만든 이중언어(영어와 한국어) 교과서 이름과 같아서 반가웠다. 괜스레 우연 같지는 않았다. 이 방문 중에 더욱 놀란 것은 더블린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 반을 이끌고 있는 교사를 만났다. 7개의 정규 학교에서 400여명에게 한국어를 세계언어로서 가르치고 있었다. 한국인들은 어디에서든지 우뚝 서는 기상이 있다.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라가 힘을 잃고, 속국이 될 때, 지배국이 속국의 말과 글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통상이다. 말과 글은 민족의 얼이기 때문에 말과 글을 말살시키면 민족정신은 약해지게 된다. 정체성은 흔들리고 지배국의 통제는 쉬워진다. 한국민은 일제 강점기 때 이에 저항해서 끈질기게 싸워왔다. 해방 이후 우리의 글과 말을 자유로이 쓰고 발전시키면서 부강한 나라가 됐다. 지금은 한글을 세계화할 때이다. 미국에 사는 디아스포라들의 노력은 정규학교에 한국어 클래스를 넣는 일이다.
 
유럽에 살아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한민족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을 지닌 그들이지만 이민 1세들이 칠면조 굽는 문화를 익혔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습득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일랜드에서, 스페인에서 외로워 하는 것 같지 않았다.
 
1세들이 칠면조 문화에 적응하는 것과 2세들이 우리 말과 글을 배우는 것은 어쩌면 같은 맥락인지도 모른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 더블린 여행이었다.

모니카 류 / 종양방사선과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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