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진짜 애호가의 시대
조회수 730만. 지난달 23일 막을 내린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시청자였다. 아니, 관객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사실은 최소 730만이다. 폴란드 쇼팽 협회는 본선 2차 스트리밍 조회수까지만 공개했는데, 바로 참가자 44명이 연주한 2차 조회수가 730만 명이었다. 90여 명이 연주한 1차(130만)보다 확 늘어났고, 다운로드 횟수는 1·2차 합쳐 5만6000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 무대가 사라진 후 음악 청중은 온라인으로 연주를 보고 듣는 데 익숙해졌다. 전 세계 음악팬이 같은 시간에 지켜보기 시작하면서 음악 콩쿠르 양상도 달라졌다. 그동안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했던 대표적 이벤트가 바로 콩쿠르였는데, 이제는 수백만 명이 과정을 지켜보며 함께하기 시작했으니까.
쇼팽 콩쿠르의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확인한 음악 청중은 지금까지와 달랐다. 우선, 많은 청중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자를 찾아내곤 했다.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는 스트리밍 화면 한쪽에는 댓글이 언제나 쏟아져 내리곤 했는데, 자신의 취향과 팬심을 고백하는 내용이 많았다. 다른 어떤 작곡가도 끼어들 수 없이 오로지 쇼팽만 연주하는, 독특한 이 대회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 스타일을 발견한 이들이었다. 같은 곡을 여러 다른 연주로 들어보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기 마련이다.
또, 참가한 피아니스트들이 2주 동안 결승점 안 보이는 마라톤을 뛰듯 중압감을 이겨내는 과정과 함께하면서 청중은 등수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다. 한국 참가자 중엔 피아니스트 이혁(21)과 김수연(24)이 각각 최종, 3차까지 올라갔는데, 그들이 탈락해도 응원은 식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사이에는 실력이 아닌 개성 차이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년의 콩쿠르와 달리 입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피아니스트들에게도 큰 관심이 몰리고 있다.
피아니스트 90여 명의 연주를 다 듣고 나면, 무엇보다 국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성진이 우승한 2015년 쇼팽 콩쿠르와 달리, 올해 우승자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캐나다 국적의 브루스 리우(24)다. 하지만 1차부터 함께해온 다국적 청중이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오는 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리우의 서울시립교향악단 협연의 이른 매진이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부터 쇼팽 협회와 제휴해 발 빠르게 이번 공연을 준비해온 서울시향은 빠른 티켓 매진에 따라 온라인 생중계를 추가했다.
쇼팽 협회에 따르면 콩쿠르 스트리밍을 가장 많이 본 청중은 일본(45.5%)이었고 한국·폴란드·미국이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완성품을 보는 대신 여정 자체를 즐기는 이들, 그러니까 진짜 애호가들의 시대가 왔다.
김호정 / 한국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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