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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타지마할, 영원한 사랑의 징표…인도

인구 14억의 거대한 나라 인도 하면 흔히들 요가, 명상, 힌두교, 카스트제도를 떠올리지만 이것들이 인도의 전부는 아니다. 아그라에는 수백 년간 아름다움을 간직해온 타지마할이 있다.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은 너무나도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이 14번째 아이를 출산하다 사망하자 이를 추모해 궁전 형식의 무덤인 타지마할을 건축했다.   타지마할은 단순히 죽은 아내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기 위해 만든 무덤이라기엔 지상 최고의 완벽미를 갖추고 있다. '이슬람 예술의 보석' '시공간을 초월한 완벽한 아름다움'이라 찬사 받는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은 물론 외국의 내로라하는 건축가와 전문 기술자들을 불러오고 무려 2만 명의 노동력을 동원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물론, 어마어마한 국고를 손실하고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어두운 면은 평생 따라다닐 꼬리표지만 타지마할이 전 세계 사람들이 손꼽는 꼭 한 번쯤 보고 싶은 랜드마크임엔 틀림없다.   심지어 샤 자한은 후세에 더 이상의 아름다운 건축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아 중요 건축공과 기능공의 손목을 절단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이후 그 자신도 국고를 탕진했다는 이유로 둘째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아그라 성의 감옥에 유배됐다. 그 감옥은 타지마할과 지척에 위치해 있는데 샤 자한은 8년간 아내의 묘만 바라보며 살다가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 시대에도 역사적, 정치적, 예술적으로 한 획을 그은 타지마할은 후세에도 그 명성을 이어갔다. 1983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07년에는 세계의 경이적인 문화유산 7곳(피라미드, 만리장성, 콜로세움, 파르테논 신전, 에펠탑, 타지마할) 중 하나로 선정됐다.   타지마할은 양파 돔과 4개의 첨탑, 아치형 벽감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있으며 흰 대리석 벽엔 마노, 홍옥, 백옥, 터키석 같은 아름다운 보석들이 장식돼 있다. 타지마할은 어느 방향에서 나누어도 정확한 대칭을 이룬다. 네 개의 첨탑과 거대한 정사각 정원이 수로를 따라 또 네 개로 분리되고 수로 중심에는 물이 솟아나는 인공 연못이 조성돼 있다. 또한 타지마할은 일출과 일몰, 달이 뜨는 보름 등 시간에 따라 빛깔과 자태가 변한다. 이는 주요 자재로 사용된 대리석이 빛을 투과시키거나 굴절시키는 현상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포인트는 1992년 영국 다이애나 왕비가 앉았던 '다이애나 의자'다. 정확한 대칭을 이루는 타지마할의 정원과 분수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기 가장 좋은 장소다. 타지마할에는 두 개의 관이 있는데, 가운데 뭄타즈 마할의 관이 있고 다른 쪽에는 샤 자한의 관이 더 크게 안치되어 있다. 360도 돌면서 무덤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타지마할의 외관보다도 그 속에 숨겨진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 더 관심을 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은 아내를 향한 샤 자한의 눈물겨운 세레나데야말로 타지마할을 더욱 신비롭게 한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타지마할 영원 사랑 이야기 나라 인도 다이애나 왕비

2024-03-28

[손원임의 마주보기] 사랑에 기반한 친밀한 관계

언젠가 기나긴 여행 중에 우연히 한 그림을 보고 온몸의 피곤함도 잊은 채 멍하니 그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머리가 하얗게 센 한 노부부가 나란히 안락의자에 앉아서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평온한 뒷모습을 담은 참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나는 그 소박한 그림으로부터, 해질녘의 푸른 바다 위의 잔잔한 파도를 배경으로 그 부부가 살아온 장구한 굴곡의 세월과 함께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때 틀림없이 마음속으로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고 강렬하게 외쳤던 것 같다.     우리는 고령사회에 살고 있다. 인구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가 한국은 전체 인구의 18%를 넘고, 미국은 거의 17%이며, 일본은 29%정도라고 보고된다. 노인문제는 이제 우리 모두의 숙제로서, 창의적인 해결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개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모두가 노년에 대비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생애를 살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노년의 풍요로운 삶은 어디에 기반할까? 건강한 노년에는 심리적•신체적•경제적으로 많은 것들이 필요하며, 인간관계 또한 매우 중요하다. 로버트 월딩거와 마크 슐츠는 2023년에 낸 책,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The Good Life: Lessons from the World’s Longest Scientific Study of Happiness)에서 노년기일수록 친밀한 관계의 형성과 지속에 더더욱 신경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안정 애착을 형성한 관계가 삶의 만족도를 더 높이고, 우울감을 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50세에 느낀 결혼생활의 행복이 50세 때의 콜레스테롤 수치보다 노년기의 신체 건강을 예측하는 데 더 유용하다”고 하며, 심신과 정신 건강의 복잡하고 깊게 얽힌 관련성을 지적한다. 이에 “인간관계는 우리 내면에 살고 있다.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각종 호르몬과 화학 물질이 생성되고 그것이 혈액을 타고 이동해 심장과 뇌, 다른 많은 신체 기관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효과는 평생 지속된다”고 재차 강조한다. 즉, 친하며 우호적인 상호관계는 행복지수를 올리고 개개인이 의미 있는 삶을 살도록 다각도로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월딩거와 슐츠의 책은 하버드가 1938년에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85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과학적인 성인 발달 연구를 기반으로 했기에, 전례 없는 방대한 데이터를 집대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장기간에 걸친 하버드의 연구는, 결국 우리 선인의 지혜, 즉 ‘인간 삶의 만족도와 행복의 비밀은 바로 인간 사이의 친밀하고, 또 주변 사람들과 맺는 상냥하고 좋은 관계에 있다’는 진리를 또 다시 재발견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친밀한 관계는 가정에서 함께 사는 부부에서 시작된다. 미국 문학의 거장, 마크 트웨인은 “사랑은 가장 빠른 것처럼 보이지만 성장하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느리다. 결혼한 지 25년이 되기 전까지는 어떤 남녀도 완벽한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했다. 뜨겁게 불타오르는 정열적인 사랑은 대체로 18개월에서 3~4년 정도 간다. 따라서 그가 말한 25년은 인생이라는 가시밭에서 부딪히는 갖가지의 역경을 뚫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함께 일구어 낸 사랑의 성장, 그 ‘성숙도’에 기반한 개념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용의 해인 2024년은 결혼한지 30년째로, 트웨인이 언급한 25년을 훨씬 넘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느끼는 감회 또한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그 인상적인 그림을 기억하는가? 사랑이란 서로가 마주 보는 것을 넘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지향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부부가 건강하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정열적 욕구에서 시작된 사랑을 키워서 서로가 의지하며 이해해주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영원한 동반자적 사랑으로 승화시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       손원임손원임의 마주보기 사랑 기반 동반자적 사랑 신체 건강 정신 건강

2024-03-05

[문장으로 읽는 책] 사랑의 조건

우리가 타인과 맺는 애정 관계의 질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와 정비례한다. (…)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더 의식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는 자기도취적 행동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타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애정 어린 일이다. 최선의 자기 자신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제임스 홀리스 『사랑의 조건』   사랑을 잘하려면, 내가 나와의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자신과의 관계에서 성취하지 못한 것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려면 먼저 온전한 자기 자신(개인)이 되어야 한다. 융 학파 정신분석가인 저자는 현대인이 애정 관계에서 겪는 심리적 고통의 근본 원인을 ‘마법 같은 동반자’라는 환상에서 찾는다. 어딘가에 ‘내게 꼭 맞는, 잃어버린 반쪽’이 있으며 삶은 그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라고 보는 오래된 착각 말이다. 사실 상대는 잃어버린 내 반쪽이 아니라 완전한 타인이며, 대부분은 자신을 상대에 투사해 ‘사랑에 빠진 나’를 사랑하는 데 머문다.   저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용기”라며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완전한 타자로 존재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무심한 사랑’이라고 썼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이 사람도, 다른 어떤 사람도 내게 주지 못해. 내가 원하는 건 오직 나만 쟁취할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애정 관계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찬양할 수 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사랑 애정 관계 제임스 홀리스 자기도취적 행동

2024-02-28

[이 아침에]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한 할머니가 길을 가는데 뒤에서 어떤 남자가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같이 가, 처녀!” 자신을 처녀라고 부르는 말에 당황해서 뒤돌아보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내심 흐뭇했다. 처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이 가슴도 두근거렸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남편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자랑스레 말했다. “뒷모습만 보면 내가 아직 아가씨 같은가 봐. 길에서 처녀라고 부르며 따라오는 사람이 다 있더라고.”   남편은 할머니에게 내일은 보청기를 꼭 하고 나가라고 했다. 다음 날 할머니는 한껏 멋을 내고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제 그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보청기의 도움으로 정확하게 들리는 남자의 애처로운 목소리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갈치가, 천 원!” ‘갈치가 천 원’이라는 생선 노점상의 외침을 ‘같이 가 처녀!’라고 잘못 들었던 것이다.     나이 들면서 청력을 잃어가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슬픈 현실을 유머로 승화시킨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다. 초고령화 시대로 치닫고 있는 일본에서 이런 이야기만 모은 책이 나왔다. ‘센류’라는 17개 음으로 된 짧은 정형시 형식에 노인들의 체험에서 나온 위트와 풍자를 담은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시들이 실렸다.   ‘종이랑 펜 / 찾는 사이에 / 쓸 말 까먹네’ ‘개찰구 안 열려 / 확인하니 / 진찰권’ ‘세 시간이나 / 기다렸다 들은 병명 / 노환입니다’ ‘일어나긴 했는데 / 잘 때까지 딱히 / 할 일이 없다’ ‘(요전에 말이야) / 이렇게 운을 뗀 / 오십 년 전 이야기’ ‘만보기 숫자 / 절반 이상이 / 물건 찾기’ ‘미련은 없다 / 말해놓고 지진 나자 / 제일 먼저 줄행랑’ ‘이 나이쯤 되면 / 재채기 한 번에도 / 목숨을 건다’   일본의 ‘전국 유료 실버타운협회’ 주최로 2001년부터 매년 열리는 센류 공모전에 응모한 11만 편의 센류 중에서 엄선된 88편을 모아 만든 이 책이 100만 부 가까이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 책에 담긴 시를 자신들의 이야기로 여겼다는 뜻이다.   책에 수록된 시 중에서 하나가 제목이 되었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 책 제목이다. 심장이 뛰길래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었다는 허무한 결말에 나이 듦의 서러움마저 전해진다. 책에 담긴 익살맞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까닭은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내 주위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면 밥 한 끼 사 먹을 돈은 있는데, 계산서에 적힌 깨알 같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애를 먹는다. 시계가 없어진 줄 알고 한참을 고민하다 손목에 고스란히 매달린 것을 보고 안심하는 순간, ‘내가 왜 이러지’ 하는 또 다른 불안감에 휩싸인다. 무슨 말을 하려다 잊어버린 채 멍하니 서 있을 때면 나도 그 책에 시 한 편 응모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렇게 나이 드는 게 인생이라면 조금은 유쾌하게 사는 비결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실수가 점점 더 많아지더라도, 깜빡거리는 정도가 심해지고 그 횟수가 잦아질지라도 여전히 우리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존재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이라고 안타까워하기보다 부정맥일지라도 심장이 뛰고 있음에 감사하며 살자.   이창민 / 목사·LA연합감리교회이 아침에 부정맥 사랑 처녀 시절 정형시 형식 생선 노점상

2024-02-28

[살며 생각하며] 사랑의 개미들을 보내어 주소서

인생의 여정 중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힘센 세상 경제의 개입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성정이 여린 인성일수록 이런 인생 중에 만나게 되는 힘 넘치는 경제적 개입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누가 노숙인의 삶을 기대했겠느냐마는 이런 삶의 거센 개입에 여리고 착하여 대항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게 되는 뉴욕의 노숙인 형제, 자매들이 생각보다 많다.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고 잘 대처하며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런 삶의 횡포 아래 울고 있는 이들을 돌보고 먹이고 사랑하라고 하셨다.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비단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에게만 하신 말씀은 아니셨다.     14년 전부터 노숙인 섬김의 집, 사랑의 집은 노숙인을 돌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서 시작된 사역은 전혀 아니었다. 이런 면이 나를 뭉클하게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항상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챙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신 시작부터 천하고 천한 곳을 찾아 말구유에서 출생하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죄로 인해 결별된 고아들인 인간을 사랑하셔서 창조주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돌보지 않으시고 이 땅의 가장 천한 곳으로 오셨다.     14년 전 처음 플러싱 바우니 스트리트 지하에 위치한 노숙인 셸터를 방문하면서 강력하게 느끼게 된 그곳은 예수님이 오신 마구간이었다. 정확히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던 그 명령의 순종, 사랑이 폭발하는 현장이었다. 그곳에는 말로만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제자가 아닌 노숙인들과 함께 지하실에서 기거하며 수족을 들며 섬기며 같은 환경 속에 삶으로 실천하는 부부 전모세 원장과 그의 전성희 사모가 있었다. 그 마구간 안에서 환하게 빛나는 생명력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 맞다. 그래서 이들이 노숙인 셸터의 이름을 사랑의 집으로 지었나 보다.     한 그릇의 식사량을 가지고 10여 명과 함께 나누어 먹는 그런 사랑이 넘쳐나는 셸터였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사랑의 집에서 기거하다 운명한 형제의 유골을 가지고 한국으로 방문하여 안장한 뒤 귀국을 하신단다. 겨우겨우 비행기 여비를 마련하여 그 자금을 통틀어 사망한 노숙인이 조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그 한마디의 말을 어떻게 하든 지키려고 다녀오신단다. 이런 대책이 서지 않는 희생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어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주의 제자들이 하나둘 모여서 이사회라는 도움동아리를 만들었다. 기본적인 생활비조차 마련되지 않은 채 메추라기와 만나 같은 간헐적인 도움을 가지고 아끼고 아껴서 노숙인들과 함께 나누는 사랑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사회에선 아침이슬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 사람이 노숙인들을 돕기 위해 한 달에 자기의 한 끼 외식비를 절약해서 한 달에 25달러, 1년에 300달러를 돕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사랑의 집은 목사님들이 사역의 일환으로 섬기는 노숙인 셸터가 아니기에 일종의 외형적인 신뢰감이 충분한 그런 셸터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사회적인 조직인 교회, 기업, 독지가들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 이사들이 부족한 도움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식생활 걱정은 하지 않게 노력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도한다. 주님, 인생을 살아가다 잠시 역경 앞에서 주춤 무릎을 꿇은 이 노숙인들을 위해 사랑의 개미들을 많이 보내 달라고. 이 아침이슬 프로그램으로 사랑의 집 노숙인 셸터 도움을 줄 수 있는 아침이슬, 사랑의 개미 회원과 이사들이 많아지게 도와주시라고.     14년 된 노숙인 셸터 사랑의 집은 최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동포사회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집의 진짜 모습이다. 많은 뉴욕의 노숙인 셸터가 있지만 상 달라고 한 번도 부탁하지 않았지만 면밀히 조사하여 노숙인들을 향한 그 넘치는 진짜 사랑을 인정받은 사랑의 집. 달랑 한장의 상장이지만 조국의 대통령이 인정해주셨다는 그 인정 때문에 힘을 내고 다시 일어서는 전모세 원장.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정 앞에 울고 노숙인의 눈물 앞에 속절없이 가슴을 치며 무릎으로 눈물로 주님께 부르짖는 진짜 사랑꾼 전모세 원장을 처음부터 알게 된 나는 정말 그 사랑의 참 증인이다. 사랑의 집(718-216-9063), 아침이슬 후원 담당자 김혜선 이사(917-902-6585). 황규복 / 장로·사랑의 집 이사·뉴욕한인장로연합회장살며 생각하며 사랑 개미 진짜 사랑꾼 아침이슬 사랑 순종 사랑

2024-02-21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이 사람을 살린다

동네가 야단법썩이다. 지난 주에 어르신 한 분이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담임 목사님은 병원 진료 및 응급 담당이고 자질구레한 건강관리와 뒤치닥꺼리는 내 몫이다. 할머니는 십여년 전 폐암으로 남편을 먼저 보내고 노인촌에 강아지와 혼자 산다. 손이 매운 할아버지가 화랑 잔 일을 도와주신 인연으로 투병 일년 동안 총대를 매고 장례식을 치렀다. 영어 읽기는커녕, 말귀도 못 알아듣는 어르신들이 손짓 몸짓, 눈치로 만리타향에서 생활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할머니 병은 심해지기 시작했다.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으로 응급실에 갔었는데 원인불명으로 퇴원, 다음날부터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다. 목을 가누기조차 힘들어 무면허 간호사인 내가 아픈 곳을 만져보면 혈관이 펄떡펄떡 뛰었다. 파스를 붙여달라고 해서 어깨를 살펴보니 울퉁불퉁한 물집이 여러 곳에 돋아나 있다. 고혈압 콜레스테롤 당료 등 노인성 질병의 종합세트 보유자라서 급히 응급실로 직행했는데 대장포진(Shingles)으로 판명 났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몸 속에 잠복상태로 존재하다가 신체 면역력이 약해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발병한다. 신경절에 잠복해 있던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신경을 타고 다시 피부로 내려와 염증을 일으키는데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다. 출산에 버금가는 고통이라는 것이 경험자들의 진언이다.   항바이러스 치료제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투여로 급한 불은 끄고 며칠이 지나자 차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기존에 먹던 여러 가지 약에다 대상포진 약 등을 과다 복용해 위장 장애로 구토가 심해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전화와 전보(Telegram)보다 더 빠른 게 사람의 입! 문자로 소문이 돌자 앞다투어 건강식 영양 죽 쑤어 오고, 가지각색 채소 갈아오는가 하면 교인들이 번갈아 가며 요리를 보내 먹거리가 넘쳐난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태복음 6:3)는 티 안 나게 손과 발, 따뜻한 가슴으로 보살피고 사랑하라는 뜻이다.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은 교회나 종교 단체에 참석하면 외로움도 달래고 소통하며 사랑을 나눌 수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 원래 아프리카 속담인데 1996년 힐러리 클린턴이 ‘It takes a village’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우리는 ‘동네’라는 울타리의 공동체 일원으로 상호의존적 관계를 유지한다. 국적이 같고 고향이 비슷하면 한솥밥을 먹은 형제처럼 살갑게 여겨진다. 이웃 사촌이다. ‘이웃’이란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 아니라, 행동하는 인간이 사람이다. 우리는 나란히 발 맞추며 살아간다. 서로 기대고 돌보며 산다. 발 딛고 사는 곳이 이국만리 외로운 타향, 황량한 벌판이라도 곁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어 서러움을 삼킨다.   꽃들도 눈길을 주면 잘 자란다. 따스한 눈길 주는 것은 마른 영혼에 햇살을 비추는 일이다. 사랑은 타인을 향하는 관심이다. 마른 장작처럼 굽은 손잡는 것이 사랑이다.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뭐 하노” 하시며 명절이면 밤 세워 약식 강정 동그랑땡 삼색나물 곱게 포장해 손잡아 준 다정한 사람들에게 선물하시던 어머니! ‘병 앞에 장수 없다. 몸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라.’ 어머니 김해연 여사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잘 먹고 건강 챙기란 당부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 대상포진 바이러스 항바이러스 치료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2024-02-2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이 사랑답게, 심장의 소리에 갇혀

무엇이 우리를 사람답게 하는가. 건장한 육체와 아름다운 미모, 뛰어난 학식과 품성이 사람의 조건이라면 프리다 칼로의 사랑은 인간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지옥이다.     최초로 루브르 박물관에 입성한 중남미 여성작가 프라다 칼로(Frida Khalo, 1907-54)는 초현실주의와 상징주의, 멕시코 전통 문화를 결합한 원시적이고 화려한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칼로는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간단스키, 마르셀 뒤샹 등에게 인정받는 초현실주의 화가로 1970년대 페미니스트의 우상으로 칭송 받는다.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나무다리 프리다’라는 놀림을 받았지만 칼로는 의사를 꿈꾸던 열 여덟의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남자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고 가다 전차와 충돌해 버스 손잡이 철봉이 그녀의 몸을 관통해 복부를 뚫고 국부를 지나 허벅지에 구멍을 내는 대형사고를 당한다.   아홉 달 동안 기브스한 채 천장만 지켜보며 천장에 거울을 매달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다. 7번의 척추수술을 포함해 총 35번의 수술을 받으며 기적적으로 걷게 되지만 평생 하반신마비 장애를 안고 살게 된다. ‘꼬리를 내 주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처럼’ 걸을 때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일생동안 심각한 사고를 두 번 당했다. 하나는 18살 때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다. 두번째 사고는 디에고다. 두 사고를 비교하면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칼로의 말이다.   프라다 칼로는 멕시코가 낳은 미술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와 결혼했다. 디에고는 칼로의 연인이고 영원한 우상이다. 수 없는 여성들과 불륜을 저지르고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애정행각을 벌이지만 디에고에 대한 칼로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아기를 갖고 싶었지만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칼로는 네 번의 유산을 겪으며 미친듯이 그림에 몰두한다. 자신의 고통에서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였는지 모른다.   칼로의 작품세계는 ‘초현실주의’와 ‘멕시코’란 단어로 요약된다. 칼로는 많은 자화상을 그렸는데 143점의 회화 작품 중 55점이 자화상이다. ”나는 나 자신을 그린다. 왜냐하면 나는 너무도 자주 외롭고 또 무엇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주제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필생의 예술적 주제가 자기 자신이고, 스스로 뮤즈와 영감의 원천이 되는, 특별한 예술가와 모델의 삶을 살게 된다.   1944년 작 ‘부서진 기둥’은 자신의 고통을 바라보는 칼로의 슬픔과 고뇌를 처절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황량하게 갈라진 대지를 배경으로 칼로는 여신상처럼 서 있다. 몸의 한 가운데를 도려낸 몸뚱아리 속을 받쳐주는 것은 그리스 신전의 기둥이다. 기둥은 금이 가서 쪼개져 있고 여인은 쇠 때로 몸을 동여 매고 서 있는데 온 몸에는 못이 박혀 있다. 여인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은 화가도 관객도 멈출 수 없는 고뇌로 다가온다.     이 무렵 칼로는 건강이 악화돼 몸을 추스르기 위해 갖가지 재료로 만든 코르셋을 입어야 했다. “디에고, 당신의 두려움과 당신의 고뇌, 당신의 심장 소리에 내가 갇혔음을 느낍니다. 이 모든 광기를 요구한 것은 나였지만….“ 칼로의 고백이다.   사랑은 집착이다. 홀로 치르는 전쟁이다. 과녁을 향해 떠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떠나간 사랑은 피의 흔적으로 남아 창조의 불꽃을 태운다. 예술가는 고통과 고뇌, 생의 처절한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람이 사람답게, 사랑이 사랑답게, 지독한 평화의 끝, 지옥 같은 생을 승화시키는, 심장이 뛰는 소리가 생의 곳곳에서 바람결에 흔들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사랑 심장 심장 소리 거장 디에고 디에고 당신

2024-02-13

요리…음식에 사랑을 쓰다

프랑스의 2024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 근대 베트남의 어두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1993)와 ‘시클로’(1995)를 연출했던 베트남 출신의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흥의 최근작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사랑과 음식은 하나다. 음식에 대한 욕구, 배고픔은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하는 행위와 사랑을 하나로 ‘조리’하는 영화 ‘테이스트 오브 싱스’는 19세기 미식가 도댕(브누아 마지멜)과 그의 연인 유진(쥘리에트 비노슈)의 사랑 이야기다.     도댕이 주최하는 미식가 클럽의 만찬을 준비하는 주방 풍경을 스케치하는 38분 동안의 오프닝신. 음식을 만들고 맛보고 평가하는 이 초반부의 오랜 조리 시퀀스는, 음식을 만드는 행위도 예술일 수 있음을 입증(?) 해 보인다. 그들이 준비하고 있는 음식들을 바라보며 관객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한 가지, 나도 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면.   그러나 관객은 곧 영화가 후각 자극의 이면에 ‘관계’를 숨기고 있음을 감지한다. 화면을 오가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관찰하면서 이 영화가 음식들의 층 위에서 말하고자 함이 사랑이란 걸 알게 된다.     도댕과 유진은 20년을 함께 했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도댕이 유진에게 구혼을 하는 장면이 있고 유진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들만의 사랑의 밀어로 둘의 관계를 이어간다. 도댕은 가끔씩 기절하는 유진의 건강이 우려스럽다.     주방에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휴식을 취하는 밤, 그녀를 찾아오는 그의 방문. 유진은 그와 함께 주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그의 방문을 기다리는 지금의 설레는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한다. 도댕과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모든 행복이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두렵다. 언제나 일관되게 유지되는 건 두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이다.   영화는 사랑에 관한 프랑스적 감성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시적 표현들은 언제나 사랑을 노래한다. 그리고 도댕과 유진은 그 사랑을 요리로 표현한다.     도댕이 오직 유진만을 위해 요리하는 후반부의 한 장면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그 어떤 말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트란 안 흥 감독은 은유와 상징을 영화 언어로 사용하는 감독이다. 정물의 정직함을 믿는 그는 종종 설명 없이 이미지로만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의 후반부. 유진은 가고 없다. 그녀가 없는 주방 공간에 도댕과 유진이 나누었던 달콤한 대화들이 메아리쳐 온다. 진정한 요리의 미학은 음식의 맛에 있지 않다.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이 음식을 함께 나누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음식 사랑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영화 언어 지난해 칸영화제

2024-02-09

[이 아침에] 장미꽃을 받는 날의 단상

2월은 다른 달에 비해 2,3일이 부족한 달이기에 애잔하고 허전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2월은 사랑의 달이다. 2월14일이 아름다운 사랑이 꽃피는 ‘발렌타인스 데이’ 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만큼 값지고 보람 있는 것은 없으리라. 사랑한다는 일은 절대의 신앙이요,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사랑을 전하는 발렌타인스 데이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담아 두었던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기분 좋은 말이며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다.   사랑이 없는 인간관계란 공기 없는 동굴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더 사랑을 찾고, 사랑에 기대고, 사랑에 몰입하는 모습을 천만 가지로 그려내며 산다.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고통받는다 하더라도 사랑은 인생에 불을 지펴주는 황홀한 연소이며 갱신의 불이다. 불 꺼진 삭막한 인생길 보다는 불타는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이 낫다.     남편 생전에 꽃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남편에게 꽃을 받는 기분이 어떨까 궁금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기분이 어땠냐?”고 물었다. 말로는 안 하던 짓 갑자기 왜 하냐고, 꽃 살돈 있으면 현찰로 주든가, 저녁이나 살 것이지라고 핀잔을 줬지만 속으로는 로맨틱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고 한다.     야구에서 투수가 아무리 스트라이크를 던져도 포수가 잘 받아주지 못하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지 못한다.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 세대는 발렌타인스 데이가 무엇을 하는 날인지 모르고 살았다. 우리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남편들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들 나름대로 아내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은은한 언어가 있다. 반면 미국인 남편들은 아내에게 끊임없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말이 뜸해지면 애정이 식은 것으로 간주한다.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아내 낸시 여사에게 보낸 발렌타인스 데이 카드를 보면 구구절절 애정이 넘쳐난다. “당신은 나의 행복 그 자체요. 내가 당신을 스윗 하트라고 부르는 이유는 당신처럼 달콤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오.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발렌타인스 데이요. 내가 왜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오? 당신은 항상 당신답기 때문이오.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배우자를 선택하라면 주저 없이 당신을 또 택할 것이오. 당신과의 삶은 정말 후회가 없었소.”     발렌타인스 데이 장미꽃에는 이 정도의 사랑 고백이 담긴 카드도 함께 보내야 한다. 덜렁 꽃만 보낸다면 쓸데없는 짓 한다는 핀잔을 듣기 십상일 것이다. 선물에는 마음이 담겨야 하는데 마음 표시는 없고 비싼 꽃만 전달되면 효과가 떨어진다.   사랑은 아름다운 삶의 주제이며 원천이다. 설사 죽음 같은 아픔이 올지라도 영원히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을 마시며 살 수밖에 없다. 사랑의 샘물은 나를 키우고, 내 영혼을 빛내고, 내 인생을 영롱한 꽃 빛으로 물들이는 생명수다. 우리는 누구나 신비로운 그 샘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생을 사랑하는 길인 것이다.   사랑의 날을 맞아, 사랑을 돌아본다. 짧은 인생에서 나는 지금 어떤 사랑을 가꾸며 표현하고 있는가.   김영중 / 수필가이 아침에 장미꽃 단상 사랑 고백 사랑 때문 발렌타인스 데이

2024-02-08

[독자 마당] 95세의 삶

우리 부부는 고령에도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게 해 주신 은혜에 감사했다. 또 아들에 이어 손자도 치과의사가 되었고, 증손자를 만나는 기쁨을 주신 것에도 감사했다. 몸의 움직임이 자유스럽지 못한 아내가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준 것도 감사할 일이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했던가. 이런 감사 고백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가 응급실을 거쳐 양로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회복이 어려워 존엄사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까지 악화됐다. 나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큰 충격과 슬픔을 겪었다.     돌이켜 보면 아내와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다. 특히 아내와 함께했던 이민생활 40여 년은 만만치 않은 시간이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리커스토어, 마켓도 운영했고, 친구의 원단공장에서 야간 근무도 했었다.     우리 부부는 고생스러웠지만 잘 성장해 가는 아이들이 큰 보람이었다. 건강하게 자란 아이들은 이제 사업가, 전문직 종사자로 자리를 잡았다. 우리 부부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었다. 전국의 유명 대학에 진학한 자손들의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도 우리 부부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은퇴 후에는 미국의 유명 관광지를 두루 여행했고, 한국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90세 생일에는 자녀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감사예배에 많은 지인을 초대해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 했던가. 아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먼저 떠나야지” 했던 소망이 허사가 되었다. 인생사가 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먼저 간 아내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세상에서 못다 한 정과 사랑, 하늘나라에서 만나 마음껏 나눕시다. 사랑합니다.”      이승원·요바린다독자 마당 감사 고백 사랑 하늘나라 우리 부부

2024-02-06

”어머니들의 작은 사랑이 보여준 기적”

    글로벌어린이재단(회장 이미미, 이하 GCF) 워싱턴DC지부는 3일 메릴랜드 실버스프링 소재 레져월드 클럽하우스에서 '감사 후원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GCF는 세계 각처의 열악한 환경에서 가난과 배고픔에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어머니의 마음으로 도움의 손을 내밀어 용기와 희망을 주려는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미미 회장은 “바쁜 지난 한해 각작의 자리에서 기금 모금 및 봉사에 헌신해 주신 회원들과 임원, 후원자분들게 감사를 드린다”며 “지난해 워싱턴DC지부는 골프대회 및 바자회, 감사 후원의 밤에서 모인 수익금으로 밀알 선교회, 가정상담소, 사람난민센터 등에 도움을 주었다”고 전했다. 이 회장에 따르면 재단은 지난해 모은 성금으로 탄자니아, 케냐에 2만5천달러를 전달했다. 그는 “지난해 모금액이 증가하면서 내년에는 세곳을 후원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모든것이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헌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워싱턴 지부는 올해도 한마음으로, 지구촌에 굶주리는 어린이가 없는 날까지 최선을 다 해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2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마크장 메릴랜드 주하원 의원을 비롯해 이지호 참사관, 리다 나루즈 살람센터 목사 등이 축사를 전했으며 앤젤린 조 GCF 총회장의 인사말을 김제인 동부지역회장이 대독했다.     GCF 공동 창립자 손목자 이사는 이날 격려사를 통해 “26년전 한국은 IMF로 인한 경제위기를 겪으며 중산층이 무너지고 속수무책으로 보호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 12만명이 생겨났다”면서 “안타까운 고국의 소식을 듣고 미국에 있는 어머니들이 ‘우리라도 합심해 아이들을 먹이자’는 일념으로 ‘나라사랑 어머니회’를 결성한 것이 오늘날의 GCF에 이르렀다”며 재단을 소개했다.   이날 문화공연 순서에는 신윤수 테너가 '오 솔레미오' 등의 축가 무대를 꾸몄다. 이어진 시상 순서에서 재단은 마이크 김, 김형묵 씨에게 감사패를, 손영환, 김융남 씨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이날 행사 사회는 이성숙, 엘리슨 정씨가 진행했으며, 새미한 장로교회 이일복 담임 목사가 단체를 통해 키워지는 어린이들이 미래 소망이 되어 새로운 물결이 흐를 수 있도록 인도해달라는 내용으로 기도했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어머니 사랑 나라사랑 어머니회 김제인 동부지역회장 지난해 워싱턴dc지부

2024-02-0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의 꿈은 새벽에 영글어 가고

금방 하루해가 저물었다. 뉘엿뉘엿 흐린 하늘에도 분홍의 노을이 진다. 붉거나 보라의 것에서 풍기는 강렬함 보다는 꿈같은 아련함이 온 몸에 소복히 내려앉는다. 새들도 제 집으로 날아가 버리고 토끼도 제 보금자리를 찾는 하루가 저물고 있다. 등을 기대야 하는 어둠이 오고 잠깐만에 세상은 고요 안에 스스로 잠겼다. 숨죽이고 견디다 보면 저 깊숙이 살아나는 것들이 보이고 지나쳤던 꿈들이 노래가 되어 가까이 들려온다. 나무의 꿈은 영글어 가는데….   숲속에 걸터앉은 나무가 보인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나무는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가지마다 제 몸무게만큼이나 눈송이를 안고 있어도 도무지 흔들리는 일이 없다. 살아 있으나 죽은 듯 전혀 미동이 없다. 찬 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쳐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지 않는 한 넌 언제고 정지된 나무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숲으로 돌아가 누웠다. 별빛 아래 가늠할 수 없는 꿈속에 잠들어 있다. 나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고 깊이 잠들었나 보다.   나무를 보려고 새벽 커튼을 젖혔다. 어둠 저편 언덕 너머에 동이 트고 있었다. 팔을 뻗어 잔 가지의 눈을 털어주려다 되돌아왔다. 나무 둥지에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고 별빛이 스치고 간 한 밤의 짧은 미련도 사라진 시간. 누군가 내 등을 만지는 손길에 뒤돌아 보았다. 그것은 창살을 통해 들어온 나무의 긴 그림자였다. 한 발자국도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한 마디 말도 걸어볼 수 없는 너의 그림자.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왼쪽 팔을 길게 뻗어 팔베개를 했다. 나무를 향해 누웠다. 나무는 잠들기 시작했다. 먼동이 트는 이 새벽에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나무가 되어 너의 창가에 서 있다. 깊은 밤 눈길을 걸어 그대에게로 가서 잠든 너의 눈시울을 잠깐 바라보다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를 둥글고 따뜻한 물방울, 네 등 뒤에서 맡을 수 있는 너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 긴 그림자이고, 겨울 가지를 닮은 봄으로 뻗은 뿌리처럼 깊은 나의 하루가 되었다. (시인, 화가)         눈 덮인 뒤란에 나무 한 그루 서있다 모두 잠들은 이른 아침 하루가 깨어 나는 숲에서 건져 올린 사랑이라는 단어   사랑이 사랑이 되지 못하는   너를 잃고 나마저 잃은 세상에 새벽으로 오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깨부터 기대오는 내 안 가득 당신입니다     총총걸음으로   구름길로 걸어야 하는 곳 한 평 남짓 발 뻗은 자리에도 가는 햇살로 녹이시고 흐르는 새벽으로 챙기시는 그대의 긴 손, 향기     장독대 장들이   느리게 익어가는 별빛 아래 희끗희끗 하얀 새치처럼   눈발이 날리고 나이 먹는 어리둥절 속에 사랑을 느리게 깨달아 갈 때 아픔이 무르익기 전 그대는 잠들어야 해요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손     나무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손을 꼭 닮은   그대의 손은 약손입니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 새벽 나무 둥지 새벽 커튼 단어 사랑

2024-02-05

[열린광장] 카톡은 사랑을 싣고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추억 속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해 인기가 있다. SNS 시대에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지다 보니 이 프로그램의 인기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얼마 전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5년 전의 초등학교 친구를 찾는 스토리가 이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것을 봤다. 큰 체구의 인 박사와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그의 친구는 45년 만에 만났어도 보자마자 서로 반말을 했다. 그들은 초등학교 친구이기에.   우리는 참 좋은 시대에 사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SNS 덕에 지구촌 어느 곳에서든지 소통할 수 있는 글로벌 시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1979년 미국에 이민을 왔고 올해는 고교 졸업 50주년이 된다. 약 40년간 목회자 생활을 하였기에 내가 교제한 사람 대부분이 목회자들이다. 목회자로서 기독교 서클이라는 좁은 세계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학원장을 하다 정년퇴직한 친구가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가 목회를 했던 교회를 찾아냈고 현재는 한의원 원장을 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 모임인 반창회 회장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알렸다.     어느 날 반창회장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왔다. 50년 만의 소통이라 그가 누구인지도 가물가물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몇몇 동문의 이름을 카톡방에 올리면서 그 친구들이 생각나는지 물었다. 그리고 곧 나는 반창회 카톡방으로 초대를 받았다.     거의 50년의 세월이 지났기에 나는 동문의 얼굴과 이름도 거의 잊었는데 그들의 글과 사진을 보면서 까까머리 동문이 생각이 났다. 카톡방을 통해 동문들과 소통이 이어졌고 지난 12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반창회장과 베이커스필드에 사는 동문을 함께 만나기도 했다. 50년 만에 LA에서의 만남이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에 존댓말을 해야 하는가 반말을 해야 하는가 고민 아닌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반말을 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친구이기에. 비록 50년 만에 만남이었지만 얼마 전에 만난 친구처럼 낯설지 않고 반가웠다.     카톡방의 친구들은 이제 머리가 은색이 되고 주름이 생겨서 누구인지 몰랐지만 찾아온 친구들이 누구라고 알려주며 과거로 돌아갔다. 반창회장은 셋이서 함께 찍은 사진을 바로 반창회 카톡방에 올리며 “친구들 안녕, 사진 속 친구들 누구인지 아시나요?” 글도 첨부했다.     바로 카톡방에 내 이름과 친구들의 이름이 올라왔다. 50년 만에 내 얼굴을 보았어도 나를 기억하는 동문이 있었다.     한 동문은 “50년 만의 서울의 아침 기쁜 소식”이라며 글을 올렸다. 한 동문은 내 고등학교 사진을 카톡방에 올리기도 했다. 전화한 동문도 있었다. 나도 카톡방에 오늘 세 친구가 만난 소식을 간단히 올리고 “시간과 장소가 우리 동문 편이 되기를 빕니다”라는 감사의 글을 남겼다.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카톡은 사랑을 싣고 왔다. 김성지 / 목사·한의사열린광장 카톡 사랑 고등학교 친구 초등학교 친구 친구들 안녕

2024-01-19

[음악으로 읽는 세상] 오! 사랑하는 아버지

푸치니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에 나오는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제목만 보면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노래처럼 보인다. 제목뿐만 아니라 멜로디도 그렇다. 그 서정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아버지를 존경과 사랑이 담뿍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 딸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이런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진 딸이 아버지에게 결혼이 성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하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데, 그 내용이 거의 협박 수준이다. 그녀는 만약 자기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강물에 몸을 던지겠다며 아버지를 위협한다. 그리고는 “저는 죽고 싶어요”라는 말로 다시 한 번 아버지의 놀란 가슴에 쐐기를 박는다.   자기 말에 안절부절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딸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오! 신이여. 저는 죽고 싶어요”라고 노래할 때는 은근슬쩍 그것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에 애원조로 “아빠, 불쌍히 여겨 주세요(Babbo, pieta, pieta)”라고 노래하지만, 사실 베키오 다리에 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이미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아버지의 맹목적인 사랑을 담보로 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오! 사랑하는 아버지’에서 “불쌍히 여겨 주세요(pieta)”는 다분히 응석이 섞여 있는 애원이다. 죽겠다는 협박으로 이미 충격에 빠진 아버지에게 살짝 간청의 형식을 갖추기 위한 장치라고나 할까. 단어에 실린 멜로디는 정말로 간절하지만, 오히려 그 간절함에서 과장 연기의 의도가 엿보인다. 그렇게 이 노래는 짐짓 불쌍함을 가장하고 있다. 멜로디는 더 없이 간절하고 서정적이지만, 그 내용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산적이다. 이런 정서와 내용의 충돌이 웃음을 자아낸다. 정서와 내용은 그 충돌이 크면 클수록 더 큰 웃음을 유발하는 법이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아버지 사랑 자기 사랑 pieta pieta 과장 연기

2024-01-15

목마른 땅…한인들 사랑을 전하다

세계 최빈곤국 10위안에 들고 아프리카 사막 찜통 기후에 식량은커녕 마실 물도 변변치 못한 가난한 나라. 거기에 내전까지 겪어 정치와 치안마저 불안한 나라. 프랑스 식민통치에서 독립했지만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이라 불리는 차드공화국은 남한의 13배 면적에 1000만 명이 조금 넘는 인구, 200개가 넘는 부족들이 살고 있는 나라다.   '아름다운 동행'을 비전으로하고 있는 소망 소사이어티(이사장 유분자)는 지난 11월 '차드 비전트립' 7차 원정대(위원장 이상천)를 파견했다. 7차 비전트림팀은 2010년부터 시작한 차드지원 사업인 '우물 프로젝트', 미래를 위한 '학교 건립'과 '장학사업' 활동을 점검하고 지원하며 기아 퇴치를 위한 '쌀 보내기'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를 다녀왔다.     소망의 차드 후원 사업은 지금까지 557개의 우물을 팠으며 유치원으로 시작한 학교건립 사업도 이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 9개교를 지었다. 또 신학대 학생에게는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소망 소사이어티는 이런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차드 지부(지부장 박근선 선교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무려 23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수도 은자메나 국제공항은 60년대 한국의 여느 지방의 시외버스 터미널 수준이었다. 시설은 열악했고 분위기는 살벌했다.     도착한 다음날부터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은자메나 외곽에 있는 소망우물 3곳. 첫 방문부터 이 나라의 생활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곳인가를 한눈에 알게 해 준다. 이 후에 찾아간 마을들도 실정은 대부분이 비슷했다.     집들은 흙벽돌을 얼기설기 쌓고 거적이나 다 헤진 천으로 현관문을 삼았고 내부는 맨 흙바닥, 지붕은 풀을 엮어 얹어 놓았다. 동네 한복판에는 개와 닭과 오리와 염소, 양들이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지낸다. 짐승들의 배설물 또한 길바닥에 질퍽댄다. 동네 길은 지난 홍수로 울퉁불퉁 파여 도로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차드는 모든 것이 다 부족하다. 식수도 부족하고 학교도, 식량도 부족하다. 병원은 말할 것도 없다. 유니세프 통계에 따르면 신생아의 20% 정도가 5살 이전에 사망한다고 한다. 이런 실정은 어른이라고 별다를 게 없다. 깨끗한 물을 못 먹으니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고 아프리카 특유의 말라리아에 목숨을 잃기 다반사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평균 수명도 47세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나마 소망에서 우물을 파 준 곳에서는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게 다행이다. 우물 하나면 1000~2000여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557개지만 앞으로 더 많은 곳을 파야한다. 워낙 넓은 땅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접근이 용이하고 설치 후 지역개발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곳을 중심으로 시행하다 보니 미처 손길이 못 미치는 곳이 허다하다. 지금도 맑은 물을 기다리는 지역이 너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우물파기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동안 후원한 '소망 우물'과 '소망 학교'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400여 km의 비포장 도로를 장장 9시간을 달려 남부 탕지레 지역과 드라이음바사 등 시골 마을 몇 곳을 찾아갔다.     학교들은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었다. 특히 2015년 혜촌교회의 후원을 받아 교실 2칸으로 시작한 '은혜학교(베레 4호학교)'는 지금은 600여명의 재학생이 다닐 정도로 크게 성장한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동네 나무그늘 아래서 15명으로 시작한 '5호 학교'도 지금은 초등학교 전 학년 300여 명이 공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렇게 성장한 학교들도 있지만 몇몇 시골학교는 책 걸상은 물론 교과서나 공책, 연필 등 기본적인 학용품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곳도 많았다. 우물이든 학교든 지역의 족장이나 유지들의 관심도에 따라 잘 유지되고 발전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몇몇 지역은 무관심과 게으름 탓에 관리가 부실한 곳도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게 했다.   방문단은 남부 4개 지역의 37개 현지 교회가 추천한 극빈가정에 25kg 쌀포대 800포를 전달했다. 이곳 대부분의 지역이 홍수와 가뭄으로 올 농사를 망친 곳이라 한다. 덩실덩실 춤을 추며 쌀을 받아가는 주민들을 보며 한 포대의 쌀이 얼마나 지탱할 수 있는 양인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민들과 어린이들의 표정은 환하고 밝았다. 어디에서 만나든 웃으며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비록 다 떨어진 슬리퍼를 신었거나 맨발이지만 여성들이 입고 있는 옷만은 눈부실 정도로 밝은 색상에 깨끗했다. 미국에서 찾아간 동양인인 낯선 우리에게 거부감이나 경계심을 갖기보다 오랜 이웃 같은 친근감과 정겨움을 느끼게 해 준다.   LA를 비롯한 미국 각지에서 한인 후원자들이 보내 준 쌀과 선글라스, 의류, 신발을 비롯한 선물 등을 전달했지만 갈 길이 멀다는 것을 깊이 실감하며 아직도 아프리카에는 맑은 물, 굶주림과 질병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배움을 갈망하는 어린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   소망 소사이어티는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 목적 시신기증 등 교육 계도 활동   함께 누리고 함께 나누는 아름다운 삶을 살고,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유분자 이사장이 2007년에 창립한 비영리 단체다.   'Well-Being' 'Well-Aging' 'Well-Dying'을 모토로 건강한 삶을 위한 소망케어교실, 치매 예방 교육, 치매환자 가족 지원모임과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하는 소망 유언서 작성, 시신 기증, 사별가족 모임 등의 교육과 계도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차드에 소망과 생명을'이란 목표로 소망우물 파기, 소망학교 건립, 쌀 보내기, 장학사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 후원하는 평생회원이 현재 400여 명, 일반 회원이 500여 명이 있으며 이외에 각종 활동과 행사 때마다 지원하는 특별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2023년 말 현재 시신 기증을 약속한 사람은 2300명이 넘으며 유언서 작성은 1만7000명을 넘기고 있다.     계간 소식지 '소망 & 나눔'과 2년마다 한 번씩 '시니어 생활 건강 가이드' 책자를 발간, 교회와 각종 단체를 통해 배포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매달 '소망 소식'을 카톡을 통해 회원들과 미주 한인 2500여명에게 전달하고 있다.     소망 소사이어티의 활동은 한국 정부의 인정을 받아 2023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문의:(562)977-4580 글·사진=나종성 전 언론인전하 사랑 소망우물 3곳 학교건립 사업 소망 소사이어티

2024-01-01

[등불 아래서] 설레는 사랑 오늘부터

새해 첫날에는 떡국을 먹는다. 긴 가래떡을 엽전 모양으로 자른 떡 위에 색색으로 얌전히 고명을 얹는다. 오방색을 띤 고명은 식욕을 돋우려고 음식 위에 얹는 것인데 이를 달리는 교태(交胎)라고도 불렀다. 처음 벗하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 음식은 누구도 손대지 않은 새것이라는 말이고, 이제 벗을 만나듯 사귀라는 뜻이니 가히 대단한 운치가 아닐 수 없다.     고명이 음식을 새롭게 만난다면 새로운 해를 만나는 것은 설이다. 예전에 설이라면 음력 새해 첫날이었지만 이제는 양력설도 챙긴다. 설은 시작하는 날을 말하지만, 어떤 학자는 ‘낯설다’의 어근인 설에서 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설은 시작하는 새로운 날이고 낯선 시간에 발을 디디는 날이다.     낯선 벗을 만나 사귀기 시작하는 날. 새롭고 낯설기에 두렵고 불안하다. 새로운 것만 낯선 것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이 새겨놓은 무거운 짐들도 익숙해지지 않는 낯섦으로 우리를 두렵게 한다. 아픔이란 아무리 만나도, 만날 때마다 낯설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낯선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설렘이기도 하다. 우선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이 주는 설렘이 있다. 또는 우리를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뜨게 하는 설렘도 있다. 그래도 우리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그토록 어둡고 무거운 시간, 아무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곁에서 걸어주던 사랑. 갑자기 등불을 켜고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 했던 사랑. ‘울어라. 마음껏울어라’ 하며 눈물을 받아주고 다음 날 햇살을 비춰주던 고요했던 그 사랑. 내가 그 선한 품에 안겨있는 것도 모르고 잘난 줄 알다 넘어질 때, 두려워 말라 너는 내 품에 있다고 놀라게 하셨던 그 사랑. 그 낯선 사랑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새해 첫날은 낯선 사랑을 기대하는 날이다. 낯선 사랑과 사귀기 시작하는 날이다. 익숙해지지 않는 그래서 우리를 항상 놀라게 하시는 선하신 주님으로 설레는 날이다.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어두운 짐조차도 친구로 만드시는 그 사랑을 만난다. 익숙해지지 않는 놀라움으로 항상 설레게 하는 사랑을 만난다.   그래서 오늘이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설렘도 없고 색깔도 없는 고명이 아니라, 국 속에 섞여서도 맛을 내고 향을 뿜어내며 아름답게 모양을 내어 여전히 낯설게 우리를 놀라게 하는 주님의 날이기를 바란다. 어둡고 무거운 짐조차도 누르지 못하는 주님으로 놀라고 설레는, 올 한해 내내 우리를 붙잡고 가실 사랑, 그 사랑과 사귀는 시작이 오늘이다.   sunghan08@gmail.com 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등불 아래서 사랑 사랑 오늘 음력 새해 엽전 모양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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