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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4]내적치유 필요한 한인사회

경제적 성공 뒤에 감춰진
한인이민자들의 상한 마음
내적치유해야 진정한 도약

118년의 이민사를 들여다볼 때 타국으로의 이주 혹은 유학을 결심한 개인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한 가지 보편적인 이유는 보다 나은 삶과 미래를 위해서다. 한국에서 사는 것이 더 나았다면 굳이 고생을 자처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10여 년 전엔 역이민 바람이 불기도 했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이민자들은 초기 한인 이민자들이 많이 자리 잡은 ‘한국화된’ 지역은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다고 한인이 아무도 없는 곳을 선택하지도 못한다.
그런 곳은 소위 ‘오지’라 한국보다 생활 수준이 못한 경우도 있고 경제 활동 기회도 적기 때문이다. 한인 이민자들이 선호하는 도시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이유도 이런 ‘최상의 시나리오’ 추구 현상 때문이다.
LA-시애틀, 뉴욕-뉴저지, 버지니아-메릴랜드가 부동의 최대 한인 커뮤니티로 역사를 이어가는 것에 반해 덴버, 보스턴, 텍사스,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은 흥망성쇠의 싸이클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싸이클은 주 단위가 아니라 카운티 단위로 파고들면 훨씬 빠르게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주 안에서도 뜨는 카운티와 지는 카운티가 있으며 인종적 인구 유동이 일종의 흐름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지역에 유색 인종이 유입되기 시작하면 백인이 떠난다는 것은 은밀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사회 현상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유색 인종이면서 묘하게 유색 인종 같지 않은 한인 인구 유동의 배경은 무엇일까?


볼티모어 카운티 내 특정 지역에 있는 집을 보러 간 한인에게 미국인 에이전트가 ‘이 지역은 유색 인종이 많다’라고 언급하기에 ‘나도 유색 인종이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사실 그냥 웃고 넘기기엔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한인들은 흑인/라티노가 많은 지역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무리를 해서라도 백인 동네에 집을 구입하는 특징이 있다. 그렇게 좋은 동네에 가서 정작 이웃들과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일터에서 지내다가 늦은 시간에 귀가한다.
그렇게 지내다보면, 커뮤니티에서 외딴 섬처럼 존재하게 된다. 그 있는 듯 없는 듯한 희박한 존재감 때문에 기존 ‘백인’ 이웃의 거부감은 적을지 모르지만, 본인들 개인사 외 사회 참여에 관심이 없어 좀처럼 교류하기 어렵게 된다.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몇 대째 뿌리내리는 정착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때에 따라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1960년대에 남부를 탈출한 젊은 흑인 세대가 ‘자유와 평등’ 또는 ‘삶의 가치 추구’라는 매력적인 기회 앞에서도 남부를 떠나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답습하는 부모 세대와 반목한 것은 딱히 잘잘못을 따지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다. 오래된 삶의 패턴을 바꾸는 것은 제도적 변화 외 계몽과 정신적 자각 또한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인의 경우 스스로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조국을 떠난 이민자들에게 주 경계나 카운티 경계를 넘는 것은 사실 커다란 모험도 아니다. 한인 만큼 역경 극복에 특화된 민족도 드물 것이다.
고난과 시련은 더 나은 상황으로 ‘발전’하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나,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이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며 ‘경제적 성공’에만 집중하는 습관은 결국 삶의 전체적인 균형에 무리를 가져온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 일정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라면서 더 넓은 집이 필요해져서, 사업을 더 키우기 위해서 등은 모두 타당한 이유다. 그러나, 일련의 과정 속에 초기 이민 생활 때는 의지했던 친지 또는 가족과 떨어져 살고 싶어서, 더 넓은 집도 필요하지만 다니던 교회에서 사람들과 불화가 있어서, 하자 있는 사업을 얼렁뚱땅 팔았기 때문에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등의 이기적인 이유가 섞여 있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갈등은 시간과 물리적인 거리를 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일부 1.5세, 2세들은 부모님이 가게 때문에 바빠 늘 혼자 지냈던 것이 사무쳐서 “아내는 일을 안 하고 애들만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방황하는 한인 차세대도 적지 않다. 한창 예민할 사춘기 때 이사를 다녀 친구도 없고 성적도 좋지 않았던 탓에 진학, 취직, 사회생활에 있어 영어 못하는 부모보다 위축된 삶을 살면서 방황한다.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가치와 보편적 세계관에 대한 성찰의 부재 속에 멍드는 한인 청소년의 낮은 존재감, 쓸모를 다해 버려진 것처럼 방치되는 소외감으로 몸부림치는 한인노인들. 그들 속의 굴곡된 사회 정서는 때로 전혀 짐작하지 못한 사건으로 불거지며 한인사회의 단면을 드러내왔다. 가깝게는 작년 9월의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 노인 아파트 살인 사건과 멀게는 2007년의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 학생 총기 난사 사건. 두 사건은 모두 한인 이민 사회의 극단적인 아픔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리고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한인사회에도 알콜, 마약, 도박 등 다양한 중독 문제가 존재한다. 불륜, 이혼, 사기, 횡령, 폭행은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드러나는 현상이지만 그 밑에 자리한 갈등과 반목의 악순환은 한인회, 교계, 친목회나 동우회를 막론하고 이민사회 어디에나 팽배해 있다.
일부 한인들은 서로 싸운다. 문제의 본질을 파고들지 못하고 현상만 잠정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남들 이목이 무서워 아무렇지 않은 척 숨기고, 얄팍한 체면 때문에 화해한 척한 후 등에 칼을 꽂는다.

고소가 난무하고 정부 기관에 ‘찌르는’ 고발과 제보도 불사한다. 소셜 네트워크와 인맥을 동원한 험담과 비방은 가벼운 축에 속할 정도다.
가시적인 문제와 현상은 내면의 상함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안정과 성공, 한인 사회에서의 인지도와 지위가 내면의 공허함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면, 발상을 전환하지 못한다면, 이민 역사 2백년을 바라본다고 해도 건설적인 ‘한인 고유의 유산’은 아무것도 물려주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학군 좋은 동네에 몰려와서, 서로 싸우다가 결국 함께 좌초했다는 부끄러운 역사를 남겨서는 안 된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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