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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나이를 먹은 탓도 있겠지만, 머리 쓰지 않고 단순한 삶을 지향하다 보니 관심사가 온통 먹는 일이 되었다. 사실 옛날 같으면 내 나이는 아랫목에 앉아 거드름 피우며 며느리가 해다 바치는 밥상을 받아먹는 나이다. 나 역시 그렇게 시어머니 모셨으니 아마 나도 그런 노후를 기대했는지, 날이 갈수록 하루 세끼 챙겨 먹는 일이 고달프다. 적당히 사서 먹으면 훨씬 쉬울 텐데, 가려먹는 음식 없이 다 잘 먹는다고 말은 그러면서, 사 먹는 음식은 도무지 입에 맞지 않는다. 힘들어도 결국은 내가 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얼마 전에 만든 베이비 돼지갈비커리만 해도 그렇다. 작고 살집 넉넉한 베이비 돼지갈비가 눈에 띄어 참지 못하고 사 왔다. 갈비를 물에 한 번 끓여 깨끗이 씻어서 소금, 후추, 레드와인에 재어 하룻밤 재운 후, 버터에 볶아서 충분히 익힌 후 양파를 넣고 다시 한소끔 볶았다. 거기에 멸치육수와 커리 소스를 넣고 끓여서 커리가 맛이 퍼지면 이번엔 기름에 튀긴 가지를 넣고 한소끔 더 끓이면 완성이다. 한참 전부터 돼지갈비로 커리를 만들어보고 싶었고, 당뇨가 있어서 감자와 당근 대신 가지를 넣었다. 가지는 익으면 쉽게 물쿼지므로 식감이 살지 않으므로, 기름에 한 번 튀겨서 넣으니 식감이 괜찮았다.  
 
음식 맛은 들이는 정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들어간 재료는 돼지고기, 양파, 가지의 3가지뿐이었지만, 정성을 다해 만든 커리의 맛은 대만족이었다. 아주 간단한 요리지만, 가지를 적당히 썰어서 소금, 후추 간만 하고 전분 가루를 묻혀서 튀기면 맛이 좋아 훌륭한 스낵도 되고, 반찬도 된다.  
 
비단 음식뿐만 아니라 사람도 그렇다. 단순하고 소박한 사람이 좋다. 비교하기엔 조금 죄송스럽긴 한데, 내가 좋아하는 신부님이 한 분 계시다. 작년에 팬데믹으로 몬태나에서 지내면서 한국가톨릭 평화방송 TV를 통해 알게 된 신부님이다. 성서 속의 성인들 강의를 하시는데, 록스타 헤어스타일에 로만 칼라 양복 차림마저 패셔니스타처럼 빛나는 젊은 신부님이 매우 쉽고 단순하게 핵심을 확실하게 짚어주었고, 정확한 발음과 적절한 유머가 품격이 넘쳤다.  
 
신부님은 미사도 형식적이 아니라 진심으로 열심히 집전하셨다. 너무 열중하시다가 노래 부르는 중에 삑사리가 났는데, 미사 말미에 그 사실까지 말씀하시며 교우들을 웃기신다. 성인 기념 주일엔 강론에서뿐만 아니라 미사 중간중간, 마무리에서까지 그 성인의 가르침을 되새겨 주신다. 사람 냄새나고 꾸밈없는 신부님을 통해 신앙이 우리 삶 안에 함께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을 해보면 재료 수가 점점 줄어들수록 궁극엔 재료 자체의 맛에 충실해지고, 오히려 맛도 상승한다. 사람도 정직하고 단순한 사람에게 더 마음이 열린다. 거기엔 옷차림이 단정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최고의 멋쟁이는 최고로 깨끗한 옷차림이라는 게 멋쟁이에 대한 내 정의다. 이런 진리들을 나이 먹어서야 깨닫게 되어 좀 그렇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깨우친 게 얼마나 다행인가.
 
김현승 시인은 ‘가을의 기도’라는 시에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 /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라고 노래했다. 시인에겐 가을이 비옥한 시간이지만, 내게는  지금 내 나이가 비옥한 시간이다. 그러니 이 시간을 잘 가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기 위해 정성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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