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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과 안개 덮였던 백록담…10여초, 전설처럼 왔다 사라지다

폭우 뚫고 성판악 코스 강행
비와 땀 범벅 온 몸 흘러내려
마지막 30여분간 밧줄과 사투
흰사슴 마시던 연못 구경 행운

새벽부터 폭우가 내렸다.

성판악에 도착할 때까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성판악은 한라산을 오르는 출발점이다.

"괜찮겠어요 올라가도? 비가와서 어차피 백록담은 못볼 텐데…."

제주관광공사의 가이드 홍선희(44)씨가 걱정했다.



빗길 산행은 위험하다. 해발 1950m 한라산은 남한에서 가장 높다. 더구나 성판악 코스는 왕복 19.2km로 5개 등반 코스 중 가장 길다. 8~9시간 거리다. 날도 추웠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제주행 기내에서 이미 '한라산 등반으로 내 고향 방문 시리즈의 방점을 찍으리라' 다짐한 터였다. 오는 차안에서 배운 제주도 방언으로 답했다. "가게마씨(갑시다)."

우의 차림에 굵은 빗방울을 맞으며 등반 안내판 앞에 섰다. '속밭대피소→사라오름 입구→진달래밭 대피소→정상' 코스였다. 안내판 아래 경고문이 쓰여있다. '입산통제시간: 진달래밭 대피소에서 정오까지'

정오 전에 정상 2/3 지점인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못 가면 도로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다. 3시간도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 했다.

등반로를 오르며 홍씨가 설명했다. "한라는 손을 들어서 은하수를 잡을 수 있을 만큼 높다는 뜻이에요. 백록담은 한라산 신선들이 타던 흰 사슴들에게 먹인 물에서 유래했죠."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한라산 등반은 '신선의 산 꼭대기에서 은하수와 흰 사슴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었다.

숲속 등반로는 걷기 어렵다. 큰 화산암 바위들을 박아놓아 울퉁불퉁했고 미끄러웠다. 서툰 걸음이었지만 한시간만에 1540m 속밭대피소에 도착했다. 이제 불과 4.1km 왔을 뿐인데 숨이 찼다. 모자 챙 끝과 코 끝 턱 밑으로 비와 땀이 맺혀 뚝뚝 떨어졌다. 황씨는 못가겠다면서 도로 내려갔다. 이제부터 혼자였다.

등산하면서 생각을 정리한다는 말은 초보자에겐 꿈같은 이야기다. 오직 한가지 생각만 간절했다. '쉬고싶다.'

입산통제시간까지 겨우 한 시간 남았다. 마음은 급한데 해발 1140m부터 경사는 더 급해졌다. 한발 한발 오를수록 고도가 실감났다. 구름과 안개 비가 엉켜 시야는 점점 더 흐려졌다.

속밭대피소에서 40여 분 왔을까. 갑자기 눈 앞이 확트였다. 고대하던 진달래밭 대피소였다. 통제시간 30분전 턱걸이로 도착했다.

대피소안엔 등반객 40여 명이 비를 피해 쉬고 있었다. 한라산엔 2013년에 120만명이 찾았다. 이날은 비때문에 평일 하루 평균 등반객수의 1/10에 불과했다.등반객들은 하나같이 컵라면을 후후 불고 있었다. 대피소내 매점에서 파는 컵라면은 한국의 명물이다. 이 대피소에서 10년째 근무한 고원하(53)씨에 따르면 이 매점에선 전국 최다 컵라면 판매량을 세웠다. 2013년에만 30만5227개의 컵라면을 팔았다. 하루 840개꼴이다.

마침 대피소에서는 겨울나기 '컵라면 수송작전'이 한창이었다. 첫눈이 오기전까지 이 대피소가 확보해야 할 라면은 24개 들이 5000박스 무려 12만 개라고 했다. 도대체 이 꼭대기까지 어떻게 운반하느냐고 물었다. "산 아래에서 여기까지 7.3km 모노레일 선로를 통해 라면과 직원들의 식량 생필품을 실어 날라요. 일명 라면열차라고 부르죠."

3분을 기다려 라면을 한 젓가락 뜨는데 고씨가 실내 방송을 했다. "호우주의보가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정상에 못갑니다."

다시 일어서야했다. 정상까지 2.3km 남았다. 오르는 길에 정상에서 내려오는 등반객들이 짠 듯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정상이 바로 앞이에요. 다 왔어요. 포기 마세요."

정상까지 마지막 0.8km 구간은 지옥행군이다. 나무 계단이 중간에 끊겨 바위로 된 급경사를 밧줄을 잡고 암벽 등반하듯 올라가야 한다. 바람도 세서 몸이 휘청거렸다. 느릿느릿 30여 분간 밧줄을 붙잡고 사투를 벌인 끝에 드디어 백록담에 닿았다. 해발 1950m.

예상대로 백록담은 구름과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강풍 때문에 표지석에 매달리듯 서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제 어떻게 다시 내려가나' 망설일 때였다.

난간에서 백록담을 내려다보던 등반객 몇 명이 일제히 탄성을 질렀다. "와~"

강풍이 구름과 안개를 걷어내면서 백록담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흰 사슴이 마시던 연못'은 불과 10여 초 카메라 셔터 몇 번 누를 동안 전설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정상에서 만난 이정행(53)씨는 "한라산을 3번이나 올라왔는데 한 번도 백록담을 못봤다"면서 "오죽했으면 백록담은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흡족해했다.

구름 문이 다시 닫히고 백록담이 사라지자 내려가야 할 일만 남았다. 산 아래에서는 정상이 간절했고 정상에서는 산 아래가 절실했다.

하산길은 더 위험해 더뎠다. 피로가 쌓인 다리 근육은 여기저기 솟은 화산암 바위에서 체중을 감당하지 못했다. 계속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4시간을 걸었다.

저 멀리 출구가 보였다. 나오면서 긴장이 풀렸다. 출발했던 제자리에서 산 위를 다시 올려다봤다.

등산은 사는 일과 같다던 말이 그제야 실감났다. 올라갔다면 내려오는 일은 당연하다. 인생 꼭대기의 기쁨은 잠시 허락된 덤일 뿐이다. 딱 20초간 만끽한 백록처럼 말이다.

산에서 내려와서야 정상이 보였다.

☞제주도는?

■ 지명 유래: 제주는 '바다를 건너가는 고을'이란 뜻이다. 고려 고종(1214년)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 위치: 한반도 서남단 해상 동경 126도, 북위 33도에 위치. 60여 개의 부속도서(유인도 9개)를 포함한 한국에서 가장 큰 섬이자 가장 작은 도(道)다.

■ 면적: 1833.2km²(LA시의 1.4배)

■ 행정구분: 2행정시 7읍 5면

■ 인구: 61만4623명(2014년)

■ 도지사: 원희룡(초선 2014.07~)

■ 도정 목표: 자연.문화 .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제주

■ 특산물 : 토종 흙돼지, 감귤, 한라봉, 갈치, 옥돔, 자리돔, 말고기, 갈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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