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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은근과 끈기의 민족성

한국인이 가진 여러 특질 중에 은근과 끈기가 있다. 경박하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은근하게 마음을 전한 것이 조선의 선비정신이었다. 그들은 한 권의 책을 수백번 읽는 끈기도 갖고 있었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은근과 끈기보다는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기마민족의 특질이 더 강조된 것 같다. 이러한 특질이 디지털 혁명을 겪으면서 세계의 새로운 문화를 주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가파른 변화를 겪고 고속성장을 환호하는 사이에 화려하지 않는 은근함, 여간해서 굴하지 않는 끈기기 사라져가고 있다. 부가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이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한다. 남보다 더 가져야 한다는 강박 관념은 이웃을 돌아보지 않는 야성의 사회를 만들고 있다.
 
이런 사회 현상이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처절한 게임에 내몰릴 만큼 극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그저 드라마로 보기에는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드라마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사회 현상이 세계 곳곳에 팽배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언젠가 시한폭탄이 될 수 있는 이러한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개인의 선의에만 의존하기에는 어두운 구석이 너무 많다. 한국사회도 점점 오징어 게임을 닮아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씁쓸한 이야기다.  
 
요행을 노리는 게임에 참가하기 보다는 더 좋은 변화를 위해 무엇인가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은근과 끈기라는 특질이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가려져버린 이 특질을 다시 불러내야 한다.
 
끈기의 결과는 최근 중앙일보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영어로 된 학술서를 낸 구대열 교수(76)에게 영어를 잘하는 비결 묻자 ‘무소반 읽외’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영어로 강의하고 영어로 496쪽에 달하는 학술서까지 냈다. 그는 유학도 기자 생활을 5년 한 뒤 늦게 갔다.  
 
그는 영어 공부 비결에 대해 “무조건 소리 내어 반복해서 읽고 외웠다”라고 답했다. 책 두 권을 정해 놓고 완독할 때마다 ‘바를 정(正)’자를 써가며 계속 외웠다. 어느새 ‘정’자가 200개가 넘었다고 한다. 무서운 끈기다.
 
그는 한국 대학에서 영어 광풍이 불 때 가장 먼저 영어로 강의한 한국인 교수다. 그의 끈기가 영어로 강의하고 영문 학술서를 발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호왕(93) 고려대 명예교수는 평화상 외에는 노벨상 수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한국에서, 올해 생리의학상의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됐었다. 그는 의대 졸업 후 한결 같이 바이러스를 연구한 기초 의학자이다. 그의 끈기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
 
은근이 존중 받고 끈기가 보상 받을 수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야성이 재배하는 사회는 화려해 보여도 모두에게 위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성규 / 베스트영어훈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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