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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추억 속에 잠들 수 없어라

오늘은 뽕나무를 잘랐습니다. 요리조리 자르다 보니 몽땅 나무가 됐습니다. 섭섭하기도 하고 보기에도 흉한 것이 마음마저 상하려 합니다. 하여 자르다 말고 뜰 안에 내려앉은 낙엽을 밟았습니다. 낙엽이 종알댑니다. 사각사각, 바삭바삭, 한참 소란스럽습니다. 그 수다가 듣기 좋아 일부러 발길질해가며 뜰 안을 걸어보았습니다. 왠지 낙엽과의 작별을 생각하니 쓸쓸해 옵니다. 어쩌면 다시 가을이 오기 전에 이 집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현실입니다. 
 
남편이 설계해서 몇만 개의 못을 손수 박아 지은 집, 저희 식구에겐 소중하고 뜻깊은 집입니다. 이제 나이에 맞춰 집을 줄이고자 그만한 보금자리를 찾아 몸 편히 살라는 외침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 종착역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집에 말뚝을 박고 아이들 건강히 키워 날려 보냈고, 안팎으로 제 손이 아니 간 곳이 없는 나의 Home Sweet Home입니다. 
 
아이들이 모종해 온 저희 손가락만 한 단풍나무, 이웃에서 하나둘 얻어다 심었던 라일락, 등나무, 무화과, 여기저기에서 삐죽 나와주었던 뽕나무, 야생 복분자, 멀리 서쪽에서 실려 온 앵두나무, 은행나무, 그중에도 우리 식구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추나무, 늘 우아하고 탐스럽게 피어주는 수국, 얘네들 모두를 지극정성,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두고 어찌 떠나갈 수 있느냐?”고 이 아이들이 조잘조잘 농성을 핍니다. 대추를 따며 마음이 싱숭생숭했습니다. 너를 버리고 내 어찌 떠나겠는가? 그러나 한편 내 몸도 너무 힘들다고 투덜댑니다. 나, 라는 사람이 아주 손 놓고는 살 수가 없을 것이라는 내 버릇을 저 아이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추억과 미련 같은 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며 내 마음이 부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내 몸의 주인은 나이고, 이 집의 주인도 나입니다. 결정도 나의 것입니다.  
 
요즘에 와서는 척척 버리는 사람이 엄청 부럽습니다. 철 가리 옷 정리를 하다 또 놀랐습니다. 망설여도 여기에 머물고 싶은 이 마음을 어찌하리오? 해결책이란 단지 내 인격을 향상하는 길밖에 없다고 제 머리가 한마디 하네요. 이제 봄이 오면 저 몽땅 뽕나무에 다시 연푸른 새싹을 피울 터이고 누에고치 먹일 일은 없을 터이니 뽕잎 새순을 따서 떡도 해 먹고 말려서 차도 나무 밑에 서서 입술이 새까맣도록 따먹을 기대나 걸어보려고요! 온화하면서도 오늘 일은 오늘, 내일 일은 내일로 살아가라는 노인들을 향한 제1의 모토(Motto), 오늘 나는 노인을 위한 제2의 모토로 “추억 속에 잠들지 말지어다!”를 넣어보겠습니다.  
 


머리가 파 뿌리 되도록 길렀던 자식들이 간직한 추억이며 정성껏 키웠던 뜰에 나무들을 버리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어떤 사람에게 넘겨줄 것이 집과 뜰 안에 아주 많이 생겼습니다.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닌 내 정성, 내 사랑, 나의 보물! “이 모두를 젊은? 다음 세대에게 아낌없이 넘겨주리라!”가 저의 제3의 모토가 되겠습니다. 오늘 낙엽들이 저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곱게 가르쳐 주고 갔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가을을 남기고 가는 저 단풍잎이 그리도 고운가 봅니다. 저도 저 고운 단풍잎을 닮고 싶습니다.

남순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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