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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오늘은 그것도 눈물입니다

신호철

신호철

아직 나무에 매달려있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더니 이내 아래로 떨어졌다. 머리를 스치는 생각, “생을 마감하셨나요?” 다가가 물었다. 대답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묻고 싶었다. “삶은 어떠셨나요? 견딜만 하셨나요?” 흩어진 나뭇잎 위로 구르며 나뭇잎은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나무 밑에서 나무를 올려다 본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는 움직임이 없다. 다리를 버티고 서서 하늘을 촘촘히 가르고 서있다. 하늘 가른 저 가지 끝 새순이 틀 때까지 숨만 쉴 뿐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휴업이다. 한 계절 떡 버티고 살아갈 나무가 전쟁터에 선 장수처럼 비장하다. 마지막 한 잎까지 떨구어낸 후 차가운 바람, 빽빽히 내려올 눈송이에 그야말로 온몸으로 견뎌낼 자세다. 천박한 호기심이 아닌 그 내면 그 뿌리를 향해 깊어가고 있다. 
 
오늘도 많은 말을 내뱉었다. 때론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위태위태 담아 내기도 했다. 돌아서면 후회할 말들을 썼다 지우고 그렇게 계절이 가고 한 해가 갔다. 매해 쌓여가는 넋두리, 다행한 것은 그 중 가끔은 시가 되고 그림의 소재가 된 것은 위로가 되었다.
 
나무가 떨군 마지막 잎새. “나무의 마지막 흘린 눈물 아닌가요? 왜 눈물을 꼭 물이라고 생각하세요. 눈물은 물이 아닐 수도 있어요.” “보세요. 나무는 울지 못하잖아요. 나무가 제 잎사귀를 물들이며 참고 견디다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잖아요.” 나무를 보면서 나무는 진실하고 정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친절함이 그 안에 은근하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시선이 있다. 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판단의 언어대신 공감과 이해의 언어를 선물한다. 저마다의 역할을 인정해주면서 때로 나를 버릴 줄도, 견뎌낼 줄도 안다. 고마워하지만 요구하지 않는 넓고 따뜻한 품이 있다. 무엇인가 성과를 내야 하는 우리들의 조급한 하루와 달리 나무는 아버지 품에 돌아온 후 찾아드는 편안함이 배어있다.
 
추수감사절 연휴 Wisconsin, Devil’s Lake State Park에 다녀왔다. Lake 를 끼고 긴 시간 긴 길을 걸었다. 길옆엔 바위산이 있고 바위 틈새로 높이 뻗은 소나무, 잎을 떨군 떡갈나무, 단풍나무숲이 아름다웠다. 호수를 가르는 바람은 좀 쌀쌀했지만 몸과 마음을 정화해주었다. 돌산을 오르는 하이킹은 포기했지만 산 허리를 감싸고 뻗은 철도길을 걸으면서 어릴 때 부르던 ‘기차길 옆 오막살이 / 아기 아기 잘도 잔다 /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 기차 소리 요란해도 /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침목을 두개씩 건너 뛰며 놀던 기억이 흘러간 긴 시간을 이으며 다가온다. 젊은 날의 열정은 조금씩 사라지지만 휘어지는 철길의 끝 자락, 맞닿은 시선위로 여유롭게 굽어지는 편안함이 다가온다.  
 
바람에 떨어지는 잎새 하나, 하늘을 가르는 나무의 잔 가지, 시선이 멈춘 휘어진 철로 끝 자락, 잔잔하게 번져가는 호수의 얼굴, 동요 한 소절의 정겨움, 돌아설 수 없을 만큼 멀리 온 시간, 모두…… 오늘은 그것도 눈물입니다.
 
“오래오래 살아도 늙지는 마십시오, 우리가 태어나게 된 신비 앞에서 호기심으로 가득한 아이들처럼 살아가십시요” [아인슈타인 어록에서]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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