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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기차놀이

홍순복

현관문을 들어서며 TV 앞에 졸고 있던 엄마에게 나는 버릇처럼 물었다.

"엄마 오늘 뭐했어요?"

"운동했지."

내가 물어보는 의도를 알아챈 엄마는 재빠르게 선수를 친다. 운동을 하면 얼마나 했을까 싶었다.



"어떤 운동했어? 다시 한 번 해봐."

내말에 엄마는 입이 불쑥 나온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막내딸이 미웠나보다. 심드렁한 얼굴로 느릿느릿 팔을 들어 올려 앞뒤로 몇 번 내젓고 손바닥을 서너 번 마주치더니 소파에 등을 붙여버린다. 몸놀림이 부드럽지 않아보여서 "운동 안했지?"하고 눈을 흘기자 "네가 봤어? 너 없었잖아 나 혼자 했단 말이야"하며 처진 눈 꼬리에 바짝 힘을 준다.

평상시엔 목소리가 어눌해 듣다보면 답답증이 나서 내가 말허리를 자르곤 했는데 자신을 방어할 때엔 속사포처럼 거침없이 쏘아댄다. 엄마가 정색을 하고 그렇게 말하면 나는 입을 닫아야 한다.

얼마 전까지 나는 엄마와 함께 1년을 살았다. 무릎 수술 후 더 이상 아들집에서 사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엄마는 다른 노인들처럼 독립해서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당신 가시는 날까지 자식과 살아야 한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다. 엄마는 늘 그랬다. 둘째아들과 죽는 날 까지 살 거라며 종 주먹을 흔들어보이곤 했다.

"지가 날 무시하면 안 되지 저희 애들 둘 다 키웠는데…."

엄마는 항상 손녀딸 키워준 것을 무기로 삼았다.

진작 병원에 모셔야 했다. 무릎 연골이 닳아 버린 것도 모르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일하다 바지마다 무릎 구멍을 내어 성한 것이 없었다. 통증으로 인해 엄마는 밤마다 앓은 소리를 쏟아내었다. 엄마의 신음소리는 바로 이층에 있는 손녀딸 방까지 들려서 잠들 수 없는 아이가 자주 제 엄마에게 불평을 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는 무릎수술을 위해 입원을 했다.

평생 병원신세를 진적이 없는 엄마는 수술 후 하룻저녁을 혼자 지내더니 병원 문을 들어서는 내게 적적하고 외로웠다며 얼른 집으로 가자고 했다. 엄마는 점점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건 전적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책임이었다. 시장까지 평생 봐다 주시던 아버지 덕에 여느 노인들처럼 독거할 엄두도 못낼 만큼 엄마는 겁쟁이가 되어있었다.

대개 언니가 와서 엄마 목욕을 시켰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엄마의 몸을 씻겨보기로 했다. 무릎수술 이후로 엄마는 190파운드 가깝게 체중이 불어서 걷는 것을 힘들어 했다. 워커와 지팡이 없이 걷기 연습을 할 때는 영락없이 뒤뚱대며 걷는 오리 같았다. 어떻게 저토록 몸이 불어날 수 있을까.

엄마의 몸은 여자라기보다 스모선수 같았다. 아래로 처진 젖가슴과 세 겹으로 늘어진 배는 엄마의 부끄러운 곳을 가리기에 충분했다.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보니 먹을거리를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식사량에 비해 활동량이 턱없어 부족함으로 체중이 오르는 건 당연한 일이였다.

"아이 아파! 네 언니는 손이 부드러운데 너는 매워."

목덜미를 조금 세게 문질렀더니 엄마는 당장 아프다고 짜증을 냈다.

"손이 매운 것이 문제가 아니야 엄마 몸을 봐요. 씨름선수 같잖아 이게 뭐야 더불버거도 아니고 삼겹살이네."

그러자 엄마는 십팔번인 둘째 며느리 얘기를 꺼낸다. 몸피가 버들가지처럼 야리야리한 올케는 나이가 들수록 배가 나와야 허리힘이 있다는 말을 노래처럼 하는 사람이다. 네 올캐는 너같이 모질게 말하지 않는다며 엄마는 목소리를 떨었다. 노인이 되면 고집만 는다더니 당연한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아직 엄마의 속살은 검버섯 하나 없이 매끄럽다. 90을 바라보는 노인의 몸이라고 믿기지 않게 탄탄하다. 엉덩이 부분은 정말 너른 마당이다. 나는 아이가 장난치듯 엄마의 늘어진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엄마의 봄날도 푸르렀을 것이다. 그 몸에서 아홉 자식을 생산했지만 이제는 폐가가 되어버렸다. 잠시 쓸데없는 생각에서 벗어났다. 나는 막내딸 기질이 살아나서 장난이 치고 싶었다.

"엄마 엉덩이 좋네."

엄마 등의 물기를 닦아내며 나는 손바닥으로 드럼을 치듯 장단을 맞췄다. 몸무게로 승강이를 하던 엄마는 갑자기 앞니가 조금 부러진 틀니를 드러내며 히히히 웃는다.

"나 몸매 좋았어. 네 아버지 처음 만나던 때."

"아냐 엄마 지금도 뒷모습은 50대 같아. 영감님 친구 하나 만들어도 되겠어."

"넌 참 웃겨."

"그럼 웃어야지 그래야 건강해요."

엄마를 웃게 하는 데에는 나의 버릇없는 장난기가 특효약이다.

목욕 후에 재활훈련사의 말처럼 엄마를 운동시켰다. 그러나 엄마는 조금 따라하다 포기하고 만다. 나는 엄마를 붙들고 기차놀이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내 허리춤을 붙들라 하고 발걸음에 구령을 맞추어 걸으면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혼자 운동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설 수 없어 넘어지기라도 하면 무릎은 폭삭 무너질 것이었다.

"자! 나를 잘 붙들어요. 말만 잘하면 어느 역이건 정차하는 자가용 기차입니다."

칙칙폭폭 기차가 간다. 엄마는 안간힘을 다해 내 허리에 매달린다. 87년 세월의 무게가 화물차처럼 무겁게 끌려온다. 그때 갑자가 뿡뿡 하는 소리가 났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시침 뚝떼고 묻는 내게 엄마는 멋쩍은 듯 히히히 웃는다.

"뒤가 힘이 없어 나오나봐 냄새 없어. 그냥 가자."

"그래 엄마 뭐 어때. 붕붕 소리 내야 기차가 가지. 자 해봐요 내가 하나 둘 하면 짠지!"

하나둘 셋넷 하나 둘 짠지 하나둘 아멘 하며 엄마는 소리 나는대로 했다. 나는 엄마의 기차가 되어 계속 달린다. 엄마 방을 나와 리빙룸으로 향한다. 집안을 도는 기찻길 옆엔 먹다 남은 뻥과자와 새우깡 봉지가 뒹군다. 강아지 녀석도 신이 나는지 엄마의 좌우를 자발없이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힘들면 말해요."

"아니야 괜찮아."

말은 그랬지만 엄마는 힘이 드는지 또 방귀를 뿡뿡 터트리더니 히히 하고 웃는다."뭐야 정말 괜찮아 엄마?"

"그래 어서 가기나 해."

슬며시 돌아보니 엄마의 하반신을 벗어난 속바지가 철길을 베고 누운 주정꾼처럼 허옇게 널브러져 있었다.

<약력>
'해외동포문학상' 수필 당선
오렌지 글사랑 회원
재미수필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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