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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친중국 성향 알려지자 대만서 ‘공공의 적’ 돼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11〉대만 핵 쓰레기 북한 유입 막다  
판문점 인근 매립설 오염 문제 파고들어  
특별 결의안 통과시켜 거래 중단 끌어내
나를 도와준 대만계 중국인 다섯 명이 대만을 방문하자고 했다. 이들은 이등휘 대만 총통의 정중한 초청장까지 들고 왔다.  
 
그때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아보긴 처음이었다. 비행장에 마중 나온 수십 명 환영객과 기자들에 둘러싸였다. 인기 스타라도 된 기분이었다.  
 
대만은 미국에서 로비 활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이스라엘 다음일 것이다.  
 
저녁 초대를 받아 식당에 갈 때도 경찰이 오픈카를 타고 앞장서 교통정리를 해 가며 안내해 준다. 외국 국빈들을 극진히 대접하기로 유명하다. 대만에 한 번 다녀온 이들은 대만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대만은 사실 국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미국과 함께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고 선언했다. 대만을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만은 친미 성향이 강하다. 지금도 잘 살지만, 당시에는 중국 본토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했다.  
 
대만의 현안은 친 중국파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 독립파의 대립이었다. 이 두 파가 갈라져 서로 대결하는 모습은 치열하다. 내 지역구 안에서도 같은 대만인끼리 두 파가 갈라져 치고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한 명이 맞아 죽기도 했다. 나도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언젠가는 대만이 중국에 흡수당할 것으로 봤다. 자고로 대국 편을 드는 것이 정치적으로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나의 친중국 성향이 알려지면서 대만은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대만 독립신문으로부터 연일 집중포화를 받았다. 반면 중국 본토에서는 반겼다. 당시 중국 편을 들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이 오늘날 같은 경제 대국이 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때다.  
 
오히려 중국이 머지않아 5개 독립국(대만, 홍콩, 티베트, 관동, 중국)으로 분열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이듬해 뉴트 깅그리치 연방하원 의장과 함께 두 번째로 대만에 방문했을 때 일이다. 대만의 이등휘 총통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일 먼저 대만을 중국 영토로 인정하고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던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노골적으로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나는 미국 연방하원 의원 자격으로 방문한 것이라고 못 박았다.  
 
물론 대만이 대단하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조그만 섬나라지만 당시 무역으로 세계를 휘어잡으며 ‘메이드 인 타이완(Made in Taiwan)’이 판을 쳤다.  
 
김영삼 대통령 때 일이다. 대만 정부가 북한에 핵 쓰레기를 팔기로 하고 계약을 체결하려는데 이를 자세히 알아보고 미국서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요청이 왔다.  
 
대만은 전력 공급의 100% 가까이를 핵 발전소에 의존한다. 첨단기술 산업의 급속한 성장으로 전력수요가 많이 늘어나면서 기존 핵 발전소로는 이를 충당할 길이 없었다. 대형 핵 발전소 하나를 더 만들려 했다. 문제는 여기서 나오는 핵 쓰레기 처리였다. 조그만 섬나라에서 핵 쓰레기를 해결할 수 없었다.  
 
대만은 궁여지책 끝에 이 핵 쓰레기를 수천만 달러를 주고 북한에 팔아넘기기로 한 것이다. 외화난에 시달리는 북한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돈이 급해도 남의 나라 핵 쓰레기를 받으려는 북한도 그렇지만 돈 좀 있다고 핵 쓰레기를 남의 나라에 막 팔아넘기려는 대만도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핵 쓰레기가 북한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은 계속 해답 찾기에 바빴다. 초선의원인 내 힘으로 해결하기 버거운 문제로 여겨졌다.    
 
내 정치활동에서도 굉장히 예민한 문제였다. 내가 한인이라 자칫 지역구 주민은 안 챙기고 조국인 한국 일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LA타임스 등 진보진영 기자들이 소수계 공화당원인 나를 껄끄럽게 생각하면서 어떻게든 쫓아내려 하는 판국이었다. 더 약점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그들에게 자칫 떡밥 하나만 더 주는 셈이었다. 내가 주류언론 타깃이 된 것은 이미 당내에서 공공연한 얘기였다.  
 
고심 끝에 내가 아는 의원 중 가장 막강한 권력이 있는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런데 깅그리치 의장은 북한과 대만 두 나라 협상에 있어 제삼자인 미국이 간섭하는 것은 모양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반대 명분이 없다는 지적이었다.  
 
낙심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려면 명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한국에 전화해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아무래도 내 힘으론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명분 찾기에 골몰하다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뉴스를 보니 유조선 씨프린스호가 전남 여수 앞바다 암초에 충돌해 기름이 새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톱뉴스로 나왔다. 환경보호단체들이 펄펄 뛰었다.  
 
‘바로 이거다!’ 속으로 외쳤다.    
 
수천 드럼 핵 쓰레기를 선박으로 운송하는 도중 사고가 날 경우 바다가 온통 방사능으로 오염될 수 있다고 하면 깅그리치 의장도 고개를 끄덕일 거라 생각했다. 북한이 핵 쓰레기를 판문점 근처에 깊이 묻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만일 여러 가지 예측 못 한 이유로 파손돼 지하수를 통해 불과 1마일도 되지 않는 한국 내 지하수가 오염되면 이를 식수로 사용하는 미군들 건강에도 심각한 위협이 초래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또 핵 쓰레기를 국가 간 사고파는 전례가 있어선 안 된다고 했다. 그 내용 그대로 결의안을 작성했다. 여러 번 읽어도 빈틈없는 결의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깅그리치 의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결국 내가 발의한 결의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동일 결의안(Concurrent Resolution)으로 불리는 이 특별 결의안은 단지 연방의회 의견(Sense of Congress)을 표현할 뿐, 강제성이나 구속력은 없다. 메시지 성 결의안이었다.    
 
효력이 바로 나타났다. 통과 다음 날 결의안이 대만 정부에 전달됐고 결국 북한 측과 거래가 중단됐다. 이때 내가 느꼈던 성취감은 어마어마했다.  
 
결의안을 상정했을 때 GE 회장이 부회장 등 5명을 대동하고 직접 내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수억 달러에 달하는 대만의 핵 발전소 건설을 자기네가 맡았는데 왜 미국 연방하원 의원이 미국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공사를 막았냐며 노발대발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었다. 한국 정부에서 혹시 부탁한 것 아니냐고 따질까, 솔직히 속으로 조마조마했다.  
 
나는 결의안이 핵 발전소 건설에 대한 게 아니라 핵 쓰레기만을 다룬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들은 결의안 폐기를 거듭 요구했다. 그런데 아닌 것은 아니다. 한국과 미군 생명은 물론, 바다의 방사능 오염은 모두가 걱정해야 할 문제다. 한 기업의 이윤이 이를 넘어설 수는 없다. 정중히 거절했다.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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