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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다른 정서 다른 문화

김복희

마 전 신문에서 개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밸리 지역에서 누군가 개에게 독극물이 묻은 미트볼을 먹여서 병원으로 실려가 치료를 받았다는 것이다. 최근엔 이글락 지역에서도 다섯 마리의 개가 독극물에 중독되어 한 마리가 죽었다고 한다. 애완 동물을 사랑하는 이곳에서는 큰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관계 당국은 범인 색출에 적극 나서는 한편 주민들에게 애완견 돌보기를 철저히하고 집 마당에 이상한 음식이 있는 지 등에 대해 주의하라는 기사다.

한국도 이제는 많이 달라져 애완동물을 집안에서 많이 기르지만 20년 전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올 때만 해도 개는 집에서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먹여 키웠고 어느 정도 크면 복날 남자들의 보양식을 위해 보신탕 집으로 팔려가곤 했다. 원래 나는 개를 비롯해 모든 동물들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미국에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더욱 싫어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가 처음 정착한 곳은 롱비치에 있는 한 아파트였다. 집 앞에는 커다란 목련 나무가 있어 따가운 오후의 햇살을 막아 주었다. 운전도 길도 익숙지 않아 마켓에 가려면 길 이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날도 걸어서 마켓을 다녀 오느라 나는 좀 큰 누런봉지를 양팔에 들고 7살 어린 딸에게도 작은 고기봉지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좀더 가깝게 질러가기 위해 샛길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뭔가를 말하는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골목 중간쯤 왔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개 한마리가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인적이 드문 뒷골목을 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상황이 너무 급했다. 겁에 질려 내 옆에 바짝 붙어 있는 딸에게 개가 길길이 뛰며 곧 달려들 태세였다. 미친 개 광견병 그 생각이 들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양손에 마켓봉지를 들고 아이를 뒤로 빼돌렸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바나나를 꺼내어 등 뒤로 던졌다. 달려가 냄새를 맡더니 다시 따라 붙는다. 시간을 벌기 위해 계속 하나씩 던졌다. 한 손에 들었던 봉지가 찢어져 물건들이 길바닥이 흩어졌다. 무릎이 찢어졌는 지 바지 위로 피가 비친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딸이 들었던 고기 봉지를 내가 들었는데도 개는 줄기차게 딸에게만 달려 들었다. 그런데도 고기가 든 봉지를 얼른 던져 준다는게 우리 정서로는 선뜻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진땀을 빼고 있는데 한 백인 여자가 쓰레기를 버리려고 뒷문을 열고 나왔다. 구세주였다. 개가 그쪽으로 가는 틈을 타 딸에게 먼저 집으로 뛰어가라고 일렀다. 개가 쫓아오면 막으려고 난 뒤에서 걸었다.

멀리 아이가 커브를 막 돌아 뛰어갔는데 개는 내 앞을 지나 앞으로 내닫는 게 아닌가. 눈 깜박할 사이에 더욱 불안한 사태가 벌어졌다. 마켓 봉지를 땅에 버리고 개를 따라 나도 뛰었다. 커브를 도는데 자전거를 타고 오는 백인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난 청년을 향해 개를 손으로 가리키며 "헬프 미"하며 저만치 뛰어가는 딸을 또 손으로 가리켰다. 백인 청년은 오던 길을 돌아 개를 쫓아가 잡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놀래서 뛰는 딸의 이름을 불렀다. 개가 없다고 소리를 쳐도 딸아이는 뒤도 안보고 "엄마 빨리와"하며 계속 뛰어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개는 바나나를 안 먹는다고 했다. 그 말에 곁들여 개를 때리면 동물 학대죄로 붙잡혀 간다는 것이다. 그 후 우리 모녀의 개에 대한 공포가 병적으로 심해 멀리서 개가 보이면 다른 길로 돌아서 갔다. 얼마 후 신문에서는 개를 때린 한국 남자가 6개월 실형을 받고 벌금을 물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토록 문화가 다른 곳에서의 적응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 후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입학할 즈음 학군이 좋다는 T시로 이사했다. 뒷마당이 커서 구입한 집이었다. 아이들이 동물을 좋아해서 여러 종류의 동물을 기르며 차차 개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다. 애완 동물들이 점점 자라 집안을 너무 많이 훼손 시키기에 잘 키우겠다는 다른 이웃에게 주고 말았다.

그때 개를 키우지 않았다면 우리 모녀는 평생 개를 싫어하며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두 딸은 토내(개이름)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해 한다. 우리가 준 개가 그집에서 2주 만에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그 개처럼 거리를 방황하다 누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미국사람들은 개를 가족처럼 생각한다. 때로는 개에게 유산을 남겨 개의 노후가 편안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살았던 시대에는 개는 복날의 보신탕 감으로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문화와 정서가 다름을 절실히 대조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약력>
▷‘미주크리스찬문학’ 수필 입상
▷‘수필문학’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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