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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나

서산(西山)에 지는 해는 날마다 집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는 해를 보면서 느끼는 인간의 감정은 날마다 변합니다. 기쁠 때는 저녁놀에 감탄할 겁니다. 정말 아름답지요. 산뿐 아니라 바닷가를 비추며 내려앉는 저녁 빛은 황홀함입니다. 많은 사람이 아끼는 자신의 사진 목록에는 아마도 저녁놀의 모습이 있을 겁니다. 사진 솜씨와 관계없이 저녁놀은 그대로 예술입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감정에 따라 쓸쓸함이나 서글픔으로 변합니다. 잎이 떨어져 버린 가을날이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바라본 저녁놀은 슬픈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울수록 슬픔이 더 커집니다. 다 타 버린 태양의 뒷모습은 우리의 삶을 투영합니다. 이제 곧 사라질 빛입니다. 우리의 마지막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마지막이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감동의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황혼(黃昏)의 나이라는 말이나 인생의 황혼이라는 표현이 왠지 ‘끝’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내일 다시 해가 뜰 텐데도 말입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때로 누군가에게는 참을 수 없는 슬픔이고 고통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슬픔을 감정 이입하는 대상입니다.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해는 이별을 상징합니다. 보이지 않으니 다시는 못 만날 이별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울다 지쳐 바라본 하늘에 붉은 노을이 가득합니다. 한참을 울다가 문득 깨닫습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도 가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니라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사정으로 헤어지나 서로의 간절한 마음이 있기에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리움이 쌓여서 기쁜 만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던 태양이 반대쪽 산에서 떠오르듯이 말입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서 지나, 날 버리고 가시는 님 가고 싶어서 가느냐’는 진도아리랑의 한 구절입니다. 진도아리랑은 다양한 가사를 담고 있어서 자신의 감정에 따라 부르고 싶은 내용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진도아리랑의 이 부분을 부를 때는 ‘서산에’라는 부분을 길게 끌면서 처량한 기분을 담습니다. 다음 가사를 부르며 해가 지고 싶어서 지는 게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이치에 따라 진다는 점이 왠지 위로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날 버리고 간다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나를 두고 가는 ‘님’입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것이니 버린 것은 아닐 겁니다. ‘님’이 가고 싶어서 가지 않았을 것이기에 위로가 되고 다시 만날 희망이 됩니다. 그래서 ‘날 버리고’라는 부분의 ‘날’을 부를 때는 감정이 고조됩니다. 왜 날 버렸냐는 원망도 있겠으나 날 잊지 말라는 희망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민요는 앞부분에 주로 자연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뒷부분에는 그 자연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을 담습니다. 자연과 일치되는 우리의 감정을 만나는 겁니다. 감정의 일치는 자연에만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임과 헤어진 것이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느끼며 노래하게 됩니다. 헤어짐에는 다시 만날 이별도 있지만 영원한 이별도 있기에 수많은 이별을 기억하며 노래합니다.
 
살아가는 게 고통인 시간이 많습니다.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듭니다. 때로는 이런 세상을 살고 싶지 않다고 포기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힘을 얻고 살아갑니다. 민요를 부르며 서로를 바라봅니다. 함께하였기에 고통을 이겨내고 기쁜 시간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고통을 노래했지만 희망을 보기도 하고, 세상을 살 만한 곳이라는 이치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민요의 힘입니다. 공감을 넘어 세상의 이치를 만나는 것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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