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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서] 탓의 문화

방동섭 목사/미주성산교회

역사를 더듬어 보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정복했을 때 그 당시 기독교의 모습은 강자가 아니라 매우 연약한 모습이었던 사실을 보고 놀라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가 타락했을 때는 오히려 강자의 모습이었다. 교회의 종탑이 하늘을 찌르고 교회 권력으로 세상의 왕을 갈아치울 수 있을 만큼 강했을 때 교회는 세상 한복판에서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교회는 약한 모습일 때 오히려 더 강한 공동체가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의 정체성에 대해 매우 독특한 표현을 쓰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이다(고후 5:17). 사실 교회 안에는 한 종류의 사람만 있으면 된다. 그것은 권력이나 경제력 학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변화 받고 새로워진 사람'이다. 특히 교회는 생각이 근본적으로 새로워진 사람을 요구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 대해 생각이 혁명적으로 바뀐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를 만나기 전 자기처럼 의로운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후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 도무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기에 "나는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탓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나라가 아닌가 생각한다. 뭐가 제대로 잘 안 되면 제일 먼저 '조상탓' '대통령 탓' '부모 탓'을 한다. 내 탓은 없다. 얼마 전 한국 경찰서에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붙잡혀 온 젊은이가 구속되었다.경찰의 심문을 통해 이 청년은 "그동안 하는 것마다 잘 되지 않아 고생했는데 그 이유는 가난한 부모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홧김에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것이다.



예수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언제나 '남의 탓'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만 빼고 모든 사람들을 죄인으로 보고 자신이 죄인일 수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를 정확하게 만난 사람은 "나에게는 죄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나는 죄인입니다" 그 한 마디 고백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주변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멀어져 갈 것 같은데 오히려 내게 가까이 온다는 것이다. 만일 내 주변 사람들이 점점 멀어져 가고 나 혼자 남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면 그것은 다른 원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소외시킨 결과일 것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것이 남의 탓이고 자기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점점 소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뉴튼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아니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도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은 "내가 죄인중의 괴수"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깊이 깨닫고 인정한다면 그는 자신의 삶 한복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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