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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500장 보유한 이정훈씨 '신경 쓴 만큼 값어치 하죠'

"티셔츠가 만만하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해요."

티셔츠 매니어라는 그는 첫마디가 이랬다. 사람 좋게 웃으면서도 티셔츠 얘기만 나오면 진지해졌다. "그냥 티셔츠 한 장이라고 다들 쉽게 말하지만 그래서는 사놓고도 못 입는 다니까요. 그게 다 '까짓것 티셔츠 한 장인데 대충 고르면 어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렇게 티셔츠를 사면 전부 실패해요. '내가 어떤 옷이 있으니까 거기엔 이게 어울릴 거야'라고 생각하며 티셔츠를 고르면 달라집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고 조금씩 번 돈으로 하나 둘씩 사 모으기 시작한 티셔츠가 '이제 겨우' 500여 벌이라는 이정훈(30)씨는 자타공인 '티셔츠 매니어'다. 대개의 매니어가 그렇듯 그 역시 부모에게서 "미친 X"라는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단다. 그는 "왜 티셔츠가 좋으냐"는 물음에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대충 하는 말 같지만 그는 절대 '그냥 티셔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심심해서 여윳돈이 있어서 티셔츠 몇백 장 사 모은 사람도 아니다. 진지하게 티셔츠가 좋아서 관심이 너무 많아서 '열정적으로' 사 모으다 보니 자연스럽게 티셔츠 디자이너가 됐다. 작은 가게를 열고 소일거리 삼아 하는 디자인이 아니다.

그는 현재 LG패션의 남성복 브랜드 TNGT 디자인실에 소속된 어엿한 패션 디자이너다. TNGT의 티셔츠.청바지 등을 도맡아 디자인하고 있다. 12일 오후 J-Style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위해 자신의 티셔츠 80여 벌을 들고 중앙일보로 찾아온 이씨를 만났다. 촬영 준비를 하며 티셔츠를 하나하나 꺼내 보이던 그가 입을 열었다.

"티셔츠가 굉장히 쉬워 보이고 다 그게 그거지 별것 있냐고 생각하지만 보세요 이렇게 다양하잖아요. 이렇게 하나하나 보다 보면 무엇이 내 몸에 맞을지 어떤 것을 골라야 티셔츠 한 장만으로도 멋이 있을지 알게 돼요."

그는 인터뷰 내내 '티셔츠 한 장'이란 말에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티셔츠는 군인들 속옷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요즘은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진짜 멋쟁이들은 티셔츠만으로도 멋 내는 법을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한텐 잘 알려주지 않나 봐요. 나만 알아야 그래야 더 있어 보이니까. 티셔츠 연출법도 다양해졌으니 이제 '티셔츠 한 장'이라고 무시해선 안 되죠."

이씨는 대학생활 내내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돈이 모이면 방학 때마다 도쿄.홍콩으로 티셔츠 쇼핑을 다녀왔다. 그는 왜 멀리까지 티셔츠를 보러 다녔을까.

"도쿄의 티셔츠는 좀 작아요. 일본인 체형에 맞춰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본 스타일이 몸에 더 붙게 입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죠. 같은 티셔츠도 몸에 얼마나 붙게 입는지에 따라서 느낌이 참 다르거든요. 홍콩에는 홍콩만의 특색보다 명품 티셔츠가 다른 데 보다 싸다는 게 장점이죠. 물론 할인을 많이 하는 아웃렛에 가야 하기 때문에 시즌이 지난 것을 사야 하죠. 그래도 꼭 갖고 싶었던 것을 보다 싸게 조금 늦게 산다는 뿐이니까요. 런던은 또 달라요. 문화적 분위기 때문인지 프린트가 아주 강렬하고 색깔도 과감한 편이죠. 나라마다 티셔츠가 조금씩 다르고 그 소화법 또한 제각각입니다."

이씨는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명품 티셔츠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쓸데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품 티셔츠가 다른 부분이 있어요. 마틴마르지엘라에서 산 검은색 반팔 티셔츠를 예로 들게요. 목 부분이 늘어나고 앞에 달린 작은 주머니도 조금 늘어나 있거든요. 그런데 이런 모양을 새 티셔츠를 사서 일부러 늘이고 해서 만들긴 어려워요. 디자이너가 고심해 만든 이런 명품 티셔츠는 진짜 해어지고 늘어난 게 아니지만 오래된 듯한 멋이 있죠. 뭔가 내 몸에 꼭 맞게 자연스러운 가운데 특별한 멋이 있으니까 돈을 더 주고서라도 사는 거죠."

◇괜찮은 티셔츠, 이곳에 다 있네
서울 /
티셔츠 매니어들이 꼭 찾는 곳은 서울 예지동 광장시장이다.‘헌것’을 지칭하는 ‘구제품’을 주로 파는 곳이 광장시장 안에 있다.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에 내려 광장시장 입구에서 주변 상인들에게 ‘구제품 파는 곳’을 물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운만 좋으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품 티셔츠도 몇 천원에 살 수 있다. 단, 이곳에서는 교환·환불이 어렵기 때문에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조명이 어두워 얼룩이 잘 보이지 않는 흰 옷은 피하는 것이 좋다.

도쿄 / 구야마테도리에 가면 다양한 티셔츠를 만나볼 수 있다. 도큐도요코센을 타고 다이칸야마역에서 내리면 걸어서 10분 이내에 있다. 역 서쪽 출구로 나가면 된다. 주로 티셔츠와 청바지 종류를 모아 놓은 ‘셀렉트숍’이 모여 있는 거리다. ‘할리우드 런치 마켓’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전 세계의 특색 있는 티셔츠가 망라돼 있다. 우리나라에선 흔하게 볼 수 없는 티셔츠가 많다.

홍콩 / 애버딘의 ‘호라이즌 플라자’가 티셔츠 쇼핑 명소다. 홍콩의 유명 편집매장인 ‘조이스’와 명품백화점인 ‘레인크로퍼드’의 할인매장도 있다. 평소 사고 싶었지만 가격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명품 티셔츠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할인 폭은 최대 70% 정도다. 근처(도보 10분 거리)에 프라다와 미우미우의 아웃렛인 ‘스페이스’도 있다.

티셔츠의 뿌리는

티셔츠의 기원은 속옷이다. 미국 속옷의 대명사인 ‘자키’가 ‘T’자 형태의 속옷 상의를 1932년 처음 만들어 유명세를 탔다.

미국 패션 전문가들은 티셔츠의 탄생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병사들을 부러워했던 미군들에게서 찾곤 한다. 당시 유럽 군인들은 군복 안에 면으로 된 속옷을 입고 있었지만 미군들은 양모로 된 군복만 입고 땀을 뻘뻘 흘렸다. 미군들은 유럽 병사의 면 속옷을 부러워했고, 이것이 미군 사이에 퍼지면서 면 ‘속옷’ 티셔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 미군들의 속옷은 티셔츠로 굳어졌다. 42년 7월 13일자 미국의 주간잡지 ‘라이프’는 표지모델로 티셔츠를 입은 미군의 모습을 실었다. 사진 속 인물은 하의는 군복을, 상의는 군복 없이 티셔츠만 입었다. 이때 티셔츠가 겉옷 역할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당시 미군들은 평상시에 티셔츠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이 끝난 뒤 티셔츠는 속옷이 아닌 일상복 형태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51년 말런 브랜도가 주연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영화 포스터에는 반소매 차림의 말런 브랜도가 등장한다. 이후 제임스 딘·존 웨인 등 유명 스타가 티셔츠를 즐겨 입기 시작하면서 50년대 미국에선 티셔츠 차림이 하나의 패션으로 뿌리내리게 됐다. 티셔츠가 여름철 패션의 키워드가 된 지 50년쯤 지난 셈이다.

매니어가 권하는 티셔츠 고르는 법

① 면 100% 소재를 골라라. 티셔츠의 멋을 제대로 살리는 것은 실루엣과 색감이다. 천연섬유인 면으로 된 것은 자연스럽게 염색이 잘 되고 몸에 잘 맞춰 흐르는 느낌이 좋다. 좋은 면 소재의 티셔츠를 고르는 것이 시작이다.
② 얼굴색을 고려할 것.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밝은 핑크색 티셔츠는 남성들이 선호한다. 실제 판매율이 그렇다. 하지만 까무잡잡한 얼굴색이라면 얼굴과 티셔츠가 따로 느낌을 줄 수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밝은 얼굴색에 회색 계열의 칙칙한 티셔츠는 어울리지 않는다.
③ 줄무늬를 조심하자.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재차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뚱뚱한 체형은 가로줄을, 마른 체형은 세로줄을 피해야 한다. 기본 중 기본이다.

글=강승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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