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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선생님은 편의점 직원? 일본은 지금 ‘접객 교사’ 논란

# “숙제가 적어요. 더 내주세요.”  학부모 간담회장. 한 학부모가 담임선생님을 찾아와 말했다.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조금 뒤 다른 학부모가 찾아왔다. “시험 준비로 바쁘니까, 숙제를 줄여주세요.” 선생님은 이렇게 답했다. “쓸데없는 숙제는 없애는 방향으로, 꼭 필요한 내용을 숙제로 내겠습니다.” 학부모의 정반대 요구. 교단에서는 교사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 “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안 일어나요. 선생님이 매일 전화해주세요.” “우리 애가 싫어하는 건 급식으로 주지 마세요.” “우리 애는 큰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우니 화내지 말아 주세요.” 학부모의 요구는 끝이 없다. “혼나는 걸 싫어하니 되도록 작은 목소리로 혼내라”는 말은 양반이다. “선생님이 화를 내니까 우리 애가 학교에 가길 싫어해요. 전화를 바꿔줄 테니 사과해 달라”는 일도 종종 있다.   요즘 한국서 벌어지는 일 같지만 일본 얘기다. 판박이 같은 이 사례를 지난 2020년 낱낱이 『교사라는 접객업』이란 책으로 엮은 사이토 히로시(?藤浩)는 현직 선생님. 그는 교권이 떨어지다 못해 교사라는 직업이 ‘접객업’이 됐다고 말한다. 흔한 사례 중 하나인 ‘숙제’ 요청만 봐도 그렇다. 원래대로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교육 내용은 보호자 요청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기 때문에 숙제로 내는 겁니다. 담임인 제 판단으로 결정하는 겁니다”라고 해야 한다. 하지만 요구가 많은 부모를 접하는 교사는 이 답을 입에 올리지 못한다. 왜일까.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업의 본질이지만, 어느샌가 학생과 학부모라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접객이 본업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교사의 일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고객 만족을 위한 것이 되면서 교사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형제 다툼을 말려 달라”는 전화부터 매일 같은 시간 전화하는 학부모까지 등장했다. 교사는 고객을 위해 24시간 밤낮없이 응대하는 ‘편의점과 같다’(아사히신문)는 지적마저 나왔다.   지난 20여년 간 접객 교사 시대를 맞았던 일본의 오늘은 어떤가.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이유로 휴직을 선택한 공립학교 교직원 수(5897명)는 사상 최대에 달했다. 전체 교직원의 0.64%에 달하는 수치다. 교사가 되고 싶다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다. 2000년만 해도 일본 초등학교 교사 시험 경쟁률은 12.5대 1이었지만 2019년엔 2.8대 1로 5분의 1토막이 났다. 접객 교사 시대를 끊어내야만 우리에게도, 우리의 자녀에게도 미래가 있다. 김현예 / 도쿄 특파원J네트워크 일본 편의점 접객 교사 초등학교 교사 편의점 직원

2023-07-27

[J네트워크] 중국 친강 외교부장, 사라진 한 달

친강(秦剛) 외교부장을 현장에서 처음 본 건 지난 3월 8일이었다. 매년 3월 열리는 중국 양회 기간, 외교 수장은 1년에 1번 외신기자들과 공개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날은 친 부장이 외교부장 취임 이후 외신과 만나는 첫 자리였다.   주미대사 시절 공격적인 언변으로 전랑외교의 대표주자로 불렸던 그의 회견은 다소 예상과 달랐다. 테이블에 약간 몸을 숙인 채 말하는 자세, 말하는 동안 광대뼈·미간·눈썹이 움직이지 않는 표정, 강경한 표현보다 원칙과 기준을 앞세우는 화법. 1시간 40여 분간 보여준 모습은 그가 외풍에 흔들리지 않을 돌덩이 같다는 느낌을 줬다. 왕이 전 외교부장의 확신에 찬 표정, 감정이 드러나는 손짓과 몸짓을 봐왔던 나로선 꽤 의외였다.   친강 외교부장이 정확히 한 달째 공식 석상에서 사라졌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5일 부이 탄 베트남 외교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는 모습이 마지막 소식으로 올라와 있다. 직전 유엔 대사를 지낸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차관)이 브릭스(BRICs) 외교부 장관 온라인 회의에 참석하는 등 그의 공석을 대신하고 있다.   매일 열리는 외교부 기자회견에 친 부장의 거취를 묻는 질문이 등장하지만 대변인들은 “상황을 알지 못한다” “제공할 정보가 없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나 학계에 문의해봐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가장 최근 소식은 지난 21일 셰펑(謝鋒) 주미 중국대사가 아스펜(Aspen) 안보포럼에 나와 친 부장의 잠적에 관한 질문에 “기다려보자”(Well, let’s wait and see)라고 말한 것이다. 진행자가 재차 물었지만 셰펑 대사는 전혀 다른 대답으로 말을 돌렸다.   중국 내부 사정에 밝은 전문가들은 친 부장의 불륜설에 무게를 싣고 있다. 구체적으로 홍콩 봉황망 TV 앵커가 불륜 상대로 지목되는가 하면 과거 중국 당 간부들이 불륜으로 자식을 낳았을 경우 ‘중혼죄’로 처벌받았다는 기사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당초 건강 문제라고 했던 외교부가 “알지 못한다”고 답변 수위를 낮춘 점, 외교 수장에 대한 루머가 난무하고 있음에도 당국의 공식 대응이 없다는 점 등이 그의 신변 이상설에 힘을 싣는다.   중국 중앙기율위 조사 대상으로 등장할지, 건강이 회복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 사태가 중국 당 조직이 얼마나 비밀스럽게 일을 처리하는지 또 한 번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분명하다. 시진핑 주석이 3연임한 20차 당 대회 이후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고 있다. 박성훈 / 베이징특파원J네트워크 중국 외교부장 외교부장 취임 외교부 부부장 외교부 기자회견

2023-07-24

[J네트워크] 유엔에 등장한 AI

유빙으로 뒤덮인 북태평양 베링해의 깊은 바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 러시아 잠수함이 어둠을 가르며 등장한다. 시작부터 손에 땀이 난다. 요즘 전 세계 흥행 중인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의 첫 장면이다.   입이 근질근질하지만 ‘스포(spoiler)’ 만행은 접어두겠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의 빌런(villain)에 대해서는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우선 그 무시무시한 악당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편에 등장하는 세계 지배를 꿈꾸는 테러리스트, 혹은 핵을 터뜨려 새 세상을 열겠다는 사악한 ‘천재’가 아닌 인공지능이라니…. 전지전능하고 민첩할 것 같은 ‘엔티티(The Entity)’라는 이름의 AI를 어떻게 이겨낸단 말인가.   AI가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을 뿐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의 HAL 9000이라는 살인마 슈퍼컴퓨터, ‘블레이드 러너’(1982)의 합성인간 로이, ‘터미네이터2’(1991)의 무한변신 T-1000, 그리고 ‘매트릭스’(1999)에서 가상현실을 관장하는 에이전트 스미스 등등.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섬뜩한 느낌과 함께 머리가 복잡해진다. 미래의 절망적인 풍경 때문이다.   최근 챗GPT를 필두로 한 AI의 급격한 발전과 진화 소식도 그렇다. 인류를 풍요롭게 한다는 긍정적 기대와 영화에서 접했던 종말론적 세상이 동시에 떠올라 소름이 돋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벌써 AI의 인간 일자리 대체, 사생활 침해, 대량 살상무기 개발, 무차별 해킹, 사이버 공격, 선거 조작, 가짜정보 생산 등을 경고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이런 위협에 대한 대비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 18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AI의 위험을 주요 안건으로 올렸다. 안보리 역사상 AI 관련 첫 공식 논의였다.     15개 이사국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AI 전문가들의 상황 진단을 듣고 AI가 세계평화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토론했다. 비록 특정 합의가 도출되진 않았지만 의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는 이뤄진 듯하다.   AI 개발을 주관하고 감독할 법적 근거, 또는 국제적 합의는 현재 없는 상황이다. 초지능적으로 확장하는 관련 기술을 통제하는 틀도 전무하다. 향후 극도로 위험한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AI 기술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윤리적 기준과 각국 정부의 규제가 요구된다. 국제적 협력 강화 시스템도 절실하다. 안착히 / 글로벌협력팀장J네트워크 유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안보리 역사상 살상무기 개발

2023-07-23

[J네트워크] 폭염·폭우가 뉴노멀…진영논리 설 자리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동부에서 네바다주에 걸쳐 있는 사막 지역 ‘데스 밸리’. 북미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이곳을 여름에 차를 몰고 갈 때 제한속도를 안 지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한낮 기온 섭씨 50도를 넘는 폭염 탓에 도로가 불판처럼 달궈져 타이어가 펑크 날 수 있어서다.   데스 밸리에서 폭염이 ‘낭패’ 수준을 넘어 인명 사고를 부르는 일이 근래 잦다. 지난해 6월 이곳에서 한 60대 남성이 차 기름이 바닥나자 도움을 청하려고 도로를 걷다 폭염을 견디지 못해 쓰러져 숨졌다.     지난 3일에는 또 다른 60대 남성이 에어컨이 고장 난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수은주가 연일 역대급으로 치솟는 요즘 미국 일기예보 지도를 보면 서부·남부는 기록적인 폭염을 나타내는 보라색·적색으로 벌겋게 물들어 섬뜩한 느낌을 줄 정도다.   북미 대륙 한쪽이 펄펄 끓는 반면 미 북동부는 전례 없는 폭우로 신음하고 있다. 지난 15일 펜실베이니아주 벅스카운티 어퍼메이크필드에서는 집중호우로 순식간에 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차 11대가 침수됐고, 나중에 시신 5구가 발견됐다. 버몬트주에서는 2개월치 내릴 비인 200㎜가 지난 10일 하루 만에 쏟아졌다.   살인적인 무더위와 폭우가 동시에 오고 가뭄·홍수·산불이 일상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인 날씨가 뉴노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공개된 AP통신 여론조사 결과가 눈길을 끈다.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의 조 바이든 정부 지지도가 크게 갈리고 낙태·총기정책을 놓고도 진보와 보수 진영이 양극화했는데, 유독 기후변화 정책을 놓고는 찬성률이 민주당(56%)과 공화당(54%) 지지층 모두 과반을 기록했다.     전임 트럼프 정부 때만 해도 탄소배출 저감 정책을 대놓고 무시하는 등 기후변화 이슈가 정쟁 소재가 되곤 했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 이슈 앞에 첨예한 진영 논리도 더는 힘을 못 쓰는 것 같다.   지난해 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 침수로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은 데 이어 올해는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비극의 현장이 됐다. 여야가 정쟁 중단을 외치며 수해 현장으로 달려갔다는 소식이 들린다.     정쟁 중단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과거의 관성적인 대응만으로는 극한 기상이변이 뉴노멀이 된 시대에 맞설 수 없다.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당장 할 일부터 중장기 플랜까지 촘촘히 담은 기후변화 대비책을 내놓아야 한다. 김형구 / 워싱턴총국장J네트워크 진영논리 뉴노멀 기후변화 정책 기후변화 이슈 정부 지지도

2023-07-17

[J네트워크] 중국의 ‘희토류 공정’ 30년, 그 뒷이야기

# 30년 전, 1992년.   중국은 당시에도 ‘미국 공포’에 시달렸다. 미국은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1989년 6월)에 대한 무력 진압을 이유로 중국을 옥죄고 있었다. 서방의 봉쇄에 개혁개방 열기도 식어갔다. 그해 1월 덩샤오핑(鄧小平)이 갑자기 언론에 등장해 분위기를 바꾼다. 그는 남부 도시를 돌며 개혁개방을 외쳤다. 그중 이런 말이 나온다.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中東有石油, 中國有希土).’ 그게 신호였다. 중국의 크고 작은 기업들이 대거 희토류 생산에 뛰어들었다.   #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2년.   미국의 대표적인 희토류 광산인 마운틴 패스(Mountain Pass)가 문을 닫았다. 값싼 중국 제품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염 업종은 중국에 맡기고, 우리는 반도체와 같은 고부가 제품을 만들자’는 논리도 폐광의 이유였다.   당시 서방 희토류 회사의 선택은 두 가지. 파산하거나, 아니면 기술을 싸 들고 중국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중국에 희토류 분리·제련 기술이 쌓이기 시작했다.   # 다시 10년이 지난 2012년.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대형 희토류 광산이 발견됐다. 서방 주요 국가들이 달려들었다. 특히 2년 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사건 때 중국의 희토류 공세에 무릎을 꿇었던 일본이 채굴권 확보에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모잠비크의 선택은 중국이었다. 2000년대 초부터 아프리카에 공을 들여온 중국 외교의 승리였다.   중국은 중남미·중앙아시아·호주 등의 희토류 광산에도 손을 뻗쳤다. 심지어 마운틴 패스의 지분 7.7%를 사들이기도 했다. 중국이 글로벌 희토류 공급 사슬을 지배하는 이유다.   # 또다시 10년이 지난 2022년.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월 22일 희토류 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희토류 없이는 미국의 미래도 없다.” 입장은 바뀌었지만, 30년 전 덩샤오핑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마운틴 패스의 제련기술 개발에 거금의 예산을 투입하는 등 광산 살리기에 나섰다.     그러나 낙관적이지 않다. 이 광산은 지금도 채굴한 광물 대부분을 중국으로 보내 처리해야 한다. 합금 순도를 높이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미사일, 레이더, 스텔스 전투기 등에 쓰이는 중(重) 희토류는 채굴 및 처리 과정의 거의 100%를 중국이 독점하다시피 한다. 희토류는 아니지만 중요 광물인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가 ‘맛보기’일 뿐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죽은 덩샤오핑이 살아있는 바이든을 잡는 꼴이다. 한우덕 / 차이나랩 선임기자J네트워크 중국 뒷이야기 희토류 광산 글로벌 희토류 희토류 생산

2023-07-12

[J네트워크] 한국의 현수막, 미국의 야드사인

지난봄, 워싱턴 발령 이후 처음으로 서울을 다녀왔다. 2년 반의 시간이었지만 벌써 낯설게 느껴지는 풍경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여의도 국회 앞을 도배하고 있던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에 어지럽게 둘러싸인 의사당 모습도 부조화였지만, 원색적인 문구들은 더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참여와 지지를 바란다기보다는 상대편에 대한 배설이 목적인 듯 보였다.   ‘표현의 자유’를 항상 내세우는 미국에서조차 정치 현수막을 본 기억이 없다. 도시 미관을 까다롭게 규제하는 워싱턴 연방의회 근처에선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선거철 현수막 역할을 하는 게 ‘야드 사인(Yard Sign)’ 정도다. 30~100㎝ 정도 되는 작은 직사각형 팻말 양쪽에 철사를 달아 땅바닥에 꽂을 수 있게 했다. 투표소 근처, 도로변, 가정집 마당에 놓는데, 지역마다 다르지만 게시할 수 있는 장소·기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다. 당연히 교통이나 보행에 방해를 줘선 안 된다.   야드 사인에 들어가는 메시지는 단순할수록 좋다고 한다. 당적을 드러내고 여러 문구를 적기보단, 자신의 이름, 출마 목적 정도만 밝힌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는 연구결과(하이포인트대, 2015년)도 있다. 예컨대 ‘트럼프’라는 이름 밑에 ‘미국을 더 위대하게’ 한마디만 적으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야드 사인의 기원은 1820년대로 올라간다. 당시 대선 후보이던 존 퀸시 애덤스가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마당에 지지 팻말을 꽂도록 한 게 시초다. 지금도 유권자들의 자발적 참여에 기대기 때문에 야드 사인의 홍보 효과를 더 크게 본다. 야드 사인 한 개가 후보자에게 6~10표를 가져다준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 한국에서 현수막이 범람하게 된 것은, 정당 활동 보장을 이유로 규제를 완화하면서다. 그러나 보행자들 눈앞에 억지로 들이밀다시피 하는 현수막이 정당 활동에 도움될 리 만무하다. 플라스틱 재질이라 재활용이 어렵고 소각 시 유해물질까지 나오는 쓰레기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지난 5월 행안부에선 2m 이상 높이에 걸고, 15일 이내에 치우라는 등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정치 현수막 전용 게시대를 만드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관련 규정이 아니라, 현수막을 아예 없애는 것이다. ‘모두가 하니까’라는 변명 접어두고, 과감히 새로운 친환경 홍보수단을 제시할 책임감 있는 정당의 등장을 기대한다. 김필규 / 워싱턴특파원J네트워크 미국 야드사인 정치 현수막 선거철 현수막 야드 사인

2023-07-09

[J네트워크] “마지막 기회다” 일본의 반도체 절치부심

실패를 경험해 본 적이 있나. 무언가에 도전했다가 재도전했던 기억은. 지금 일본은 한번 겪었던 실패를 곱씹고 또 곱씹는 중이다. 그 실패는 다름 아닌 반도체. 잃어버린 일본의 30년은 단순히 저성장의 긴 터널만은 아니었다. 한때 세계 시장을 이끌었던 일본의 반도체 역시 몰락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던 암흑기이기도 했다.   먼저 했던 실패 하나. 지난 2000년 3월 일본 히타치는 대만 회사와 함께 트레센티테크놀로지스를 세웠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산업을 위한 도전장이었다. 당시 이사를 지낸 인물이 올해 71세인 고이케 아쓰요시(小池淳義). 라틴어로 300을 뜻하는 단어에서 차용해 회사 이름을 ‘트레센티’로 지은 사람이 그다. 반도체 원판에 해당하는 직경 300㎜의 웨이퍼를 상징하도록 이름을 만든 것이다. 정부의 전폭 지원을 받으며 일본 회사 11곳이 뭉쳐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조한다는 꿈을 키웠지만 트레센티는 실패했다.   그리고 지금. 고이케는 지난해 설립한 라피더스 사장으로 다시 등장했다. AI(인공지능) 시대를 겨냥해 소니와 도요타 등 일본 대표기업 8곳이 지난해 뭉쳐 세운 반도체 회사 말이다. 재밌는 건 라틴어로 ‘빠르다’는 의미의 라피더스란 회사 이름을 지은 것도 바로 고이케다. 사실상 ‘국책 파운더리 회사’인 라피더스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최근 『반도체 입국 일본의 역습』을 내놓은 구보타 류노스케는 이렇게 지적했다. “경제산업성이 주도한 과거 반도체 전략 실패 원인을 찾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황금기를 되찾자는 바람이 통했던 걸까. 공교롭게도 같은 달 일본 경제산업성이 내놓은 반도체 디지털 산업전략 보고서에선 비장함이 묻어났다. 무려 200쪽이 넘는 보고서, 그 앞머리에 등장한 단어들은 이랬다. ‘국가 존망이 걸린 문제. 최후의 기회. 이런 흐름에서 살아남는 것은 사활의 문제.’ 이번엔 정말 성공하고 말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이런 일본을 바라보는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달라진 일본의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과거 실패를 철저히 반성하고 진심으로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주 반도체 핵심 소재 회사이자 세계 1위 회사(JSR)를 정부계 펀드를 통해 사들였다. 그리고 일본은 미국에 이어 3일 유럽연합(EU)과도 반도체 연계 강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도 맺었다. 이구동성 “마지막 기회”라며 전력투구 중인 일본을 보며 “우리 정부는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건 노파심 때문일까. 김현예 / 도쿄 특파원J네트워크 일본 절치부심 반도체 절치부심 반도체 회사 반도체 위탁생산

2023-07-04

[J네트워크] 한국 브랜드 실종 사건

중국 시장에 한국 브랜드가 없다. 자동차, 핸드폰, TV, 심지어 화장품도 이젠 찾기 힘들다. 거의 실종 수준이다. ‘어쩌다 이리됐지?’ 중견 화장품 회사의 K사장은 사내 중국 팀장을 불러 시장 상황을 묻는다. 팀장의 답은 이랬다.   “중국 젊은 소비자들의 ‘애국 소비’ 성향으로 외국 브랜드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마땅한 타개책이 보이지 않습니다.”   맞는 얘기인가? 핑계는 아닌가?   맞다. 수퍼급 글로벌 브랜드라도 ‘국뽕(애국주의)’의 공격 타깃이 되면 하루아침에 중국에서 쫓겨날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 애국 소비는 더 기승을 부린다.   스포츠업계의 최고 브랜드인 나이키도 당하는 판이다. 이 회사는 2021년 초 중국의 위구르족 강제 노동을 이유로 신장(新疆)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타도’ 대상이 됐다. 결국 지난해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중국 브랜드 안타(ANTA)에 내줘야 했다.   핑계도 된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는 “중국의 젊은 소비자들은 외국 브랜드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다. 퀄리티와 가격이 더 중요할 뿐이다”라고 분석한다. 애국 소비보다 중국 기업의 제품 혁신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많은 미국 유튜버조차 ‘안타의 농구화 품질이 나이키에 못지않다’고 인정한다.    억울하다. 스마트폰 갤럭시는 현재 세계 시장 점유율 22%로 1위다. 그런데 유독 중국에서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대차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런데도 ‘내 탓이오!’, 자책만 하라고?   여기서 고려해야 할 게 국가의 개입이다. 나이키가 그랬다. 이 회사는 사건 후 중국 관영 언론의 불매 운동 논조에 시달렸다.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 ‘나이키는 중국에서 한 푼도 벌지 못할 것’이라며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갤럭시와 현대차가 사드 사태 와중에 급격히 시장을 잃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젊은이들의 애국 소비에는 이같이 중국 기업의 품질 혁신과 당국의 공공연한 개입이 도사리고 있다. 소비자와 기업, 정부가 뭉쳐 거슬리는 외국 브랜드를 몰아내는 꼴이다. 한국 제품 실종 사건의 배경이기도 하다. 화장품 회사 중국 팀장이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어떻게 되찾아야 할까. 방법은 하나다. 중국 제품을 압도할 수 있도록 품질 혁신을 이루고, 안정적인 한-중 관계 관리로 외풍을 막아야 한다. 전자는 기업의 몫이요, 후자는 정부가 할 일이다. 그게 안 된다면 ‘한국 브랜드 실종’은 해결되지 않는 미제 사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한우덕 / 차이나랩 선임기자J네트워크 브랜드 한국 한국 브랜드 외국 브랜드 브랜드 안타

2023-06-30

[J네트워크] 법치와 통제 사이…법 제재 강화하는 중국

중국은 지난해 9월 1일부터 ‘국경 간 데이터 이전 보안 평가 조치’를 시행 중이다. 100만 명 이상의 개인 정보를 처리하는 기업이 해외로 데이터를 옮기려면 보안 평가를 받아야 한다. 올 6월 1일부터는 100만 명 미만의 데이터를 취급하는 회사로까지 범위를 확대했다. 기업이 국가 기관의 사전 평가를 받도록 한 조치는 다국적 기업은 물론 해외에 상장된 중국 기업과 인터넷, 의료, 자동차, 항공, 금융 등 데이터를 사용하는 기업체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례적으로 중국 현지 매체가 나서 당국이 시행 중인 제도의 문제를 짚었다. 그만큼 부작용이 크다는 방증이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은 지난 9개월간 중국 전역에서 1000건 이상의 데이터 해외 이전 신청을 받았지만 검토된 건 10건 미만이라고 보도했다. 명확한 검토 기준이 부족해 승인 절차가 지연되고 있으며, 많은 신청 건수를 처리하기에 당국의 인력이 충분치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짚었다. 통제 강화는 투자 부진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중국에 1억 위안(약 180억원) 이상 투자 건수는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60% 감소했다.   7월 1일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을 놓고 중국 안팎의 우려는 크다. 대만 매체들은 중국 입국 시 시진핑 주석을 ‘곰돌이 푸’로 희화화한 사진을 갖고 있다 걸릴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두산 사진 촬영 주의보’라거나 ‘통계자료 함부로 받아선 안 된다’ 등 경고가 이어졌다. 중국 외교부는 우려에 대해 “모든 국가는 입법을 통해 국가 안전을 수호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각국에서 통용되는 관행”이라고 밝혔지만 시민들의 두려움은 중국이 언제든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할 수 있다고 보는 데 있다. ‘국가 안보’ 등의 개념 정의가 명확하지 않아 고무줄 잣대로 제한과 처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다만 베이징 현지 법조계에선 처벌 대상으로 명시한 ‘국가 안전 관련 문서나 데이터’에 공개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것은 제외될 수 있고 간첩 행위 구성 요건을 ‘절취·정탐’ 등으로 규정해 단순한 관광 사진까지 포함되진 않는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7월 1일부터 중국은 국가 주권 및 발전 이익을 위협하는 행위에 상응하는 제한 조치를 취할 것을 명시한 ‘대외관계법’도 시행한다. 적대적인 서방 조치에 대응하는 중국 외교 정책의 근거로 삼겠다는 게 입법 취지다. 일련의 흐름을 중국에선 ‘정상국가를 향한 법치 강화’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외부에선 중국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신뢰 부족을 초래할 것이라고 본다. 법치와 통제 사이 중국의 현재가 있다. 박성훈 / 베이징특파원J네트워크 중국 법치 통제 강화 데이터 해외 국가 안전

2023-06-29

[J네트워크] 지구온난화 해결, 그렇다고 기후까지 조정할 수 있을까

유럽에 모기 비상이 걸렸다. 유럽질병관리예방센터(ECDC)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한 해 유럽의 뎅기열 감염 사례가 총 71건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11년간의 누적 건수 74건에 육박하는 수치다. 역시 모기로 전파되는 웨스트나일열도 1000건 이상 발생해 92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유럽에 열대성 질병이 급증하는 이유로는 기후 온난화가 지목되고 있다. 날씨가 따듯해지면서 모기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피부로 느끼는 기후위기의 현장이다.   이번 주 유럽연합(EU)에선 독특한 성명이 발표될 예정이다. ‘지구공학(Geo-engineering)’ 기술에 대한 규제를 촉구한다고 한다. 지구공학은 온난화를 감소하는 기술을 통칭한다. 예컨대 성층권에 햇빛 반사 물질을 뿌려 대기 기온을 떨어뜨리는 ‘태양 복사 조정(Solar Radiation Modification)’ 기술 등을 포함한다. 반면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의견이 아직 없는 상황이다. 가팔라지는 지구온난화에 대비하려면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인간이 자연에 섣불리 개입하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문제는 이런 지구공학 실험이 이미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지난해 4월 메이크 선셋스(Make Sunsets)라는 미국의 스타트업이 멕시코 해변에서 아마존에서 구입한 직경 1.8m 풍선 속에 이산화황을 주입해 하늘로 날렸다. 그들이 주장하는 원리는 이렇다. 날려 보낸 풍선이 높은 고도에서 터져 이산화황 먼지를 뿜어내면 그 먼지가 태양광을 반사해 지구 온도를 낮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이 시도를 처음 알린 MIT 과학자들은 이산화황의 양이 미미해 대기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멕시코 정부는 이 실험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며 자국에서 모든 지구공학 실험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지구공학 기술은 다양하다. 대기 탄소 포집과 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권운 구름 축소(cirrus cloud thinning) 등 인위적인 기후 개입 기술이 초기 개발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술이 향후 수년 내에 상용화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기술의 위험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스위스가 경고음을 냈다. 2019년 지구공학 기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촉구하는 유엔 결의안을 추진했으나 결국 통과에는 실패했다. 당시 한국은 스위스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의 EU 성명서가 주목되는 이유다. 하나로 연결된 지구촌, 한국의 선택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안착히 / 글로벌협력팀장J네트워크 지구온난화 기후 지구공학 기술 지구공학 실험 기후 온난화

2023-06-28

[J네트워크] 바이든의 ‘진심’…하루가 다른 정세가 던지는 숙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겨냥한 ‘독재자’ 발언이 나오자 중국의 반응은 신속했고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정치적 존엄을 엄중하게 침범한 것으로 공개적인 정치적 도발”이라고 맹비난했다.   해당 발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2월 중국 정찰 풍선의 미 영공 침범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무엇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것은 독재자들에게는 큰 창피”라고 했는데, 시 주석이 정찰 풍선 건을 잘 몰랐을 거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시 주석을 두둔하려는 뜻으로 들리는 얘기였다.   하지만 세계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대결’로 보는 바이든 대통령의 ‘독재자’ 발언은 파문을 일으켰다. 은연중 드러난 바이든의 ‘진심’에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방중을 계기로 관계 개선의 첫발을 떼는 듯했던 미·중 관계는 다시 급제동이 걸렸다.   발끈한 중국과는 대조적으로 미국 내 반응은 무덤덤하다. 오히려 “바이든이 틀린 말이라도 했느냐”는 분위기다. 미 국무부의 베단트 파텔 수석부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우리는 일부 차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발언이 더 이상 해명되거나 해석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별문제가 없으니 더 해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는 얘기다.   미 언론의 이목을 끈 건 발언 내용보다 ‘타이밍’이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 성과를 놓고 “그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평가하며 “미·중 관계에 진전이 있었다”고 말한 바이든 대통령이 바로 다음 날 독재자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다. 관계 안정화에 뜻을 같이하고 고위급 대화 채널을 재개하기로 한 양국의 노력에 역행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번 발언이 미·중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거라는 시각이 다수다. 발끈했던 중국 외교부가 당일 저녁 홈페이지의 대변인 브리핑 전문에서 ‘독재자’ 관련 질문과 답변을 갑자기 뺀 것도 묘한 느낌을 준다. 양국이 며칠 전 공감대를 이룬 ‘충돌 방지를 위한 상황 관리’ 차원의 조치로 읽힐 수 있어서다.   문제는 이렇듯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대한민국 외교가 취해야 할 스탠스다. 치열한 경쟁 와중에도 국익 앞에 대화와 소통을 모색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묵직한 고민을 던진다. 국제 정세가 복잡하고 어지럽게 전개될수록 치밀하고도 유연한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외교가 필요한 때다. 김형구 / 워싱턴총국장J네트워크 진심 정세 독재자 발언 국제 정세 외교부 대변인

2023-06-26

[J네트워크] 대졸자의 97%가 취업하는 나라

“학생들 취업? 전혀 걱정 안 해요. 몇 군데씩 합격해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으니까요.”   얼마 전 일본 도쿄(東京)의 한 대학에서 일하는 한국인 교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 있는 교수 친구들은 가장 큰 걱정이 학생들 취업이던데, 일본 대학교수는 그런 측면에서 아주 편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생노동성과 문부과학성이 지난달 26일 발표한 올해 3월 대학 졸업생 취업률은 97.3%였다. 계열별로는 문과가 97.1%, 이과가 98.1%다.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의 98%보다는 낮지만, 사실상 ‘완전고용’에 가까운 수치다.   물론 일본 대졸자 취업률을 숫자 그대로 읽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대학 졸업예정자 중 취업을 원하는 이들(약 75%)만을 대상으로, 5000~6000명 단위의 표본을 조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취업 불가능자를 제외한 전체 졸업생 가운데 취업자 수를 전수 조사하는 한국의 대졸자 취업률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통계적 편차를 고려하더라도 일본의 대졸자 취업 시장이 좋은 상황인 건 분명해 보인다. 언론에는 직장을 찾으려는 젊은이들보다 인재를 끌어오려는 기업들이 훨씬 자주 등장한다.   대졸자 취업 시장이 좋아진 것은 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의 여파라는 해석이 많다. 저출산으로 취업 시장에 나오는 젊은이들의 수가 줄어들어 회사를 떠나는 은퇴자의 수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앞으로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 뻔하니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인력을 확보해 놓으려 한다. 거기에 올해는 코로나19 종식으로 인해 시장 회복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기업들의 신입사원 고용도 대폭 늘어났다.   한국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1월 발표한 2021년 2월 4년제 대학 졸업자(2020년 8월 졸업자 포함)의 취업률은 64.2%였다. 취업으로 고민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뉴스를 볼 때마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텐데’ 생각하게 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공단을 통해 일본에 취업한 한국인은 코로나19와 양국 관계 악화로 2019년 2469명에서 2021년엔 586명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1154명으로 회복세라 한다. 요즘 “한·일 관계가 좋아지면 과연 우리 삶의 무엇이 나아지는가”를 묻는 이들이 많다. 일할 곳이 간절한 젊은이들의 일본 취업이 활성화한다면, 관계 개선의 당위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도 늘어나지 않을까. 이영희 / 도쿄특파원J네트워크 대졸자 취업 대졸자 취업률 취업 시장 학생들 취업

2023-06-20

[J네트워크] “쌍순환은 쇄국 아니다”

“쌍순환은 폐관쇄국(閉關鎖國)이 아니다.”   지난 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내몽골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이 싱하이밍(邢海明) 중국대사의 문제 발언에 골몰하는 사이 세계는 시 주석의 입에 주목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10일 인민일보 보도로 뒤늦게 알려졌다. 태양광 실리콘 웨이퍼 공장을 시찰하던 시 주석이 “지금 우리는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로 자립 자강해야 한다”며 “새로운 발전 구도(新發展格局·신발전격국)를 만들어 과학기술 난관을 공략해야 한다”고 했다. “예측할 수 있거나 미리 알기 힘든 광풍과 폭우, 퍼펙트 스톰 속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일을 잘하는 것”이라며 경각심을 높였다.   작심 발언이 이어졌다. “새로운 발전 구도를 만들려면 우선 국내 대순환을 잘 해내야 한다. 이는 근본을 다스리는 방책”이라며 쌍순환(이중 사이클)이 나라의 문을 잠그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이 우리(중국)에게 문을 열지 않을 때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고, 더 잘 살 수 있어야 한다”며 “대문을 활짝 열어 누구라도 협력하겠다며 오면 모두 환영한다”고 했다.   마치 『삼국지』 조조(曹操)의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다. 세상이 중국을 버려도 잘 살아내겠다는 결기로 들렸다.   “어떤 나라가 패권에 기대고 독점에 의지해 중국을 속국처럼 따르게 하려 한다”며 “중화민족은 반드시 부흥해야 한다. 난관을 극복하고 더 높이 올라야 한다”고도 했다. 미국을 불신했다.   공동부유도 해명했다. “공동부유는 함께 묶인 게처럼 아무도 못 움직이는 상태가 아니다. 일부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되도록 격려해야 한다”며 “다만 ‘앞선 부가 뒤따르는 부를 이끈다’는 말을 잊어선 안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낯선 용어인 ‘쌍순환’은 지난 2020년 4월 처음 나온 신조어다. “국내 대순환을 주체로 하고, 국내와 국제 쌍순환이 서로 촉진하는 새로운 발전 구도”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내수 시장을 키우면서 동시에 대외 개방을 유지한다는 정책이다. 강조점은 개방보다 내수에 찍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세계가 중국에 문을 닫자 중국이 만든 대책이었다.   팬데믹 시기가 지났다. 코로나 초기 만든 쌍순환 정책은 시 주석의 설명에도 무자비했던 ‘제로 코로나’ 방역을 연상시킨다. 쇄국인 듯 쇄국 아닌 쇄국 같이 들린다. 공동부유도 비슷하다. 부자의 돈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는 ‘겁부제빈(劫富濟貧)’으로 여겨진다. 중국의 이미지 쇄신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신경진 / 베이징총국장J네트워크 쌍순환 쇄국 쌍순환 정책 국제 쌍순환 국내 대순환

2023-06-19

[J네트워크] 탈(脫)중국과 ‘알타시아(Altasia)’

‘탈(脫)중국’은 대세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의 임금 급등, 미·중 패권 경쟁 등을 피해 중국에서 공장을 빼낼 궁리를 하고 있다. 대중 수출이 12개월째 줄면서 국내에서도 ‘중국 의존도를 낮출 기회’라는 말이 나온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세계 공장’ 중국은 소재 및 부품 조달, 물류, 시장 접근성 등 여러 분야에서 최적의 제조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해 약 1000만 명의 대졸자가 쏟아져 나오는 등 고급 인재도 풍부하다. 어디서 이런 조건을 갖춘 나라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나온 게 ‘알타시아(Altasia)’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만든 용어다. 대체라는 뜻의 ‘Alternative’에 아시아의 ‘asia’를 합쳐 만들었다. ‘중국을 대체할 아시아의 나라들’이라는 뜻이다.   특정 한 나라가 중국을 대체할 수는 없지만, 합쳐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술력은 일본·한국·대만 등이 뛰어나다. 싱가포르는 물류 서비스가 강하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자원이 풍부하다. 베트남·태국·인도 등은 투자 정책의 틀이 잡혀간다. 필리핀·방글라데시·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 등의 인건비는 중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 14개 ‘알타시아’의 전체 노동인구는 14억 명으로 중국의 9억5000만 명을 추월한다. 대미 수출 총액도 중국보다 많다. 중국을 대체할만한 충분한 제조 여건을 갖췄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평가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흐름이다. 대만 폭스콘은 아이폰(애플) 생산 거점을 인도로 다각화하고, 인텔은 베트남 호찌민시에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삼성도 핸드폰 공장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옮겼다. 미·중 갈등에 따른 공급망 변화가 ‘알타시아’로의 제조업 이동을 재촉하고 있다.   기회다. 우리는 14개 ‘알타시아’ 중에서도 반도체·자동차·조선·화학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쳐 고루 경쟁력을 갖춘 나라다. 베트남으로 가려는 공장이 있다면, 한국으로 와야 할 기업도 분명 있는 법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회사 ASML이 경기도 화성에 ‘화성 캠퍼스’를 조성하는 건 이를 보여준다. 산업 포트폴리오와 기술 경쟁력의 이점을 살리면 우리도 첨단 제조 분야 ‘포스트 차이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규제 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한국은 과연 그 기회를 잡아챌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알타시아’의 부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한우덕 / 차이나랩 선임기자J네트워크 중국 베트남 호찌민시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핸드폰 공장

2023-06-13

[J네트워크] 워싱턴 미세먼지 대소동, 그러면 한국은…

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포토맥 강변을 따라 달리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항상 선명했던 워싱턴 기념탑도 희미하게 형체만 보였다. 초여름 날씨였지만, 거리 식당의 야외 좌석도 비었다. 저녁빛이 미세먼지에 산란해 붉어진 워싱턴 시내의 모습은 낯설었다.   지난 8일 워싱턴은 캐나다 산불로 인한 연기·미세먼지로 뒤덮여 ‘코드 퍼플(보라색)’ 경보가 내려졌다. 총 6개의 대기질 등급 가운데 두 번째로 나쁜 단계로, 모두의 건강에 매우 해로운 상태다.   워싱턴 기상 관측 역사상 코드 퍼플은 처음이었다. 대대적으로 불꽃을 터뜨리는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미세먼지가 좀 심하다 싶을 정도였는데, 그나마도 이번 같은 상황에 이른 적은 없었다.   앞유리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던 우버 기사는 “도시 전체가 바비큐를 굽는 것 같다”며 신기해했다. 학부모들 휴대전화에는 아이들의 야외 활동을 모두 중단한다는 교육청의 문자 메시지가 떴다. N95, KN95 등급의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권고도 이어졌다.   이날 백악관은 예정했던 행사도 취소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각 주와 관공서의 지침에 귀를 기울이고 실시간으로 대기질 정보를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다행히 주말 내내 서풍이 먼지를 대서양으로 밀어내면서 이 소동은 길지 않게 끝났다.   TV에선 이번 미세먼지로 미국 동부와 남부 주민 1억 명 이상의 건강이 위험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언제든 산불이 재발할 수 있어 더 문제라고 걱정했다. 이날 워싱턴 일대의 공기질지수(AQI)는 150~230 정도였다.   한국의 경우 겨울철 미세먼지 농도가 좀 심할 때 종종 나왔던 수치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인 2019년 겨울, 48시간 동안 한국 각 지역 AQI가 150~225를 기록했다고 CNN이 보도한 바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온 워싱턴 주재원들 사이에선 “뭐 이 정도에 호들갑이냐”는 이야기가 농담처럼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환경보호청(EPA)에 따르면 AQI 150 이상은 ‘매우 심각한 건강 위협’ 단계다. 그대로 일상생활을 하면 담배 6개비를 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좀 나아지나 싶던 한국 미세먼지는 제자리로 돌아온 모습이다. 지난달엔 급격히 나빠진 초미세먼지 농도에 3년 만에 차량 2부제를 재개했다.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한국 면적의 절반 가까운 숲을 태워야 발생하는 비상 상황이 우리에게만 일상일 수는 없다. 김필규 / 워싱턴특파원J네트워크 미세먼지 워싱턴 한국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농도 겨울철 미세먼지

2023-06-12

[J네트워크] 그는 왜 증오에 빠졌나

분노는 순간적이다. 하지만 증오는 다르다. 증오는 뿌리 깊이 내리박혀 오랜 시간 인간을 좀먹는다. 인구 약 70만명의 도쿠시마(德島)현에서 벌어진 한 사건도 그랬다. 지난해 9월, 노란 봉투에 요상하게 적힌 글씨가 적힌 우편물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를 본 사람들은 소스라쳤다. ‘반일 정책을 그만두지 않으면 총격하겠다.’     이곳 재일동포는 약 70세대, 300여 명.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 더러 혐오 발언이 담긴 편지가 오곤 했지만, 총격 협박은 처음이었다. 강성문(45) 도쿠시마 민단 본부 단장은 바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약 9개월 뒤인 지난달 말, 도쿠시마지방법원은 총격 협박을 한 범인(40)에게 징역 10개월, 보호관찰을 포함한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왜, 그는 증오에 빠져있었던 걸까. 붉은 펜으로 자를 대고 기괴한 협박 편지를 쓴 범인. 그가 아사히신문 면회에 응해 밝힌 동기는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TV와 인터넷 정보를 통해 한국인들이 반일감정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범행 전 한국인이나 재일동포는 만난 적이 없다. 법정에서 본 게 처음이다.” 법원 선고를 앞두고서야 그는 자신의 잘못을 ‘증오 범죄’로 시인했다. “지금이라면 그런 바보짓을 하지 않겠다”는 말도 남겼다.   도쿠시마 동포들에게 평화는 돌아왔을까. 강성문 단장은 범인의 얼굴을 법정에서 처음 보곤 마음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같은 도쿠시마 주민인데, 한국을 가본 적도, 한국인을 만난 적도 없는데 마음 깊은 곳 증오의 감정을 갖고 산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법정에서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야쿠자도 스파이도 아닙니다. 일반 주민입니다. 일본서도 가장 한국인이 적은 도쿠시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일본 전역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라고요.”   아이 다섯을 둔 가장인 그는 정말 무서운 건 따로 있다고 했다. ‘무관심한 사회’다. 인터넷에 떠도는 혐한 이야기만을 믿고 경멸하는 마음을 갖게 된 사회가 되어버렸지만, 이에 대한 한일 양국의 무관심이 더 두렵다는 얘기다.     한 시간의 통화 끝, 어떻게 증오를 털어낼 수 있겠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증오의 마음이 사라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역사 문제를 잘 모르는 일본인이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일본도, 한국도,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해결이 더 어려워요. 다음 달 2일에 민단이 주민 100명을 초청해 한식 시식회를 열어보려 해요. 실제로 만나보니 좋더라, 먹어보니 좋더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수밖에요. 재일동포들에겐 삶이니까요.” 김현예 / 도쿄 특파원J네트워크 증오 증오 범죄 도쿠시마 민단 적도 한국인

2023-06-09

[J네트워크] 머스크 방중이 남긴 것

지난 한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중국을 뜨겁게 달궜다. 3년 만에 중국을 찾은 그는 상하이 기가팩토리 공장을 찾아 중국인 직원 수백명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가장 효율적인 공장, 세계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위해 다 같이 전진하자”는 말에 직원들은 환호했다.     머스크는 중국 외교장관, 산업기술장관, 상무장관도 잇따라 만났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을 더 잘 이해하고 호혜 협력을 증진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반색했다. 머스크는 중국 웨이보(중국식 트위터)에 “중국의 우주 개발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발전해 있다”며 립서비스를 아끼지 않았다. 철저히 중국이 듣고 싶은 말을 했고 비즈니스에 집중했다. 중국에 머무른 44시간, 그의 중국 밀착 행보에 테슬라 주가는 4% 넘게 올라 주당 200달러를 돌파했다.   지난 3월 팀 쿡 애플 CEO가 베이징에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아이폰 매장을 직접 찾아 시민들을 만났다. 직원들을 격려하고 그를 보러 찾아온 중국인들을 반갑게 맞으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훌륭한 팀과 애플을 사랑하는 모든 중국인에 감사한다”는 그의 메시지는 중국을 흥분시켰다.     최근 서방 기업 CEO들의 중국 방문이 부쩍 늘고 있다. 폭스바겐 CEO는 숄츠 독일 총리의 방중과 함께 중국을 찾아 새로 출시된 전기차 세일즈에 열을 올렸다.   일련의 흐름을 보며 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들의 대응을 돌아보게 된다. 세계적 기업 삼성의 휴대폰은 중국 시장 점유율 1% 밑으로 떨어진 지 오래다. 현대차 역시 중국 전기차에 밀려 맥을 못 추고 있다. 한·중 관계 악화, 떨어지는 가성비 등 여러 진단이 나오지만, 현지에서 보는 느낌은 우리 기업들이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3월 중국발전고위급 포럼 참석차 방중했을 때 중국 시민이나 중국 매체와의 접촉은 없었다. 톈진 삼성전기 공장 방문 사실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역시 중국을 찾았지만 스킨십은 전무했다. 한국 고위간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에 온다는 얘기를 듣고 있지만 중국에 전파되는 소식은 거의 없다.   폐쇄적이긴 하지만 SNS가 극도로 발달한 중국에서 비즈니스는 결국 이미지 전쟁으로 직결된다. 한·중 관계가 흔들리는 요즘이지만 그럴수록 중국 국민의 마음을 여는 과감한 스킨십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과 관계가 어떻든 아이폰을 선호하는 중국이다. 우리도 중국에 ‘이미지’를 팔아야 한다. 박성훈 / 베이징특파원J네트워크 머스크 방중 머스크 방중 일론 머스크 전기차 세일즈

2023-06-05

[J네트워크] 21세기 아편전쟁과 펜타닐

미 역사상 유일의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생전 중국에 관심이 많았으며 외조부 워런 델라노 주니어가 중국에서 사업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무슨 사업을 했나. 델라웨어대 역사학과 교수 왕위안충(王院崇)에 따르면 외할아버지가 종사한 사업은 아편 장사였다.     18세기 말 영국 동인도 회사가 대중 무역적자를 만회하려 아편 판매를 시작했는데 외조부를 포함한 미국 상인들도 기꺼이 동참했다.   불법으로 돈을 버는 데 국가와 민족의 구분은 없었다. 중국 광저우에 나온 미 회사 대부분이 아편 무역에 종사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미국 내 자선사업과 교육·교통·의료에 투자해 미국을 강국으로 일궈냈다.     반면 중국은 은화 유출과 무역 적자, 사회 빈곤, 국민 피폐로 이어지며 몰락했다. “손안의 담뱃대가 천조의 꿈을 날려버렸다(手中煙槍一杆 天朝夢歸何處)”는 탄식이 나왔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가.   지난달 초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물질이 든 중국 화물이 우리 항구에 도착했다”며 “중국에서 멕시코로 펜타닐이 들어왔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문제 해결을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정중한 서한을 보낼 예정”이라고도 했다.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100배 중독성을 지닌 펜타닐의 주요 공급처가 멕시코가 아닌 중국이라는 뉘앙스가 읽힌다.   펜타닐은 현재 미국이 직면한 가장 치명적인 마약이다. 2021년의 경우 10만7375명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졌는데 이 가운데 67%가 펜타닐 관련이었다. 미 성인 18~49세 사망 원인 1위로 교통사고와 총기사고 사망자를 더한 것보다 많다.     ‘차이나 화이트(China White)’ ‘중국 소녀(China Girl)’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펜타닐은 중국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직접 밀수되거나 또는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중은 2018년부터 중국의 펜타닐 원료 생산자 단속에 나섰으나 무역 갈등이 악화하며 현재 협력은 흐지부지 상태다. 미국 일각에선 “중국이 고의로 펜타닐을 미국에 유통하고 있는 게 아니냐” “아편전쟁의 한풀이를 미국에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펜타닐 오남용이 문제이지 왜 중국 탓을 하느냐”고 반발한다. 21세기 아편전쟁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마약은 인류의 공적이다. 미·중 갈등 해소는 펜타닐 협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유상철 /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J네트워크 아편전쟁 펜타닐 펜타닐 원료 펜타닐 물질 멕시코 대통령

2023-06-04

[J네트워크] 전술의 시간

“히로시마 선언은 어떻게 중국과 관계 맺을 것인가를 ‘파트너’ 국가들과 깊이 상의한 결과다. 지난 2년 반의 시간을 통해 핵심 이슈에서 일치된 결론을 얻었다. 간단한 일차원적인 정책이 아니다. 진정 중요한 나라(중국)와 복잡한 관계를 맺기 위한 다차원의 복잡한 정책이다.”   지난달 20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히로시마에서 말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의 키워드다. G7, 쿼드, 오커스, 파이브 아이즈, 한·미·일까지 중국을 견제할 합종의 네트워크를 구축한 설리번이 중국 다루기의 복잡함을 인정했다. 과거 진(秦)의 굴기(?起)를 저지했던 외교가 소진(蘇秦)의 마음가짐 역시 비슷했다.   G7이 중국에 노회한 접근법으로 무장했다. 지난해 독일 엘마우 G7 선언과 일본 히로시마 선언은 ‘글로벌 웨스트’의 중국 전략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우선 성명 분량. 영문 28페이지에서 40페이지로 늘었다. ‘중국’은 14회에서 20회로 늘었다. ‘민주주의·민주국가·민주적’이란 단어는 23회에서 18회로 줄었다. ‘법의 지배’는 4회에서 6회로, 유엔헌장이 1회에서 5회로 늘며 규칙 기반을 강조했다. 1년 전 36회 등장했던 ‘파트너’가 66회로 대폭 늘었다. 한국을 비롯해 인도·브라질·베트남 등 ‘동반자’ 국가와 연대가 필수인 다차원의 시대로 이행했다는 방증이다. G2만의 시대가 아니다.   중국을 상대하는 방식도 입체화됐다. 지난해 없던 ‘하나의 중국’이 포함됐다. 중국을 배려했다. 중국과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관계 구축”을 명시했다.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위험제거)이라고 못 박았다.   미·중의 행보도 달라졌다. 지난달 8일 중국의 외교부장과 상무부장이 함께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를 만났다. 이어 미·중 외교 사령탑인 설리번과 왕이(王毅)가 10~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8시간 회동했다. 21일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과 ‘해빙(thaw)’을 말했다. 같은 날 번스 대사는 청두(成都)에 도착했다고 트위터에 알렸다. 2020년 휴스턴과 함께 총영사관을 상호 폐쇄했던 도시다. 미국 총영사관 재개관설이 나온다.   중국 역시 변했다. 지나달 23일 5개월여 공석이던 주미 대사에 셰펑(謝峰) 부부장(차관)이 부임했다. 류젠차오(劉建超) 대외연락부장은 이날 미·중 정당 대화에 참석했다. 번스 대사는 셰 대사와 지난 14개월 동안 23번 만났다고 공개했다. 한국 내 담론은 여전히 친미·친중, 공중증(恐中症)에 머문다. 이제 전술이 절실한 시간이다. 중국을 상대할 필드 매뉴얼부터 축적하자. 신경진 / 베이징 총국장J네트워크 전술 시간 히로시마 선언 번스 대사 주미 대사

2023-06-02

[J네트워크] 뉴욕의 대명사 파괴 현장 목격기

최근 뉴욕에서 현지 여대생들과 대화하다 귀가 쫑긋해졌다. 브루클린 소재 명문 사립 미술대에 다니는 이들이 그 자리에 없는 한 남성을 지칭해 단수형 대명사 ‘he’ 대신 복수형 ‘they’를 사용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기자 머릿속에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몇 해 전부터 영어권 SNS와 각종 글에서 보이기 시작한 대명사의 ‘진화’ 현장을 경험한 것이다.   최근 영어권 국가 가운데 주로 미국과 영국의 10~20대 사이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대명사를 직접 선택하는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자신을 ‘he’ 또는 ‘she’라는 이분법(binary)으로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현상이다.   이들은 스스로 ‘he/they’ 또는 ‘she/they’로 해달라고 요구한다. 여기서 ‘they’는 복수 ‘그들’이 아니라 성별이 구별되지 않은 단수 ‘그/그녀’를 말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he/she/they’ 모든 대명사로 불리기를 원하며, 이런 사람의 숫자가 늘고 있다는 보도도 봤다.   짐작했겠지만, 이런 현상의 중심에는 성 정체성(gender identity) 이슈가 있다. 성(sex)이라는 것은 태어나면서 자신의 뜻과 무관하게 부여된 생물학적 구별일 뿐, 진정한 성 정체성은 각자 삶의 경험을 통해 습득하고 계발된다는 논리다. 대명사 파괴 현상은 전통적 사고를 지배하는 언어의 틀을 깨겠다는 의사표시인 셈이다. 이런 움직임을 반영해 미국 메리엄-웹스터 사전은 이미 몇 년 전 ‘they’를 3인칭 단수 대명사로 기재한다. 단어를 새로 만든 나라도 있다. 스웨덴 정부는 2015년 남녀 구분 없는 인칭대명사 ‘헨(hen)’을 만들었다. 심지어 이 단어 사용을 거부한 교사가 파면된 경우도 있었다.   5년 전쯤 지인 자녀가 미국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할 때였다. 본인이 원치 않으면 원서에 성별 표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놀란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학교가 어린 학생들에게 불필요한 선택을 강요하거나 장려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성 정체성 인식 변화는 이미 가속도가 붙어 되돌리기 힘든 게 현실이다. 마음 가는 대로 살겠다는 자아실현의 의지가 강해지는 걸까.   뉴욕 체류 동안 다양한 대명사로 자신을 맘껏 표현하는 젊은이들을 자주 마주쳤다. 지하철에서 본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깊게 파인 드레스에 풀어헤친 긴 머리와 곱게 화장한 털보 얼굴. 중저음 목소리에 여성스러운 몸짓으로 옆 사람과 대화하고 있었다. ‘They’는 마냥 행복해 보였다. 안착히 / 글로벌협력팀장J네트워크 대명사 목격기 대명사 파괴 단수형 대명사 뉴욕 체류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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