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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대표가 만난 사람 〈13〉 애틀랜타 한인노인회 나상호 회장

"만 91세…아마 세계 최고령 단체장일 겁니다"

6·25 때 단신 월남 국군 참전 
1977년 도미 그로서리 운영   
 
90 평생 가장 보람된 일은  
5.5에이커 땅 시에 기증한 일 
 
노인회장 7회 연임 대기록 
"아직도 해야할 일 많아요" 
 
나상호 현 애틀랜타 한인노인회장이 지난 달 제31대 회장으로 다시 선출됐다. 앞으로 2년 더 노인회를 이끌게 된 것이다. 2010년 25대 회장부터 치면 7회 연임 대기록이다. 나 회장은 1930년생이다. 만 91세가 넘었다.  
 
이제 100세 시대는 현실이 됐다. 65세에 은퇴한다 해도 30년은 더 산다는 얘기다. 하지만 아무리 수명이 길어졌어도 정작 중요한 것은 장수 자체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이다. 그런 점에서 90대 현역 나 회장은 존재 자체로 빛을 발한다. 만 91세 한인 단체장은 미국은 물론 세계를 통틀어 최고령일지도 모른다. 나상호 노인회장을 만나 그의 일과 삶을 들어봤다.    
 
애틀랜타한인노인회 31대 회장으로 2년 더 봉사하게 된 나상호 회장. 부인 나희순 여사와 함께 당선증을 받아들고 있다. [중앙포토]

애틀랜타한인노인회 31대 회장으로 2년 더 봉사하게 된 나상호 회장. 부인 나희순 여사와 함께 당선증을 받아들고 있다. [중앙포토]

 
구순을 넘긴 연세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신다. 비결이라면?  
 
“특별한 것은 없고 거의 매일 노인회관으로 나가는 것뿐이다. 이 나이에 갈 곳이 있고 봉사할 일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늘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한인노인회는 어떤 단체인가.
 
“말 그대로 한인 시니어들이 모인 단체다. 2010년 처음 회장에 취임할 땐 30~40명 남짓이었다. 지금은 회원이 150명이 넘는다. 2015년 8월에 지금의 한인회관으로 입주했다. 이를 위해 당시 많은 분이 도움을 주셨다.”  
 
노인회 가입 자격은 65세부터다. 하지만 실제 회원은 대개 70대 이상이고 80대도 많다. 나 회장보다 더 고령인 회원도 몇 분 있다고 했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그 나라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로 규정한다.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11월 기준으로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820만 6000명이다. 전체 인구(5183만명)의 16.4%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애틀랜타 한인사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낮은 주거비, 쾌적한 환경, 적당한 한인사회 규모 등을 이유로 은퇴 후의 삶을 조지아에서 보내겠다며 몰려오는 시니어들이 매년 늘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회가 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질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나?
 
“회원들에게 음식 전달을 한다. 이를 위해 매주 푸드뱅크 지역센터에서 식재료를 구입해 회원들에게 나눠준다. 일일이 포장하고 때론 배달도 한다. 임원진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봉사하고 수고한다. 3·1절이나 광복절 등 특별한 날엔 한인 커뮤니티의 중요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여한다. 한인사회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힘들지는 않나?  
 
“주변에서 잘 도와주기 때문에 괜찮다. 특히 유태화, 채경석 두 부회장이 애를 많이 쓴다. 다른 회원들도 힘든 일, 어려운 일을 솔선수범 돕는다.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 노인회가 한인 시니어들의 건강하고 즐거운 노후 생활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게 보람이다. ” 
 
7회 연임, 대기록을 세우셨는데 새 임기를 앞두고 특별한 계획은?  
 
“기존에 해 오던 일을 꾸준히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회 숙원인 정부 그랜트 수혜 단체로 지정받기 위한 일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중단된 노래 교실이나 라인댄스 강습은 바로 재개할 생각이다.” 
 
나 회장의 새 임기는 내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 취임식은 오는 12월 23일 오전 10시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 열린다.   
 
6.25 참전용사인 나상호 한인노인회장은 동맹국 참전유공자 차량 번호판을 자랑스럽게 달고 다닌다. 91세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6.25 참전용사인 나상호 한인노인회장은 동맹국 참전유공자 차량 번호판을 자랑스럽게 달고 다닌다. 91세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앙포토]

 
화제를 바꿔 보자. 90년 세월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궁금해하실 분이 많을 것 같다. 6.25 참전 용사이신데.  
 
“고향이 함경남도 풍산이다. 오지 중의 오지인 개마고원 삼수갑산이 인근이다. 그곳에서 해방을 맞았다. 6.25가 나자 인민군에 징집돼 군사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부대가 미군 폭격을 받아 어수선한 틈을 타서 고향 친구와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탈출했다. 고향에 돌아가 있다가 미군을 만나 함께 월남했다. 월남 후엔 국군에 편입되어 싸우다 1952년 제대했다.” 
 
그 이야기만 책 한 권은 될 것 같다. 제대 후엔 무슨 일을 하셨나?
 
“미군 부대서 일했다. 53년부터 이민 오기 직전 1977년까지였으니 근 23년이다. 덕분에 나라도 개인도 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먹고 사는 걱정도 덜고, 영어도 배우고, 미국으로 오는 길까지 열렸다.” 
 
사모님도 정정하시던데.  
 
“1935년생이니 나보다는 5살 아래다. 1956년 중매로 만났다. 당시는 전쟁 직후라 결혼 적령기 남자들이 귀했다. 북한에서 내려와 가족 없이 혼자 살던 나 같은 총각도 그래서 제법 인기가 있었다. 지금까지 65년을 늘 함께해준 아내가 고맙고 든든하다.”
 
나 회장은 부인 나희순 여사와의 사이에 딸 둘, 아들 하나 3남매를 두었다. 손주도 여섯, 증손자도 둘을 보았다.   
 
미국에는 어떻게 오시게 됐나?
 
“1976년 조지아 출신 카터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때 보니 한미관계가 대단히 불편하고 불안했다. 다시 전쟁이 터지는 줄 알았다. 6.25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두 번 다시 전쟁을 보고 싶지 않았다.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만나고 싶었다. 그때는 미국 시민권자는 북한을 갈 수 있었고 가족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면 이런 고민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은 만났나?
 
“1989년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이후 몇 번 더 북한을 다녀왔다. 가서 헤어진 동생 두 명을 상봉했다. 애틀랜타서 도쿄까지 가서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힘들게 들어갔다. 갈 때마다 미국서 왔다고 북한 당국으로부터 큰 환대를 받았다. 당시는 김일성이 살았을 때였는데 아직 체제 경쟁도 하고 있었고 해외동포 초청 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었다. 갈 때마다 얼마간의 돈도 쥐여 주고 보따리 6개씩에 바리바리 싸 간 생필품을 나눠줬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상호 회장(오른쪽)은 임원진들의 적극적은 참여에 늘 감사하다고 말한다. 왼쪽은 채경석 부회장.

나상호 회장(오른쪽)은 임원진들의 적극적은 참여에 늘 감사하다고 말한다. 왼쪽은 채경석 부회장.

 
1970년대 후반에 애틀랜타에 오셨다고 했는데 미국 생활은 어땠나?
 
“1977년에 왔다. 처음에 잠시 식당을 했지만 재미를못보고 바로 문을 닫았다. 실패를 경험 삼아 1980년부터 그로서리 가게를 했다. 흑인 밀집지역인 애틀랜타 글렌우드 애비뉴에 있는 B&W라는 슈퍼마켓이었다. 2007년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일했다. 덕분에 생활도 안정이 되고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었다.”    
 
미국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은?
 
“1995년 가게 인근 5.5에이커 땅을 애틀랜타시 주택국에 기증한 일이다. 가게를 하면서 번 돈을 모아 사 둔 땅의 일부였다. 그 무렵 마침 애틀랜타시에서 이스트 레이크 메도 아파트 단지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부대시설을 지을 부지가 모자라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부하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과 상의했는데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당시 시가로 40만 달러 정도였다. 그때만 해도 한인 업소에 툭하면 강도가 들이닥쳐 업주가 죽거나 다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나의 기부로 흑인 커뮤니티가 한인들을 다시 보게 됐다. 그 일로 한-흑 갈등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생각을 하니까 지금도 보람을 느낀다.”
 
당시 나 회장의 기부 소식은 AJC 등 주류 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한-흑 갈등 완화의 기폭제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나 회장 가족을 초청,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단다.   
 
90대 남다른 노익장 이야기는 그 자체로 뉴스거리다. 지난 10월 13일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우주 기업 블루오리진이 쏘아 올린 우주선 '뉴 셰퍼드' 호의 4명의 탑승객 중에도 90세 노인이 있었다. 인기 드라마 '스타트렉'에서 제임스 커크 선장을 연기한 노배우 윌리엄 섀트너였다. 그는 텍사스주 밴혼 발사장을 이륙해 106km 상공까지 우주여행을 마친 뒤 무사 귀환,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드라마가 아닌 90세 나이에 실제 우주여행의 꿈을 이룬 그는 우주탐사 역사상 최고령 우주여행자로 기록됐다.  
 
90세 나이에도 일본 최고령 헬스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는 다키시마 미카(瀧島未香) 할머니도 감동이다. 65세 때 헬스를 시작한 할머니는 87세에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땄다. 처음엔 요양원 등 시니어 시설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인기가 높아져 이젠 젊은이 사이에서도 유명한 트레이너가 됐다. NHK의 간판 아침 프로그램에도 소개될 정도로 전국적 지명도도 얻었다. 할머니는 말한다. “이제부터 세계 진출을 위해 영어를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이들은 모두 도전하는 삶에 나이가 문제 될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하지만 나상호 회장은 신문에만 나오는 줄 아는 이런 이야기가 실제 우리 주변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나 회장은 인터뷰 내내 50~60년 전 일도 날짜까지 꼽으며 생생히 기억했다. 걸어온 길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도 야무지게 피력했다.  
 
사람들은 대개 하던 일을 접고 느긋이 여가를 즐기는 것이 노년을 잘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봉사든 뭐든 할 일이 있어야 늙지 않는다. 일을 놓은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늙고 마는 경우가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늙어서 일을 놓는 게 아니라, 일을 놓으니까 늙고 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 회장은 100세 시대의 훌륭한 롤 모델이 아닐 수 없다.    
 
■ 나상호 회장은
 
1930년 함경남도 풍산에서 태어났다. 6·25 때 월남,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2년 제대한 뒤 주한미군 부대에서 20여년을 일했다. 
1977년 도미 후 소매업에 종사하다 2007년 은퇴했다. 
조지아한인식품협회장, 민주평통 위원을 지냈으며 2002년 국민포장과 2007년 국가보훈처장 표창을 받았다.   
 

이종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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