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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의 향기] 자선에 대하여

한상만 신부/성 크리스토퍼 한인성당

오늘 아침 신문에서 모 대학에 3천만 원을 기부하신 어떤 할머니 이야기를 읽었다. 그 할머니를 묘사하는 수식어들이 대충 이러했다.

남루한 옷차림 검은 비닐 봉지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셨고 이름을 밝히기를 부끄러워하셨고 할머니의 친자식들은 공부를 못 시키셨다고 했고 슬리퍼를 신으신 가난한 발로 파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셨다고 그런데 그 할머니께서 작년에도 1억 원을 그 학교에 기부하셨고 아마도 그 할머니께서는 신앙 생활을 하시는 분인 것 같다고 학교 담당자가 말했다는 것이다.

마치 성경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접하는 것 같아서 일종의 긴장감을 느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귀족의 의무)의 면모와는 사뭇 다른 그 무엇 때문에 느끼는 긴장감이 거기 있다.

귀족이니까 그래서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앞장서 길을 간다는 뜻으로 행하는 기부와 자선 활동은 참 당당하고 멋있고 화려하고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살만하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의 목격자들은 많을지 모르지만 '나도 그렇게' 행동하자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처럼 귀족이 아니니까.



그러나 오늘의 할머니 이야기에서 느끼게 되는 그 무엇은 좀 색다르다. 마치 숨겨놓은 마음속의 비밀 같은 것을 들킨 느낌이고 그러면서도 외면하면 안될 진실을 대면했을 때 느끼게 되는 그 무엇이 있다. 그래서 동참해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이 거기 있다. 그렇다. 종교적 요구와 도전이 오늘의 할머니의 이야기에 숨겨져 있다.

자선은 본래 기도와 단식과 더불어 신앙의 법으로 요구되는 종교적 행위이다. 행위가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 신앙이다. 진실한 신앙이란 기도와 단식과 자선이라는 종교적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신앙은 종교적 행위로 증거 되야 하고 이 세가지 행위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한가지 목표를 지향하여 행해진다.

한마디로 자선은 단식의 열매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단식을 통하여 배고픔을 느껴보라는 것이 단식의 법이며 단식한 결과 남긴 것을 배고픈 이웃에게 나주어 주라는 것이 자선의 법이다. 사실 배고픔의 체험은 인간의 실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즉 하느님 없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고 하느님께 돌아 설 이유를 알게 해 준다.

이 같은 회개의 행위로 수행되는 단식과 자선은 구원의 역사를 요약하기도 한다. 종 노릇 하던 때의 비참함을 기억하고 그 노예살이에서부터 해방시켜주신 하느님의 업적에 대하여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지금 부리고 있는 종들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겨 제때에 먹이고 보살피라는 요구가 단식과 자선의 법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른 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행해야 하고 나팔을 불어 제 자랑을 도무지 할 수 없는 것이다. 숨은 일도 다 보고 계시는 하느님께만 오롯한 뜻을 두고 수행하라는 신적 요구와 도전이 있다.

그에 대한 겸손한 인간적 응답이 오늘의 할머니 이야기에서 발견되었고 그것 때문에 훈훈한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마도 할머니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하는 줄 깨달으신 것 같다. '귀족이 아니니까'라는 이유가 설 자리가 없다. 다만 감사와 나눔이 있을 뿐이다. 먼저 베푸신 사랑에 대한 당연한 응답이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가난한 슬리퍼 발걸음으로 파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가셨다는 이야기에서 지루한 가난과의 전쟁을 견뎌낼 힘을 얻는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까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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