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지혜의 향기] '비폭력의 힘' 보여준 달라이 라마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티베트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 잘 모르는 이들도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불교계의 인물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1959년 이래 인도에 있는 티베트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는데 티베트 사람들뿐 아니라 전세계 많은 불교도들의 정신적 기둥이 되었다.

그 뿐 아니다. 유럽을 비롯해 많은 주류 미국 사람들도 종교의 벽을 넘어 그를 너무나 좋아한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영감을 얻고 그 가르침에 심취한다. 싸지 않은 강연 티켓은 서둘러 매진이며 유명 무명의 인사들이 후원의 행렬에 가담한다. 속된 말로 인기 짱이다. 중국으로서는 목에 걸린 생선뼈요 눈엣가시지만 어서 세월이 흘러 이 골치 아픈 존재가 사라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달라이라마가 불러일으키는 이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참의 힘이다. 폭력을 쓰지 않는 평화의 힘이요 솔직함과 천진함의 힘이다. 그 여리고 잔잔한 웃음지음과 부드러운 말의 조각들이 퍼져나가 무심했던 사람들의 가슴을 흔든다. 지성의 물결을 일렁이게 하고 인류 양심의 차원을 끌어올린다.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티베트 불교가 있고 그 원천인 부처님의 진리가 있다.

유교 불교 이전 한국에는 샤머니즘에 해당하는 선교가 있었고 일본에도 신토의 전신이 있었듯 티베트에도 본래 '뵌'교 라는 토속 신앙이 있었다. 이러다 7세기에 인도에서 불교가 전해졌다. 770년에 국교가 된 이래 부침은 있었지만 티베트는 최근까지 특색 있는 불교국으로 이어왔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소중한 나라와 민족이 문화와 종교가 이제 마지막 심지를 태우며 꺼져 가는 촛불이 되었다. 서울인 라싸에는 티베트 사람들보다 중국 사람들이 더 많아질 참이다.



2차 대전에서 중립을 지킨 티베트는 전쟁후 독립 정부를 세우려고 하였지만 공산화 된 중국이 무력침공을 했다. 달라이 라마는 유엔과 영국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리하여 1951년 중국의 종주권과 티베트의 자치권 인정을 골자로 하는 협정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인민해방군이 진주해여 500년간 계속되던 겔룩파의 정권을 무참히 짓밟으니 이것이 티베트가 서장 자치구라는 이름으로 중국에 강제 합병된 과정이다.

왜 세계는 서구 열강은 티베트를 그토록 외면했을까?

불행히도 티베트에는 열강이 탐낼만한 핵심 이익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동 같은 석유나 아니면 엄청난 우라늄광 같은 것도 없었다. 세계 교역의 길목도 첨예하게 대립되는 전략의 요충지도 아니었다. 엄청난 인구의 잠재 시장도 아니었고 자기네 문명의 고향 종교의 발상지도 아니었다. 위험과 손실을 무릅쓰고 십자군을 일으킬만한 아무런 건덕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 사정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혹시 달라졌더라도 이미 때는 좀 늦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티베트가 전적으로 모든 것을 잃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고원의 민들레 씨앗처럼 지구의 지붕 위에 꽃피웠던 부처님의 가르침은 색다른 모습으로 멀리멀리 세계로 퍼져나갔기 때문이다.

자비와 평화! 티베트의 그 모든 희생 속에서 건져 올린 부처님의 소중한 메시지다. 그 메시지는 오늘도 퍼져나간다. 세계 곳곳 크고 작은 티베트 사원의 불탑을 감돌아 애절하게 매달린 기도깃발에 나부끼며 달라이 라마의 잔잔한 미소에 실린 채 우리 모두의 가슴 속으로.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