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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쉽고도 어려운 것

유지애

이 시대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문제는 불신으로 점철 되어온 신뢰의 상실이다. 과학이나 문학 예술분야에 있어 특별히 전문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는 인터넷 시대 지식의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쳐 다니며 거기에서 얻어지는 것에 대한 만족감도 있지만 한편 얼굴 없는 살인자 악플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자멸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걸음 다가서면 그 거리만큼 두려워지는 체감온도 너와 나 사이 불신의 벽은 깰 수 없을까?

근래에 일상에서 겪은 에피소드 한 토막을 함께 나누고 싶다. 한 보름 전으로 기억 되는데 이른 아침 미국 마켓에 갔다. 다섯 블록쯤 되는 걷기에도 아주 적당한 거리를 걸음 가볍게 날아가듯 했는데 그만 난감한 일이 벌어졌다.

바나나 한 무더기와 달걀 한 판에 평소에 잘 안 사던 포도 주스에다 자루에 든 감자까지 사들고 주차장을 나와 내 차를 한참 찾아보았으나 안 가지고 간 차가 보일 리가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내 건망증에 대한 실망보다는 염려의 경지까지 도달하게 된다. 계산한 물건을 금방 물리자니 낯이 뜨겁고 이 무게를 들고 도저히 걸어 갈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한 남자분이 내 앞에 차를 파킹하고 급히 마켓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죄송하지만요 앞에까지만 태워주실 수 있을까요?" 심사숙고할 겨를도 없이 뻔뻔스럽게 물어봤다.

다행히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는 안했는지 오분만 기다리라 했다. 무슨 일로 마켓을 들렀는지 몰라도 정확하게 오 분이 조금 지나자 한국 남자분이 약속대로 나타났다.

"아주머니 참 겁나는 분입니다. 날 어떻게 믿고 이 차를 타십니까?"

황당하다기보다 자존심 상하는 물음이었지만 그분의 말이 백 번 맞았다.

집 앞에까지 와서 나에게 던진 그의 말에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했다.

"요즘 세상에 모르는 날 믿어주는 분이 있다는 것이 눈물나게 감동입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인정이 깃든 이 사실이 눈물까지 날 정도의 감동이라니…. 가뿐하게 출발한 그날 아침이 한심한 나의 건망증까지 가세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같은 동족끼리도 믿지 못하는 시대 가족과 부부간의 신뢰 한 걸음 더 나아가 노사의 갈등이 현 정부와 정치가를 불신의 늪으로 빠뜨리고 있다.

믿음으로 가는 길은 언제 열릴 수 있을까. 그 길은 옛날 실크로드로 향하는 길만큼이나 길고 험한 고행일까. 낙타에 모든 생필품을 싣고 끝없는 사막 길을 가야만 했던 유목민들의 몸과 마음은 고되었지만 한편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참 걷다보면 그들의 꿈인 오아시스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한국에서 가끔 치러지는 큰 행사 때마다 오프닝에서부터 각종 프로그램의 이벤트를 총 지휘 감독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나 영화를 만드는 프로듀서와 감독의 위치와 같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고갈된 정서 생활에 윤활유의 역할을 해주는 이들이 있어 안방이나 거실 소파에서도 안식을 누릴 수 있다.

비교적 성공적인 행사를 마친 후 모 일간지에 실렸던 인터뷰 기사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행사를 잘 치러 낼 수 있었던 비결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자신이 하는 작업을 일컬어 '아직 사랑에 이르지 않은 두 개의 개체를 서로 만나게 해서 사랑에 빠뜨리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문인의 한 사람으로 공감이 가며 깊은 의미가 담긴 표현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궁극의 목적은 어떤 대상을 사랑의 큐피트 화살로 명중시키는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때로는 무의미한 날들을 보내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러 내 막혔던 가슴이 봇물처럼 터지는 것 같은 때를 경험한다.

비록 그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초자연의 힘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의 몸짓을 통해서도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쉽고도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어려운 길이라도 택하련다. 내안에 내가 숨 쉬고 있는 한 큐피드 화살이 중심에 찍힌 점 한 개를 명중시킬 수 있을 때까지.

<약력>
▷문예운동 등단
▷재미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재미시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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