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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24년 만에 다시 찾아온 환자

14세에 나를 찾아왔던 숙이(가명)는 심한 우울과 불안증상, 분노감정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에 관해 물었을 때 할아버지가 사업에는 성공하셨지만 심각한 음주벽과 문란한 여자 관계로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조울증 환자들은 극도로 예민한 감정을 갖고 있어 인간관계가 힘들다. 그러다 보니 불안이나 우울, 분노의 감정이 커지면서 자가치료(?)의 방편으로 알코올중독이 되기 쉽다. 게다가 조증 상태에서는 자존감의 증가하고 자신을 과신하는 망상증과 함께 지나친 성적 욕구로 문란한 성적 행동을 하기 쉽다. 할아버지의 이력을 보니 숙이에게도 조울증의 가족력이 의심스러웠다.  
 
조울증은 최근에 양극성 질환이라고 불린다. 기분의 변화가 정상을 벗어나 극단을 오가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으면 하늘에 떠있는 듯이 기쁘지만 반대로 갑자기 죽고 싶을 만큼 슬프고 암울해지기도 한다.
 
병이 30대 이후에 발병할 경우, 조증 시기에는 하루에 3시간만 잠을 자도 에너지가 넘친다. 직장인은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 온종일 기쁘게 일을 한다. 예술가나 작가들은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들을 완성한다.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병을 앓았다. 그는 다섯 번의 결혼과 심한 알코올중독을 경험했고 이후 총기 자살로 일생을 끝냈다. 그의 가까운 친척 중에 여섯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 이 병이 유전을 통해 가족들에게 대를 이어 가는 것을 보여준다.  
 
숙이처럼 청소년이나 아동기에 발병하는 경우에는 기분이 고조되고 기쁜 대신에 심각한 분노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보인다. 어린 시절에 이런 병이 오면 집중해서 학업에 전념하기 힘들어 성인이 된 후 살아가는데 필요한 배움의 기회를 잃게 된다.
 
그녀는 병세가 심했던 사춘기를 지나자 학교에 돌아갔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우울증이나 양극성 질환처럼 정서불안 질환들은 증상이 간헐적으로 온다. 치료를 받았거나, 받지 않은 경우에도 저절로 낫는 경우가 많다. 다만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면 재발이 돼도 심각하지 않은 반면에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에는 재발이 자주 되고 증세가 더욱 심해진다.  
 
숙이는 어머니의 극진한 정성과 사랑으로 여러 차례 입원치료, 약물사용, 상담 등을 받았고 증세가 호전돼 요리 전문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그녀는 10여군데 직장을 옮겨 다녔다. 자신의 상관, 동료, 후배 등과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일터를 떠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제를 다른 사람 탓으로 보는 습관 때문에 자신에 대한 반성 대신에 타인을 향한 미움이 강했다.  
 
숙이는 24년이 지난 38살 나이에 나를 다시 찾아왔다. 나는 그녀를 기쁘게 맞았다. 그녀는 건강한 수면 습관을 기르라는 나의 말에 동의했다. 이 병의 가장 흔한 증상인 수면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신경안정제와 항정신제 약물을 처방했고 아침 7시에 반드시 기상할 것을 요청했다. 아무리 우울하고 힘들더라도 침대에서는 벌떡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우울 증세는 아침 나절에 가장 심각한데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으면 두뇌에서 분비되어 기분을 좋게 하는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엔도르핀, 도파민 등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움직이기 위해 산보를 시작했고 생활이 바뀌면서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남을 원망하고 화를 내던 습관을 버리고 용서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힘을 쓰기로 했다.  
 
정신질환은 그녀의 부모 탓도 아니고 더군다나 자신의 탓도 아니다.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만이 병을 이기고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마치 당뇨병 환자가 누구를 원망하거나 슬퍼하는 대신에 열심히 혈당을 관리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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