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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모닥불 피워 놓고

 날씨가 스산해지며 가을이 어느새 군밤처럼 달큰하게 익었다. 업스테이트 뉴욕의 덴버 베가마운틴엔 이미 절정의 단풍이 안녕을 고하고, 떨어진 낙엽으로 하여 나무들의 머리숱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겹겹이 동고동락하는 산의 능선 위로 햇빛이 비치면 그 빛의 각도에 따라 산의 무늬들이 황홀한 단풍의 빛나는 색동 쇼가 화려하게 개최된다.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테니/ 알아서 가져 가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 날’이라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가 어쩌면 그렇게 절묘하게 우리들의 정서와 합일되는지, 그것 또한 또 하나의 경이다.
 
베가마운틴의 친구 집에선 난롯불이나 모닥불을 자주 피운다. 친구가 장작으로 불을 지피면 그 앞에 앉아 불멍을 때린다. 그냥 그렇게 앉아 무념무상의 세계에 빠져들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평화가 안개처럼 온몸에 스며들고, 무엇이든 다 지나가는 것처럼 온몸의 세포 마디마디가 나비처럼 하모니를 이루며 세레나데를 구가한다. 힐링이라고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녹아 새로운 불꽃으로 환생 되는 신선한 꿈이 이루어진다. 그 안에는 안방 화로 주위에 둘러앉아 군밤이 익으면 잿속에서 꺼내 껍질 까주시던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도 있고, 혹여 늦게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위해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데우시던 엄마의 웃는 얼굴도 있다. 내복 바람으로 밤늦게까지 가족들이 그렇게 모여 깔깔대며 장난치던 그 시절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지금은 기억 속의 동화로 아득하다.  
 
난로 앞으로 친구가 뜨거운 차를 가져다준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차의 따뜻한 감촉이 기분 좋다. 장작불에 미니 고구마도 구워 먹고, 땅콩도 굽고, 때로는 갈비며 생선도 굽는다. 그곳에 앉아 책도 읽고, 때론 와인과 치즈도 즐기며 그냥 앉아 졸기도 한다.
 


‘모닥불’이란 시에서 백석 시인은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짗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이라며 무엇이든 다 태울 수 있는 모닥불의 무한대 포용을 설파했다. 그러면서 ‘재당도, 초시도, 문장(門長) 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고 우리네 척박한 살림살이를 아울렀다. 비록 현실은 그럴지라도 무엇이든 불을 일궈 서로의 가슴을 훈훈하게 녹이는 인정을 일깨워 주었달까. 사실 마지막 연의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니도 뭉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고 할아버지의 슬픔을 통해 민족의 아픔까지 얘기해 좀 어렵긴 하지만, 모닥불이 주는 그 화합과 따사로운 정감은 늘 우리 가슴 속에 불씨로 남아 있다.  
 
난로 앞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사실 딱히 하고 싶은 말도 없다. 그냥 이 찬란한 10월에 박인희의 노래처럼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이니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불멍! 때리며 우리들의 끝없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카뮈도 말하지 않았는가.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찾아 헤맨다면 당신은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면 당신은 절대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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