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이별을 위한 만남
나이가 들면서 좋은 것 하나는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의 여유로움이라고 할까. 내 주위의 일들에 대해 크게 좋지도 썩 나쁠 것도 없이 무덤덤해지는 것이다. 힘든 이민 생활이 만들어준 내공 같은 것일 수 있고, 하나님이 나의 든든한 배경이라는 자신감일 수도 있겠다.지인의 생일파티를 즐겁게 하고 돌아온 날, 한국에서 카톡이 여럿 들어와 있었다. 무음으로 휴대폰을 세팅해 놓았기에 몰랐다. 한국의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가 ‘임종실’로 옮겨 갔다는 비상사태를 알리는 거였다. ‘임종실’이라는 말에 가슴이 무너졌다. 엄마는 세상을 뜨려는데 외동딸은 희희낙락하고 있었다니, 눈물이 왈칵 나면서 무심하던 평소의 자세가 크게 흔들렸다.
나만 빼고 가족이 다 모였는데 반응 없던 엄마가 눈도 뜨고 발도 움직였다며 “어머니가 형님을 기다리시나 봐요” 하는 올케의 전언이다. 이별이 멀었다 싶었는데 깜짝 놀라 한국행을 서둘렀다.
격리 면제를 위한 서류를 만들고 영사관의 허락 받느라 꼬박 하루가 걸리고 다음날 밤 비행기로 한국에 왔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정말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걸까. 엄마께 미안했다.
살아 생전에 뵙는 것과 장례식에서 만나는 건 의미가 매우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비행기 안에서 기도하고 기도했다. 다행히 엄마는 기다려주시고 딸과 사위를 보자 힘이 나신 듯 다시 병실로 옮겨 가셨다.
임종실과 중환자실을 여러 차례 오가는 어머니. 코로나 역병이 멀리서 온 딸과 죽음을 앞둔 엄마의 상봉을 가로막았다. 중환자실은 평소엔 면회가 안 되고 임종이 가까워야 비로소 식구들의 면회를 허가한다. 두 번 대면하면서 엄마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이 슬펐다.
격리 면제서를 들고 왔어도 다음날 관할 보건소에 가서 다시 한번 코로나19 테스트를 받고, 1주일 후 또 받았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꼼짝하지 말라고 한다. 과연 철저한 한국의 방역시스템이긴 하다.
하지만 쓸데없이 지나쳐 분통이 터진다. 아까운 날들이 낭비되어 어렵게 받아온 격리 면제서가 무색하다. 이별을 위해 먼 길을 온 가족들의 애달픈 마음도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번의 만남은 헤어지기 위한 만남이었다. 이별을 위한 만남. 엄마는 최선을 다해 나를 기다려주셨다. 엄마가 남아있는 우리들 걱정일랑 마시고 훌훌 털어버리고 가볍게 가셨으면 한다. 하늘에 먼저 터를 잡은 아버지도 만나고 이모도 만나서 활짝 웃으면서 지내시길 소원한다.
조카가 임신 사실을 알리니 알아들은 듯 기쁜 표정 지으셨다는 엄마. 1933년이 가고 2022년이 오는, 두 세대가 어느새 바통 터치를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신기한 하늘의 조율이다.
이정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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