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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믿었던 가치를 파는 세일즈맨

방동섭 목사/미주성산교회

'웬디스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햄버거 체인 식당이 있다. 이 회사를 창업했던 데이브 토마스는 유명한 기업의 회장의 풍모라기보다는 늘 앞치마를 두른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푸근하고 자상한 모습으로 자사 광고에 800회 이상 출연하여 자신의 회사를 따뜻하고 친근한 이웃의 이미지로 만들었으며 그의 회사를 연간 1260억 달러의 매상을 올리는 맥도널드 다음가는 유명한 체인점으로 끌어올렸던 사람이었다. 소비자들 사이에 그의 인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6000개나 되는 웬디스 체인점에는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 회사의 홈페이지는 너무 많은 방문자로 인해 다운이 되어 버렸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불행하였다. 뉴져지주 아틀란틱 씨티에서 부모도 모르는 채 태어난 그는 6주 만에 양부모에게 입양되었고 그나마 그를 길러주던 양어머니는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 양아버지는 그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세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열 두 번이나 집을 옮기는 등 그가 보낸 소년 시절은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데이브 토마스는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식당에 취직하여 일하기 시작했다.

외롭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던 그는 어느 날 식당에서 온 가족이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부러워 장차 깨끗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식당을 차리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목표를 정한 후 그는 더욱 열심히 일했고 1969년 드디어 자신의 희망대로 '웬디스'라는 조그만 햄버거 가게를 창업하였다. 친절한 서비스와 함께 결코 얼지 않은 프레쉬한 고기로 햄버거를 만들었던 그의 식당은 입소문을 타고 급성장하게 되었다.

데이브 토마스의 성공은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그가 태어날 때 가지고 있던 어떤 특별한 환경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었다. 1993년 60세가 되던 해에 비로소 데이브 토마스는 검정고시를 거쳐 겨우 고등학교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입양아 출신이었던 그는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특히 "모든 어린이는 누구나 안정된 가정과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입양 옹호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그는 1992년 '데이브 토마스 재단'을 만들고 "특별한 아이를 입양하십시오. 그들이 자라서 특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장애인 아동의 입양을 강조하였다.



데이브 토마스는 결코 햄버거를 팔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믿었던 가치를 팔았던 세일즈맨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기독교의 선교도 단지 복음의 말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선교는 삶 그 자체이다. 자신의 삶이 메시지가 될 수 없다면 아무도 그가 전하는 복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오늘 날의 기독교의 선교 운동은 너무 말이 앞서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크레딧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땅의 모든 기독교인들의 평생의 삶 그 자체가 주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로 남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선교의 삶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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