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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에 ‘정치영화’ 열풍…이념 따라 선호 갈려

  남가주 지역 한인 극장가에 한국 역사와 관련한 정치 영화 바람이 불고 있다.   열풍 이면에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보이지 않던 갈등도 드러나고 있다. CGV LA, 부에나파크 지점 등에는 최근 ‘건국전쟁’, ‘길 위에 김대중’, ‘서울의 봄’ 등 한국 근대사를 그려낸 정치 영화가 잇따라 개봉했다. 정치 관련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스크린에 걸린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먼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일대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미주 한인 사회에서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CGV에 따르면 지난 16일 남가주 지역에서 정식 개봉한 건국전쟁은 상영관마다 전석 매진되고 있다. 국가원로회의 서부지부(상임의장 김향로)의 경우 지난 20일 CGV LA에서 각계 원로 80명을 초청, 건국전쟁을 단체로 관람했다.   이 단체 최만규 사무처장은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역사적 사실을 영화를 통해 알게 된 부분이 많았다”며 “영화가 끝나고 대부분의 관객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본지가 21일 CGV LA 측에 문의한 결과 이날 영화 티켓 역시 모두 매진됐다. 이날 극장 앞에는 평일임에도 표를 구하지 못한 한인 수십명이 아쉬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정균(59·LA)씨는 “온라인에서 표를 구할 수 없어 혹시나 하고 극장에 직접 왔는데 역시 매진이었다”며 “다른 정치 영화들은 표가 많이 남아있는데 별로 보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현재 소셜미디어(SNS)에는 인증 사진, 후기 등을 적은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는 단순히 영화를 관람했다는 인증 차원을 넘어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일종의 ‘커밍아웃’과 같다.   진영훈(37·어바인)씨는 “SNS에 건국전쟁 티켓 사진을 올렸더니 페이스북 친구를 끊어버리거나 시비를 거는 이들도 있더라”며 “그들도 다른 정치 성향의 영화를 보고 인증샷을 올리면서 왜 남이 올린 걸 보고 불편해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들은 정치적 색채가 짙어 이념적으로 관람객 성향이 확연하게 갈린다. 쉽게 말해 보수와 진보 진영이 각기 선호하는 영화가 다르다.   12·12사태를 다룬 ‘서울의 봄’, 김대중의 일대기를 기록한 ‘길 위에 김대중’은 대체로 보수 성향을 가진 건국전쟁 관객층과 겹칠 일은 거의 없다. 이미 지난해 12월 LA에서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의 경우 한동안 만석을 이뤘다.   재정 전문가이자 문화 평론가로 활동 중인 문선영(와이즈캘리포니아 대표)씨는 네 번에 걸쳐 CGV LA에서 서울의 봄 상영회를 진행했었다. 당시 600명 이상의 한인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문 대표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성향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건국전쟁은 안 봤다”며 “지금은 사실상 ‘이념 전쟁’으로 봐야 하는데 그만큼 사회가 불안정한 것이 영화를 통해 표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해석도 분분하다. 그만큼 첨예한 이념적 갈등을 보여준다.   일사회 박철웅 회장은 “영화 건국전쟁은 잘못된 한국사를 정립하는 이정표”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UCLA 옥성득 교수(한국기독교학)는 SNS에 ‘이승만 미화 지나치면 독’이라는 글을 게재하며 “이승만 신화 작업이 지나치다”라고 지적했다.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는 김성원 대표(그라운드 C)는 서울의 봄에 대해 “허구가 많은데 사람들은 거기에 감정을 이입하고 있다. 사실을 왜곡한 정치 선동 영화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한편, 한국에서는 영화 건국전쟁의 누적 관객 수가 79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유명 가수 나얼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건국전쟁 포스터를 게재했다가 악성 댓글 등 비난에 시달리면서 결국 댓글 창을 폐쇄하기도 했다. 장열 기자ㆍjang.yeol@koreadaily.com건국전쟁 서울의봄 길위에김대중 보수 진보 CGV 장열 미주중앙일보 로스앤젤레스 LA 이승만 전두환 좌파 우파

2024-02-21

[독자 마당] 전우원 군

나는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 군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대한민국의 앞날에 희망을 보았다.  전 군은 가족인 전두환 일가가 은닉한 거액의 비자금과 각종 불법 행위 등을 과감하게 폭로해 주목을 받았다. 특별히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내용이지만 가족의 치부를 드러낸 그의 용기는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거주하던 미국에서 한국으로 자진 입국해 마약 투약 혐의 등에 대해 조사를 받고 석방되기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저지른 만행을 대신 사죄하고 싶다며 광주를 방문,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묘지를 참배하고 유족도 만났다.     온갖 비난을 각오하고 광주를 방문한 전 군, 그리고 부모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그를 맞이해준 광주시민들, 너무나도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일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너무 옹졸한 반응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전 군처럼 양심이 있는 청년들이 많이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만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의 정치인들도 달라져야 한다.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스스로 윤리적으로 엄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도 특권 의식 대신 엄격한 윤리의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정치인들 가운데 자기 죄는 숨기고, 자녀들의 죄는 감싸는 비양심적인 이들이 많다. 이런 정치인은 국가의 미래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군의 용기 있는 행동에서 배울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정치인이 많아질 때 대한민국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을 전 군에게는 하나님의 보호가 있기를 기도한다.   서상구·미션비에호독자 마당 전우원 손자 전우원 정치인들 가운데 전두환 일가

2023-04-04

전두환 손자 인천공항서 마약 혐의 체포

경찰이 가족을 둘러싼 각종 의혹과 자신의 마약 투약에 대해 폭로성 발언을 해온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씨를 28일(한국시간) 체포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6시 뉴욕 JFK공항을 떠난 전씨가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한 직후 신병을 확보했다.   전씨는 입국 직후 “마음 다치신 분들에게 사죄할 기회가 있어 축복받은 것 같다.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26일 SNS에 항공편 예매내용을 올리고 “도착한 이후 바로 광주로 가겠다”며 “5·18 기념 문화센터에 들러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과 이 사건으로 정신적 피해를 본 모든 분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또 JFK 국제공항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어릴 때) 집에서는 5·18은 폭동이었고, 우리 가족이 피해자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씨는 “이후 비극을 겪으신 분들의 진실한 이야기·증언을 듣고 (진실을) 깨달았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제대로 된 사죄와 회개를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편 법원에서 체포영장과 신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전씨를 상대로 마약류 투약 여부를 검사하는 한편 자신과 지인들이 마약을 투약했다는 발언의 진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전씨는 뉴욕에 체류하던 지난 13일부터 SNS와 유튜브 등을 통해 일가의 비자금 의혹 등을 폭로하고 본인과 지인들이 마약사범이라고 밝혔다. 특히 지난 17일에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 도중 마약을 투약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뒤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전두환 전두환 손자 전우원 전두환 손자 전우원

2023-03-27

전두환 손자 폭로 "가족들 '검은돈' 쓰고 있다"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미국명 제이미 전·27)씨가 가족 내부의 비위와 범죄 사실을 생방송 영상으로 폭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뉴욕에 거주하는 전씨는 전두환의 세 아들 중에 차남인 전재용씨의 둘째 아들로 현재 P 회계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14일 유튜브 라이브 동영상을 통해 “저희 가족과 주변인들의 범죄는 물론 저 자신의 범죄도 고발하고 사죄하려고 한다”며 “탈세와 성추행, 마약 범죄까지 모두 처벌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친형 전우성(저스틴 전)에 대해서도 “오피스텔 등에서 성범죄 경력이 있다. 법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모부인 박모씨씨에 대해서도 “저와 형을 여성들이 나오는 문란한 술집에 데려가 여성들을 희롱하고 저에게 (여성들을) 만지라고 시켰다”고 주장했다.     K모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K모 여성에 대해서는 “내게 처음으로 마약을 권했고 안 가져다준 마약이 없는 심각한 수준의 마약 딜러”라며 “나를 자살로 이끌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친형 우성씨의 지인인 B모씨에 대해서는 “한국 공군 복무 중인데 코카인 등 강력한 마약을 사용하고 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12분가량의 영상에서는 조모 이순자씨가 스크린 골프를 치는 모습도 담겨있는데 우원씨는 “어떻게 돈이 없다고 주장한 그들이 집에서 이렇게 호화생활을 하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씨는 유튜브 채낼 내 다른 영상을 통해 자신이 전씨 일가 재산의 상속을 포기했다고 서류를 내보이기도 했고, 부모인 전재용과 박상아가 과거 “한국에는 ‘일을 한다’고 거짓을 말하고 실제로는 미국에서 동거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부모 둘다 이젠 한국에서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동시에 부모에 대해 한국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돈으로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법의 심판으로부터 도망가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들이 자신에게 ‘정신이상 프레임’을 씌울까 봐 우려된다며 “저는 작년 1월부터 우울증, ADHD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했다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나와 정상적으로 지금 몇 달간 일을 잘했다”고 밝혔다.   영상이 물의를 빚자 전재용씨는 조선닷컴과 통화에서 “아들의 우울증이 악화했다. 저는 가족이어서 괜찮은데 다른 지인들이 피해를 보셔서 죄송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해당 영상이 올라간 14일에는 350여 건의 댓글이 달리는 등 반응도 뜨거웠다. 한인들은 댓글에서 “이제야 양심선언이 나오는 것이냐, 늦었지만 다행” “이를 계기로 자금 출처를 철저히 조사하라” “명명백백히 밝힐 기회가 왔다”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전두환 검은돈 전두환 손자 가족들 검은돈 마약 범죄

2023-03-14

[삶의 뜨락에서] 감투와 모자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좀 못난 사람이라도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주위에서 보좌를 잘해주면 큰일을 할 수도 있고 남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업적을 이루어 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지 자리가 사람에게 맞지 않으면 당사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불행해집니다. 우리는 지위를 감투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감투를 쓴다고 합니다. 감투가 머리보다 아주 작으면 맞지 않는 감투를 쓴 머리가 아플 것이고 감투가 너무 크면 머리를 전부 가려서 앞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는 단종이 임금이 되었을 때 그는 어린애였습니다. 정치는 물론 처신을 할 줄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전국옥쇄를 가지고 호두를 까먹었다고 하니 나이 많은 삼촌 수양대군이 한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수양은 단종의 지위를 빼앗고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강화도에서 소를 치던 소년으로 있다가 왕이 된 철종은 나라를 어찌 다스릴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왕을 제쳐놓고 당파 싸움에 정신이 없었고 나라는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인가 해양부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여자가 해양부 장관이 되었고 그는 국회로 불려 나가 호된 망신만 당하고 얼마 있다 물러났습니다.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대통령이 무식하다느니 교육과 경제를 모른다느니 하는 말들을 합니다. 물론 대통령이 모두 잘 알면 좋겠지요. 그러나 누가 국방, 경제, 교육, 사회, 사법을 모두 알겠습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대통령을 계획했던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도 모든 부분을 알지 못했고 어떤 대통령은 교육부 장관을 잘못 뽑았다고, 어떤 대통령은 경제 부총리를 잘못 뽑았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은 권력 투쟁을 했다고 비난을 받지만, 정치를 잘못했다고 비난을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많은 전문가와 많은 인재를 뽑은 것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라고 했지만, 그의 인사는 그의 말처럼 잘 안 되어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나라의 일만이 아닙니다. 어떤 기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기관이나 최고의 자리에 앉으면 많은 아첨하는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리고 Richard Stingel 의 말처럼 아첨하는 소리를 들을 때 우리 몸에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 아첨하는 소리 때문에 그 소리에 맞는 인사를 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기가 힘이 들고 그 역량을 발휘하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근무하던 대학병원에 밑의 사람에게는 가혹하고 오만하며 부정을 하던 과장이 병원장이 출근하는 길목에 서 있다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며 아첨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처럼 원장이 출근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장은 그의 아첨이 기분이 좋았던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그를 두둔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원장이 자기가 속은 것을 알았지만….     모자를 쓰는 여자, 남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들은 모자를 쓰는 것이 자연스럽고 멋이 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여자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자들도 험프리 보카드처럼 모자가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안소니 퀸처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투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어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제갈량처럼 승상에 어울리는 사람도 있고 유선처럼 제왕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있고.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감투 모자 김영삼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대통령 선거

2022-12-05

[삶의 뜨락에서] 냉혈한

한 은행과장이 있는데 이 사람은 아주 사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은행 업무의 일점 착오도 허락하지 않는 사무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완전무결을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라서 일상생활에서 웃는 일이 없었고 항상 싸늘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이 그의 옆에만 가도 감기에 걸린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날 은행 직원이 업무 중에 쓰러져 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가 수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피검사를 하니 이 은행 간부 밖에 맞는 피가 없었습니다. 냉정한 은행가는 싫다고 버텼으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은행 직원들의 강권 때문에 채혈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수혈했는데 환자가 사망했습니다. 환자의 가족은 항의하고 병원에서 조사했는데 아무런 착오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본 결과 은행원의 피가 너무 차가워서 피가 들어가면서 환자가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살면서 차가운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항상 표정은 냉랭하고 얼굴에 웃음을 보이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과대학에 다닐 때 C라는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아주 훌륭한 의사였는데 그 교수님이 웃는 것을 본 사람이 없다는 냉랭한 분이었습니다. 그 교수님 밑에서 교육받은 전공의들은 교수님의 웃는 얼굴을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는 교수님입니다. 전공의가 아침에 늦으면 “그렇게 출근하기가 힘들면 집에서 쉬어”라고 한마디 하고는 돌아서서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환자가 교수님의 지시를 어기는 일이 있으면 “그렇게 말을 안 들으려면 병원에는 왜 와, 한약방에나 가보지”하고는 일어서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학생들이나 전공의는 교수님 옆에만 가면 한기가 느껴지고 감기에 걸린다고도 하고 실수가 있을까 전전긍긍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졸업 사은회 때 그 교수님을 초대하고 사은품으로 그때 상영 중이던 토니 커티스와 메릴린 먼로가 출연하는 ‘뜨거운 것이 좋아’라는 입장권을 사드린 일이 있습니다. 물론 교수님 중에는 무서운 교수님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섭게 야단을 치시고는 좀 있다가 웃어주시는 교수님들이 계셨습니다. 우리는 야단을 맞아도 이런 온기가 있는 교수님이 좋았습니다.     몇 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다수당의 대통령이 3분의 2의 표가 필요한 탄핵투표에서 패배했을까요. 물론 좌파들의 선동과 음모 때문이지만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는 법적으로 잘못이 없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의 옳은 것과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몸을 던지려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는 말입니다. 한참 광화문에서 데모할 때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홀로 그 불길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을 보호하던 장세동 같은 인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몸속에서 따뜻한 체온이 풍겨야 하고 얼굴에 미소가 묻어나야 하고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따뜻한 웃음과 온기가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장님을 고칠 때 침을 뱉어서 진흙을 이겨서 소경에 눈에 바르고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장난기가 있는 분입니까. 나사로가 죽었을 때는 울기도 하셨고 세금을 내라고 하니까 베드로에게 낚시하여 처음 잡은 물고기 입에서 동전을 갖다가 세금으로 내라고 하시는 그 유머 있는 분입니다. 곧은 것과 차가운 것은 다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냉혈한 은행 직원들 전두환 대통령 은행 업무

2022-09-27

합천 전두환 분향소 규탄 확산…정치·시민단체 반발 잇따라

합천 전두환 분향소 규탄 확산…정치·시민단체 반발 잇따라 진보당·지역 시민단체 회견…합천군·문중, 철거 계획 없어       (창원·합천=연합뉴스) 박정헌 한지은 기자 = 경남 합천군에서 완산 전씨 문중이 전두환 전 대통령 분향소를 설치하자 지역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군민 정서를 고려해 강제 철거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문중도 자진 철거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어서 분향소 운영 마지막 날인 오는 27일까지 별다른 조처는 없을 전망이다. 진보당 경남도당과 전두환 적폐 청산 경남본부는 25일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합천군은 전두환 분향소를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합천군청이 분향소 설치를 불허해놓고 합천군수가 조문을 한 것은 기만적이고 부끄러운 작태"라며 "전두환의 고향 합천에서 전두환을 추모하는 공간을 공식적으로 마련한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분향소 철거 촉구와 함께 전씨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 명칭 변경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합천 시민단체 '생명의 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도 이날 합천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이 분향소 설치를 사실상 묵인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문준희 군수는 일해공원 분향소를 찾아 향을 피워 올리고 엎드려 절을 했다"며 "군청 공무원은 공공시설 불법점유를 이유로 철거통지를 하고 군청 최고 책임자는 보란 듯이 분향하는 모습에 소름이 돋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군이 겉으로 공식적 추도를 하지 않는다면서 속으로 딴생각을 품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분향소를 사적영역에서 공적영역으로 옮기게 된 것은 군수와 국민의힘 소속 군의원들 뒷배가 있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전날 문 군수는 일부 군의원들과 함께 분향소를 찾아 분향·조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지역 시민사회 일각에서 군이 앞뒤가 다른 행보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론을 의식해 겉으로는 분향소를 불허하는 척하며 사실상 묵인·방조하는 행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군은 군민 정서를 고려해 강제 철거보다 자진 철거를 권유 중이라는 입장이다. 주민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공공장소에 분향소를 설치한 만큼 분향소 설치를 불허했으며 문중이 이를 따르지 않아 자진 철거 명령도 했다는 것이다. 또 문 군수의 분향소 방문은 공식적인 추도가 아니며 수상 태양광 행사 참여 뒤 돌아오는 길에 현장을 잠시 들러 예를 갖춘 뒤 자진 철거를 설득했다고 해명했다. 분향소를 설치한 문중도 집안에서 장사를 지내는 데 군이나 시민단체가 간섭할 권리가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인다. 80대 문중 관계자는 "집안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군수 허락을 받고 장사를 지낼 순 없다"며 "전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자세히 알지 못하고 다른 의도도 없으며 그저 집안의 어른이라 분향소를 설치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home1223@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시민단체 전두환 전두환 분향소 합천 시민단체 합천 전두환

2021-11-25

주미 대사관 전두환 빈소 계획 없어

주미 한국대사관은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을 위한 별도의 빈소를 설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정부가 장례 절차와 관련한 국가장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예우와 관련한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국가장으로 예우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국가장의 장례위원장을 맡았던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합법적 절차로 국민 손에 뽑혀 대통령이 됐고 추징금도 완납했으며 유족들이 광주에 진정성 있게 참회해왔다”며 “국가장은 국민 수용성 여부를 중요하게 판단해 결정되는 사안”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한국의 국무총리실 관계자도 “절차상으로는 유족들의 의견을 고려해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면 국가장이 가능하다”면서도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의 불법적 정권탈취와 광주에 대한 책임 등에 대해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급작스런 사망 소식에 따라 장례절차와 예우 등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내부 논의가 먼저 진행될 필요가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조문과 조화 여부 등 모든 관련 절차 역시 논의가 이뤄진 뒤에 구체적 방식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내에서는 국가장을 결정했던 노 전 대통령 때와는 달리, 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예우를 하지 않는 방향의 결정이 이뤄질 거란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노 전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케이스”라고 했다.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의 장례가 국가장으로 치러진 것은 김영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두차례다. 앞서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국장으로, 최규하,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는 국민장으로 진행됐다. 이승만, 윤보선 전 대통령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렀다.   김옥채 기자 kimokchae04@gmail.com대사관 전두환 주미 한국대사관 주미 대사관 대통령 국가장

2021-11-23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지병 앓다 90세 일기로<1931~2021>

 대한민국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사진) 전 대통령이 23일(한국 시간) 사망했다. 향년 90세.     지병을 앓아온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4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 쓰러진 채 발견됐다. 심폐 정지가 온 것으로 추정된다. 전 전 대통령은 그동안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성 골수종과 체내 칼슘 수치가 상승하는 고칼슘혈증 등을 앓아왔다. 지난 8월 중순에는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오전 9시 12분께 사망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신은 곧 연대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됐다.   한편, 지난달 26일 12·12 군사 쿠데타 동지 관계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한 데 이어 한 달도 되지 않아 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떠났다.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씨는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뒤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고 무인으로서 출세 가도를 달렸다.   이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데 이어 정권 찬탈을 위한 ‘12·12 군사반란’을 획책했다.   군사 반란을 통해 집권한 전씨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으며 1988년 초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퇴임 후 내란과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관계특집 2·3면〉전두환 대통령 대통령 사망 박정희 대통령 사망 사실

2021-11-22

1981년 LA한인타운 첫 방문…85년 방문 땐 한인 식당 찾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 1981년 1월 LA를 방문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외국 정상 가운데 첫 번째 국빈 자격 초청이라 관심을 끌었다.       당시 LA 총영사관의 박민수 총영사와 전 공관원들이 전 대통령의 LA 방문을 앞두고 ‘대통령 초청 교민 간담회’를 비롯한 여러 행사 준비를 위해 여념이 없었다.  전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 씨가 대통령 방미 선발대로 와서 대통령이 묵을 센추리 플라자 호텔에 미리 왔다. 당시 박 총영사와 이민휘 LA한인회장을 포함해 40여 한인 단체 대표로 구성된 ‘전 대통령 내외 범교포환영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LA에 한국 대통령이 온 것은 18년 만이었다. 한인들은 버스 20대를 대절해 2500여명이 LA국제공항 환영 행사에 나갔다. 역대 대통령 환영 행사 중 최다 인파다.     전 대통령이 숙소로 가기 전 코스인 한인타운 중심인 올림픽 불러바드 선상 노먼디와 웨스턴 구간에 태극기 180쌍이 꽂혔고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거리에 2만여 한인이 참석했고 반대 시위자도 적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 때 기증한 우정의 종도 전두환 대통령이 첫 타종했다.       전 대통령은 4년 뒤인 1985년 4월 24일 LA를 다시 방문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가던 길에 LA에 들른 전 대통령은 25일 새벽 8가 할매집 식당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민주인사들은 시위를 통해 전 대통령의 무력 정권찬탈과 광주학살 등을 격렬히 항의했다. 원용석 기자방문 la한인타운 la 방문 이민휘 la한인회장 전두환 대통령

2021-11-22

[전두환 사망] 반성도 사죄도 없었다…'역사의 단죄' 받은 정치군인

[전두환 사망] 반성도 사죄도 없었다…'역사의 단죄' 받은 정치군인 육사 졸업 후 정치군인의 길…12·12, 5·18로 권력 장악 퇴임 후 끝없는 추락…광주의 진실 끝내 안밝혀 집권시 경제성장, 스포츠·문화 발전 두고도 비판론     (서울=연합뉴스) 고상민 기자 =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역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와 상처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시대적 상황이 나를 역사의 전면에 끌어냈다"(2017년 회고록)고 주장했지만, 현대사에선 '대통령 전두환'이 아닌 민주주의를 짓밟은 정치군인을 지칭하는 말이 됐다. ◇ 육사 졸업 후 정치군인의 길로…12·12쿠데타, 5·17조치로 정권 찬탈 그는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그는 대구공고를 졸업한 뒤 1951년 육사(11기)에 들어가면서 엘리트 군인 코스를 밟았다. 대통령직을 물려주었음에도 백담사 유배를 떠나게 한 동기생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 만남'도 육사에서 시작됐다. 육사 시절 동기생 사이에서 보스 역할을 자청하고 1961년 5·16 군사쿠데타 때 육사 후배들의 쿠데타 지지 거리 행진을 주도하는 등 권력욕이 남달랐다는 것으로 알려졌다. 1955년 소위로 임관한 그는 ▲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 민원비서관 ▲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 제1공수특전단장을 거치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58년 육군 장군이었던 이규동 씨의 차녀 이순자 씨와 결혼했다. 영남 출신 육사 동기와 후배를 중심으로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결성을 주도한 그는 1976년 대통령경호실 차장보로 박정희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권력 중심에 바짝 다가서게 된다. 1979년 3월 보안사령관에 오른 그는 그해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흉탄에 서거하자 권력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10·26 사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그는 각종 월권행위로 군내 비판이 일면서 교체 위기에 몰리자 하나회 장교들과 군사반란을 도모했다. 그는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은 채 내란 방조 혐의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강제 연행하고 전방 육군 병력을 서울로 출동시켜 군 지휘체계를 무너트리는 하극상을 저질렀다. 군의 실권을 장악한 뒤 하나회 출신으로 군부를 재편한 그는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최규하 대통령을 겁박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3김(金)을 정치규제로 묶고 권력을 일거에 장악했다. 5·17 조치 다음날 광주 시민들은 민주주의 복원을 외치며 거리에 몰려나와 저항했으나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투입, 유혈 진압을 감행하며 현대사 최대의 비극을 낳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짓밟은 전씨는 1980년 6월 초헌법적 기구인 국가 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킨 데 이어 국회를 해산시킴으로써 대통령 권좌를 확보했다. 같은 해 8월 대장 계급으로 군복을 벗고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5공 독재 정권의 서막이었다. 80년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을 하야시킨 뒤 그해 유신헌법에서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 7년 독재 후 육사 동기생에 정권 이양 5공 헌법을 만들고 1981년 제1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비리·부패·정쟁의 일소를 부르짖었다. 정권의 구호는 '정의사회 구현'이었지만 나라 전체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언론 통폐합 조치와 보도지침을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렸고 학원가에는 안기부와 보안사 요원들을 풀어 학생들을 감시했다. 야당 인사와 학생들은 친북 용공 혐의가 씌워져 모진 고문을 당했다. 기업인들을 겁박, 통치자금을 조성해 부정축재를 일삼았고, 권력자들과의 친분을 축재에 이용한 '장영자 사건' 등 집권기 내내 각종 금융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독재 정권을 무너트린 건 민주화를 염원하는 국민이었다. 1987년 1월 서울 서빙고 대공분실에 연행된 서울대생 박종철의 고문 치사 사건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로 덮으려 한 경찰의 발표는 6월 항쟁이라는 국민적 저항을 불렀다. 전씨는 4·13 호헌조치로 5공 연장을 획책했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굴복, 권력의 정점에서 떨어지게 된다. 전씨는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 6·29 선언으로 여론이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조성된 상황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김의 분열에 힘입어 6공화국을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퇴임 한 달만에 동생 전경환씨가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등 여소야대 지형에서 5공 청산의 거센 바람이 불어닥치며 끝없는 추락을 맛보게 된다. 1988년 11월 재임 기간 과오와 비리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치자금 139억원과 개인재산 23억원 등 재산을 헌납한 뒤 이순자씨와 함께 강원도 백담사 유배 길에 올랐다. 백담사로 향한 11월23일은 공교롭게도 전씨가 숨진 날이기도 하다. 백담사 유배 중 1989년 12월 31일 야권의 요구에 국회 광주특위와 5공특위 합동회의에 출석, 증언대에 서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국회의원이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 청문회장에서 그에게 명패를 집어 던진 장면은 5공 청산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았다. 1990년 12월 백담사에서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던 것은 역사의 단죄였다. 문민정부를 연 김영삼 전 대통령의 하나회 해체와 12·12, 5·18 진상규명 및 관련자 처벌 등 과거사 청산 조치에 따라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1995년 12월 내란죄 혐의로 검찰의 출두 통보를 받은 전씨는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골목길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 합천으로 내려가 또 한번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이 집행돼 고향 땅에서 압송된 그는 한겨울 4평 남짓한 차디찬 교도소 독방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12.12쿠데타를 주도한 지 16년만에 이뤄진 심판이었다. 그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승리한 1997년 12월 대선 직후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구속 2년 만에 풀려났지만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하지 않았다. "돈이 없다"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고 회고록과 재판을 통해 광주의 진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서울올림픽 개최, 물가안정 등 경제성장 두고 양론 전두환 정권은 물가안정 등 경제성장 기조를 유지했고 88하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등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고 전씨측은 자체 평가한다. 장기집권을 획책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달리 7년 단임 약속을 지켰다는 점도 전씨가 내세우는 '치적' 중 하나다. 그는 2017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를 평화적으로 후임에게 이양한 것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당장 경제성장을 두고도 "박정희가 차려놓은 밥상 위의 밥을 먹은 것"이라는 반론이 적지 않다. 통치자금 명목으로 수출 대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인 재산을 끌어모은 점도 전두환 정권이 경제성장에 공을 들였다는 평가를 무색케 한다. 프로야구를 비롯한 스포츠와 영화 등 소프트 분야 발전에 나름 공을 들였다고 하지만 '3S(스포츠·섹스·스크린) 정권'이란 말이 따라붙는 것에서 보듯, 문화를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해 민주화 열망을 꺾는 우민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gorious@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전두환 사망 정치군인 반성 정치군인육사 졸업 대통령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

2021-11-22

전두환 '장기집권 시나리오' UCLA서 발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담은 비밀보고서 원본을 UCLA 동아시아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본은 현재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5·18 재단이 미국 현지에서 실물 원본을 확인해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7일 재단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UCLA 동아시아 도서관에서 확보한 5·18 관련 자료 목록과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자료 중에는 1984년 작성된 '88년 평화적 정권교체를 위한 준비연구' 보고서 원본이 발견돼 다른 자료들과 함께 재단이 이를 분석 중이다. 전두환 대통령 재임 시절 정구호 전 경향신문 사장에게 작성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이 보고서는 퇴임 후에도 이어지는 장기집권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전씨 자신이 민정당 총재를 맡고 후임 대통령은 부총재직을 겸임토록 한다는 기본구상 아래 후계자 육성과 선정, 대통령 지도력 및 민정당 강화, 1988년까지 예상되는 정국 불안요인과 대책 등을 광범위하게 다뤘다. 보고서는 1988년 국회 5공비리조사특위 청문회에서 첨예한 이슈로 떠올랐으나 지금까지 원본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최 연구원은 미국 기독교 계열 인권운동단체인 'KCCPJR(Korea Church Coalition for Peace, Justice, and Reunification)이 1995년 해산하면서 보고서를 다른 5·18 문건과 함께 UCLA에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5·18재단은 도서관이 보관 중인 5·18 관련 문건을 국내로 들여와 분석하고자 지난해부터 UCLA와 업무협약 체결을 논의하고 있으나 연구 목적을 위한 열람만 가능한 상태라 보고서 실물을 공개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투기 폭격까지 준비했다는 의혹이 담긴 UCLA 도서관 자료 내용도 이날 함께 공개했다. 5·18재단은 도서관 자료를 인용해 "미국이 광주를 폭격할 계획을 세웠으나 광주 체류 선교사들이 반대해서 철회했다는 내용을 확인했다"며 "출처를 알 수 없는 영문책자로 '톰 설리번'이라는 일본 도쿄 주재 미국 기자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이번에 확보한 1980년 5월 23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 기자 브리핑 질의·응답 자료를 보면 미국 측 기자들도 소문 진위를 확인하고자 호딩 카터 당시 대변인에게 질문하는 내용이 있다"고 덧붙였다. 당시 미 국무부 측 답변으로는 "호딩 카터가 이 질문에 대해 '국방부 소관'이라며 회피했다"고 설명했다. 5·18 당시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투기에 공대지 폭탄(공중에서 지상으로 투하하는 폭탄)을 장착한 채 출격을 대기했다는 의혹은 올해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37년 만에 최초로 알려졌다. 광주에 전투기 폭격까지 준비한 것이 사실이라면 계엄군을 투입해 광주 시민에게 총격을 가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서 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해 활동 중이다.

2017-12-07

비자금으로 존스크릭 주택 산 전두환 일가 재산 몰수

연방법무부는 4일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미국내 재산 122만 달러를 몰수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날 ‘122만6000달러 몰수를 끝으로 미국 내 재판을 종결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전씨의 차남 재용 씨와 함께 작성했다. 합의서에는 재용 씨 부인 박상아 씨와 박 씨 어머니 윤양자 씨가 공동으로 서명했다. 이번에 몰수된 전씨 일가의 미국 내 재산 122만6천 달러는 차남 재용 씨 소유의 주택 매각대금과 재용 씨 부인 박씨의 미국내 투자금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금 가운데는 2003년 박씨가 구입한 존스크릭 고급주택 매각대금이 포함돼 있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전씨의 장인 이규동 씨는 2000년 전재용 씨가 소유한 비자금 계좌에 2000만달러를 송금했다. 재용 씨는 이 돈을 여러 은행에 분산 예치했으며, 이중 일부를 2003년 존스크릭에 위치한 고급주택 구입에 사용했다. 검찰은 “재용 씨는 존스크릭 주택을 36만5000달러에 구입했지만, 이를 충당할만한 특별한 자금이 없었다”며 “존스크릭 저택은 비자금으로 구입했다고 볼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재용 씨는 이 주택을 2004년 되판 후, 이 돈을 2005년 뉴포트비치의 224만달러짜리 고급주택 구매자금에 보탰다. 이 고급주택의 매각대금 잔여분 72만6000달러는 지난해 2월 연방법무부에 몰수된바 있다. 연방법무부는 또 지난해 9월 초에는 펜실베이니아 주 동부지방법원으로부터 박 씨의 투자금 50만 달러에 대한 몰수 영장도 받아냈다. 법무부는 당시 투자금 50만 달러의 소유주와 관련해선 전 씨의 며느리라고만 밝혔다. 그러나 당시 현지 언론은 박 씨가 투자이민 비자인 EB-5를 받기 위해 2009년 4월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컨벤션센터에 투자한 돈이라고 보도했다. 연방법무부는 향후 절차를 거쳐 몰수한 122만6000달러를 한국 정부에 돌려줄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법무부는 이외에도 한미 수사 공조를 통해 한국 정부가 전씨 일가의 재산 2천750만 달러(302억7천만 원)를 몰수하는데도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재산의 구체적인 성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종원 기자

201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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