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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K토마토'

 “쇼핑백 안의 상자에는  
‘K토마토’라고 쓰여 있었다
 
‘K정치’가 아직 없는 걸  
보면 한국 정치는  
토마토만도 못한가 보다.”

“이 나라 저 나라 다녀봐도 한국이 최고다.” 여러 해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살아 생전에 하신 말씀이다. 사위가 해외 주재원이라 싱가포르, 대만 등 해외를 다녀 보셨고 우리가 사는 LA를 방문했을 때 하신 말씀이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LA의 북쪽, 2번 프리웨이에서 내려 한인타운으로 가는 길이었다. 맥아더 파크 인근의 지저분한 거리에 홈리스들이 많은 것을 보고  “이곳이 미국 맞느냐”고 하셨다. 물론 짧은 기간에 어느 단면만 보셨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한국이 윤택하고 발전했다는 말도 된다.


 
순수 대한민국 기술로 개발한 첫 우주 발사체 누리호가 최근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누리호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치솟는 것을 TV 화면으로 보고 전율을 느꼈다. 나로우주센터 현장에서 연구원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다.  
 
발사 과정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데 웬일인지 한동안 잠잠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지막 3단 엔진이 예정보다 46초 빨리 꺼져 위성 모사체를 궤도에 안착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정말 너무 아쉬웠다. 나도 그런데 하물며 11년이 넘도록 피땀 흘려 누리호를 개발한 우주 과학자들의 심정이 어떨까 생각하니 너무 애석하고 안쓰러웠다. 목표 궤도 진입은 못했지만 세계 7번째 우주 강국임을 보여줬으니 그게 어딘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한국은 지금 K라는 글자를 어두에 붙이는 것이 대유행이다. K팝, K뷰티, K푸드, K드라마, K방역 등등 그야말로 접두어 K의 전성시대다.  
 
과거에는 국가의 정치 지도자나 뉴스 등에서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칭송하기 위해서 K자를 사용했다. 이제는 일반 국민들도 자연스럽게 무슨 단어 앞이든 K라는 글자를 붙여 널리 통영하고 있다.    
 
한류 열풍이 전 세계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한마디로 한류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각종 상을 휩쓸며 2차례나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다. 팬클럽 ‘아미’들은 BTS 노래를 한국어로 따라 부르며 한국어를 배우기도 한다.  
 
4인조 걸그룹 블랙핑크는 유튜브 구독자 수가 전 세계 남녀 아티스트를 통틀어 1위로 올라섰다. 우리 영화는 미국 최고 권위의 영화상인 아카데미 상을 두 번씩이나 받는 쾌거를 이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다. 배우 윤여정씨는 영화 ‘미나리’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글로벌 돌풍을 일으키며 오랫동안 1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K컬처로 세계인들과 한국인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한 국민적 자부심이 스스로 자신 있게 K자를 여러 분야에 붙일 수 있는 이유다.  
 
그렇게 세계 속의 대한민국 안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에 비해서 한참 뒤떨어진 나라에 사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정치가 수준 이하이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국 정치는 3류도 아닌 4류”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방문 중에 본 한국의 정치판은 세계 10위 경제대국과 어울리지 않게 낙후돼 있다. 서로 험담하며 싸운다. 조선시대 사색당파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인이야 각기 다르지만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끝이 불행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망명지에서 돌아가셨고, 박정희 대통령은 측근에게 살해 당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모두 감옥에 갔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들은 감옥에 가지 않았지만 아들들이 감옥에 갔고,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재 감옥에 수감되어 있고 박근혜 대통령도 연약한 여자로 영어의 몸이 되어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복수의 악순환이다.    
 
좀 오래 전이지만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을 축하하기 위해 5명의 미국 전현직 대통령들이 백악관에 함께 모인 적이 있었다. 그들이 화기애애하게 웃는 사진을 보고 너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전 미국을 뒤흔들고 있을 때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이 자신들의 소속 정당을 떠나 일제히 한 목소리로 인종 차별을 규탄했다. 그러한 대통령들을 가진 미국 국민은 무슨 복인가 싶었다.    
 
한류는 세계를 휩쓸고 과학 기술은 우주를 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는데 한국의 정치는 구태의연하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K 환상에 빠져 살고 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볼 일이 있어 외출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내 앞에 섰다. 손에 든 쇼핑백을 바닥에 내려 놓는데 눈길이 가서 그 안을 보니 방울 토마토 상자가 들어 있었다. 그 상자에는 ‘K토마토’ 라고 크게 쓰여 있었다. ‘K정치’가 아직 없는 걸 보면 한국 정치는 토마토만도 못한가 보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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