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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6]위대한 워싱턴 한인

경제 문화 강국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 온 우리들
위대한 커뮤니티 만들어야"

지난 2019년 10월 주미대사관저에 모인 워싱턴 한인들

지난 2019년 10월 주미대사관저에 모인 워싱턴 한인들

이민이라는 고생길에 오르기로 작정은 했지만, 가능하면 성공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길을 택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한인사회 기반이 어느 정도는 있어 대접받을 수준은 돼야 하지만, 한인이 너무 많아 영어권 사회 정착에 방해가 되거나 서로 경쟁 구도가 되는 곳은 싫다. 교육 시스템이 훌륭하고 문화생활도 할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곳에 정착하고 싶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면 남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고, 현실은 언제나 녹록하지 않다.

거기에다 ‘한국에 있었으면 나한테 말도 못 붙였을 사람이 미국 먼저 왔다고 유세 부린다’라는 근거 없고 오만한 태도가 더해지면 화합과 협력은 불가능하다. 자꾸 갈라지는 한인회와 교회는 이미 경직된 이민 사회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역사회 리더들의 행보는 이민사회 구성원의 의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올봄 확진자가 한창 늘어나던 때 한인 그로서리의 라티노 직원 확진 소식에 한인사회가 술렁인 적이 있다.
한 한인은 지역사회 리더가 개설한 단체 카톡방에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으면 문을 닫고 방역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주말에 아이까지 데리고 장을 봤는데 어떻게 하라는 거냐’라는 불평을 올렸다.



그때는 그로서리 쇼핑이나 응급 의료 상황 등이 아니면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락다운’ 행정명령이 시행되던 중이었다. 먹거리를 사러 나오면서 아이를 같이 데리고 나온 행동 자체가 비상식적인 것이었음에도 무조건 그로서리를 비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혹자는 카운티 보건국에 제보까지 했다.

현장 상황 파악에 나선 보건국 관계자는 한인 그로서리가 운영 지침과 예방 수칙을 잘 따르고 있으며 필수 예방 조건을 뛰어넘는 조치를 이행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잘 모르면서 욱하는 마음에 남 탓하는 피해 의식이 너와 나 구분할 것 없이 모두의 지친 마음 한쪽에 존재한다는 것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크건 작건 일단 단체의 장을 맡겼으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지지해주지는 못할망정 뒤에서 비판하는 버릇, 말은 자원봉사라고 하면서 식사나 선물 등을 바라는 잘못된 관행은 고쳐야 할 나쁜 버릇이다.

이런 편협한 인식을 이민자의 ‘고단한 삶’이라는 대명제 뒤로 감추는 것부터 그만둬야 변할 수 있다. 고단한 삶을 사는 모두가 편협하지는 않다. 나의 언행은 환경이 어떻든 간에 오로지 내 선택에 의한 것이며, 그 결과 또한 모두 내 몫이라는 성숙한 사고를 깨우치지 않으면 한인사회 체질 개선은 요원하다.
지난 5월 하버드 대학 ‘클래스 데이(Class Day)’ 연설을 통해 많은 미국인에게 감동을 준 박진규씨는 서류미비자다. 부모님이 이민사기를 당한 경우라고 한다. 연설 초반에 그는 본인이 DACA(The Deffered Action for Children Arrivals) 법안 수혜자이며 아버지는 뉴욕 식당의 라인쿡이고 어머니는 뷰티 샵 직원이라고 밝혔다.
부모님의 희생과 헌신으로 자기가 하버드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며 감사를 전했다. 연설 후 일약 유명인이 된 그는 CNN 방송에 초대받아 인터뷰도 했다.

연설도 연설이지만 옥스퍼드 대학의 로즈(Rhodes) 장학생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116년의 전통 중 불법체류자가 로즈 장학생으로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신청 자격이 되지 않았으나 하버드대에서 적극 추천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분상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돌아올 수 있을지의 여부가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진규씨는 “고등 교육을 통해 타고난 재능을 갈고닦은 후 해야할 일은 그 재능으로 남을 돕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라며 흔들리지 않는 소신을 피력했다.

이어 제도적 스테이터스와 별개로 자신은 미국에 속한 사람으로서 가족과 친구가 있는 미국이 집이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체성은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다. 코리안 이민자의 후손, 남자/여자, 부모/자식, 학생, 직장인, 종교인 등은 어떻게 보면 분류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이 무의식중에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일 것이다. 나는 사회의 일부며 내가 타고난 재능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남을 위해 쓰겠다라는 신념은 박진규씨의 정체성을 ‘불법체류자’에서 ‘인간’이라는 존엄한 본질적 자아로 격상시킨다.

떠나온 모국, 우리의 대한민국이 경제 및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명문으로 소문난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샘 리차드스 사회학 교수는 ‘내게 자녀가 있었다면 서울로 유학 보냈을 것이다’라고 공언하며 한국인의 우수성을 칭찬한다. 그는 ‘다음 세대를 이끄는 경영인, 금융인, 마케터가 되고 싶다면 BTS를 알아야 한다’고 강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뉴욕 할렘에 있는 ‘데모크라시 프랩(Democracy Prep) 차터 스쿨’이 한국적 교육으로 할렘에 돌풍을 일으키며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전교생이 기존 교과 과정 외에 한국어, 태권도, 고전무용을 배우며 심지어 한국처럼 방과 후 수업까지 한다.
차터 스쿨은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지만 사립 학교처럼 자율권을 보장받는 혼합형 시스템이다. 마약과 갱단,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희망 불모지에 ‘한국식 교육’이 수많은 소외계층 학생들과 가족들의 미래까지 바꾸고 있다. 많은 한인 교사들이 매일 가르치고 있는 것은 문자나 생활 양식, 관습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배어 있는 대한민국 정신이다.

미국은 합리적인 사고(이기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와 개인주의가 중시되는 사회다.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근시안적 이익에 따라 색깔을 바꾸다가는 그저 그렇게 알 수 없는 색으로 살아가게 된다. 남들 보기에 그럴듯하게 꾸미는 것은 한계가 있고 결국은 들통나게 돼 있다.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 발음과 억양, 나이와 직업에 국한되지 않는 초월적 인류애와 상식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지금 바로 코앞에 놓인 어려움과 고난도 조금쯤은 견딜 힘이 솟아나기 마련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는 변함이 없지만 내가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정신적 체질 개선은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며 멀리 내다봐야 하는 지구전이다. 내 자녀와 후세의 성공을 빌어주고 싶다면 하루라도 미룰 수 없는 급박한 이슈이기도 하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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