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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서] 외모 중심의 사회의 이면

송병주 목사 / 선한청지기교회

젊은이 사역을 하다 보면 방학 때 2개월간 실종되었다가 신학기에 갑자기 나타나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가 있다.

처음에는 무척 놀랐는데 몇 번의 경험 끝에 그 후로는 놀라지 않았다. 듣지 않아도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만날 때 곤란한 것은 성형을 하신 분들의 특징이 아는 척하면 싫어하고 몰라주면 섭섭해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가장 좋은 말을 찾았는데 그것은 "몰라보게 아름다워졌군요"였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좋은 일이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풍요와 과다'의 관계처럼 우리의 아름다움이 지나치면 그것은 결코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먼저 전제할 것은 사람에게 치유 성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단순하게 사람들에게 결코 말할 수 없는 깊은 고통이 분명코 존재하기에 성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빵은 영적인 문제가 될 수 있듯이 우리는 성형의 필요성을 절대 공감해야 한다. 그러면 미용성형은 절대 안 되는가? 그럴 수 없다. 분명코 미용성형에도 치유적 측면을 우리는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것을 단순하게 도식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성형하고 싶다며 신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젊은이들에게 목회자로서 두 가지 태도를 갖는다.

"꼭 성형외과를 가 보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가급적 가지 말라"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오히려 외모를 보고 내린 판단이 아니라 내면을 보고 내리는 판단이다.



그러므로 성형의 문제는 절대적 기준을 가진 문제가 아니라 매우 개인적인 문제이기에 단순하게 논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오히려 말하고 싶은 것은 성형이 문제가 아니라 '성형을 부추기는 사회'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을 넘어 다홍치마면 모든 것이 된다는 식의 사회 분위기이다. 사람을 면접하고 뽑을 때에도 철저하게 사람의 가치를 외모에 기준하는 공감대가 더 위험스럽다. 소위 말하는 할리우드식의 코드가 모든 것의 가치를 결정하는 분위기는 매우 심각하다. 잘 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미인은 항상 똑똑하고 용감하고 다재다능하며 용감하며 로맨틱하기까지 한 것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분위기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인종차별 보다 성차별 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면 외모 차별이다.

외모의 치유를 받고 싶은 열망이 크면 클수록 내면의 상처를 함께 치유해야 한다. 그래서 외모를 중시하는 한국사회를 보면서 얼마나 깊은 내면의 치유가 필요한 사회인지를 다시금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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