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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경기 지표 잇단 '서프라이즈'…어떻게 읽어야 하나? '나랏돈의 힘' 소비·투자 살아나야 진짜

한·미 2분기 성장률 예상 밖 호조 '경기회복 기대 확산'
고용·투자 기초체력 개선 의문…하반기 지표 되레 부담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1시30분 여의도 채권시장의 채권값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한국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6월 산업생산동향이 호조를 보이자 경기회복 기대감이 커져 금리가 크게 오른 것이다.
시장에선 6월 광공업생산이 전달보다 3.8% 정도 늘 것으로 봤지만 실제 발표된 수치는 5.7%였다. 한 채권딜러는 "발표 직후 외국인이 순식간에 1000계약 이상의 선물을 쏟아내면서 지표물인 5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0.09%포인트 상승한 4.76%로 마감됐다"며 "2분기 국내총생산(GDP) 호조와 소비심리 개선 등으로 채권시장은 줄곧 약세 분위기"라고 전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경제지표가 잇따라 나오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바닥은 쳤다'는 낙관론이 힘을 얻고 회복 시점을 연말 이전으로 당겨 잡는 예측도 나온다.
한국 내외에서 보는 한국 경제 성장률은 연초 -4~-5% 수준에서 최근 -1.5~-2%로 상향되고 있다. 경기회복에 대비해 유동성을 회수하는 '출구전략'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숫자를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고용과 소비 대신 정부가 푼 대규모 돈의 힘이 성장을 떠받쳤기 때문이다. 나라 경제가 이런 외부 수혈 없이 스스로 잘 굴러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데다 재정 고갈 해외 여건 유동성 회수 등 굵직한 변수도 여전히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지표 호전 조짐은 2분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3월 초 1000선을 위협받던 주가가 슬금슬금 반등하더니 1300을 내주지 않고 굳건히 버텼다. 환율 효과의 지원을 받은 기업들은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생산과 소비 등 일부 지표도 전월 대비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상당수 지표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여전히 부진하거나 악화 추세였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긴 했지만 자신 있게 얘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주부터 잇따라 청신호가 쏟아졌다. 지난달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GDP가 전 분기보다 2.3% 성장해 5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론 여전히 2.5% 감소한 것이지만 바닥을 빨리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로 받아들여졌다. 27일 발표된 소비자심리지수(CSI)는 2002년 3분기 이후 7년여 만에 최고치인 109로 나왔다. 다음 날 나온 제조업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5개월 연속 상승한 81을 기록했다.
29일 발표된 상반기 경상수지는 217억5000만 달러 흑자로 사상 최대치였다. 31일 재정부가 내놓은 6월 산업생산동향은 회복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확신으로 바꿔놨다. 광공업 생산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감소하는 데 그치며 위기 이전 수준에 근접했고 소비재 판매는 전년 동기보다 7.3% 증가했다. 연초 이후 꾸준히 개선되는 이런 추세는 대부분의 지표에 공통적이다.
미국에서도 바닥 탈출에 대한 기대감이 일고 있다. 지난달 31일 나온 2분기 GDP는 시장의 예상치인 -1.2~-1.6%를 웃도는 마이너스 1%로 집계됐다. 지난해 3분기부터 4분기 연속 하락세지만 -6.4%였던 1분기에 비해 침체 속도가 많이 둔화됐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업실적이 잇따라 나오면서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최근 한 달간 1000포인트 상승했다. 한 달 상승률로는 7년 만에 최고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30일 "우리는 지금 경기침체가 끝나가는 초입 단계를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경제의 자유낙하가 멈췄고 상황이 나아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때맞춰 "경제가 여전히 취약하지만 침체가 완화되고 미약하게나마 경제활동이 안정되기 시작했다"는 코멘트를 내놓았다.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까지 최근 "올해 말까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 전망을 수정했다.
워런 버핏은 지난주 "다우지수가 9000을 넘어섰지만 국채나 단기 투자로 돈을 굴리기보다 주식을 사는 게 낫다"며 낙관론을 폈다.
한국 경기 회복세는 순환 사이클 측면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생산.수출.소비.투자 등 경기의 각 순환고리를 대변하는 체감지표들이 동시에 호전되고 있다. 6월 한국내 신용카드 사용액은 27조19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2.44% 늘었다.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 만에 10%대 증가율을 회복했다.
같은 달 전력사용량은 지난해보다 1.1% 백화점 매출은 3.6% 휘발유 판매량은 9.2%씩 늘어났다. 세금 감면에 힘입어 자동차 판매량은 60% 폭증했다. 수출과 소비 회복에 힘입어 기업 재고는 16.7% 줄었고 공장가동률은 76.5%로 높아졌다. 설비투자도 전달보다 9.5% 증가하며 넉 달째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표로만 보면 이미 봄을 넘어 간혹 초여름 햇살까지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많은 전문가가 아직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을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유동성이 밀어올린 성장"(김승진 삼성금융연구소 상무)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상무는 "정부가 돈을 쏟아부어 고용을 지키고 소비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지만 민간 소비와 고용에 힘입어 투자가 늘어나는 진정한 성장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2분기 성장률 2.3% 가운데 1.5%가량이 정부 재정 지출과 자동차 구입 때 세금 감면에 따른 효과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3월 4%에 달했던 실업률도 미미하게 하락했지만 인턴 고용과 희망근로사업을 감안하면 실제론 악화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고용사정을 판단하는 지표로 권장하는 고용률로 보면 한국은 2003년 63.9%로 가입 30개국 중 22위에 처져 있다. 회원국 평균과의 격차도 2004년 1.6%포인트에서 2007년 2.8%포인트로 벌어졌다.
이런 사정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2분기 GDP가 예상보다 좋았다지만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는 예상치(-0.5%)를 훨씬 밑도는 1.2% 감소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는 6월 9.5%까지 오른 실업률이 연말까지 10%를 넘어설 수 있다고 인정했다. 위기 이후 650만 개 줄어든 일자리 감소 추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얘기다. GDP 호조가 정부 지출 증가에 힘입은 것이라는 점도 한국과 비슷하다.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지금 상황은 바닥이 넓은 U자형 또는 욕조용 침체에서 잠시 물결이 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2분기의 급격한 회복세가 하반기 지표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현철.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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