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 죽고 나서도 돌고 도는게 인생사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그런데 이런 인생사라는 것도 다 살아 있을 때 얘기다. 죽어 버린다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살아 있을 때를 보더라도 꼭 물레방아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팔자 좋은 친구는 끝끝내 팔자가 늘어지고 안 되는 친구는 지지리 궁상만 떨다가 삶을 마감하는 일도 많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조영남의 노래는 그저 듣기 좋자고 흥얼거리는 마취제에 불과한 것일까? 이럴 땐 천생 부처님께 여쭙는 수밖에 없다. 부처님이야말로 그 열 가지의 별호 중에 하나가 가리키듯 정변지 곧 세상 이치를 두루 아시는 분이 아니시던가! 그 분의 가르침은 이러하다.
살아 있는 인생사만 삐걱삐걱 돌고 있는 게 아니다. 죽고 나서도 돌고 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죽음이란 없다. 싫어도 곧 어딘가에 다시 태어난다. 그런데 죽고 나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의 아래 세상으로는 차례로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이 있다.
아수라는 힘세고 능력은 있지만 서로 늘 으르렁거리며 싸움판이 벌어지는 곳이다. 싸움 좋아하는 친구들이 예약해 놓은 곳이다. 그리고 짐승 같은 마음을 품고 짐승 같은 행동을 하면 곧바로 축생의 세계로 직행할 수 있다. 아귀는 늘 배가 고파 못 사는 곳이니 남의 밥 빼앗은 자가 가야 할 곳이다. 지옥은 말 그대로 땅 속의 감옥 같은 곳인데 최신식 찜질방은 저리 가랄 정도로 여러 방으로 나뉘어져 있어 죄과에 따라 조금도 에누리 없이 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인간 세상 위로는 천상인데 불교의 하늘나라는 단순하지가 않다. 고층 아파트처럼 28층으로 돼 있다. 1층부터 6층까지는 저 아래 지옥에서부터와 마찬가지로 욕계에 속한다. 욕망이란 참 무섭다. 하늘나라도 아랫도리는 욕망에 젖어 있다니.
그 위의 열여덟 층은 색계에 속한다. 욕망은 떨쳐 버렸지만 물질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는 곳이다. 그리고 25층부터 맨 위층까지 네 층은 무색계다. 정신만이 남아 있는 깨끗하고 자유로운 세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땅 속 지하층으로 내려가기보다는 고층 아파트로 오르려 할 것이다. 어떤 입주 자격을 갖추고 어떻게 청약을 해야 하며 맞돈 주고 사려면 프리미엄은 얼마일까? 혹시 재건축은 하지 않을까?
그런 것 없다. 오로지 우리가 하는 짓거리 즉 오랜 전생에서부터 이때까지 세세생생 쌓아 온 업과 지어 온 공덕에 의하여 점수를 보태거나 까먹고 남은 그 알짜배기 점수를 가지고 공평하게 위로 아래로 한 계단 한 계단 결정 된다. 몸이 한 짓거리 입이 한 짓거리 그리고 내 생각이 한 짓거리의 총합 점수다. 하지만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처럼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 입주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도 자칫하면 미끄러져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천상에서부터 지옥까지 여섯 영역의 세계를 돌고 도는 이 삶과 죽음의 고리를 아예 벗어나 아파트고 뭐고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 목표다. 즉 하늘나라가 목표가 아니라 하늘마저 떠나 버리는 영원한 해탈이 수행의 마지막 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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