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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퇴색하는 노동의 가치

 땀 흘려 버는 돈에 대한 의미가 예전 같지 않다. 봉급쟁이 월급이나 장사해 버는 돈의 가치가 점차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한마디로 노동의 대가가 삶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크게 줄었다고나 할까. 열심히 일해 벌고 그 안에서 규모 있는 예산을 짜고 절약해 집을 장만하는 일은 이제 고전문학이나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가 되고 있다. 봉급생활자뿐만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도, 심지어 대학생이나 주부까지 노동이나 근로 소득에 대한 생각과 삶의 가치가 바뀌고 있다.  
 
그 이유는 노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방법은 이제 특수층이나 특정인만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화되어 있다. 바로 투자나 투기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투자나 투기를 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버티고 살 수 없고 하층민으로 전락해 자녀에게도 가난을 세습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다. 또 무엇보다 투자나 투기로 부자가 된 사람이 주변에 적지 않다.
 
실제 최근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이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나온 조사 결과는 이런 세태를 확인시킨다.
 
조사에 응한 20~30대 10명 중 4명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에 투자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들이 가상자산에 투자한 이유에 있다.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49.3%는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증식이 어려워서’라고 답했다. 다음으로 ‘주변에 이익을 본 이들이 많아서’(15.0%), ‘소액 투자로 고수익이 기대되어서’(13.4%), ‘부동산, 주식은 가격 상승 등으로 진입장벽이 높아서’(11.2%) 등이 뒤를 이었다.  
 
젊은층은 지금보다 더 쉽게 자산을 늘릴 방법을 찾고 있고, 실제로 주변에 그렇게 쉽게 자산을 불린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또 운만 좋으면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이런 결과에 대해 한 ‘라떼’ 선배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젊었을 때는 열심히 일해서 더 빨리 승진하거나, 더 좋은 부서로 이동하는 것, 아니면 내가 일 잘하는 것을 인정받는 것, 그리고 그런 결과로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 더 받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사회 초년병은 그렇지 않다. 주식이나 암호화폐에 투자해 한몫 보면 바로 은퇴하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현재의 직업은 시쳇말로 ‘부캐(부수적인 캐릭터)’로 전락했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심히 걱정스럽다.”
 
그런데 이 선배의 우려는 결코 그만의 기우가 아니다. 현실이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런 부류와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렇다면 근로 소득을 하찮게 여기면서 투기 같은 투자에 쏠리는 이런 현상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첫째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바보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결론지어지는 사례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성실하게 일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 부를 축적하는 사람보다는 과감하게 투기하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거부가 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하면서 노동의 가치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둘째, 이미 팬데믹 이전부터 일어난 일이지만 빈부격차가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빈부격차는 팬데믹 기간 오히려 더 벌어졌다. 주택 가격의 지속적인 급등세, 주식시장의 활황세,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 열풍은 결국 돈이 돈을 벌어준다는 철저한 자본주의 논리를 더 확인시켜 주었다. 교육적으로 이미 개천에서 용 났다는 이야기가 전설이 됐듯이 경제적으로도 마찬가지 논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가난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부유함은 또 다른 부유함을 낳는 세상이 되고 있다.
 
사회가 안정성 있게 유지되려면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구조가 견고해야 한다. 지금처럼 한탕주의나 일확천금 우선주의가 팽배해지면 누가 땀 흘려 일하려 할까. 

김병일 /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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