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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기본 계율 지키기와 시대적인 부조화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우리가 만약 불교의 계율이나 기독교의 계명을 곧이곧대로 에누리 없이 지키고자 한다면 세상 살아가기가 참 힘들 것이다.

일반 불자들만 하더라도 지켜야 할 5계가 있고 비구 스님은 250계 비구니 스님에게는 348계가 있다. 비구계 중에는 가죽신을 신은 자에게는 불교를 가르쳐 주지 말라는 것도 있다. 대부분 구두를 신고 사는 요즘 사람들에 대한 포교는 일찌감치 포기하든지 비구니 스님만 맡아야 한다. 아니면 비구 스님을 만나 뵐 때는 모두 고무신이나 짚신을 신든지 아니면 아예 맨발로 가든지.

이렇듯 그 당시에는 타당성이 있어 생겨났던 계율일지라도 시대가 변하여 전혀 맞지 않는 것도 드물지 않다. 당연히 고치거나 버려야 할 것이다. 본래 계율이란 어떤 정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해서 보편적인 행동 지침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겠나. 정신은 잊어먹은 채 화석화한 양식에만 얽매인다면 형식주의요 율법주의로서 도리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크게 어긋날 것이다.

오늘은 이런 시대적인 부조화 말고 기본적인 계율들이 가지고 있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생각을 좀 해 보자.



5계의 첫째가 '죽이지 말라' 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 것도 안 죽이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식물이나 눈에 잘 안 보이는 미생물은 제쳐 두고도 우리는 날마다 엄청난 숫자의 살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도살장 담당자 같은 직접 살생도 있고 소고기 국밥을 사먹는 것 같은 간접 살생도 있다.

두 번째 계율은 '훔치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훔치는 것이고 어디서부터가 정당하게 얻어 가는 것인지 따지기 어려울 때도 있을 것이다.

관계 법령이 없더라도 예를 들어 개울바닥에서 예쁜 조약돌 하나를 집어 주머니에 넣어 왔다면 도둑질일까 아닐까? 개인사이든 국가 간이든 정말 서로 간에 아무 훔침이나 도둑맞음도 없이 순수한 빈부격차라는 것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것일까?

'거짓말 하지 말라'도 마찬가지. 손님의 묻는 말에 영업 비밀을 지켜 둘러대는 것은 어떨까? '음탕한 짓 하지 말라 술 마시지 말라'도 그렇다. 이러한 계율들이 지켜졌다 범해졌다고 하는 그 경계선은 어디일까?

이렇게 따지자면 정말 모호해진다. 자기 쾌락이나 이익을 위해 계율을 잘도 범하는 약삭빠른 자들이 이용하기에 딱 좋다.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상대론의 맹점이다.

그러니 불자들도 일단은 부처님이 주신 계율을 잘 지키도록 힘씀이 마땅하다. 그러나 지키고자 해도 도저히 인간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경우라든지 이것을 지키자니 저것을 범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는 게 문제다. 그래선지 불교에는 열고 닫는 법 혹은 열어서 미리 막는 법이라고 할 수 있는 개차법이 알려져 있다.

나그네가 산길을 가는데 사슴이 피를 흘리며 뛰어와 근처 수풀에 숨었다. 곧바로 사냥꾼이 달려와 사슴을 보았느냐고 묻는다. 못 보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요 보았다고 하면 사슴이 죽을 것이다. 묘한 상황이다. 어느 계가 더 중요한가? 목숨이다.

나그네는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스스로 나서서 불망어계를 범함으로서 불살생계를 지켰다. 자비의 문을 엶으로서 살생의 문을 차단한 것이다.

이렇듯 상대적으로 가벼운 계를 범하여 더 큰 불행과 심각한 잘못을 미리 막는 것이 개차법인데 만약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거꾸로 헷갈려 버린다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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