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칼럼] 가장 어려운 문병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소식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병문안을 가도록 분부하셨다. 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으니 큰 슬기 사리불이나 신통 제일 목건련이나 공을 잘 안다는 수보리도 그랬고 말 잘하는 부루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마거사의 병이 보통 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이즈도 없던 시절이고 조류 독감도 몰랐던 시절인데 조상을 잘못 만나 무슨 희귀 유전병에라도 걸렸단 말인가?
어쨌든 그가 이름 모를 큰 병에 걸리긴 했는데 병명도 없단다. 병의 원인은 나와 있는데 자기가 지금 앓고 있는 이유는 이 세상 모든 중생이 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들이 모두 병이 나아야만 자동적으로 내 아픈 증세가 사라지는 희한한 병이라는 것이다.
이러니 문병을 간들 무슨 도움이 되겠으며 어느 의사가 고칠 수 있겠는가! 자칫 잘못 했다가는 유마거사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의 병을 건드려 덧나게 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사실 더 어려운 문제는 다는 데 있었다. 유마 거사의 경지가 어찌나 높고 법담에 뛰어났던지 그와 겨루어 이긴 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부처님의 열 큰 제자 가운데서도 그와 법담을 나누다 당하지 않은 이가 없다지 않은가!
그렇다고 문병을 안 갈 수는 없으니 마침내 문수보살이 총대를 메었다. 문수보살이라면 사뭇 옛적 부처님의 스승인데 무려 일곱 부처님을 내리 가르쳤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제 아무리 유마 거사라 할지라도 한 판 벌여 볼 만 하것다. 그리고 공짜 구경이라면 자다가도 도시락 싸들고 나서는 법. 보살들과 나한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도 눈부신 이 한마당을 놓칠세라 줄줄이 함께 그를 따랐다.
잘 오셨소이다. 문수보살이여 오지 않음으로 오시며 보지 않음으로 보십니까?
거사여 참으로 그러하오. 온다 하여도 온 것이 아니며 간다 하여도 간 것이 아니외다. 왜냐면 온다는 것은 온 데가 없고 간다는 것도 간 데가 없으며 본다는 것도 실상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병환은 어떠십니까?
단수가 높다. 예삿얘기가 아니다. 이 주고받기를 비롯하여 유마의 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높고도 멀리 두루 너른 이야기로 이어가다 마침내 '둘 아님'의 법문에 들어선다. 둘이 아닌 오직 하나 뿐임이라는 법의 문에는 어떻게 들어갑니까? 유마가 물었다.
제 생각에는 말없이 알음알이 없이 묻고 답하기를 모두 떠나는 것이 '둘 아님'의 문에 들어감이라 하겠소이다. 그리곤 되묻기. 거사님 그렇다면 거사님은 어떤 것이 '둘 아님'의 법문에 드는 것이라 하겠습니까?
'……'
거사는 다만 가만히 앉은 채 입을 열지 않았다. 이에 문수보살이 찬탄하였다.
참으로 좋고도 좋도다! 글자도 말까지도 없는 것이 참으로 '둘 아님'의 법문에 들어감이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던 문병은 이렇게 이어지는데 결과가 궁금하신 분은 반드시 대승의 크지 않은 경전 유마힐경을 찾으시라. 더군다나 궁금하신 그대가 한낱 재가의 불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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