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AI 인사이트] 인공지능의 답은 통찰로 가는 길

ChatGPT가 발표되며 AI(인공지능)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초기의 폭발적인 관심과 경이로움, 그리고 두려움도 이제는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지나친 기대감, AI로 인해 사라져갈 직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AI가 만들어내는 실수에 대한 조롱도 이제는 보다 학습된 대중과 더욱 발전한 AI로 차분하게 이해되어가는 모습이다.   AI가 미래의 중요 산업기술로, 국가간 치열한 경쟁의 아이템으로, 또는 개인의 생산성 향상의 유용한 도구라는 점은 더욱 분명해졌다. 지난주 미국 새 행정부가 스타게이트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약 5000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을 미국 AI인프라 구축에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을 보아도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AI는 배움에 대해 패러다임을 바꿀 정도의 큰 잠재력으로 단기간에 많은 것을 변화시키고 있다.     간단하게는 학생들 숙제에서 ChatGPT의 사용에서부터 저명한 학술 저널 논문에서의 AI 사용 가능성까지 AI가 교육에 미치는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AI의 사용 여부보다는 어떻게 잘 활용하여 교육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중심이 되고 있다. 직접적으론 학교 정규 교육에서 AI의 활용, 더욱 광범위하게는 삶 전체에서의 배움에 AI를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칼럼을 통해 AI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려 한다.   먼저 AI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미국 교육부는 AI를 ‘automation based on associations’라고 정의한다.  즉, 연관성에 기반한 자동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설명되는 AI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이 정의가 현재 단계의 AI를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기술한다고 생각한다.   컴퓨터가 대용량 데이터(현실 세계의 현상에 관한 기록 또는 컴퓨터에 저장된 전문 지식) 사이에서 유도된 연관성(즉, 현실 세계 현상 간의 관계, 패턴 또는 규칙)을 기반으로 인간처럼 추론(예측이나 결론을 도출)을 자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AI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랜 기간 수집된 수많은 금융 거래 데이터를 통해 거래 패턴을 학습한 후 새로운 신용카드 거래가 사기인지를 추론하는 것, 다양하게 수집된 의료 영상 데이터를 분석해 암진단을 하는 것 등이 전형적인 AI 활용 사례이다.     따라서 AI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은 현실 세계를 컴퓨터에 표현하는 데이터와, 연관성과 추론을 수행하는 알고리즘이다. 여기에 일정 시간 안에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이 필요하다.     문제 해결의 핵심을 가지고 있는 양질의 데이터가 없으면 양질의 추론이 불가능하며, 좋은 데이터가 있어도 알고리즘에 따라 추론의 정확성이 달라질 수 있기에 알고리즘이 중요하다.     또한 현실적인 해법과 응용을 위해서는 신속한 처리가 요구되기에 하드웨어 역시 중요하다.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수집해 소유하고 있는 구글과 같은 큰 회사가 힘을 갖고, 작지만 뛰어난 알고리즘의 소프트웨어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OpenAI, 그리고 빠른 GPU 하드웨어로 단순간에 주식가치 세계 1위로 오른 엔비디어가 세계 AI 시장을 지배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AI의 핵심은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이를 처리하는 하드웨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적인 이해와 더불어 중요한 점은 AI를 사용하는 인간의 태도와 접근 방식이다. AI는 도구일 뿐,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 될 것이다.   AI 시대의 배움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기술의 활용 방법뿐 아니라, 이를 통해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더 깊은 통찰을 얻는 능력이다. AI가 모든 답을 주는 시대가 아니라, AI와 함께 더 나은 답을 찾아가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김선호 / USC 컴퓨터 과학자AI 인사이트 인공지능 통찰 대용량 데이터 컴퓨터 시스템 거래 패턴

2025-01-29

[우리말 바루기] 익숙지? 익숙치?

다음 중에서 틀린 표기를 고르시오.   ㄱ.익숙지 ㄴ.익숙치 ㄷ.익숙하지   물론 ‘익숙하지’를 고른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ㄱ이나 ㄴ 둘 가운데 하나가 문제다. 간결한 맛이 있기 때문에 세 글자로 적고 싶은데 ‘익숙지’인지 ‘익숙치’인지 헷갈린다.   아마도 ‘익숙지’를 잘못된 표기라고 고른 사람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대충 소리 나는 대로 적다 보면 ‘익숙치’가 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익숙지’는 무언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익숙지’가 바른 표기다. 틀린 표기는 ‘익숙치’다. 발음만으로는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헷갈리는 부분이다.   ‘-하지’가 줄어들 때 ‘-지’가 되느냐 ‘-치’가 되느냐는 ‘-하지’ 앞이 유성음이냐, 무성음이냐에 달려 있다. 목청이 떨려 울리는 소리가 유성음이고 성대를 진동시키지 않고 내는 소리가 무성음이다.   ‘-하지’ 앞이 유성음(모음이나 ㄴ, ㄹ, ㅁ, ㅇ)일 때는 ‘ㅏ’만 떨어져 ‘ㅎ+지=치’가 된다. ‘흔치, 간단치, 만만치, 적절치, 가당치, 온당치’ 등이 이런 예다.   ‘-하지’ 앞이 무성음(ㄱ, ㅂ, ㅅ)일 때는 ‘-하지’가 줄어들 때 ‘하’ 전체가 떨어지고 ‘지’만 남는다. ‘익숙지, 넉넉지, 거북지, 답답지, 섭섭지, 깨끗지, 떳떳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현상은 ‘-하다’ ‘-하게’ ‘-하도록’ ‘-하건대’가 줄어들 때도 마찬가지다. ‘흔하다→흔타’ ‘다정하다→다정타’ ‘간편하게→간편케’ ‘이바지하도록→이바지토록’ ‘생각하건대→생각건대’ ‘참석하기로→참석기로’ 등으로 적어야 한다.   유성음 뒤에서는 자연스럽게 거센소리가 나므로 크게 헷갈리지 않는다. 무성음인 ‘ㄱ, ㅂ, ㅅ’ 뒤에선 거센소리가 아닌 ‘지’ ‘게’ ‘다’ ‘기’ 등으로 적는다고 기억하면 쉽다. 그래도 어렵거나 헷갈리면 줄이지 말고 아예 ‘익숙하지’ ‘넉넉하지’ 등으로 적으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2025-01-29

[문장으로 읽는 책] 소녀들의 공기놀이

아이들아, 너는 이 지구별에 놀러 왔단다. 더 많이 갖기 위한 비교 경쟁에 인생을 다 바치기엔 우리 삶은 너무나 짧고 소중한 것이란다. 너는 맘껏 놀고 기뻐하고 사랑하고 감사하라. 그리고 네 삶을 망치는 모든 것들과 싸워가거라. 인생은 수고(受苦)의 놀이터이니 고통받기를 두려워 말고, 고통을 공깃돌 삼아 저마다의 삶을 누리며 행복하라.   박노해 에세이 ‘공기놀이’ 중.   박노해 시인의 사진 에세이집 『다른 길』에 실린 글이다. 시인은 지난 2000년부터 20년간 낡은 만년필과 흑백 필름 카메라를 들고 지도에도 없는 중앙아시아의 작은 마을을 찾아다녔다. 삶의 ‘다른 길’을 찾아 헤맨 유랑이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과 풍광을 짧은 글과 사진으로 모은 책이 여러 권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시인은 “간절하게 길을 찾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속에 자신만의 별의 지도가 빛나고 있다”고 썼다.   짧고 단단한 문장들이 많아 계속 밑줄을 그었다. “이 지상의 작고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무너져내리면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세계는 여지없이 무너지리라.”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 작지만 끝까지 꾸준히 밀어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아는 가장 위대한 삶의 길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의 등뼈를 곧게 세우고 깃발도 없이 길을 찾아가다 보면 때로는 사람이 깃발이 되는 것이다.” 공기놀이는 세계 곳곳에서 전해오는 오래된 놀이다. 빠른 손놀림으로 돌멩이를 다루는 이 단순한 놀이에서 시인은 노동과 유희가 어우러진 삶의 에너지를 읽는다. 에세이의 앞부분은 이렇다. “파슈툰 소녀들이 공기놀이에 빠져있다. 인류에게 가장 오래된 놀이인 소녀들의 공기놀이는 섬세한 손놀림으로 열매를 따고 새알을 채취한 데서 왔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공기놀이 소녀 박노해 시인 박노해 에세이 사진 에세이집

2025-01-29

[이 아침에] 맥다방 점심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일이면 교회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주일이면 교우들과 맥도널드 (맥다방)에서 점심을 먹는다. 맥다방에서 점심을 먹게 된 사연을 설명하자면 긴 이야기가 되는데,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다니는 공동체는 학교 성당을 빌려 사용하기 때문에 별도의 식당이나 부엌이 없다. 일 년에 몇 차례 큰 행사가 있을 때만 카페테리아 사용허가를 받아 캐터링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 한동안 구역 식구들이 커피와 다과를 준비해 와 미사 후 주자창 한쪽에서 나누다가 어느 날 맥다방으로 진출했다.   성당 근처 맥다방이 보수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자 한 번 가보자 해서 간 것이다. 아늑한 공간에 앉아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시니어 커피까지 마시며 한참을 놀다 나왔다. 다음주가 되니 아줌마들이 오늘은 안 가느냐고 묻는다. 알고 보니 점심준비로부터 해방되는 맛을 본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여럿이 모이면 어떻게 노는지 모르겠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앉는다. 우리도 남녀 두 개의 테이블에 따로 앉는다. 점심값도 각 테이블이 따로 계산한다.   남자들은 다섯 명이 돌아가며 사고, 여자들은 회비를 걷어 해결하는 모양이다. 짜장면 두 그릇 값이면 다섯 명이 세트 메뉴를 먹고 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 샌드위치+프렌치 프라이즈+맥너깃+음료 등이 나오는 세트 메뉴가 맥치킨은 5달러, 맥더블 햄버거는 6달러이며, 시니어 커피는 89센트다. 게다가 리필은 공짜다. 전화기에 맥도널드 앱을 깔면 포인트도 쌓이고 쿠폰도 이용할 수 있다. 우리는 주로 20% off 쿠폰을 쓴다.   맥도널드도 가게마다 가격이 다르다. 본사가 운영하는 곳이 있고, 개인이 프랜차이즈로 운영하는 곳이 있는데, 본사가 운영하는 곳이 저렴하다. 한 번은 다른 동네 맥다방에 가서 커피를 시키며 함께 간 친구가 커피에 넣어 마시게 더운물을 달라고 했더니 돈을 내라고 한다. 언젠가 커피빈에서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런 곳은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다. 우리가 가는 직영점에서는 없는 일이다.   심각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남자들 노는 모습은 비슷하다. 실없는 농담이 오가고, 영양가 없고 뜬금없는 소리도 많이 한다. 때론 유익한 정보를 주고받기도 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축하해 주고, 힘든 일이 있으며 함께 걱정하고 위로해 주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야뇨증과 요실금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 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사는구나 하는 것만 알아도 위로가 된다.   보통 여자들이 말이 많다 하지 않나. 그런데 알고 보니 남자들도 만만치 않다. 요즘은 아줌마들이 먼저 일어서며 “갑시다” 해야 헤어진다. 엊그제는 여자들이 일어서는 것을 “5분만 더” 하고 잡아두는 일도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재택근무를 하거나 은퇴를 하고 나면 세상이 좁아진다. 은퇴하고 1년 반이 지났다. 내 허접한 농담에도 웃어주고, 맥다방에서 밥을 사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맥다방 점심 맥다방 점심 동네 맥다방 시니어 커피

2025-01-29

[사설] 교계 세대교체는 도전과 기회

남가주 한인 교계 리더십에 ‘40대 기수론’이 확산하고 있다. 대형교회는 물론 작은 교회들의 개척 1세대 목사들이 물러나면서 세대교체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젊은 리더십 교체는 2017년 LA 한인 교계의 양대 기둥인 동양선교교회와 나성영락교회에서 시작됐다. 그해에 각각 당시 39세 김지훈 목사와, 42세 박은성 목사가 담임 목사로 취임했다. 최근에는 지난해 밸리의 에브리데이교회 손창민(43) 목사, 올해 주님의영광교회 김인찬(46) 목사가 각각 담임 목사로 세워졌다.   40대 젊은 리더십의 등장은 교계에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다. 현재 한인 교계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을 맞고 있다. 이민 급감으로 새로운 교인 유입이 감소하고 있다. 국토안보부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 연간 2만 명 이상이던 한인 이민자 수는 2022년 1만 명 이하로 뚝 떨어졌다. 한인 교회들이 전통적인 이민자 중심의 성장 모델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내부적으로도 어렵다.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등지고 있다. 바나그룹 연구에 따르면 한인 2세들의 45%는 고교 졸업 후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재정적 위기도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팬데믹 이후 온라인 예배로 전환되면서 헌금이 급감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젊은 목회자들이 교회를 실용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세대 간 간극을 좁혀 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높다. 변화가 가져올 우려도 존재한다. 목회 리더십과 교회내 갈등이다. 일부 교회에서 장로와 목회자 간의 갈등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거나, 법적 소송으로까지 번지는 사례가 잇따랐다.   교계의 리더십 변화는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한인 이민 교회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 공동체 전체의 열린 마음과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하다.사설 세대교체 교계 세대교체 현상 한인 교회들 에브리데이교회 손창민

2025-01-29

[사설] 이민 단속 포괄적 접근 필요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불법 체류자 단속이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대통령 취임일인 20일부터 28일 현재까지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전국에서 체포한 불체자는 7300여 명에 달한다. 주말인 지난 26일 하루 동안에만 LA, 시카고, 오스틴을 비롯한 하와이 등에서 1000명이 대거 붙잡혔다.   당국은 마약 카르텔을 비롯한 중범죄자를 ‘표적 단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1주일 여 당국의 발표를 되짚어보면 단속 표적이 범죄자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단속 비협조시 처벌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고, 국토안보부는 “학교와 교회에서도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합법신분을 가진 이민자들도 잡혀갈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지고 있다. 무분별한 체포 가능성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6일자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ICE에 하루 체포 실적을 1200~1500명으로 늘리라고 지침했다”면서 “이에 따라 ICE는 각 지부 현장 사무실에 하루 75명씩 체포하라는 ‘할당량’을 내려보냈다”고 보도했다. 마치 교통경찰들의 주차위반 티켓 발부 남발처럼 ICE의 단속이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마약 카르텔이나 갱단원 등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범죄 밀입국자들의 색출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안도할 일이다. 그러나 마구잡이식 체포는 엉뚱한 피해자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불법체류자 문제는 단순히 단속과 추방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이민법 개혁을 통해 서류 미비 이민자들에게 합법화의 길을 열어주고, 노동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인권을 존중하는 포괄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단속 중심의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갈등과 경제적 손실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민자의 땅으로 성장해왔다. 이민 문제는 미국의 정체성과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인권과 인간적인 가치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사설 이민 단속 이민 단속 표적 단속 단속 표적

2025-01-29

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 닥터 필과 시카고

그의 이름은 필립 캘빈 맥그로우다. 일반적으로는 닥터 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50년생인 그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시카고에서 촬영되던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면서다. 닥터 필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방청객이나 시청자들의 고민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던 정신학 전문의였다.     닥터 필이 윈프리와 친해지게 된 계기 역시 흥미롭다. 전문의 과정을 마친 닥터 필은 변호사와 함께 법정 컨설팅 업무를 하는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 회사가 윈프리의 법정 소송을 맡게 됐다. 이 소송에서 만족한 윈프리가 이후 닥터 필을 자신의 쇼에 초대하게 된 것이 1998년이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오랫동안 고정 출연을 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쌓던 닥터 필은 2002년 그의 이름을 딴 토크쇼 ‘닥터 필’을 론칭하기에 이른다. ‘닥터 필’ 토크쇼는 시청자들의 인기를 얻어 그는 방송사와의 계약으로만 연간 1500만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얻기도 했다. 이후 정신학 전문의 면허는 갱신하지 않고 방송인과 저자로 활약해 온 닥터 필은 자신의 웹사이트를 운영했고 메리트 스트릿 미디어라는 방송국 네트워크 회사도 마련했다. 유명 연예인 순위 30위에 오르고 시청자 669만명을 확보한 셀렙이 된 것이다.     이후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을 지지 선언한 닥터 필이 26일 자신이 전국적인 명성을 쌓기 시작한 시카고를 찾았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제작됐던 하포 스튜디오가 있는 시카고에 다시 온 이유는 이날 시카고 전역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된 서류미비자 체포 작전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서였다. 이날 상황은 그의 X에 올라왔고 메리트 스트릿 미디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 관계자와 대화를 하던 한 체포된 주민이 그를 알아보고 “당신은 닥터 필 아니냐”고 말하는 장면도 담겼다.     이날 동영상에서 닥터 필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경 담당자인 톰 호만과 함께 체포 작전을 살펴보는 모습을 보였다. ICE는 닥터 필이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이유로 연방 기관의 체포 과정에 동행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닥터 필은 시카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작전이 얼마나 투명하게 이뤄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동행했다.     하지만 닥터 필의 시카고 체포 작전 동행 소식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쟁거리가 됐다. 우선 이민변호사 업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안전이 보장되어야 하고 체포자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하는 서류미비자 체포 과정에 토크쇼 진행자가 동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울러 연방 이민기관에 오랫동안 근무했던 한 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보통 이런 체포작전의 경우 극비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연방 요원들이 언론과 함께 전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시카고 지부도 닥터 필의 체포 작전 동행에 대해 지적했다. 특히 체포되는 이민자가 자신의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말한 직후에 “당신이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저질렀나”라고 묻는 것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 재임 당시 선임 고문으로 있었던 데이빗 엑셀로드는 “오바마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보다 더 많은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했지만 단 한번도 이렇게 체포 작전을 방송사 카메라에 공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엑셀로드는 “닥터 필이 ICE 체포 작전에 동행한 광경은 싸구려 리얼리티 쇼에 불과하고 작전이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고 중대성이 있는지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시사분석 nathan 시카고 체포 시카고 언론 이날 시카고

2025-01-29

[우리말 바루기] 얼굴이 ‘넙적하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들이 있다. “난 얼굴이 너무 널쩍해서 고민이야” “넙적한 얼굴을 갸름하게 고치고 싶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펀펀하고 얇으면서 꽤 넓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이처럼 ‘널쩍하다’ 또는 ‘넙적하다’고 쓰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넓적하다’고 적어야 바르다.   ‘넓적하다’는 ‘넓다’에서 온 말이다. 같은 ‘넓다’에서 온 말이지만 ‘널찍하다’ ‘널따랗다’는 원래의 형태를 살려서 적지 않기 때문에 ‘넓적하다’도 ‘널쩍하다’나 ‘넙적하다’로 적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글맞춤법 제21항을 보면 겹받침에서 뒤에 것이 발음되는 경우 그 어간의 형태를 밝혀 적고, 앞에 것만 발음되는 경우엔 어간의 형태를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는 내용이 있다.   ‘넓적하다’는 발음이 [넙쩌카다]와 같이 나기 때문에 ‘넓-’의 ‘ㅂ’이 발음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어간의 형태를 밝혀 ‘넓적하다’로 적는다.   ‘널찍하다’ ‘널따랗다’는 [널찌카다] [널따라타]로 발음한다. 어간 ‘넓-’의 ‘ㅂ’이 사라지고 [널-]로 발음이 나기 때문에 어간의 형태를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쓰게 된 것이다.   ‘넙적하다’는 부사 ‘넙적’에 ‘하다’를 붙여 만든 동사로, ‘넓적하다’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큰 개가 고기를 넙적하며 받아먹는다”에서와 같이 ‘말대답을 하거나 무엇을 받아먹을 때 입을 냉큼 벌렸다가 닫다’는 뜻으로 쓰인다. 또 “그는 너무도 고마워서 넙적하고 엎드려 절을 올렸다”처럼 몸을 바닥에 바짝 대고 냉큼 엎드린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우리말 바루기 얼굴 한글맞춤법 제21항

2025-01-28

[열린광장]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코리아, 코리아, 코리아라고 혼자서 되 뇌어 볼 때면 가슴에 어떤 울림을 느낍니다. 나의 조국, 내 민족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짚신과 고무신, 갓 쓰고 지팡이 짚어야 출입을 했고, 지게지고 5일 장 마당에서 보리밥에 막걸리 마시고, 호롱 불 켜고 새끼 꼬고, 이웃 집 닭 잡아 서리 하던 눈 오는 고향 마을….  일본 식민지, 8.15 해방, 6.25 사변, 4.19 학생 혁명, 5.16 군사 정변으로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견뎌내고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김포 공항에서 댈러스까지 거리가 1만1000km 정도 랍니다. 우리 한국 척수로는 2만8000리나 되니 참 먼길을 왔습니다. 금수저 입에 물지 않은 내가 1972년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 손에 쉰 건 당시 100달러 뿐이었습니다.     백인이 대다수인 이곳에 노스웨스트 항공 비행기표 넉 장을 3년 월부로 끊어 겁없이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을 거처 본토에 덜렁 내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국땅에 와서 처음 울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1972년 4월 대한항공이 처음으로  LA에 취항한다고 해서 비행기 시간에 맞춰 LA공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공항의 서쪽, 임페리얼 하이웨이 길 철조망 옆에 우두커니 서서 조국 방향 하늘을 쳐다보다가 대한항공 비행기가 서서히 착륙하는 것을 보고, 목놓아 울어 본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  울었던 기억은 1979년 10월26일 아침이었습니다. 출근을 했는데, 루스라는 회사 동료가 하는 말이 “어제 너희 나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됐다”면서 무슨 일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또?”   저는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민족의 지도자들이 피살, 자살, 사고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얼마나 많이 듣고 살아왔는데…. 사무실에서 가방을 놓는데, 자꾸 눈물이 나와 한 두 시간 일을 하다가 일찍 퇴근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의 정치 사회 상황은 이념적 갈등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어 참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걱정도 됩니다. 그리고 울고 싶은 마음입니다.     국민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국민소득도 3만5000달러를 넘기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한국이 곧 세계 5대 경제 대국에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한국이 세계 1등을 하는 분야가 얼마나 많은지 우리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동족 간의 싸움은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에 중국을 대국이라고 섬기던 때가 있었고, 일본에게 삼천리 강산을 통째 넘겨 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감격스러운 해방을 맞는가 싶더니 남한과 북한이 딱 갈라져 75년을 살고 있는 현실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분단 국가로 남은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60년대 말, 나라의 되어져 가는 환경 가운데 나 같은 사람이 꾸는 꿈은 자리를 못 찾고 있었습니다. 떠날 수만 있으면 다 버리고 떠나고 싶었던 내 나라였습니다.     꾸던 꿈은 산 같이 높고 커서 제 능력으로는 오르고 넘을 수가 없었는데 어느 때부터 쉽게 그 산을 넘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 가여워서 일이 술술 풀리게 하여 주신 것을 지금 깨닫습니다.   손주들은 너무 자랑스럽게 각 분야에서 뛰어나게 공헌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올해 한국을 홀로 여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집 사람이 가르쳐 준 가사의 전 부분을 다 외우지 못하여서 기억나는 데로 가끔 혼자서 흥얼거려 보던 ‘홀로 아리랑’을 같이 나눕니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아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손잡고 가 보자 같이 가 보자.’ 변성수 / 교도소 사역 목사열린광장 대한항공 비행기 코리아 코리아 정치 지도자들

2025-01-28

[독자 마당] ‘시민권 행정명령’의 쟁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출생시 시민권 부여 관련 행정명령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에서 출생한 자녀가 자동으로 시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출생 당시 부모 중 최소 한 명이 영주권자 또는 미국 시민권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행정명령은 학생, 주재원, 연구원과 같은 합법적 비이민 비자 소지자에게도 적용된다. 즉, 이들 비자 소지자들이 미국에서 출생한 자녀에게도 자동 시민권이 부여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명령이 발표된 후, 18개 주의 법무장관들이 연방대법원에 헌법적 이의를 제기했다. 현재의 시민권 관련 법은 1868년에 비준된 미국 헌법 수정 14조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해당 조항은 미국에서 출생한 모든 자녀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1898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재확인됐다. 대법원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중국 이민자 부모의 자녀인 왕킴아크가 비록 중국 배척법이 적용되었을지라도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시민권자로 인정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이번 행정명령은 정치적 동기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보수 성향의 대법원 구성을 고려할 때, 이 명령이 유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만 헌법 조항에서 ‘미국에서 출생한 모든 사람’이라는 문구에 대한 예외를 적용하여 특정 자녀들의 자동 시민권을 부정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14차 개정안을 제정한 이들의 의도는 분명히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에 있었다고 보인다.   핵심 쟁점은 대법관 다수가 법적 원칙과 헌법 텍스트의 본래 취지에 따라 법을 해석할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동기가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있다. 사법부의 본질을 고려할 때, 전자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판사는 정치인이 아니며, 이 근본적 차이가 미국 법체계가 존중받고 민주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이승우·변호사독자 마당 행정명령 시민권 출생시 시민권 자동 시민권 이번 행정명령

2025-01-28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 별이 빛나는 밤에는, 사랑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동시에 불행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과연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P.85) 중에서.   질풍노도의 시대를 이끈 청년 괴테의 대표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청춘의 열병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젊은 날의 생명감 넘치는 순수한 열정에 담아 사랑의 열병을 앓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영혼을 울린 작품이다.   괴테는 25세 되던 해 봄, 약혼자가 있었던 샤로테 부프를 사랑하게 된다. 그녀를 향한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한 괴테는 자신의 체험을 엮어 불과 14주 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완성했다. 출간 되자마자 젊은 독자층을 감동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었는데 젊은 남자들은 베르테르처럼 노랑 조끼에 파랑 상의를 입었으며 실연 당한 남자들이 베르테르처럼 자살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랑은 우주 탄생의 빅뱅처럼 찰라의 순간에 포착된다.   지구는 태양이라는 별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태양을 공전하는 크고 작은 암석들이 뭉치면서 1억 년 정도의 긴 과정을 거치며 행성이 된다.   사랑은 순간에서 영원으로, 지상에서 천국까지 한 순간에 돌개바람을 일으키며 슬프고 아름다운 세레나데를 노래한다. 별에서 온 이름 모를 그대를 만나 단 한 순간에 사랑에 빠지고, 억겁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의 날개짓에 운명을 묶는다.   피할 수 있었다면, 돌아설 수 있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불장난이다.   테풍의 눈은 고요하고 잔잔하다. 창공에 떠 있는 오아시스 같다. 비는 멈추고 바람은 잔잔해지고 태양이 빛을 품으며 푹풍의 울부짖음은 멀어진다.   하지만 이 평화는 속임수다. 태풍의 눈은 잠잠한 폭력의 영역이다. 이곳의 기압은 주변보다 훨씬 낮아 급격한 압력 변화를 일으킨다. 태풍의 눈은 폭풍에 자각을 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폭풍의 혼란 속에서도 고요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고요함 속에는 파괴와 위험이 숨어 있다.   사랑은 태풍처럼 무서운 힘으로 눈과 귀를 멀게 한다. 사랑의 회오리 바람에 좌절 하지 않기 위해서는 태풍의 눈과 같이 침착함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은 진심으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자신의 모든 걸 내 줄 수 있는 감정을 나누는 일이다. 계산을 하거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사랑이 아니고 흥정이다.   사랑은 증오와 더불어 인간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정의 크기와 파동이 거대해서 사랑에 빠지면 이성이 마비되고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영원히 아름답고, 끝나지 않는 사랑은 없다. 평생토록 함께 동행하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별을 전제로 하는 한시적인 만남일 뿐이다.   베스비오 화산 폭발로 18시간 만에 폼페이 도시와 2만여명의 사람들이 4미터 깊이의 화산재에 묻힌다. 폼페이 최후의 날 사랑하는 두 남녀는 부둥켜 안고 죽음을 맞는다. 재가 되어도, 찰라라고 해도 사랑의 흔적은 남는다.   황량한 인생길에서 사랑은 떠돌이 별로 모여 어둔 하늘을 은하수로 가득 채운다.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헤르만 헤세의 말이 생각난다. 밤하늘 별처럼 손에 닿지 못해도, 별이 빛나는 밤에는 지나간 사랑을 노래한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어둔 하늘 청년 괴테 폼페이 최후

2025-01-28

[아메리카 편지] 민중의 눈

기원전 6세기 말에서 5세기 초까지 고대 그리스에서 유행하던 특별한 종류의 도기가 있다. 심포지온이라 불리는 술 파티에서 사용되던 대접 모양의 와인잔(사진)인데, 부리부리한 두 눈이 새겨져 ‘아이컵(eye cup)’이라고 한다. 내가 이번 학기에 가르치는 디오니소스 신에 관한 세미나에서 이 아이컵의 유래와 용도, 그 의미에 관해 토론했다. 고대 그리스와 관련 있는 이집트 예술에 흔히 나타나는 ‘호루스의 눈’은 왕권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뱃머리에 흔히 새겨지며 악령을 쫓는 부적으로 쓰인다. 그래서 그리스의 ‘아이컵’도 불운을 막고 술 마시는 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 대접 잔으로 와인을 들이키면 잔이 얼굴을 덮는 가면처럼 보였다.   술을 마시는 행위는 디오니소스 신의 기운을 흡수하는 행위다. 변신의 신인 디오니소스는 가면극을 관할하는 신이기도 했다. 니체의 말대로 디오니소스는 서구 문명의 바이탤리티, 약동하는 생명력에 큰 기여를 하였다.   두 살 반 넘은 딸이 요즘 끊임없이 그리는 것이 동글동글한 눈이다. 기다란 물고기의 두 눈, 귀가 뾰족한 토끼의 두 눈. 딸의 스케치북 어디에나 눈이 그려진 것을 보며 나는 시각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인류의 보편적 특징이라는 점을 새삼 느꼈다. 기원전 4000년 메소포타미아 우루크에서 발굴된 눈이 새겨진 돌조각 우상(偶像), 메소아메리카 올멕 문명과 마야·아즈텍 문명의 도기에도 그리스 아이컵처럼 독특한 모양의 눈이 새겨져 있다. 고대 중국의 제사용 청동기 그릇에 새겨진 상상의 동물인 도철의 문양도 이에 상응한다.   사람의 눈은 결국 보아야 할 것을 본다. 한국 민중은 진실을 보고 있다. 이 눈앞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파멸을 자초하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디오니소스적인 바이탤리티와 함께 아폴로적인 냉정과 이지, 정직과 침착을 회복하기를 기원한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민중 한국 민중 그리스 아이컵 고대 그리스

2025-01-27

[삶의 뜨락에서] 여자들이 돌아온다

“여자들이 돌아온다. 멀리 영원으로부터” 돌아온 여자들이 외친다. “때 이른 여자들인 우리, 문화에 억압된 자들인 우리, 입마개로 차단된 아름다운 입들, 꽃가루, 숨결, 미궁, 사다리, 짓밟힌 공간인 우리, 도둑맞은 여자들인 우리- 프랑스 페미니즘 대표 사상가, 작가, 교수인 엘렌 식수(Helen Cixous, 1937~)는 산파인 어머니를 따라 출산하는 여성을 보는 일이 즐거웠다고 고백한다. 그녀 자신이 임신해 출산한 경험은 ‘글쓰기’라는 생산 행위와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성적 글쓰기’의 바탕에 아이를 품어 낳는 경험이 녹아난 것이다.     그녀는 1969년에 유럽 대학에서 최초로 ‘여성학’을 개설했다. 그녀는 여성의 창조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문학과 예술작품의 창작을 촉진하였고 여성의 주체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다양한 학문적이고 문학적인 논의를 끌어냈다. 많은 여성 정치인, 여성 경영인들이 있지만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여성 해방운동을 주도한 페미니스트다.     나도 태어나 보니 여자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 선택하고 그 선택은 사람을 만든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고 성별을 선택할 수도 없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남성우월주의가 만연할 때여서 한 가정에서 아들은 특별 대우를 받고 자랐다. 음식이 귀하던 시절, 아버지나 아들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어머니는 밥을 미리 퍼서 따뜻한 아랫목에 묻어두었던 추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 어머니와 딸들은 아들의 성공을 위해 희생과 협력으로 사회의 기성 질서를 지키는 수호신이 된다. 그들은 당신의 여성성을 주장할 엄두도 못 내고 가부장적 사회 질서에 감염되어 그 기성 질서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졌다.     이런 부당한 성차별은 나의 대학 시절 때 최고조에 달했다. 그 당시만 해도 여자가 대학에 가서 커리어우먼이 되기보다는 격에 맞는 남자를 만나기 위한 경우가 더 많았다. 당연히 여자들은 화장하고 옷을 잘 차려입고 다양한 머리 모양으로 한껏 멋을 내기 바빴다. 난 그런 상황이 너무 싫었다. 인간의 뇌세포가 가장 활발한 20대 초반에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에 어떻게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를 한단 말인가. 자신을 잘 보이게 치장해서 쇼윈도에 진열해 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애완견 같았다.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는 나의 시그니쳐였다. 그리고 남몰래 미국에 와서 성전환 수술을 해야겠다고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대학을 마치고 바로 미국에 왔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고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진화되었다. 여자는 집에서 해왔던 육아와 가사 일에서 많이 해방되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생활은 편리하고 간편해졌다. 일찍 깨우친 여성 운동가들이 나왔고 남녀평등을 주장함으로써 여성 참정권도 얻었다. 이제는 자유경쟁 시대다. 이제는 성차별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 시대다. 그동안 남성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정치, 경제, 사회적 지위에도 여성의 지위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향상되었다. 우선 여성 대통령, 총리, 정치가, 대기업 총수 그리고 의사, 변호사는 과반수가 여성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아선호 사상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 수렵과 농업 시대에서는 신체적으로 강한 남성이 여성위에 군림해 왔다. 점차 문명이 발달하면서 종족 번식과 가계의 대를 잇는다는 이유로 남아선호사상은 늘 우세했다. 다행히 지금은 남녀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고 기회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졌다. 1970년대에는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다. 그동안 나는 여자로 태어나 많은 불이익을 당해왔다고 믿었었다. 이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여자이기에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고맙게 생각한다. 이 경험을 십분 활용하여 “여성들이여 힘내라. 유리천장을 깨고 훨훨 날아라”라고 외치고 싶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여자 여성 해방운동 여성적 글쓰기 여성 참정권

2025-01-27

[독자 마당] 속도, 가짜, 해체의 시대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아무도 걷지 않은 새 길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사람들은 새것을 만나면 새로운 감정이 생기는 즐거움이 있어 희망의 날개를 펼친다.     희망, 그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가장 찬연한 삶의 빛깔이다. 비어 둔 가슴에 충만한 은총이 넘치도록 받아 질 것을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희망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보다 잘 살기 위함을 의욕 하는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표상이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나는 삶을 관조하는 나이에 있다. 새해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이 된다. 무엇을 새롭게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내일을 알 수 없는 노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원하며 바라는 신년의 희망사항을 품는다.   21세기는 속도, 가짜, 해체의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특히 세상을 속이는 가짜, 진실이 왜곡된 말들이 난무하는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가짜의 말들이 판을 치는 문화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말처럼 부질없고 불확실한 것도 없다. 가짜의 말들은 날선 비수가 되고 혹은 헤어날 수 없는 올가미가 되기도 한다.   세상에 떠도는 가짜의 말들은 몰려다니면서 인간관계를 파괴하며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올바른 분별력을 잃게 만든다.   어느 시인은 도시의 하늘 밑에서 떠돌아다니는 가짜 말들이 싫어졌다고 한다. 가짜의 말들이 자꾸 자신의 혼을 퍼내는 것 같아 산골 외딴 시골로 옮겨와 바람에 흔들리는 풀꽃들과 말을 나누며 산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새해에 품는 나의 희망사항은 두 가지다. 첫째는 가짜의 말들 대신 따뜻한 마음이 담겨있고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진실 된 말들이 오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이다. 진실 된 말들로 삶의 맛을 내는 소금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두 번째로는 내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내게 맡긴 일들을 열심히 감당하며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는 짐이 되지 않고 내 스스로 건강관리 잘하며 무탈하게 순리대로 살고 싶은 희망사항이다.   나는 나의 두 가지 희망사항을 위해 올 한 해 쉬지 않고 기도하려 한다.  김영중 / 수필가독자 마당 속도 가짜 속도 가짜 가짜 진실 가짜 말들

2025-01-27

[잠망경] 도망자

1960년대 중반경 미국과 한국을 휩쓸었던 미드 ‘도망자(The Fugitive)’를 기억하는가. 아내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채 제라드 경위에게 쫓겨다니면서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하여 ‘외팔잡이 사내’를 잡을 때까지 미 전역을 방황하던 소아과의사 리처드 킴블의 어두운 얼굴을.   ‘도망자’는 도망할 逃, 망할 亡, 놈 者, 나쁜 뜻이다. 어릴 적에 한자어 ‘亡’자를 무서워한 적이 있다. 사실은 지금도 좀 그렇다. 니은에 뚜껑을 위태롭게 얹어놓은 것 같기도, 상투가 달린 디귿처럼 보이는 망할 亡.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과 행동이 정상을 벗어난 치매 상태를 뜻하는 망령(妄靈). 기억력이 완전 망가진 망각(忘却), 사방팔방 검푸른 파도만 출렁이는 망망대해(茫茫大海). 망중한(忙中閑). 정치적 이유로 본국을 떠나는 망명(亡命). ‘망’이 들어가는 말은 많기도 하다.   망령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뜻한다. 저 상투 달린 디귿자, 亡에는 ‘망하다’라는 뜻 외에 ‘죽다’라는 뜻도 있어요. 亡人은 죽은 사람을 일컫는다.   당신은 누구를 미워하며 혼잣말로 욕할 때, ‘亡할 자식!’이라 나직이 내뱉은 적이 있다. 그때 당신 심정은 한 사람의 죽음을 원하는 저주심의 발로가 아니었다. 일순간 그가 하는 일이 망하기라도 바라는 부정적 감성을 표출하는 심리상태였을 뿐.   ‘perish’라는, ‘亡하다’에 꼭 맞는 영어단어가 있다. 링컨의 1863년 게티즈버그 연설에 나오는 격식 있는 말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구상에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perish(망하다, 죽다)’는 전인도유럽어로 ‘가다, (앞으로) 나아가다’라는 뜻이었다. 당신과 내가 입에 달고 사는 현대영어 유행어, ‘move forward(앞으로 나아가다)’와 한치도 다름없는 의미라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더 대경실색할 일은 이 점잖은 문예체 단어가 관용어로 쓰여서, “Perish the thought!” 하면 “그런 생각은 집어치워라, 어림없어, 말도 안 돼, 꿈도 꾸지 마!”라는 뜻의 구어체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비록 독실한 불자(佛者)는 아니지만, 당신도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 나오는 반야심경 마지막 구절,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를 읊조려 볼까 한다. 이 부분에 대한 몇몇 해석 중 내 생각을 자주 차지하는 해석은 이렇다.   ‘가자가자. 건너가자. 완전히 건너가서 아뇩다라삼먁사보리(모지)를 성취하자’. 여기에서도 사뭇 어디로, ‘가자’는 제의가 나오면서 “Let's move forward!” 하는 우렁찬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어디로인지 간다는 발상은 정체하지 말고 끊임없이 움직이라는 뜻이 아닌가 하는데. 그것은 자발적인 거동일 수도 있지만 무엇에 쫓기듯이 난경을 도피하는 행각일 수도 있겠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어서 냉큼 도망(逃亡)치라는 말이다.     자신의 결백함을 되찾기 위하여 속세의 강을 가로질러 외팔잡이 사내가 숨어있는 피안으로 건너가라는 전갈이다. 의사 리처드 킴블처럼 얼굴을 찌푸리면서. 뭐라고? “Perish the thought?”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도망자 색즉시공 공즉시색 소아과의사 리처드 외팔잡이 사내

2025-01-27

[중앙칼럼] 제거된 다양과 형평

일터에 차별과 배타적인 문화가 있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한인 독자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아직 우리가 일하는 사무실과 조직에 형평과 기회 균등에 대한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하면 동의할까. 이제 우리 2세 아이들이 자라고 성장하는데 유리 천정은 없으며, 오직 실력과 근면함만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 우린 쌍수를 들어 동의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행정명령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중압감이 강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감독 조직을 연방정부 모든 기관에서 없앤 조치다.     DEI는 정부 또는 사기업에서 혹시나 소수계 또는 특정 소수 그룹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조직 안에서 포용 되지 못하고 공평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은 없는지 살피는 일을 해왔다. 여기엔 흑인계, 라틴계, 아태계,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그룹 등이 포함된다.     주로 민주당 정권에서 활발했던 이 프로그램은 정부 조직은 물론, 교육현장과 비영리 단체에서도 기본 프로그램으로 정착했다.     DEI는 기업에서는 2003년에 본격적으로 등장해 고용, 노동, 처우에 대한 전반적인 업무에서 다양성과 균등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주기적으로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각 부서와 조직에서 DEI의 원칙과 철학을 사수하고 있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물론, 기업 리더들이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해당 결정이 DEI의 기준에 위배되는 일은 없는지 확인하고 조언하는 역할도 해왔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에서 이런 기능이 업무 효율성을 방해하는 최악의 정책이라는 이유를 내세웠고, 더 나아가 해당 사무실을 폐쇄하는데 협조하지 않는 공무원들은 신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백악관이 DEI 폐기 깃발을 들자 기업들도 알아서 순응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여러 가지 이름 아래 유지했던 DEI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을 접기 시작했다.     어떤 기업은 유지하겠다고 하고 어떤 기업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관련 프로그램을 없애기 시작한 것이다.     새 행정부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인데 이런 DEI 폐기 행렬은 곧 산업 현장에서도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 분명하다.     주요 언론들은 신임 대통령이 추진하는 행정명령에 일단 관망하는 모습이다. 대통령 취임 후 1년 동안은 비판을 자제한다는 고전적인 워싱턴 언론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직 노골적인 반대 목소리는 없다.   시대에 따라 정책은 달라지고 집행의 속도와 깊이도 진화한다. 하지만 DEI는 소수계 한인사회에서 생존의 문제가 아닐까.     가장 먼저 학교를 졸업하고 기업과 공직에서 일하게 될 2세 아이들이 눈에 떠올랐다. 미국에서 교육받고 생활하고 살아가는 그들이 DEI의 감시 없이도 누구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유롭게 일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을까. “여전히 DEI가 일상에서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트럼프의 지적대로 시대에 뒤떨어진 차별적인 시민이 되는 것일까.     소수계가 존중받고 직장과 공직에서 꿈을 펼치는데 DEI는 조그만 안전장치다. DEI는 모두가 잠깐 잊어버리고 있을 때 균등과 형평이 사회 공동체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려주는 스피커다.     아직 정치권에서 DEI 폐지에 대한 본격적인 반발은 보이지 않는다. 입장이 각양각색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아태계를 중심으로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대안 제시를 요구하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양성과 형평, 포용성은 특정 정파 출신의 대통령이 폐지를 논할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 사회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지키고 가꿔나가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인성 기자 [email protected]중앙칼럼 다양과 형평 다양성 형평성 형평과 기회 트럼프 대통령

2025-01-27

[우리말 바루기] ‘설’과 ‘구정’의 차이

설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설날은 29일이다. 한국에서는 27일부터 30일까지 공휴일로 쉰다. 이맘때 한국에서는 마트에 설 선물세트가 가득 진열돼 있고 사람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설 연휴 계획을 짤 때다. 설을 구정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정 선물세트, 구정 연휴처럼 ‘설’과 ‘구정’이란 말이 함께 쓰이고 있다.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설은 추석·한식·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이다. 설날은 정월 초하루, 즉 음력 1월 1일이다. 구한말 양력이 들어온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날에 설을 쇠어 왔다. 전통적으로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는 쭉 이어지는 축제 기간으로 이 기간 중에는 빚독촉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설은 일제 강점기 시련을 겪는다. 일제는 우리 문화와 민족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 명절을 부정하고 일본 명절만 쇠라고 강요했다. 특히 우리 ‘설’을 ‘구정’(옛날 설)이라 깎아내리면서 일본 설인 ‘신정’(양력 1월 1일)을 쇠라고 강요했다. 이때부터 ‘신정(新正)’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구정(舊正)’이란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음력에 맞춰 친척과 만나 제사를 지내고 성묘와 세배를 지냈다.   일본에는 음력설이 없다. 일찍부터 서양 문물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일본은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음력을 버리고 양력만 사용해 왔다. 이때부터 설도 양력 1월 1일로 바꿨고 지금도 양력설을 쇠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원래 ‘신정’ ‘구정’이란 개념이 없었다. 이들 이름은 일제가 설을 쇠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설을 ‘구정’이라 격하한 데서 유래했다. 따라서 ‘구정’ 대신 가급적 ‘설’ 또는 ‘설날’이라 부르는 게 좋다.우리말 바루기 구정 구정 선물세트 구한말 양력 일제 강점기

2025-01-27

[기고] 김종림의 순국 52주년을 추모하며

을사년 새해는 미주이민 122주년이며 광복 80주년의 해이다. 공군전우회는 독립운동가 김종림의 순국 52주년 추모행사와 신년 하례 모임을 지난 9일 열었다.   특별히 잉글우드 메모리얼파크에서의 헌화와 추모 행사는 오늘날 한국공군의 기원이 되는 북가주의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에 전폭적인 재정 후원을 한 미주독립운동가 김종림(1886~1973)의 삶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시였다.     김종림은 일제 강점기 미국에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동지회 대표 등을 역임한 애국지사다. 하와이 이민 후 1907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벼농사로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 명성을 얻었다. 1920년초에는 상해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을 만나 임시정부 수립에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08년에는 전명운, 장인환 의사의 스티븐슨 저격 의거가 일어나자 공립신보의 인쇄원으로 동포 사회에 소식을 전했다. 또 이듬해 국민회(공립협회와 하와이 한인협성회 통합)의 교육업무에도 관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김종림은 1942년 56세의 나이에도 캘리포니아 예비군으로 입대했다. 2남1녀 자녀중 두 아들은 미 해군에 지원해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과 싸웠다. 큰아들 진원(제임스)은 알루샨 열도에서 통신부사관으로 복무했고, 둘째아들 두원(돈)은 해군 상륙정 승무원으로 필리핀 해역에서 교전을 치른 후 미국이 승리하자 점령군으로 일본에서 근무했다.   광복 후 예순의 나이에도 새크라멘토 밸리에서 벼농사를 지었고, 1946년 동지회 북미총회가 창립한 한미주식회사가 임페리얼 밸리에서 1000에이커의 벼농사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노익장을 과시하며 농사 감독의 일을 맡아했다.     미주 한인사회의 복리증진에 힘썼고, 본인이 세운 1세대 이민자를 위한 양로원에서 1973년 1월26일 유명을 달리했다. 그의 유해는 잉글우드에 있다.   그의 삶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이 목표였다. 당시 미주한인들이 항공력을 키워 일본을 공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비전을 세우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것은 조국과 동포 사회에 희망을 주었고 후손들에게 큰 자부심으로 기억된다.   김종림의 둘째 아들 두원(돈)과 친구 사이였던 도산 안창호의 막내아들 랄프 안 은 생전 인터뷰에서 “김종림은 미주 한인 최초의 백만장자로 윌로우스 한인비행 학교의 모든 재정을 도맡아 운영했다. 이후 사업에 실패해 어려움도 있었지만 평생 위엄을 지키고 산 분으로 기억하며 존경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립항공박물관은 지난 2020년 윌로우스 비행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개관 기념조형물을 제작했다. 이를 통해 오늘날 대한민국 공군의 상징적 기원으로 교육하고 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 설립을 가능케 전폭적 재정지원을 한 김종림의 삶에 존경을 표하며, 대한민국 공군전우회(회장 이계훈)는 그의 순국 52주년을 추모하며 머리 숙여 감사 드린다. 심인태 / 한국공군전우회 LA지회장기고 김종림 순국 미주독립운동가 김종림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동지회 추모 행사

2025-01-27

[K컬처에 빠지다] K팝은 다리, 한국이 목적지

K팝과 K드라마는 한국 역사상 어떤 것보다도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모았다. 미국과 전 세계 학교에서는 수천 개의 K팝 동아리가 생겨났으며, 학생들은 좋아하는 뮤직비디오의 가사를 부르고 안무를 연습한다. 성인과 학생들은 K드라마 팬클럽을 만들어 배우와 스토리에 대해 토론하고, 좋아하는 드라마의 결말을 추측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로 인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한국어 수업 등록자 수가 급증했다. 언어 교육 기관인 ‘라이브 더 랭귀지(Live the Language)’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어는 미국인들이 두 번째로 많이 검색하는 언어로 나타났다.     나는 뉴욕의 기차와 버스에서 한국 관광객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며 연습하는 것을 좋아한다. 종종 그들에게 농담으로 경고하곤 한다. 뉴욕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는 한국어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가 그렇게 비밀스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관광은 양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K드라마는 관광객들로 하여금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이 촬영된 장소를 직접 방문하고, 아이돌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한국을 찾게 만들었다. 그들은 한국이라는 땅을 방문하고 싶어하며, K드라마는 그들을 그곳으로 데려가는 다리가 되고 있다.   그러나 다리는 다리일 뿐이다. 다리가 목적지는 아니다. K드라마는 높은 제작 수준과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로 인해 더 고급 예술인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한국 영화가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의 상을 받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K팝은 다르다. 대부분의 팝 음악은 진지하거나 영속적인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팝 음악은 대개 산업 프로듀서들에 의해 제작되고, 대체 가능한 가수들이 상품으로 여겨지며, 청소년과 어린이를 주요 타깃으로 한다. 이들은 결국 성인이 되어 더 성숙한 취향을 가지게 된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이 아이들이 단순한 가사와 반복적인 비트로 이루어진 음악에 싫증을 느끼고 문학의 깊이 있는 언어로 관심을 돌릴 때, K팝 다리는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K드라마는 가벼운 TV 오락물에서 한국의 진지한 영화로 시청자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K팝은 청취자를 한국의 고급 음악 예술로 끌어들이는 데는 아직 성공하진 못한 듯하다.   어쩌면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팝 음악이 본질적으로 갖는 특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가지를 시도해 보자. 한인 친구들에게 진지한 음악 아티스트의 이름을 물어보라. 그들은 여러 유럽 클래식 작곡가의 이름을 말할 것이다. 아마도 몇몇은 그들이 좋아하는 뛰어난 미국 재즈 뮤지션의 이름도 언급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판소리의 아름답고 어려운 예술을 수행하는 한국 아티스트나, 재능 있는 한국 현대 작곡가, 혹은 한국 뮤지컬의 창작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생각해보라. K드라마가 다리이고 한국이 목적지라면, 반짝이고 강력한 K팝 다리는 어디로 이어지는가.     우리는 K팝 다리를 통해 사람들이 한국 음악 예술의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도록 돕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이 K팝 다리의 끝에서 방향을 바꾸어 유럽과 미국 음악의 더 깊은 의미를 찾아 떠나게 방치하고 있는가.   나는 전 세계 모든 장르의 음악을 사랑한다. 때로는 진부한 가사와 단조로운 음악으로 가득 찬 팝송조차 즐긴다. 그러나 더 높은 목적을 가진 음악, 인간의 영혼을 탐구하고 상상의 경계를 넓히는 음악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한국에는 이런 고양된 음악이 넘쳐난다.   K팝이라는 흥미진진한 다리를 건너오는 사람들을 한국이라는 위대한 땅의 영혼과 정신의 아름다움으로 따뜻하게 맞이하자. 로버트 털리 / 코리안 아트 소사이어티 회장K컬처에 빠지다 목적지 다리 한국 음악 한국어 수업 한국 관광객들

2025-01-27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춤추는 나무

언덕에 바람이 불어올 때면 / 주체할 겨를도 없이 하늘로 흩어지는 낙엽 / 그곳엔 나무 한 그루 춤추고 있었다 / 감춘 것들을 드러냈다가도 / 이내 다 덮어 버리기도 하면서 / 돌아오는 길에 지워지지 않는 / 더 잊어야 할 것들은 없는지 / 그렇게 물어보며 집으로 왔다 // 너무 느리거나 서두르면 / 서로에게 부딪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 평면보단 입체로 봐야 더 이해할 수 있듯이 / 같은 곳에 있어도 다르게 보일 수 있듯이 / 밤하늘 가득한 별빛의 머물 곳을 / 이젠 지켜주어야 할 시간이 왔다 // 눈을 감고 바라보고 있어도 / 더 선명하게 그려지는 사람들 사이로 / 말하고 싶지 않았기보다 말할 수 없었던 / 낯선 세상이 아닌, 마음으로 꿈꾸던/ 보지 못한 세상을 느끼고 싶은 건/ 두 손으로 모으며 드린 기도 / 나무의 뿌리 깊은 소원이었다 // 아름다운 세상이 보고 싶어서 / 사막에 날리던 모래바람보다 / 풀들이 춤추고 꽃이 노래하는 / 다른 세상을 매일 맞이하고 싶어서 / 먼 나라의 동화처럼 들릴지라도 / 흥에 겨워 바람에 춤추는 언덕 나무처럼 / 팔을 뻗어 너를 힘껏 안아 주면 되는 것을 / 너를 붙잡고 함께 춤추면 되는 것을     문 하나가 닫히면 문 하나가 열린다. 해가 지면 잠깐의 시간을 두고 다시 해가 뜨고, 별이 지고 나면 하루가 지나고 다시 별이 뜬다. 그는 무릎을 살짝 구부려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도 쓰고 있던 모자를 허리 아래로 내리며 답례했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언덕 구릉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 나는 언덕을 내려오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이별을 아쉬워했고, 그는 바람에 잔가지를 흔들며 나에게 다음 약속을 기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춤추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장 남지 않은 잎사귀를 안은 채로, 좌우로 가지를 움직이고 있었다. 나무가 춤추고 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눈 내리던 어느 날에는 눈꽃을 피우며 둥글게 움직이고 있었다. 온종일 피운 눈꽃은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셨다. 평면으로 내린 눈을 입체로 꽃피우는 나무는 신기하리만큼 깊이가 있었다. 펼쳐 보이기도 하고 담아 내기도 하는 언덕 위 나무는 해마다 키가 자랐고 이제는 내 키를 훨씬 넘어서 그의 끝까지가 하늘에 닿았다.     자세히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춤추고 있다. 호수의 파도도 춤추고 있고 하늘에 구름도 춤추고 있다. 꽃이 피어나는 것도, 나뭇잎이 움트는 것도, 비가 내리는 것도 춤추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들길을 걷다가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세찬 바람에 꺾이지 않는 갈대를 보다 결론지은 것은 ‘갈대는 춤추고 있다’였다. 왜 우리는 춤추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반응하지 못하는가? 봄이 온다고 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무수한 봄이 지나가도 내 안에 봄은 꽃 피지 않을 것이다.     흥에 겨워 바람에 춤추는 언덕 나무처럼, 바람에 눕는 갈대의 춤사위처럼 우리도 춤추면 된다. 나무의 밑동을 껴안고 같이 흔들리면 된다. 너와 나 부둥켜안고 춤추면 된다. 춤추며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모래를 휘저으며 덩실덩실 춤추면 된다. 그러면 동화처럼 아름다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니까.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언덕 나무 언덕 구릉 시인 화가

2025-01-27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