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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반려식물’이 된 소철나무

 우리 집 뒷마당 수영장 옆에 늙고 듬직한 소철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녀석이 우리 집으로 이사 온 지 40년이 넘었다.  
 
내가 소철나무를 처음 만난 때는 60년 초 대학 시절이었다. 혜화동 사는 친구 집 한옥 현관 앞 화분에 키가 조그만 소철나무가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품위 있는 부잣집 기풍을 자랑하듯, 친구를 생각하면 집 앞 그 소철나무가 마음속에 선명한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이민 초창기에 화원을 운영했다. 화원 구석진 자리에 아무도 사 가지 않은 작고 초라한 소철나무가 있었다. 이파리 서너 개를 달고 오랫동안 주인을 기다렸다. 혼자 남아 있는 모습이 어미 잃은 강아지처럼 안쓰럽고 가여웠다.  
 
생각 끝에 녀석을 우리 집에 데려오기로 마음을 정했다. 뒤뜰에 심은 소철은 날이 갈수록 자리를 잡아갔다. 땅 냄새를 맡고 잘 자라 어느새 뒷마당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옛날 친구 집 정원처럼 제법 의젓한 기품을 풍기기 시작했다.  
 


어느덧 몸체는 처녀 허리만큼이나 커졌고 투실투실한 잎새는 뒷마당 터줏대감으로 제격이었다.  
 
밑동에는 많은 새 새끼들을 내렸다. 예쁜 놈은 화분에 옮겨 친구가 새집을 장만할 때 선물했다. 소철나무는 내 마음을 초록빛으로 물들여 주었다. 녀석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소철은 작지만 천년을 사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했다. 철분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식물로 많이 키운다. 수컷과 암컷이 있는데 암컷은 주홍색 열매를 맺고 직사광선과 건조한 곳을 좋아한다. 나무의 잎이 봉황새 꼬리를 닮아 ‘봉미초’라 불리운다. 백 년에 한 번 피는 꽃, 행운의 꽃이라고도 부른다.
 
어느 해, 나무에 허연 수염 같은 털에 싸여 주홍색 밤 같은 열매가 달려있기도 했다. 해가 갈수록 성숙해 보이지만 어쩐지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느 때는 새잎도 못 내고 볼품없이 보이기도 했다. 나이는 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애들이 방학 때 집에 오면 소철나무가 너무 크고 늙어 보인다며 다른 나무를 심자는 제안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반대했다.    
 
소철나무는 우리 가족이다. 나와 함께 늙어가는 말 없는 ‘반려식물’이 됐다. 함께 사는 햇수가 늘면서 같이 늙어가는 녀석의 모습에 신경이 쓰인다. 사람이나 나무나 나이가 들면서 성숙해지고 익어간다. 녀석을 어떻게 관리해주는 게 좋은지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다.  
 
아침저녁 제법 쌀쌀하다. 뒤뜰로 나와 소철과 대화를 나눈다. 우리 집 뒷마당을 녀석이 지키고 있다. 수문장처럼 당당하고 품위 있게, 꿋꿋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든든하다. 살다 보면 백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그 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볼품없다고 밀쳐 두었던 나무였다. 녀석을 홀대했던 때가 있었다. 새삼 미안하고 부끄럽다.  
 
 낯선 땅에 뿌리 내려 사느라 힘들었던 삶을 돌아본다. 오늘도 우리 집 소철나무에 실바람이 살랑거린다. 푸른 잎 끝에 벌새 한 마리 앉아 쉬고 있다.

이미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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