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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세월을 자축하는 여행(4) -93세 아버지와 63세 아들이 함께 떠난 여행

멋진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차에 올랐다. 그 사이 모든 운무는 사라지고 가을을 예고하는 짙은 자연의 빛들로 가득했다.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논밭이며 숲은 남은 푸르름을 발산하고 있었다. 웅장한 지리산의 시작과 덕유산을 좌우에 두고 그사이를 차는 달렸다. 덕유산의 끝자락을 뒤로하고 이어지는 지리산의 장엄함은 압도적이었다. 이 나라는 작은 큰 나라라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었다. 지리산 휴게소, 이곳을 경계로 영남과 호남이 나누어지고 동편제와 서편제의 판소리도 이곳에서 나누어진다고 한다. 그곳엔 300년 노송들이 지리산 구룡폭포를 찾아 명창들이 득음하기 위해 오다가다 잠시 쉬는 그늘을 제공했을 듯이 휴게소 중앙에 서 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그 솔 마당을 잠시 거닐며 각자의 상념에 잠겨 보았다. 잘 걸으시는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동안 300년 노송을 대견스레 보시는 아버지의 눈빛이 100세를 향하는 자신감으로 느껴졌다. 남원을 지나 광주를 거쳐 목포로 향했다.  
 
서쪽으로 갈수록 도시마다 펼쳐지는 고층 아파트를 보시며 옛날을 회상하시는 아버지의 깊은 눈가에 웃는 주름들이 즐거움으로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안 졸리세요?” 나는 조용히 아버지에게 물었다. “이 순간들이 귀한데 졸면 안 되지”라고 답하셨다. 연로하신 아버지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에 가끔 여쭤 보아야 했다. 차는 목포에 도착했다. 점심이예약된 해남의 한정식집으로 먼저 향했다. 비린 것을 싫어하시는 아버지의 미각을 중심으로 리뷰를 보며 정한 곳이다. 이 집 음식은 깔끔하고 아버지 입맛에 딱 맞았다. 정성은 많이 조미료는 아주 적게 들어간 느낌이랄까 양이 많아 남길 수밖엔없었지만 남도의 풍부한 음식 문화가 느껴지는 오찬이었다.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종이컵 믹스 커피 한잔 마시고 해남이 자랑하는 세계유산 두륜산 ‘대흥사’로 향했다.  
 
나와 아버지의 여행을 꼭 카테고리에 만들어 넣는다면 ‘묻지 마 여행’에 가까울 거 같다. 조건 없이 따지지 않고 그냥 믿고 떠나는 거다. “대흥사 다녀오셨어요? 차를 타고 정상까지 가 보셨어요?” 식당 사장님의 질문에 고무되어 ‘차를 타고’‘정상까지’라는 키워드로 정한 곳이 ‘두륜산 대흥사’였다.  
 
아버지는 2년 전과 외모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으신 것 같아도, 순발력이 달라지셨다.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후에 반경 50m 정도의 걸을 수 있는 곳이 적당했다. 대흥사는 경내가 두륜산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 정상에 가까운 암자까지도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차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바퀴가 이탈할 것만 같은 등골이 서늘해짐도 몇 번 겪으며 정상으로 올라가는데 차 지붕에 가끔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가 더 긴장을 자극한다. 그런데 옆에 타고 계신 아버지는 편한 모습이셨다. 아들을 온전히 믿고 계셨다. 어릴 때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런 관계였다. 하늘이 가려진 숲속의 경치를 지금은 즐기고 계시지만 늘 바퀴가 이탈할 수 있는 긴장 속에서 말없이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 아니었을까? 마지막 고개를 넘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차에서 잠시 내려 눈 아래 펼쳐진 경관을 보며 우리는 각자 지나온 세월을 자축했다.



강영진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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