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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세상에 관심 가져야 빛·소금 될 수 있다

신홍식 신부/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차카게 살자!' 조폭들이 팔뚝에 새기는 문신의 문구라고 한다. 그들도 내심으로는 착하게 살고 싶은가 보다! 주일학교 어린이 미사 강론의 결론은 항상 같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죠?" "착하게 살아야 해요!" "어떻게 하는 것이 착하게 사는 거죠?" "친구들과 싸우지 말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해요." "약속할 수 있어요?" "예!!" 주일마다 이런 결론으로 끝난다.

그런데 어른들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성당에 나오는 것이 신자가 된다는 것이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착하게 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신앙이 없는 사람은 착하게 살 수 없는 것인가? 아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도 착하게 살 뿐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면서 사회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 우리와 차이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교 신앙은 윤리종교가 아니다. 착하게 사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영원한 생명이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안의 기성세대라고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이 틀에 박혀있는 분들과 사회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하면 항상 가로 막히는 것이 있다.



신앙과 세상을 별개로 생각한다.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만 하는 것이고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 하는 것이고 세상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렇다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513-14)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세상 안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관심을 가져야만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고 소금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면서도 세상에 발을 딛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을 외면할 수는 없다. 세상 일은 우리 신앙인들의 관심대상이다. 그러나 세상 일에 대해서 모든 것을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하느님의 섭리대로 창조질서대로 제대로 가고 있는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사셨던 시대를 보자. 그 당시도 소외계층과 기득권을 누리던 계층들이 있었다. 사회지도층이라고 하는 원로 대사제 바리사이 율사들은 기득권층이었다. 그들은 누리던 권력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권력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웠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루가 1614) 그들은 자신들을 꾸짖고 비난하는 예수님의 말씀들이 몹시 귀에 거슬렸던 것이다.

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예수님이 눈에 가시처럼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가야하는 길을 가셨다.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하셨던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바로 이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만 나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 따른다는 것은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만 해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과연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살았는가?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이다. 드러나는 신앙 행동하는 신앙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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