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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삶의 여섯 건널목 '육바라밀'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미국은 어딜 가나 길도 시원하게 잘 뚫려 있고 뭐든지 큼직큼직 여유 있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예전 내 선입견이었고 또한 여기서 눈으로 확인한 첫 인상이었는데 좀 오래 살다 보니 요즘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다 상대적이라는 생각에 젖기도 한다.

고국의 짜증나는 길바닥에서 부대끼다 여기 와서 일직선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릴라 치면 속이 다 확 트였는데 어럽쇼 여기도 해가 갈수록 장난이 아니다. 오렌지카운티 같은 외곽에서 코리아타운 한 번 나왔다 들어가는 것이 마치 서울 강북에서 강남에 일 보고 오는 것처럼 하루를 다 잡아먹는 꼴이 돼 간다.

빨간 불에 걸려 기다리는 시간만은 죄다 모아서 내 인생에서 빼 놓았다가 덤으로 다시 붙여 주십사고 서울의 어느 택시 운전사가 올린 글이 있었다.

요즘은 내가 LA 중심가를 오르내리며 5번 프리웨이에서 뭉그적거리는 시간만은 제발 항공 마일리지처럼 따로 모아 두었다가 나중 요긴하게 쓸 자투리 시간으로 다시 내어 주십사고 빌고도 싶어진다.

미국은 기차도 별로 안 다니는 줄 알았더니 이것도 장난이 아니다. 무려 칠팔십 칸이나 되는 긴 열차가 땡땡땡땡……. 출근길을 가로막고는 빨리 지나가지도 않는다.

그러더니 일진이 나빴는지 늦은 퇴근 시간 같은 건널목에서 간발의 차이로 또 열차를 만났다. 이번에는 천천히 지나가는가 싶더니 눈앞에서 그만 멈춘다. 그리곤 다시 덜컹거리며 거꾸로 밀고 간다.

그러다 다시 왔다 갔다 하며 애들 기차놀이처럼 세월아 네월아 하고 오르내린다. 참을성 많은 미국사람들도 마침내 자동차를 끼익 유턴하여 되돌아가기도 한다. 오냐 누가 더 끈질긴가 보자.

오기를 부리지만 진작 되돌아갈 걸 하며 은근히 후회도 된다. 그러다 이왕지사 늦은 몸 운전대에 두 팔을 얹고 나름대로 선정에 들어 본다.

눈앞의 저 건널목이야 어쨌든 새벽이 오기 전까지는 틀림없이 트일 것이다. 그런데 트여 봤자 갈 곳이란 뻔한 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 집이 그 집이고 그 일터가 그 일터일 것이다.

그리고 땅 넓은 미국이라고 해도 내가 가는 곳마다 예기치 않게 이렇게 수시로 붐비고 막히고 시달리고 진이 빠질 것이다.

나 또한 그런 흐름에 한 탓이 되고 보탬이 되어 나 때문에 모든 것이 좀 더 붐비고 막히고 시달리고 진이 빠지리라. 그런데 나는 뭐 때문에 그리 악을 쓰고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싸돌아다니나? 그러지 말고 이 쳇바퀴를 훌쩍 뛰어 넘을 건널목은 없을까?

있다. 육바라밀이 그것이다. 벌레를 씹듯 징그럽고 싫어도 지그시 눈을 감고 참아야 하는 세상 살을 도려내는 아픔도 이를 악물고 견디어야만 하는 사바의 땅 내가 시동을 끄고 지금 멈추어 선 속세의 이 땅이다. 그러면서도 발부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괴로움의 바다다.

그 바다에 둥둥 떠서 조그마한 기쁨과 즐거움을 마취제 삼아 하루하루를 덮어 나간다. 이 물결치는 고해를 건너 영원한 기쁨의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여섯 건널목 그것이 바로 육바라밀이 아니던가!

그 하나하나를 되새겨 보자. 첫째 내가 다 갖지 않고 아낌없이 나눠 주는 건널목 다음이 계율을 지키는 건널목이다. 그 다음이 참고 견디는 건널목 부지런히 갈고 닦는 건널목이다.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는 건널목 마지막으로는 눈 밝은 슬기를 깨치는 건널목이다.

그 여섯 건널목이 차례로 눈에 겹쳐 어리는데 땡땡땡땡……. 오징어 다리처럼 불을 번쩍이는 가로대는 이윽고 다시 팔을 들어 올리며 이 밤 내 갈 길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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