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빼딱한 것'과 '비판적 의식'의 차이
송병주 목사/선한청지기교회
빼딱하다는 것은 사실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호와 감정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것이며 특히 타자와의 '비교의식'이 전제된 경우가 많다. 논리와 사실은 중요하지 않고 불편한 감정에서 초래되는 '의도적 왜곡'이 가득하다. 그러므로 빼닥한 것에는 논리적 일관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내면의 깊은 상처가 동반된 경우가 많다. 무너진 자존감이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빼닥함은 가장 지적인 작업처럼 보이지만 가장 감정적인 반응에 기초한다. 가장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상처받은 어린 자아가 울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과 원칙보다 이런 상처에 기초한 빼딱함이 공동체를 주장할 때 될 일도 안되고 안될 일도 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결국 빼딱한 것에는 대안이 없으며 지나치게 좋은 관계와 지나치게 상한 관계만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인식은 개인적인 관계와 감정을 떠나서 사실 관계에 기초한 문제점을 분석하고 미래 대안을 찾는데 집중한다. 역사적 문화적 시대인식을 통해 현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발전적 제안을 지향하게 된다. 쉽게 이것을 긍정적이며 밝게 사는 인생관과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무비판적 예스맨(Yes Man)은 아닐 것이다. 밝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 누구보다 비판적인 인식을 할 수 있다. 아니 비판적인 인식을 하는 사람이 밝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양자는 결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난 맛있는 게 싫어"하는 투덜이의 불평 앞에 그렇다고 '맛없는 것'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빼딱함이 가득한 공동체는 진보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내면의 상처와 어린 자아의 무분별한 표출은 자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판적 인식이 항상 발목 잡는 걸림돌로 여기는 부정적 태도도 극복되어야 한다. 비판적 인식은 오늘 우리 안에 쏠린 태도를 바로 보게 하고 사고의 전환을 요청하며 삶의 영역을 풍성하게 하는 통로다. 자신의 빼딱함을 비판적인 것으로 스스로 속이지 말고 타인의 비판적 인식을 빼딱하게 받아들이지도 않는 그래서 내면의 성숙이 지적 성숙으로 이어지는 열린 소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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