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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국제시장

김건흡 / MDC시니어센터 회원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 사람이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어머니의 눈물은 얼굴로 흐르지만 아버지의 눈물은 가슴으로 흘러 가슴에 눈물이 고여 있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장소(그 곳을 직장이라고 한다)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버지란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는 자책을 날마다 하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자식을 결혼시킬 때 한없이 울면서도 얼굴에는 웃음을 나타내는 사람이다.
 
시니어센터에서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국제시장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2014년에 국내에서 개봉된 ‘국제시장’은 우리 시대의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다. 윤제균 감독은 대학교 2학년 때 여읜 아버지의 본명 '윤덕수'를 주인공의 이름으로 정할 만큼,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국제시장'’은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1994년 작 '포레스트 검프'를 떠올리게 한다. 설정이 비슷하다. '포레스트 검프'는 미국 현대사의 주요 현장을 직접 경험한 포레스트 검프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다. ‘국제시장’ 역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덕수(황정민)라는 남자의 인생을 그린다. 한 국가의 역사를 특정 인물의 삶을 통해 그려내고, 그 삶에 메시지를 담는 형식이 닮았다.
 


‘국제시장’은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다. 함경남도 흥남 부두 근처에 살던 덕수(황정민)의 가족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을 피해서 남쪽으로 내려와 부산 국제시장에 삶의 뿌리를 내린다. 난리 통에 아버지와 막내를 잃은 덕수는 어릴 때부터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야말로 ‘인생을 바쳐’ 생활전선에 나선다.  독일 광부 파견에 지원하고 한국에 돌아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는 곳으로 향한다.
 
대학에 가서 캠퍼스를 누비고 싶었던 덕수의 꿈은 가장이라는 멍에 때문에 실현되지 못한다. 선장이 돼 바다를 활보하고 싶던 꿈은 동생의 등록금과 결혼자금 앞에 설 자리를 잃는다. 영화는 70대 노인이 되기까지 덕수의 험난한 인생을 보여주며 그가 살아온 시절의 이야기들을 다룬다. 덕수는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평생 단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그의 인생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명문대에 합격한 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자신의 학업을 포기하고 파독 광부로, 이후에는 전쟁이 한창인 베트남으로 떠난다. 이런 남편의 희생이 아내 정민의 눈에는 영 마땅치 않다. 남편 덕수가 독일 광산에서 살아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이번에는 여동생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하겠다는 것이다. 영자의 앙칼진 넋두리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만큼 했으면 됐어요. 더 이상 뭘 더 해요. 왜 항상 당신만 희생해야 하냐고요.” 
“누군 머 가고 싶어서 가는 줄 아나. 이런 기 내 팔자라꼬. 내 팔자가 이런데 우짜란 말이고!” 
“당신 팔자가 어때서? 이제는 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도 한번 살아보라고요. 당신 인생인데 그 안에 당신은 왜 없냐고요!”
 
이야기가 무척 흥미진진하거나 극적이지는 않지만, 보는 시간 내내 가슴이 먹먹하다. 영화에서 늘 나오는 재미요소인 조연의 친구 역할도 극을 이끌어 가는데 즐거움을 주고, 나름대로의 유머와 재미가 있고, 감동과 눈물도 있다. 덕수 부부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도 잔잔한 웃음을 자아낸다.  
 
독일에 광부로 다녀온 것도 부족해서 베트남에까지 가야 하느냐며 남편에게  퍼부어대던 영자가 갑자기 마이크에서 애국가가 울려나오자  벌떡 일어나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조금 전의 사나운 모습은 간 데 온 데 없다. 거리를 지나가다가도 라디오나 마이크에서 애국가가 울려나오면 모두가 멈추어 서서 엄숙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사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자리는 영원히 운전석일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아버지의 자리도 바뀌어갔다. 내 나이 5살…아버지는 운전석, 나는 뒷좌석 , 내 나이 16살…아버지는 운전석, 나는 조수석 , 내 나이 28살…내가 운전석, 아버지가 조수석 , 내 나이 37살…나는 운전석, 아버지는 뒷좌석 , 내 나이 45살…나는 운전석, 아버지는… 어느 자리에 앉든 늘 자식 걱정이 먼저였던 아버지,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더 이상 자동차 좌석 어디에도 계시지 않았다.  
 
별 일없이 지내다가도 문득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아버지가 운전하던 자동차가 그리워진다. 뒷좌석에 타면 바로 눈앞에 보이던 든든한 어깨가 너무나도 그립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핸들을 잡은 아버지의 손을 꼭 포개어 잡고 말할 것이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많이 사랑합니다!”
 
오래전, 한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어느 기업의 이미지 광고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했던 아버지의 뒷모습, 그러나 이제 아버지는 없다. 우리가 지난 날 의식주의 기본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잘 산다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달해야 할 절대적인 목표이자 염원이었다. 개인이 그랬고, 또 사회와 국가가 추구하는 최대의 과제이기도 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뒷동산의 느티나무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 큰 이름이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 싶은 사람이다. 가부장의 권위가 추락할 때마다, 여성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아버지 신드롬이 불거진다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의 지적은 잠시 못들은 척하자. 남자다워야 한다는 사슬에 스스로를 묶어, 힘들고 지쳐도 내색하지 않고 짐을 나눠지지도 못한 채 견뎌온 아버지가 아닌가.  
 
갈수록 경쟁력만 강조해대는 글로벌 사회, 가족들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고도 ‘부자 아빠’가 아닌 탓에 울 장소조차 없는 아버지. 아버지가 우는 시대는 불우한 시대다.‘국제시장’은 아버지에게 바치는 눈물의 헌사다. 80이 넘은 노인이 되어 아내와 함께 다시 보는 ‘국제시장’은 여전히 감동이다. 

김건흡 / MDC시니어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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