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인문학상-시 부문 당선작] 누룩 이야기
장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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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일수록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인가
군불에 술이 익어가던 겨울 밤이 그리워
항아리를 얻어 와 막걸리를 빚는다
건조해져 가는 사막 생활 물에 불려 술밥을 만들고
자식 걱정에 주름이 더 깊어진 어머니 얼굴빛 같은 누룩을 넣고
옷깃 여미게 하는 시린 겨울 하늘을 붓는다
너무 멀리 와서 쉬 돌아갈 수도 없는 길
설익은 감정들을 추스르며 하루하루 살아가다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니 신명난 굿판이 벌어졌다
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사위가 펼쳐지고
살풀이라도 하는지 맑던 물이 유즙이 되어 있었다
오고 가는 게 목소리뿐이라 아쉽기만 했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남루한 어머니 곁에 계셔
그 냄새에 취해 한 시절 흘러갈 것 같다
가슴에 묻고만 있던 사랑의 불씨들
더는 참을 수 없어 먼 이국까지 단숨에 건너와 타고 있다
먹고 죽을 건 가난밖에 없던 빈곤한 더부살이 때에도 어머니는
누룽지며 고구마를 곧잘 만들어 내셨다
평생 퍼주는 것만 아는 어머니의 삶이 무르익는 밤
덩실 어깨춤을 추며 달빛이 내려앉고
추억의 힘으로 살아가라고 발자국의 깊이 만큼 그리움이 쌓인다.
■수상 소감…"시가 있어 늘 기쁨이 절로, 이민생활에 활력소 됐으면"
산이 좋아 주말이면 늘 산을 타던 친구가 산은 변함이 없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 말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애플밸리에서 1년 남짓 살다 보니 이제는 알 것만 같습니다. 병풍처럼 둘러선 빅베어 산을 매일 대하다 보니 이젠 눈을 감고도 그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봄 기운이 완연한 4월에도 빅베어 산은 머리에 하얀 눈을 덮어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자신은 아직 겨울을 보내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것 같습니다. 그 고집스러워 보이는 모습이 좋아 하루에도 몇 번씩 일을 하다가 바라보곤 합니다.
머리에 잔설을 이고 구름 위에 있는 빅베어 산처럼 힘든 노동의 끝에는 나도 모르는 새 내 생각은 시를 향해 있습니다. 외면할 수도 버릴 수도 없어 이제는 제 생활의 뿌리가 되어 있는 시 그 시가 가슴 벅찬 기쁨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시가 있어 삶이 풍요롭고 위안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통해 힘든 이민생활에 활력을 찾길 소망합니다.
부족한 시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정진하라는 채찍임을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제게 시심(詩心)을 일깨워주신 김명인 교수님 사랑하는 아내와 솔이 별이 샘이 그리고 내게 힘을 주는 믿음의 형제인 박창우 형 이근우 형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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