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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2등도 대접받는 사회

 연극을 제법 오래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얄궂은 버릇이 생겼다. 그냥 지나쳐도 좋을 일상의 자잘한 장면을 보면서 내 멋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즐겁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음악회 연주 장면을 영상으로 본다.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독주자가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연주자의 진지한 얼굴 표정, 바이올린 현과 활의 격렬한 어울림… 때로는 지휘자의 멋진 모습도 비춘다. 화려한 연주복으로 잘 차려입고 악기에 몰두하는 독주자 뒤쪽으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의 모습이 보인다. 독주자를 바라보는 연주자의 눈길이 뭔가를 말하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 내 멋대로의 상상력이 시작된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음악학교 동기동창일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두 사람은 우정으로 똘똘 뭉쳐 늘 붙어 다니는 사이였다. 실력은 막상막하였고, 장래의 꿈도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차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미묘하던 차이가 세월이 흐르고 이런저런 사연이 겹치면서 점점 더 벌어져갔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실력, 우연, 불쑥 찾아든 사랑과 연애, 환경, 운명, 성공을 향한 지독한 집념….
 
그렇게 세월은 흘러 한 사람은 유명한 독주자가 되고, 한 사람은 평범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한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 많은 생각이 오가는 것이 당연하다. 성공한 친구에 대한 축하와 자랑스러운 마음, 그 밑에 깔린 부러움, 시샘, 열등감, 자괴감 등등… 연극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누가 더 행복한지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가령, 첼리스트 재클린 뒤프레 자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힐러리와 재키’를 보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공을 거둔 재클린의 처절한 고독이 가슴 아프다.
 
그런데 이런 일은 우리 현실에도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예를 들어 만약 미국으로 이민을 오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지금보다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착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국에서 제법 출세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미국에 온 길에 일부러 들렀으니 오랜만에 얼굴이나 보자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약속장소에 나가보니 비서를 거느리고 나타나서 거들먹거리는 꼴이 영 꼴불견이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사람이란 존재가 참 단순하고 우매해서 자기보다 잘 나가는 사람 앞에서는 주눅이 들고, 자기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우쭐대는 마음이 앞서게 마련이다. 별 근거 없는 자만심과 열등감 사이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사는 것이다. 그 격차를 줄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비교를 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실천은 어렵다.
 
문제는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가령, 우리 한국 사람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버릇, 백인들에게는 주눅 들고, 피부 색깔 짙은 사람들은 마구 대하는 고약한 버릇의 근거와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설득력 있는 기준은 없다. 있을 수 없다.
 
세계적 화제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오영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 사회가 1등이 아니면 존재하면 안 되는 것처럼 흘러가고 있어요. 2등은 필요 없다. 그런데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에게는 이겼잖아요. 다 승자예요.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승자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애쓰면서, 내공을 갖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승자가 아닐까 싶네요.”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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