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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 낙마 뒤 엔맥매스터·틸러슨 권력암투

주한 미 대사 지명철회 파문
백악관에선 무슨 일 있었나

지난해 11월 13일 밤 필리핀 마닐라의 인터컨티넨털호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5개국 순방 마지막날 수행기자와의 비공식 쫑파티에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에게 질문이 이어졌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대북 문제에 있어 미·중 간에 제재와 압박 외에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에도 의견일치를 봤다'며 '좋은 일이다(Good working)'고 하던데…."

당시 맥매스터에 질문을 던진 기자에 따르면 맥매스터는 얼굴을 정색한 채 바로 "그건 렉스(틸러슨)의 개인 생각이다. 우리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한다. 어색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옆의 NSC 직원이 급하게 화제를 돌렸지만 이미 백악관 내에선 '맥매스터-틸러슨 갈등'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맥매스터, 대북대화론 못마땅

어떻게든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려 하는 틸러슨과 "대화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는 맥매스터 간의 기 싸움으로 국무부와 백악관의 불협화음은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다.

이번 빅터 차 주한대사 내정자의 인사가 철회된 배경에도 이런 역학관계가 깔려 있다. 워싱턴의 핵심 관계자는 1일 "국무부는 이번 빅터의 인사 철회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전했다. "어쩌면…" 정도의 의구심을 느낀 이들은 일부 있었지만 국무부의 그 누구도 주한대사 내정자가 철회되는 사실을 모르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철회 사실이 알려진 것은 빅터 차 본인이 철회 발표(30일) 이틀 전인 지난달 28일에 "내가 이 행정부의 포지션(주한대사)으로 고려됐었을 때…"란 '과거형'의 기고문을 워싱턴포스트(WP)에 보내면서 드러났다. 이상히 여긴 WP 백악관 출입기자가 백악관에 "기고문에 이미 철회가 기정사실화돼 있다"고 다그쳐 결국 확인을 얻어냈다고 한다. 그 확인 또한 국무부가 아닌 맥매스터가 이끄는 백악관 NSC의 몫이었다.

국무부, 빅터 차 지명철회 사실 몰라

이러다 보니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현장을 뛰어다니는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에 대해선 NSC 내에서 '드리머(dreamer·꿈을 꾸는 사람)'란 호칭으로 조롱하곤 한다.

문제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무부 간부들도 어떻게든 자리를 떠나려 한다는 사실이다. 틸러슨의 힘이 약화돼 있음을 눈치했기 때문이다. 한때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 거론됐던 랜달 슈라이버도 이를 눈치채고 국방부로 자리를 옮겼다. 국무부 안팎에선 "국무부엔 틸러슨과 마가렛, 손턴, 조셉 윤의 4명밖에 없다"는 자괴감 섞인 한탄도 나온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특허상표청 간부를 지낸 해군장교 출신의 장관 비서실장 마가렛 피털린, 틸러슨의 측근인 수전 손턴 동아태차관보, 그리고 올 8월께 은퇴설이 떠도는 조셉 윤이다. 특히 마가렛 실장은 틸러슨의 눈과 귀를 장악하며 국무부 내 원활한 소통을 가로막는 인사로도 꼽힌다. 백악관과의 불통뿐 아니라 내부(국무부)의 불통까지 겹치며 틸러슨의 입지는 혼자 붕 떠있는 상황이다. 이런 틈을 급속도로 파고들어 백악관이 '사실상의 국무장관'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게 니키 헤일리 주 유엔대사다.

트럼프가 곤경에 처할 때마다 "백악관 사람들은 조국을 사랑하고 대통령을 존경한다", "누구도 대통령의 (정신적)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며 지원사격을 아끼지 않는다. 트럼프도 헤일리를 배려해 유엔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과 정기적으로 오찬을 가질 정도로 신뢰를 주고 있다. 헤일리 대사는 틸러슨이 대북 대화 노선을 강조할 때마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전까지는 어떤 대화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180도 다른 주장으로 선을 긋고 있다. 누가 장관이고 누가 대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헤일리는 틸러슨이 물러날 경우 차기 국무장관으로 가장 유력하다.

헤일리 대사 '사실상 국무장관'

그나마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틸러슨 편에 서서 선제 군사행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이지만 갈수록 트럼프-맥매스터 라인에 밀리는 양상이다. 백악관 소식통은 "NSC에서 한반도를 총괄하는 매튜 포틴저 선임보좌관은 트럼프의 큰 신임을 얻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맥매스터에 비해 온건파였던 포틴저 조차 최근 '코피 전략'쪽으로 기울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빅터 차의 내정철회 사태를 몰고 온 것으로 알려진 '코피(Bloody nose)전략'은 어느 정도 현실로 다가온 것일까.

척 헤이글 전 국방부장관은 지난달 31일 군사전문지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무모한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시비가 붙었을 때 코피를 터트릴 정도로만 북 미사일 발사대나 무기고에 '제한적 선제공격'을 한다는 것이지만, 그게 전면전으로 번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선제타격, 점점 엄포 아닌 현실로

또한 워싱턴의 고위 소식통은 "WP의 보도에 따라 빅터 차의 인사철회 사유가 '코피 전략' 탓인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는 다른 것으로 안다"며 "아그레망이 모두 승인된 상황에서 철회를 결정할 수 있는 이는 트럼프 대통령밖에 없다"고 전했다. '코피 전략' 정도의 대북 정책을 둘러싼 이견으로 뒤집힌 게 아니라 뭔가 트럼프의 막판 번복을 촉발한 사안이 있었단 지적이다.

하지만 온라인 매체 VOX는 이날 "2002년 이라크전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수개월 동안 백악관 내부에는 선제타격을 제안하는 목소리들이 많았다"며 "많은 이들이 그걸 '블러핑(엄포)'으로 여겼지만 이제는 많은 전문가들이 '이제 그렇지 않다'고 믿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VOX는 또 "지난달 우리가 많은 (군사외교) 관련자들을 접촉한 결과 (그들은) 대다수 일반 미국인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전쟁에 가까워졌다는 컨센서스(의견일치)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한편 한·미 양국에 정통한 군사소식통은 1일 "지난해 10월 말에 한국에서 실시된 NEO(비전투원 후송작전) 훈련에는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주한미군 가족, 대사관 가족은 물론 반려동물까지 동원된 예년보다 훨씬 대규모의 훈련으로 이뤄졌다"며 "미국의 대응이 예사롭지 않다"고 전했다. 실제 지난달 5일 평택에서 열린 주한미군 사령관 이취임식 당시 행사를 주관한 로버트 브라운 미 태평양육군사령관이 인사말에서 "(이임하는 토머스 밴달 사령관이) 반려동물까지 동원한 실질적인 NEO를 실시하는 공적을 세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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