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의약업계도 ‘할랄’과 ‘코셔’ 인증
지난달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식품에 이어 의약품에까지 ‘할랄’ 인증을 의무화했다. 5년의 시행 기간을 둔다고 하지만 할랄 인증을 받으려면 알코올을 함유하거나, 동물 실험을 하거나, 돼지고기 등 동물성 성분을 함유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많은 신약의 경우 동물실험을 거쳐 탄생한다. 실제로 이 할랄 인증 의무화가 인도네시아 의약품 허가와 수급에 어떻게 적용될지 궁금하다.‘할랄’은 최종 제품은 물론 원재료와 제조 공정까지 이슬람 율법에 따른 제품을 의미하는데, 유대교 율법에 부합한다는 뜻의 ‘코셔’와 마찬가지로 돼지 도축을 금하고 있다.
식품과 화장품에서는 이미 코셔와 할랄 인증을 쉽게 볼 수 있다. 초코파이, 라면, K-뷰티 등 한국의 제품들도 몇 년 전부터 특정 지역의 수출품을 중심으로 이런 인증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식품과 화장품처럼 기호품이 아닌 의약품에도 할랄과 코셔 인증은 있었다.
처방전 없이 환자가 직접 약국에서 살 수 있는 OTC(over the counter) 의약품은 아무래도 환자들이 직접 약을 결정하기 때문에 비타민이나 기침 감기약, 통증, 앨러지 약 등의 경우 마케팅 관점에서 종종 코셔나 할랄 인증 기관에서 해당 인증을 받고 출시되기도 한다.
치료약을 환자 자신이 아닌 의사의 처방에 의해 결정하는 전문의약품은 상대적으로 이런 인증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우연히 필자는 화이자에 근무할 때 글로벌 마케터로서 전문의약품을 론칭하면서 전략적인 차원에서 코셔 인증을 받거나 할랄을 존중해 출시했던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예는 글로벌 희소질환 치료제로서 전문의약품 주사제 세계 최초로 코셔 인증을 받았었다. 대상 질환이 유대인에게 주로 발생하는 유전적 질환이었다. 해당 치료제가 동물성 성분을 함유하는 기존 제재와 달리 식물성 원료로 만든 것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유대인들에 친화적임을 호소하려는 제품 차별화 마케팅 전략이었다.
코셔 인증 자체가 의사들의 처방과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을지라도 처방을 받는 유대인 환자들의 제품 호감도를 높여 복약 순응도(compliance rate)를 제고하기 위함이었다.
또 다른 예는 연질 캡슐 제형의 급성 통증 치료제였다. 그 당시 무슬림 국가들이 제품 론칭에 매우 소극적이어서 그 이유를 파악해보니, 연질 캡슐의 원재료인 젤라틴을 돼지 피에서 추출하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에 필자는 해당 제품의 판매가 컸던 미국과 유럽 국가들 및 본사 생산팀과 협의를 거쳐, 연질 캡슐 재료를 돼지고기에서 소고기 추출로 전면 변경했다. 해당 약의 시장 크기로 따지자면 상대적으로 미미했던 이슬람 국가들이었지만 급성 통증 환자들 개개인에게 더 나은 치료 옵션을 제공하고 싶은 인도적 차원에서 내린 글로벌 생산 전략 변경이었다.
론칭을 시작하면서 이슬람 국가들이 필자에게 보내온 따뜻한 감사 인사를 기억한다.
이렇게 다양한 이유에서 연방식품의약국(FDA) 허가 이후에 인증 기관을 통해 코셔와 할랄 인증을 받는 의약품들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인증이 더 나은 의약품을 뜻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의약품의 품질 및 안전성과 효과는 의약품 개발 및 FDA 승인 과정을 통해 이미 충분하고 완전하게 검증된 것임을 잊지 말고 환자 개개인에게 최적의 약물을 선택해야 한다.
류은주 / 엑세스 바이오 CB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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