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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의대 보내기] 의료분야 스타트업 회사 취업하는 경우 늘어

Q: 미국 의대에 불합격한 학생에게는 어떤 차선책이 있나요.   A: 약 16년간 칼럼을 적어오며 어떻게 하면 의대에 합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주로 언급해왔는데 오늘은 합격하지 못하면 학생의 인생은 과연 어떤 국면을 맞게 될지에 대해 소개하겠다.     의대에 불합격한 학생 중에는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찾아 의대에 재도전을 시도하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며 이런 학생들은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에서의 의대 입시는 한 번이나 그 이상의 재도전을 통해 의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매년 신입생 전체의 40% 남짓을 차지하니 학생 스스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목표라고 얘기하고 있다.     물론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시작점이고 해당 문제점을 보완하여 더 매력적인 지원자로 재도전하는 것이 관건이므로 열린 마음으로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하겠다. 하지만 모든 학생이 재도전하고 있지는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고 본다.     의대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택하는 가장 통상적인 차선책은 PhD 학위를 취득하여 연구직이나 교수직을 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대 입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봉사보다는 연구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는 패턴이다. MD 스쿨에 합격하지 못해 DO 스쿨에 진학하거나 치대에 진학하는 경우는 계속 의료계라는 같은 분야에 머물고 있으므로 제외하면 박사학위 취득이 가장 많은 경우라는 것인데 7~8년 전 까지만 해도 압도적인 비율이었으나 요즘은 의료분야의 스타트업 회사에 취업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박사학위 취득보다는 스타트업에 취업하는 이유로는 취업과 함께 독립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유와 더불어 Healthcare 분야와 IT 분야가 복합된 스타트업 회사의 경우 연봉이 웬만한 의사 못지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점으로 보인다.     의대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의 출신대학이나 학점은 엄청나게 매력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이 인재들을 반기는 의료분야 스타트업 기업들은 매우 많다. 대형병원을 상대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기업도 있고 원격의료 서비스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급하는 회사도 있겠고 AI를 활용한 의료 서비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회사도 포함되겠으니 그 범주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우리 한인 학생들 중에 의대 입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학생 중에는MCAT 영어성적이 뛰어나지 못해 다른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지만 의대에선택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너무 빈번한데 그 학생들 경우에는 MCAT 외의 다른 시험을 치르고 진학하는 과정에 도전할 경우 거의 모두 기쁜 소식을 듣고 있다.     다른 소수계 학생들과는 달리 동양계인 한인 학생이 MCAT 영어시험에서 전체 수험생 중 중간수준의 성적인 48 퍼센타일에 해당하는 124점 이하의 점수를 받으면 의대에 진학할 확률이 희박하지만 그 정도의 영어 독해력을 지닌 학생이라면 법대를 포함한 일반대학원 진학을 위한 GRE 시험이나 치대 진학을 위한 DAT 시험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영어성적을 받을 확률이 높으므로 원하는 학위에 도전하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된다.     또한 영어성적 외에 다른 부분을 모두 잘 챙겨왔던 학생이라면 의대 입시를 위한 다양한 봉사경험과 연구 경험 그리고 리더십까지 갖추고 있으므로 어떤 업계에 지원해도 매력적인 인재로 분류되므로 말 그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특히 영어성적 때문에 미국 의대 입시에서 가장 불리한 부류인 고교 시절에 미국으로 이주한 가정의 학생들과 유학생들의 경우라면 더더욱 다른 분야에서는 환영받을 수 있으니 너무 낙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필자가 직접 지도한 학생 중에는 의대에 합격하고도 본인의 의지로 의료분야 스타트업으로 진로를 바꾼 학생과 의대 입시에 한 차례 실패한 후 한국에서 군 복무 중에 스스로 법대로 진로를 바꿨기에 이를 도와 Top 14에 속하는 명문 법대에 진학시킨 유학생 외에는 모두 의대나 치대에 진학하였으니 그건 아마 처음에 인터뷰를 통해 확실하게 의대나 치대에 진학하고자 마음을 먹은 학생들만 받아서 지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근 20년 동안 학생들의 의대 진학을 돕다 보니 중간에 연락이 두절되는 학생들이 한 명 두 명 생겨나고 있어서 안타깝다. 인생의 정답은 살아 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데 의대 입시라는 과정 하나로 자신을 과신하는 것만큼 걱정되는 것이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다. 의대에 가서도 자퇴를 하거나 퇴교 조치를 당하는 학생도 있고 의대를 포기하고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학생도 있으니 자신이 정말 원하는 진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고민하고 다음 행보를 결정하기 바란다.     이번 주에 만나 의대 진학의 가능성을 분석해준 한 젊은이는 이미 박사학위를 갖고 MIT라는 명문대학에서 조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다시 의대에 도전하기를 원해 8년 전 보다 좋은 MCAT 성적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 세월이 준 지혜와 박사학위가 준 지식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끝내 의대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그 학생의 경우라면 진작 만나서 조언을 해줄 수 없었기에 많이 아쉬웠다.     의대 진학만이 행복한 삶을 살 기회는 아니고 훨씬 더 좋은 근무환경에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진로도 많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만일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의대 진학이라면 포기하지 말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라고도 전하고 싶다.   자녀의 행복을 대신 만들어줄 수 없기에 부모 역할은 참 어렵고 아쉽다. 201-983-2851, kyNam@GradPrepAcademy.com 남경윤 의대 진학 컨설턴트미국에서 의대 보내기 의료분야 스타트업 의료분야 스타트업 스타트업 회사 의대 진학

2024-04-26

[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아인슈타인의 연구실 벽에 세 사람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모두 영국인인데 아이작 뉴턴, 마이클 패러데이,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등이 그 주인공이다.     아인슈타인은 굳이 물리학의 시대구분을 한다면 맥스웰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지금 전자기 현상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꼭 알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소개한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1831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라더니 겨우 25세의 나이에 최연소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맥스웰의 선배 격인 마이클 패러데이도 전기와 자기와의 상호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수학적으로 정확히 계산해 내지 못했는데 갑자기 맥스웰이란 수학 천재가 나타나서 전자기학을 수식을 사용해서 말끔히 정리해 놓자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그 공적을 치하했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기와 자기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이었는데 맥스웰은 두 가지를 통일하여 전자기의 기초를 마련했다.     영국의 BBC 방송사에서는 21세기를 맞아 인류 과학사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100명을 뽑았는데 1위는 뉴턴, 2위는 아인슈타인, 그리고 3위에 맥스웰이 올랐을 정도였다. 그의 업적 중 또 하나가 더 있다면 컬러 사진을 발명한 일이다.   사실 자력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진 현상이었고, 전기 역시 두 물체가 마찰하면 발생하는 정전기 현상을 통해 기원전에 이미 그리스 철학자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데 이 두 힘이 상호 작용한다는 사실이 19세기가 되어서야 밝혀졌다.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태어나던 해에 덴마크의 한스 외르스테드라는 물리학자는 전기가 흐를 때 곁에 있던 나침반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전기와 자기의 상호 관계에 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전기와 자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여러 실험을 통해 인류 최초로 전자석을 만들기도 했다. 그 후 영국의 마이클 패러데이는 전자석 실험을 반복해서 결국 전자기 유도 현상을 규명했다.     이렇게 마이클 패러데이와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에 의해서 시작된 전자기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최근 대세로 굳어진 양자역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론물리학자였던 맥스웰은 그동안 발표되었던 전기와 자기 이론을 뭉뚱그려 소위 맥스웰 방정식으로 불리는 몇 가지 공식으로 정리했다. 또한, 전자기파의 존재를 처음으로 추측했는데 나중에 하인리히 헤르츠의 실험으로 밝혀졌고 그 공로로 헤르츠는 지금 주파수의 단위로 쓰인다. 그뿐만 아니라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이므로 전자기파는 빛과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마이클 클러크 맥스웰의 이름을 말할 때 중간에 클러크를 꼭 집어넣는 이유가 있다. 변호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원래 존 클러크라는 이름이었는데 그 지방 부자였던 맥스웰 집안에서 넓은 땅을 주는 조건으로 자기 가문의 성을 사용할 것을 제안해서 맥스웰이란 새 성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그의 아들도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그렇게 해서 맥스웰 가문은 대대손손 그 이름을 빛내게 되었다. (작가)       박종진박종진의 과학 이야기 제임스 클러크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가문 마이클 클러크

2024-04-26

[사설] 국제협력 속 첨단산업 일으키는 우주항공청 돼야

━ 24일 우주항공청장, 임무본부장 등 임명돼 ━ ‘과기부 산하’ 부처 이기주의 매몰 되면 안돼 ━ 아르테미스 계획 등과 협력, 비전 제시해야 왜 지금 우주일까. 미·중 기술 패권 경쟁 가운데 한국 반도체의 지위가 흔들리고,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국가 의료체계가 위협받는 오늘, 한국 사회에 우주는 무엇을 의미할까. 다음 달 27일 출범할 대한민국 우주항공청의 수뇌부가 결정된 지금 정부와 과학기술계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근본적 물음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24일 우주항공청장에 윤영빈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를, 임무본부장에는 존 리 전 미국 항공우주국(NASA) 본부장을 임명했다. 윤 교수는 나로호 개발 등에 참여한 로켓 추진체 분야 전문가다. 존 리 본부장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30년 가까이 NASA와 백악관 등에서 일한 우주산업 전문가다. 이번 인선에 대해 과학기술계는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한다. 우주는 더이상 미래가 아니고 현재다. 인류는 이미 지구 궤도를 넘어 달에 발을 디딘 지 오래고, 이제 지구 옆 화성으로까지 뻗어가고 있다. 달 궤도엔 우주정거장이, 달 남극엔 유인기지가 들어서는 아르테미스 프로젝트가 이미 진행 중이다. 이 같은 거대 국제 프로젝트 과정에서 정보기술·생명공학·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의 첨단 과학기술이 진화하고, 또 인류의 삶 속에 적용될 것임은 과거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우주항공청의 성공은 우주항공청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우주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만의 미션이 아니다. 국방·외교·산업·해양·농림·국토 등 여러 부처가 우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가 우주정책의 최상위기구인 국가우주위원회와 대통령실의 지휘·조율의 중요성도 절대적이다. 애초 그림과 달리 사실상 과기정통부 산하 기관 중심으로 편성된 조직 구성에서 드러난 것처럼 우주항공청이 부처 이기주의 때문에 표류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특히 긴 시간이 필요한 우주정책과 계획이 정권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예측 가능하게 이어지려면 여야 간 진지한 협력이 절실하다. 우주항공청이 자칫 관 주도의 우주정책 기관으로 변질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세계는 이미 민간 중심의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에 들어섰다. 스페이스X와 같은 우주기업들이 NASA와 함께 우주산업을 키워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암담할 정도다. 내년 말 누리호 4차 발사가 예정돼 있고 관련 기술 이전을 받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발사 전체를 주도하게 돼 있지만, 기술유출 시비에 휘말려 인재 영입마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처 간 협의가 늦어지면서 계획된 민간 우주발사장 건설 또한 지연되고 있다. 그사이 몇 안 되는 국내 우주발사체 스타트업들은 발사장을 찾아 나라 안팎을 헤매고 있다. 우주항공청은 한국에 뉴 스페이스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는 ‘기함’이 되어야 한다. 국제협력도 우주항공청 성공의 핵심 요소다. 정부는 달 탐사 2단계 계획으로 2032년 무인 달 착륙선을 띄울 계획이다. 무엇을 위한 달착륙선인가. 2032년이면,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따라 달 기지에 사람들이 돌아다닐 시점인데, 그때 그곳에 태극기를 단 조그만 무인 착륙선과 탐사로버가 내리는 건 생뚱맞지 않나. 한국의 달 탐사 2단계 계획은 아르테미스 계획의 일환으로, 국가 간 역할의 조율 속에 이뤄지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지적을 숙고해야 한다. 벌써부터 우주항공청이 발족과 함께 존재감을 드러낼 획기적인 프로젝트를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온다. 수천억원 이상의 거대 예산이 투입되는 우주정책에 정치적 요소가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정치적 흥행만을 위해 급조돼서도 안 될 일이다. 청년들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첨단산업을 일으키는 우주항공청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여야가 힘을 모으길 기대한다.

2024-04-26

농업국가와 교역국가, 남양사를 이해하는 두가지 축 [김기협의 남양사(南洋史) <9>]

베트남의 국보 제1호는 응옥루(Ngoc Lu) 청동북이다. 1893년 하노이 동남방의 응옥루 마을에서 제방 공사 중 우연히 출토된 이 청동북은 2백여 개 남아있는 동손(Dong Son) 청동북 중에서 가장 정교한 일품이다. 동손 청동북은 매우 특이한 청동기시대 유물이다. 기원전 6세기 이후 수백 년간 홍하(紅河) 유역에서 만들어진 청동북은 덩치가 크면서 (1미터 가까운 높이에 100킬로그램 가까운 무게까지 있다.) 무늬가 정교해서 경탄을 자아낸다. 만들 당시의 용도는 악기이자 제기(祭器)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후세에는 보물로 취급되어 중요한 교역 대상이 된 것 같다. 만들어진 곳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남양 곳곳에서 발견되어 온 것은 그 때문이다. ━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남양의 상고시대에 관해서는 고고학, 언어학 등 전문 연구서를 찾아 읽기가 벅차다. 그래서 개설서를 훑어보면서 눈에 띄는 항목을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본다. 개설서로는 피터 처치의 〈짧게 쓴 동남아 역사 A Short History of South-east Asia〉(제6판, 2017)와 크레이그 로커드의 〈세계사 속의 동남아 Southeast Asia in World History〉(2009)를 이용하고 있다. 둘 다 250쪽 전후의 얇은 책인데, 로커드의 책에 활용 가치가 크다. 처치의 책은 국가별로 서술되어 있고 ‘동남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 없다. 로커드의 책은 확실한 그림은 아니라도 최신 연구성과를 활용해 넓은 시각을 세우려는 노력이 분명하다. 석기시대-청동기시대-철기시대로 초기 문명을 구분하는 3분법은 19세기 초에 제안되어 고고학 연구의 뼈대 노릇을 했다. 20세기에 방사성탄소를 이용한 절대연대 측정 등 기술 발전에 따라 3분법의 역할이 줄어들고 유럽-중동 이외 지역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지만, 기술 수준을 나타내는 기본 지표로서 역할은 아직도 유효하다. 청동기보다 훨씬 높은 고열이 제작에 필요한 철기는 청동기의 다음 단계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청동기보다 견고하고 원료가 흔한 철기는 농기구에 많이 쓰이면서 농업생산량을 크게 발전시켰다. 청동기사회는 잉여생산력의 한계 때문에 정치조직의 확장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청동기시대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도 특색이 다른 문화들이 전개되곤 했다. 기원전 10세기에서 1세기까지로 추정되는 홍하(紅河) 유역의 동손 문화는 고도로 발달한 청동기문화였다. 비슷한 시기에 남쪽에는 참파의 연원으로 추정되는 사후인(Sa Huynh) 문화가 펼쳐졌다. 사후인 문화는 교역이 활발했고 기원전 6세기경부터 철기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 교역이 활발한 지역에 외부의 제철 기술이 먼저 들어온 것으로 이해된다. ━ 당나라 승려가 전한 해상제국의 모습 경제면에서 남양사의 양대축은 농업 발전과 교역 확장이었다. 농업 발전의 중심은 벼농사에 있었다. 벼농사는 일찍 석기시대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 발전은 청동기시대에 들어와 관개식 논농사로 이뤄졌다. 논농사는 생산력의 획기적 향상을 통해 정치조직의 확장을 비롯한 전반적 문명 발전에 추동력이 되었다. 동남아에서 논농사가 일찍 보급된 곳은 홍하-메콩-차오프라야-이라와디 등 큰 강의 중-상류 유역이었다. 하류의 삼각주지대는 배수의 어려움 때문에 근세에 이르러서야 곡창으로 개발된다. 그래서 농업 기반 고대국가는 대륙부의 내륙지방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빅터 리버먼이 〈기묘한 평행선〉에서 9-11세기에 나타난 파간, 앙코르, 다이비엣 등 농업국가들을 동남아 역사의 중심에 놓고 보는 까닭이다. 국가 형성의 계기는 교역 방면에서도 만들어졌다. 7-11세기에 수마트라섬을 중심으로 존재한 스리비자야 제국의 모습 일부가 당나라 구법승(求法僧) 의정(義淨, 635-713)의 기행문 〈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内法傳)〉으로 중국에 전해졌다. 의정은 인도로 가는 길에 스리비자야에 들러 반년간 체류했고, 11년 후 인도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8년간 체류했다. 가는 길에는 산스크리트어를 익히는 등 준비를 위한 체류였고, 돌아오는 길에는 구해 온 경전의 번역 작업을 위한 체류였다. 번역을 위한 체류가 왜 그렇게 길었을까? 떠오르는 의문이 있을 때 물어볼 만한 사람들이 그곳에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8년의 체류 중 지필묵을 구하러 한 차례 광저우에 다녀갔다는 대목을 보면, 불교국가 스리비자야에서 번역 작업을 위한 최상의 환경을 누린 것으로 보인다. 흔적을 많이 남기지 않은 것은 해상국가의 운명일 것이다. 스리비자야의 실제 모습은 같은 시기 대륙부의 농업국가들처럼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의정이 귀국을 8년이나 늦출 만큼 좋은 작업 환경을 제공한 국가라면 당시의 존재감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 베트남 독립을 위한 중국 쪽 배경 중국에서 교주(交州)로 불린 홍하 유역에는 관개농법의 선진기술이 중국으로부터 일찍 전파되었다. 5세기경에야 논농사가 산발적으로 시작된 다른 강 유역보다 초기 발전이 빨랐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중국이 놓아주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베트남이 독립국으로서 왕조시대에 접어든 데는 중화제국의 성격 변화와 관련된 측면이 있다. 당나라까지 인신(人身) 지배의 국가가 송나라부터 영토 지배의 국가로 바뀐 것이다. 문벌 아닌 과거제를 중심으로 관리를 등용하게 된 것이 대표적 변화였다. 송나라 태조가 천하 (재)통일을 앞두고 공신들을 모은 자리에서 집단 은퇴를 권한 일이 “한 잔 술에 군대 내놓기(杯酒釋兵)”란 일화로 전해진다. 공신들은 군벌이었다. 송나라가 군벌 연합을 넘어 보편적 (유가) 원리에 입각한 제국체제로 자리 잡는 장면을 보여주는 일화다. 한 무제의 남월 정벌(기원전 111) 이후 938년 응오쿠옌(Ngô Quyền 吳權)의 즉위까지 1천여 년간을 베트남의 ‘중국 지배시대’로 본다. 이 시기에 중국의 베트남 지배는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난 주 소개한 시니엡(士燮, 137-226)이 이해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시니엡은 교주에 6대째 자리 잡은 집안 출신이고 그 아버지는 일남(日南, 교주의 속군) 군수였다. 한나라의 관점에서는 변방 호족(豪族)이다. 시니엡이 초년에 상서랑(尙書郞)으로 출사한 것은 변방 호족 자제의 전형적 진로였고 그 아버지의 사후 교지(交趾) 군수로 임명된 것은 문벌의 계승이었다. 삼국시대의 중원 국가들이 교주 같은 변방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던 상황은 제갈량의 실속없는 남만(南蠻) 정벌로 알아볼 수 있다. 손권의 오나라는 시니엡의 우호적 태도에 만족했다. 시니엡과 같은 변방 실력자들은 최소한의 부담으로 중원 제국과의 마찰을 피하면서 자기 지역에 군림하는 데 중원 제국의 권위를 이용했다. 중원 제국의 힘이 비교적 강했던 시기가 당나라 때(618-907) 많았고, 당나라 멸망 후 베트남의 독립왕조 시대가 시작한 것이다. ━ 리버먼의 “헌장 시대”가 끌리지 않는 이유 빅터 리버먼은 900-1350년의 시기를 “헌장 시대(Charter Era)”라고 부른다. 홍하 유역의 다이비엣, 이라와디 유역의 파간, 메콩-차오프라야 유역의 앙코르, 베트남 동남해안의 참파 등 최초의 영토국가들이 나타나면서 종교-정치-행정 등 여러 방면에서 ‘헌장’, 즉 보편적 원리의 지배가 자리 잡은 시대라는 것이다. 그는 이후의 역사도 헌장 지배의 쇠퇴와 회복이 반복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요컨대 동남아 (대륙부) 역사를 “헌장의 역사”로 보는 것이다. 리버먼의 책을 반도 안 읽은 내가 그 관점을 ‘비판’할 수는 없겠지만, 끌리지 않는 까닭을 설명할 수는 있겠다. 무엇보다, 영토국가 중심으로 그 지역 역사를 보는 시각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 내가 보는 남양사의 첫 번째 특성은 영토국가의 역할이 작았다는 데 있다. 큰 강 유역의 농업국가들이 인근의 교역국가들에 비해 영토국가의 성격을 가진 것이 사실이지만, 교역국가들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 사실을 생각하면 영토국가의 성격만으로 그 역사를 살피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대륙부의 ‘헌장 체제’를 보편적 현상으로 꾸미기 위한 무리한 재단도 마음에 걸린다. 참파는 농업국가보다 교역국가의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륙부에 위치하고 인도 문화를 수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억지로 ‘헌장 체제’에 끼워 맞추는 데 걸리는 문제가 많다. 다이비엣의 경우도 파간, 앙코르와 발전의 궤적이 전혀 다르다. 리버먼이 중시하는 농업국가의 성격이 다이비엣에서는 수백 년 앞서서 갖춰져 있었다. 다이비엣이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확보한 시점이 파간이나 앙코르가 농업국가의 성격을 갖춘 시점과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헌장 시대”로 설명할 수는 없다. 농업 발전과 교역 확장이 남양사 전개의 양대축이었던 만큼 국가체제의 발전도 농업국가와 교역국가의 두 갈래로 펼쳐졌다. 교역국가는 농업국가에 비해 흔적을 적게 남겼을 뿐 아니라 농업 위주의 문명관 때문에 학술계의 주목을 덜 받아 왔다. 남양사의 이해를 심화하기 위해서는 교역국가의 모습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기협(orunk@naver.com)

2024-04-26

[기고]석유·커피 등 자원 부국, 앙골라 대통령 첫 방한

김형배 한-앙골라 협력위원장, 전 주중대사관 국방 무관 주앙 마누엘 곤살베스 로렌수(70) 앙골라 공화국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의 초청으로 오는 28~30일 한국을 공식 방문한다. 로렌수 대통령이 국방부 장관이던 2016년에 방한했지만, 1992년 양국 수교 이후 앙골라 국가원수의 방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렌수 대통령은 이번 방한을 계기로 앙골라와 한국이 서로 윈윈 하는 호혜 협력 관계로 발전되기를 바라고 있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GVC)이 급격히 재편되는 시점에 러시아·중국과 가까웠던 아프리카 국가의 원수가 한국을 방문해 주목된다. 아프리카 대륙 서남부에 위치한 앙골라는 세계적인 원유 수출국이다. 하루 약 1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전량 수출한다. 한국의 하루 소비량의 절반이나 된다. 니켈·리튬·코발트·다이아몬드 등 중요 광물의 매장량도 풍부한 자원 부국이다. 앙골라는 한국의 12배가 넘는 방대한 국토 면적에 인구는 3700만 명이다. 아프리카에서 앙골라처럼 원유와 광물, 비옥한 토지, 농업에 유리한 기후를 두루 갖춘 나라는 드물다. 그래서 앙골라를 '하늘이 준 천혜의 땅'이라 부른다. 아프리카는 종족과 종교 갈등으로 정정이 불안정하고 내전이 잦은 곳이다. 하지만 앙골라는 정치·사회의 안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특히 앙골라는 국가 발전에 대한 신념이 분명한 로렌수 대통령이 이끌고 있다. 로렌수 대통령은 젊은 시절을 전장에서 보낸 군인 출신이다. 2002년 내전 종식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 후 군을 정비하는 임무를 주도했다. 전임 산토스 정권 말기에 국방부 장관으로 민주적 정치제도와 선거제도 확립에 기여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8월 선거에서 앙골라의 제3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로렌수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앙골라가 정치적 안정을 얻었고, 오늘날 당당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앙골라는 발전 잠재력이 방대하다. 커피가 좋은 사례다. 1970년대에 앙골라는 세계 3대 커피 생산국이었다. 당시 60만 ha의 커피 농장에서 매년 약 30만 t의 고급 커피가 생산됐지만, 지금은 5만 ha에 불과하다. 27년간 전국을 휩쓴 내전의 후유증이다. 지금 앙골라 정부는 커피 산업을 국가 발전의 한 축으로 삼는다는 계획에 따라 커피 산업의 르네상스에 참여할 파트너를 찾고 있다. 앙골라의 다른 분야도 대부분 커피와 비슷하다. 그중에서도 농업 발전이 시급하다. 앙골라 농업부에 따르면 경작지 5500만 ha 중에 10%만이 실제 경작되는 실정이다. 앙골라 정부는 원유에 의존하는 경제 체제를 다변화한다는 계획이다. 원유가 고갈되기 전에 '원유 이후의 경제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목표에 따라 다양한 발전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2023년 11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탈퇴한 것도 OPEC의 통제에서 벗어나 원유를 국가 발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로렌수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다. ‘여인이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하면 그 나라는 시장이 형성된다’는 말이 있다. 앙골라 여성들은 이제 립스틱을 바르기 시작했다. 앙골라인들은 인성이 착하고 부지런하다. 가톨릭이 전체의 절반을 넘고 개신교까지 더하면 기독교도가 인구의 90%를 넘는다. 애국심이 투철하고 실천하는 국가지도자와 그가 이끄는 정부가 있다. 앙골라는 지리적으로 한국의 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거점 체인망으로 삼기에 적합한 국가다. 앙골라 정부는 서부 대서양으로부터 내륙을 횡단해 동부 모잠비크 인도양에 이르는 동서 횡단 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도로가 완성되면 내륙 국가에서 생산한 물품이 서부 대서양으로 나가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 필요가 없어진다. 앙골라는 대한민국에 기회의 땅이다. 서로를 보완해줄 수 있는 분야가 앙골라와 한국 곳곳에 널려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로렌수 대통령의 이번 방한이 한국과 앙골라 두 나라가 함께 멀리 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 그의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24-04-26

[커뮤니티 액션] “DACA 신분 자동 연장하라!”

“우리의 앞날을 지키기 위해 -DACA(서류미비 청년 추방 유예) 신분 자동 연장하라!” 민권센터와 전국 한인단체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가 지난 4월 23일 시작한 전국 캠페인 구호다.   현재 전국 각지 수십만DACA 수혜자들이 신분 갱신 지연 사태를 맞고 있다. 신청서 처리가 늦어지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건강보험도 없어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추방에 대한 불안감을 낳는다. 갱신 지연은 교육과 여행 등 기본 권리도 침해하고,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민권센터와 NAKASEC은 이민서비스국(USCIS)에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한다. 첫째, 적체 또는 보류 중인 갱신 신청서들을 신속 처리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해 수혜자들이 더는 일자리와 복지혜택을 잃고, 추방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안정을 보장하라! 둘째, DACA를 신분 자동 연장 대상에 포함해 갱신 지연으로부터 수혜자들을 보호하라!   DACA 신분 이민자들은 잇따르는 소송과 반이민자 세력의 공격에 따른 프로그램 폐지 위협으로 앞날이 불확실하다. 더구나 갱신 지연 사태가 이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USCIS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수십만 DACA 수혜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지경이며 이는 가족과 커뮤니티, 미국 경제 전반에 불이익을 준다.   예를 들어 DACA 신분이 만료되기 몇달 전 갱신 신청을 했지만 신청서 적체로 무급 휴가를 가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신청자는 아무런 잘못도 없이 법적으로 일할 권리가 박탈된다. 이 기간에 이른바 ‘불법 체류’가 누적되며, 이후 이민법에 따라 다른 혜택 자격을 잃는 등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이들을 고용했던 기업들은 운영에 심각한 혼란을 겪는다. 미국의 많은 기업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데 DACA 수혜자들은 이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신분 갱신 문제로 일자리를 떠나야 한다면 이는 중요한 미국 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USCIS는 DACA 수혜자들에게 자동 연장을 부여할 권한을 이미 갖고 있다. 현 규정은 취업승인문서(EAD) 갱신 신청자들에게 최대 180일까지 신분 연장을 허용할 수 있다. 심지어 USCIS는 임시 조치로 이 연장 기간을 540일까지 늘리는 권한도 있다. USCIS는 지난 4월 4일 이 권한으로 특정 이민자(망명과 난민 신청자, 영주권 신청 보류 이민자 또는 추방 보류자)들에게 장기간 신분 연장을 보장했다. 하지만 이 조치에서 DACA 수혜자들을 빠졌다.   민권센터와 NAKASEC은 온라인 서명운동(bit.ly/SecureOurFutures), DACA 수혜자들의 글과 비디오 수집(bit.ly/SecureOurFuturesStories) 등으로 알리는 활동에 나섰다. DACA는 시행 12년을 맞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2012년 만들어진 DACA는 2007년 6월 15일 이전에 미국에 온 청년들이 추방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임시 프로그램이다.     아시안 가운데 가장 많은 한인 6000여 명을 비롯해 모두 58만여 명이 DACA 신분으로 취업하고, 교육을 받는 등 권리를 누리고 있다. 이 청년들의 앞날을 지키기 위해 신분 자동 연장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신분 자동 신분 연장 신분 자동 자동 연장

2024-04-25

[우리말 바루기] 없어도 되는 ‘~에 있어’

“그는 일에 있어서나 사랑에 있어 열정적이다”에서와 같이 흔히 쓰는 말에 ‘~에 있어(서)’가 있다. 그러나 이는 일본식 표현이다. 일본어에서 ‘니오이테(において)’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우리말로 옮기면 ‘~에 있어(서)’가 된다.   이전에는 쓰이지 않던 이 말이 일제시대 들어 흔히 사용됐다는 것은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요즘은 들어가지 않은 글이 없을 정도로 남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말에서 ‘~에 있어(서)’는 대부분 없어도 되는 군더더기 표현이다.   “당신은 나에게 있어 존재의 의미입니다” “마음이 열리지 못한 사람에게 있어 삶은 고된 시련의 장일 수밖에 없다”에서 ‘~있어’는 모두 필요 없는 말로 ‘~에게’로만 해도 충분하다.   “남녀의 차이는 생리적인 것일 뿐 능력에 있어서는 대등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있어서는 확고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에서도 ‘~있어’는 불필요하다. 각각 ‘능력에서는’ ‘순간에는’으로 하면 된다.   다만 “나는 집에 있어서 바깥일은 잘 모른다”에서의 ‘어서’는 이유나 근거를 나타내는 연결어미로 ‘집에 있기 때문에’란 뜻이다. “돈이 없어서[없기 때문에] 결혼도 못 한다”에서의 ‘어서’와 같은 용법이며 위에서 얘기한 ‘~에 있어(서)’와는 다르다.우리말 바루기

2024-04-25

[문화산책] 말 잘하기와 경청의 힘

시끄럽기 짝이 없던 선거가 끝났으니, 이제 쓰레기처럼 더러운 막말과 욕설도 자취를 감추고 고운 말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누구나 말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말을 잘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이냐는 물음에 제대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흔히 미사여구를 현란하게 구사하며, 막힘 없이 재미있게 청산유수로 말하는 달변을 말 잘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사뭇 다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매끄러운 말솜씨가 아니라, 말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어눌하더라도 진정성이 있어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생기는 법이다. 실제로, 말을 하면서 더듬거리거나 머뭇거리고 말을 끊는 등의 어수룩한 빈틈이 있는 편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고, 기억도 잘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거짓말처럼 무서운 살상 무기도 없다. 지금 우리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거짓말, 몹쓸 말, 험상궂은 언어를 걷어내기만 해도 세상이 훨씬 평화롭고 조용해질 것이다. 어디 거짓말뿐이랴, 허언, 빈말, 말 바꾸기, 말 돌리기, 임기응변, 막말, 욕설, 험담, 비방, 중상모략, 악마처럼 떠도는 유령의 언어들, 무자비한 무기로 바뀌는 말들….   지금 우리 현실에서 거짓말을 가장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출세한 사람들, 많이 배운 사람들, 익명의 누리꾼들, 특히 정치가들이다. 말싸움, 거친 말, 험한 말, 가시 돋친 말, 말도 안 되는 말, 선량한 동료 시민들 청력 테스트 등으로 날밤을 지새운다. 일부 언론은 그걸 앵무새처럼 받아 적는다.   이분들의 입을 정화할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발칙한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눈부시게 발달한 첨단과학을 활용해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간단하게 요점을 설명하자면, 거짓말이나 몹쓸 말을 들으면 즉시 달려가서 귀싸대기를 통쾌하게 후려치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어서, 국회를 비롯해서 방송국이나 신문사처럼 말 많은 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나서는 각설이 품바타령을 한바탕 시원하게 불러제끼면 얼마나 속 시원할까?   제법 그럴싸한 생각인 것 같기는 한데,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워낙 거짓말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여기저기서 귀싸대기 후려치는 소리에, 얻어맞고 내지르는 비명으로 온 세상이 더 시끄러워질 것 같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교과서 같은 이야기를 속절없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으니 참 답답하다. 제발 말싸움 그만하고 대화하시라, 마음에도 없는 말 마구 하지 말고 진심을 말하시라, 제발 남의 말을 경청하시라… 같은 속절없고 허망한 부탁의 말씀들….   그중에서도 가장 간곡한 부탁은 ‘경청’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 경청이 최고의 웅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속담도 있고, 말로써 말 많으니 말을 말까 하노라 라는 명언도 있다. 묵언 수행의 의미도 무겁다.   철학자 한병철은 서사를 회복시키는 ‘경청의 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예로 든다. “소설에서 주인공 모모는 상대방의 말을 사려 깊게 들어줌으로써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심지어 사랑받는다는 느낌까지 받게 한다. 오로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서사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회복된 서사는 아픔을 치유한다.”   삼사일언(三思一言)도 좋은 처방이 될 것이다.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라는 이 말씀만 잘 지켜도 세상은 한결 평화로워질 것으로 믿는다. 세 번이 어려우면, 단 한 번이라도 말하기 전에 깊이 생각을 하시라, 그러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경청 막말과 욕설도 생각 하나 각설이 품바타령

2024-04-25

[뉴스 포커스] 대학생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

‘월드 프레스 포토’라는 단체가 선정한 올해의 보도 사진상은 전쟁의 잔인함을 고발한 사진이다.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숨진 5세 조카의 시신을 안고 비통해하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이도 불쌍하고, 그런 조카를 그저 안아주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여성의 절망감도 안쓰럽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보복 공격이 6개월을 넘기고 있다. 그동안 사망자는 계속 늘어 집계된 것만 3만4000명이 넘는다. 가자지구 전체 인구가 200만 명이 조금 넘는다고 하니 주민의 2% 가까이나 목숨을 잃은 셈이다. 사망자 가운데 3분의 2는 여성과 아이들이라고 한다. 세계는 휴전을 바라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요지부동이다. 바이든 정부와 연방의회는 최근 260억 달러 규모의 이스라엘 지원법으로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     요즘 전국 대학가가 난리다. 가자지구 전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 때문이다. 시위대라고 하지만 텐트를 치고 피켓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는 정도의 수준이다. 점거 사태도, 화염병도, 돌멩이도 없다. 그런데도 폭동진압 장비로 무장한 경찰들이 캠퍼스로 진입해 학생들 손목에 플라스틱 수갑을 채우고 있다. 경찰이 밝힌 체포 사유는 대부분이 ‘무단침입(trespassing)’. 학생들이 교내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하는데 ‘무단침입죄’라니…. 2024년의 미국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맞나 싶을 정도다.   ‘경찰 교내 진입’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은 네마드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이다. 지난 17일 연방하원 청문회에 출석했던 샤피크 총장은 친이스라엘 성향의 의원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이들은 “반유대주의 시위를 방관할 것이냐” “유대계 학생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가 미흡하다”는 등 추궁성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샤피크 총장은 경찰에 교내 진입을 요청했다.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에 위협을 느낀다’는 구실이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 책임자는 “학생들은 위협적이지 않고 해산 명령에도 질서 있게 따랐다”고 밝혔다고 한다. 경찰의 교내 진입 사태를 지켜본 한 교수는 “컬럼비아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날로 기억될 것”이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후 학생 체포 사태는 뉴욕대(NYU), 예일대, 텍사스대,USC,에모리대, 에머슨 칼리지, 미네소타대 등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사실 이보다 앞선 지난 11일 포모나 칼리지에도 학교 측 요청으로 경찰이 교내로 진입해 20명가량의 학생이 체포된 일이 있었다.     대학 총장은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샤피크 총장의 이번 처사는 이런 기대치와는 거리가 멀다. 교육자가 아니라 외압에 굴복한 직업인의 모습에 불과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이스라엘과의 협력 중단을 요구한 직원 수십명을 해고하면서 ‘비즈니스적 결정’이라는 변명거리라도 찾았다. 샤피크 총장은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는 제자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침묵하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유대인 학생들을 위해서는 이중, 삼중의 안전 조치를 요구하면서 경찰차에 실려 가는 학생들의 안전은 관심 밖인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시위에 나선 학생들에게 ‘반유대주의 시위대’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하지만 그들이 외치는 구호나 피켓 문구 어디에도 ‘반유대주의(antisemitism)’라는 단어는 없다. 그들은 ‘대량 학살 멈춰라’, ‘전쟁 중단하라’,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등의 구호와 함께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투자와 협력 중단 등을 요구할 뿐이다. 이것은 마치 1980년대 한국에서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는 대학생들을 좌경·친북 세력으로 호도했던 것과 비슷하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대학 구성원들은 헌법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우려한다. 디지털 세대라는 Z세대가 정치적 이슈에 침묵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김동필 / 논설 실장뉴스 포커스 대학생 시위대 친팔레스타인 시위대 친이스라엘 성향 이스라엘군 폭격

2024-04-25

[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계획의 오류

헤비급 권투 세계챔피언이었던 타이슨은 이런 말을 했다. “누구나 한대 맞기 전까지는 다들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자신과의 경기에 앞서 그럴싸한 작전계획을 이야기한 상대방선수에게 들으라고 했던 이야기라고 전해진다. 계획이 틀어지기 전까지는 누구나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변하고, 상대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예전에 세운 계획들을 과연 끝까지 고수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때로는 아예 처음부터 맞는 계획이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구소련의 작가다. 그는 소련의 강제 수용소에서 지낸 자신의 경험을 소설과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스탈린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강제노동수용소에서 8년간 갇혀 지냈다. 그는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보낸다. “인간이 행복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는 작업반장이 휘두르는 몽둥이로 단 한대만 맞아도 사라질 한심한 이데올로기”라고 그는 말한다. 감옥에 갇힌 그의 목표는 아마도 생존이었으리라. 아니 그냥 하루를 버티는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음식과 물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사막 여행을 오래하던 그는 갑자기 성욕이 생겼다. 사막 한 가운데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자, 그는 낙타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낙타의 뒤로 다가간다. 하지만 낙타가 자꾸 뒷다리로 차니까 더 이상 가까이 접근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던 차에 마침 저쪽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이 남자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저는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 음식과 물을 저에게 주시면 당신이 원하시는 무슨 일이든지 해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음식과 물을 그녀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저 낙타 뒷다리 좀 잡아주세요.”   계획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세워진다. 하지만 목표라고 불변인 것은 아니다. 목표 또한 중간 중간에 계속 점검을 해야만 한다. 현재 목표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목표가 더 중요한 상위가치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돌아보고 재점검해야만 한다.       십 여 년 전에 결심하고 행동하려고 했던 항목들을 정리한 메모를 최근에 발견했다. 제목은 “손헌수의 행동 강령”이었다. 제목에서부터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거기 적힌 내용들 중에 얼마나 지키며 살았는지 살펴보니 한심했다.     강령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이 강령을 매일 읽고 이대로 행동한다.” 작성해 놓은 지 십 여 년 만에 처음 다시 들여다보는 걸 보니, 매일 읽기로 했던 강령을 어긴 것이 확실하다. “나를 도와주는 직원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라는 강령도 있다. 직원 분들은 알 것이다. 내가 저 강령을 지킨 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세금보고철을 지나면서 다음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항상 계획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김없이 상황에 변화가 생긴다. 믿을만한 직원들은 떠나가고, 더욱 특별한 손이 가는 고객들이 들어 온다. 그때마다 돌이켜 본다. 우리 회사와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목표보다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고객들의 만족인가? 성취감을 느끼는 것인가? 직원들 하나하나의 행복인가?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것인가? 아니면 아끼는 직원들을 조금이라도 붙잡아 내 곁에 두는 것이 목표인가? 효율성을 갖춘 팀을 완성하기 위해 악가지를 쳐내야 하는가? 더 중요한 가치를 중심에 두고 덜 중요한 목표를 점검해야만 한다. 그리고 만들어진 목표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들을 수정해 나가야만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고 구멍가게라도 운영할 수가 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손헌수손헌수의 활력의 샘물 계획 오류 현재 목표 행동 강령 사막 여행

2024-04-25

[사설] 영수회담, 합의 가능 의제부터 찾아 국민 기대 부응하길

━ 상대가 수용 힘들 강경 요구만 고집해선 안 돼 ━ 정쟁적 사안 보다 민생 이슈부터 우선 다뤄야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열릴 여야 영수회담이 준비 단계부터 순탄치 않다. 대통령실 홍철호 정무수석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대표비서실장이 23일에 이어 어제 두 번째 실무협상을 열었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헤어졌다. 민주당이 이미 여러 가지 요구를 전달했는데, 대통령실은 뚜렷한 검토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며 천 실장은 유감을 표시했다. 사실 윤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회담 준비가 순조롭다면 오히려 그게 비정상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대선 때부터 이번 총선에 이르기까지 생산적 대화는 조금도 없이 극한 대결만 벌여 왔다. 선거를 여러 차례 치르면서 양측 진영 간 감정의 골도 워낙 깊게 패어 있다. 양측이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게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협치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선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직접 만나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의미 있는 합의점을 도출하는 첫 성공 사례가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민주당에 당부하고 싶은 점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고 점령군처럼 대통령실을 몰아세워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채 상병 특검 수용, 거부권 자제, 국민 1인당 25만원씩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13조원 편성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이 수용 가능한 부분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곤란한 사안도 있다. 특히 1인당 25만원씩 현찰을 지원하자는 방안은 정책의 효과성도 의문인 데다 재정 악화, 물가 급등 등의 부작용을 고려하면 워낙 논란의 여지가 크다. 나중에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추진하겠다면 몰라도 경제 철학이 근본적으로 다른 정부에 강요할 사안이 아니다. 대통령실도 최후의 마지노선을 제외한 나머지는 타협점을 찾겠다는 자세로 협의에 임하는 게 좋겠다. 좋든 싫든 간에 이번 총선 결과로 민주당의 도움이 없다면 윤석열 정부의 남은 임기 3년은 식물 상태가 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내줄 것은 내주고 받을 것은 받아야지 민주당의 협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채 상병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 일각에서도 수용이 불가피하단 의견이 나오고 있지 않은가. 영수회담이 성공하려면 조그마한 사안일지라도 서로 합의 가능한 의제부터 찾아야 한다. 또 정쟁적 이슈보다는 민생 분야에서 많은 대화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21대 국회가 문을 닫기 전에 처리해야 할 민생 법안도 수두룩하다. 특히 최대 현안인 의료계 파업과 관련해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한목소리로 해법을 찾아준다면 사태 해결에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여권을 호되게 혼냈지만, 그렇다고 야당이 혼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의석을 주지도 않았다. 영수회담의 성공을 위해 양측이 반드시 되새겨야 할 총선 민의다.

2024-04-25

[사설] SK하이닉스 20조 국내 투자…국가 총력전 된 반도체 전쟁

━ 최첨단 공정의 생산기지 위상 지키는 데에 도움 ━ 설계, 소·부·장 스타트업 지원해 생태계 육성해야 한국 경제가 올해 1분기 1.3%(직전 분기 대비) ‘깜짝 성장’을 했다. 2021년 4분기 이후 9분기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수출·소비·건설투자 고루 괜찮았다. 경제 호조에는 반도체 경기 회복도 한몫했다. 어제 발표된 SK하이닉스 1분기 실적은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1분기 매출은 역대 최고였고,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를 40% 웃돌았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하며 D램을 쌓아 만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이달 초 1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한 삼성전자도 전년의 10배인 6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우리 반도체 대표기업이 오래 지속된 하강 국면에서 벗어나 다행이다. 보조금 혜택을 누리고 대규모 수요처가 있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한국 반도체 기업의 미국 투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충북 청주의 낸드플래시 생산기지에 20조원을 투입해 D램 공장을 짓겠다고 엊그제 발표했다. 낸드플래시 공장을 더 짓는 대신, 수요가 폭발하는 HBM 생산능력을 키우겠다는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대규모 국내 신규 투자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AI 메모리의 첨단 공정을 담당하는 반도체 공급기지로서 한국의 위상이 유지될 수 있게 된 점도 반갑다. 반도체 전쟁은 이제 국가가 전력을 다해 뛰어드는 총력전이 됐다. 생존을 위해 치킨게임을 벌여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기업에만 맡겨둘 일도 아니다. 도로나 철도 같은 사회간접시설(SOC) 인프라 구축이 정부의 역할인 것처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산업생산의 인프라인 반도체의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미국·일본·독일 등이 공격적으로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뿌리며 제조 설비를 자국 내에 건설하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보조금 지원은 제조원가를 낮춰 반도체 기업의 투자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반도체 첨단공정의 국내 생산기반을 유지·강화하는 조건을 달아 우리도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 무엇보다 반도체 기술 격차를 벌리기 위한 차세대 기술개발을 정부가 도와줄 필요가 있다. 반도체 설계와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스타트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이 반도체 생태계 육성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건설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속도를 내기 위해선 용수나 전력 공급 문제가 더 이상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울산시가 삼성에스디아이(SDI)의 양극재와 신형 배터리 공장 건립을 지원하기 위해 전담 공무원을 파견, 토지 수용과 인허가 절차를 2년 반이나 단축한 모범사례가 있다. 반도체 업계의 가려운 곳을 찾아 시원하게 긁어주려는 중앙정부의 적극 행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4-04-25

[중앙시평] 다양성을 인정해야 풍요로워진다

버스에서 공익캠페인을 본 적 있다.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피부색은 개인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인종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우리 민족의 피부색을 살색이라고 한다면 우리 중심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견일 수 있다. 이는 반세기 전이라면 나오기 어려운 얘기였다.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 반만년 역사의 단일민족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비극을 거친 후 내세울 것 없이 춥고 가난했던 시절엔 파란 가을 하늘과 유구한 역사의 단일민족이라는 게 위로가 됐었다.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면서 우리를 결속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그때는 외국과의 교류가 드물고, 외국인을 만나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이렇게 우리 안에 갇힌 상황에서는 베이지색을 살색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심지어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기도 했다. 늑대가 있어야 사슴이 건강하듯 다름 인정·포용하는 사회가 건강 미래는 상호존중과 배려의 시대 다양성 품는 공존 확대해 나갈 때 이런 상황은 이제 전적으로 달라졌다. 지난 연말 방한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게오르기에바는 한국이 외국에서 더 많은 인력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인구 감소에 대응해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조언이었다. 결혼이나 취업 등으로 한국에 온 외국인은 지금도 많이 있으니, 우리는 이미 그 길에 들어서 있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고 노령화로 인구 구조가 변화하니 외국 출신 인구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좋건 싫건 그런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우수한 외국 인력을 유입하려면 이민 정책이나 사회 복지뿐 아니라 언어,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사회 통합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이걸 제대로 이뤄내지 못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글로벌 악몽을 꾸어야 한다. 잘 대처하기만 하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도약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왜 적극적으로 다양성을 포용해야 하는가? 잠시 눈을 돌려 생명 세계를 보자.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살았던 늑대는 인간이 못마땅하게 여겼던 탓에 1926년에 멸종됐다. 포식자가 사라지면 초식동물의 평화로운 낙원이 펼쳐질 것 같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늑대가 사라지자 사슴이 증가했고, 이들이 풀과 낙엽 식물을 마구 먹어댔다. 숲이 황폐화하고 초목이 죽으면서 땅이 침식됐다. 물가의 나무가 사라지면서 비버도 함께 사라졌다. 가뭄으로 풀과 초목이 부족해지면서 사슴이 집단 아사하기도 했다. 서식 환경이 처참히 바뀌자 멸종위기종 보호법이 제정됐고, 1995년부터 30여 마리의 늑대를 캐나다에서 포획하여 옐로스톤에 순차적으로 방출했다. 그 후 사슴 수가 줄면서 공원의 식물군이 변하고 물가 식물도 살아났다. 이 식물로 집을 짓는 비버 수가 늘었고, 비버가 건설한 댐은 물속에 사는 여러 동식물의 서식처가 됐다. 이후 100여 마리의 늑대가 안정적으로 생존하면서 죽어가던 생태계는 이전의 건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는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초식동물만 있을 때 평화롭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건 겉모습일 뿐이다. 사슴을 잡아먹는 늑대가 있을 때, 사슴도 오히려 건강할 수 있다. 다양성의 토대 위에서만 건강한 공존이 이뤄지고, 이런 공존 위에서 생태계가 건강할 수 있다. 이 다양성은 단순히 서로 다른 여러 종류가 같이 있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사슴과 토끼와 노루 등 여러 초식동물이 있다고 해서 건강한 게 아니라, 초식동물과는 질적으로 다른 육식동물이 필요하다. 유사한 종류의 다양성이 아니라, 질적으로 다른 다양성이 필요하다. 단일 혈통의 순수도 좋지만, 다양성을 포용하는 건강한 공존이 이제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덕목이다. 생태계와 달리 우리는 여기에 상호존중과 배려의 미덕을 추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꽤 많은 사람이 ‘다른’을 ‘틀린’이라고 말하지만, 바로잡아야 할 틀린(wrong) 것은 인정해야 할 다른(different) 것과는 다르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점점 더 서로 다른 인종적·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단정 짓지 말고 포용해야 한다. 문화 배경이나 신념 체계가 나와 다르다고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늑대를 사악한 존재로 규정하고 멸종시키는 것처럼 폭력일 수 있다. 다만 다를 뿐이니,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배제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에서는 “함께 미래를 그려보는 일은 다양성과 다원주의가 강화되고 우리 공동의 인간성이 풍요로워지는 사회를 비전으로 품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서 포용적이고 타인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능력을 발전시켜야 하며, 다른 문화와 인식체계, 생활방식과 세계관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상호존중과 배려의 영역을 가족, 이웃, 소속 집단, 민족으로 한정하지 말고 인류와 생태계 전체로 확대하는 시대가 우리의 미래여야 한다. 양형진 고려대 명예교수

2024-04-25

민주당은 공수처에 벌써 싫증 나나[강주안의 시시각각]

누가 뭐래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낳은 부모는 더불어민주당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이후 17년의 산고를 거쳤다. 요즘 민주당의 공수처 홀대가 불편한 이유다. 공수처가 나름 공들여 온 ‘채 상병 사건’을 특검 대상으로 밀어붙인다. 수사기관 입장에서 중대한 사건을 빼앗기는 것만큼 허탈한 일은 없다. ━ 노무현 공약 이후 17년 만에 관철 지금까지는 검찰이 특검에 사건을 내줬다. 검찰을 불신하는 야당이 이를 주도했다. 한 건당 수십억원의 예산이 드는 특검 수사가 늘 성공적인 건 아니다. ‘특검이 성과를 내지 못한 데는 특검에 파견된 검사와 특별검사 사이의 갈등도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박준휘 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관한 연구』). 검찰과 특검은 천적 관계다. 공수처는 다르다. 검찰 견제가 목적인 기관이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때 공수처법을 강행했다. 이에 앞서 노무현 정부는 17대 국회에서 공직부패수사처의 설치 법안을 제출했다. 18대 국회에서 비슷한 법안을 밀어붙인 것도 민주당이다. 지향점이 비슷한 특검에 공수처 수사를 넘긴다니 수긍이 어렵다. ━ 채 상병 수사 중인데 특검하자니 민주당의 찜찜한 속내가 짐작은 간다. 당초 공수처는 정치적 중립을 중시해 처장 인선에 야당이 비토권을 갖도록 설계했다. 과반 의석을 무기로 이를 무너뜨린 장본인이 민주당이다. 총 7명인 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의결정족수를 6명에서 5명(3분의 2 이상)으로 낮췄다.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해도 지명이 가능해졌다.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을 강하게 압박했던 이해찬 전 대표 머릿속엔 “민주당 정부가 20년 정도 집권할 계획”이 들어 있었으니 여당 입장에서 만만한 공수처를 원했으리라. 그러나 5년 만에 국민의힘 정부가 들어서는 바람에 민주당은 공수처장 후보자를 비토조차 못 하는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채 상병 사건처럼 ‘장성급 장교’와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등 3급 이상 공무원’이 연루된 의혹을 수사하라고 만든 공수처를 두고 특검을 하겠다니 답답하다. 200억원 넘는 공수처 예산이 아깝지도 않나. 문 전 대통령이 “공수처는 대통령의 친인척과 특수 관계자를 비롯한 권력형 비리에 관한 특별 사정 기구로서도 의미가 매우 크다”(2019년 국회 시정연설)고 밝혔듯 수사 범위는 꽤 넓다.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등을 포함한다. ━ 여당서 야당 되니 생각 달라졌나 막대한 돈이 드는 특검을 주장하기 전에 공수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민주당의 도리다. 처장 인사 비토권을 없앤 게 후회된다면 이제라도 후보 추천 의결정족수를 6명으로 환원하면 된다. 공수처법 개정 당시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력히 반대했기에 이제 와서 야당 비토권을 거부할 명분이 없다. 민주당에선 지난 2월 처장 후보 두 명이 추천됐는데도 지명을 미루는 윤석열 대통령을 탓한다. 김영배 의원은 “지금 공수처가 처장도, 차장도 없는 비정상적 상태이고 특히 윤 대통령이 공수처를 무력화하려는 모습이 계속 노정됐기 때문”이라며 “이제라도 공수처 수사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그걸 중단시킬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채 상병 사건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수사와 관련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가 쟁점이다. 이 과정에 대통령실이 개입했는지 밝히면 된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해 호주 대사로 임명된 그와 현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 민주당으로선 큰 신세를 진 셈이다. 이제 막 관련자 소환을 시작한 공수처를 외면하고 특검을 추진하는 건 옳지 않다. 민주당에는 한 해 200억원을 쓰는 공수처를 궤도에 올려야 할 책무가 있다. 지난해 사퇴한 검사 출신 김성문 전 공수처 부장은 “공수처 근무 기간은 공직생활 중 몸은 가장 편했던 반면 마음은 가장 불편했던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마음이 불편한 건 그렇다쳐도 “공직 생활 중 몸은 가장 편했다”는 대목에서 내가 낸 세금이 떠올라 몹시 화가 난다. 강주안(jooan@joongang.co.kr)

2024-04-25

[시론] 70년 사이 소비 230배, 플라스틱세 어떨까

하루가 멀다고 미세플라스틱 관련 뉴스가 보도된다. 생수 페트병에 미세플라스틱이 검출되고, 종이컵 속 비닐코팅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떨어져 나온다는 충격적 조사 결과도 있다. 식물의 뿌리를 통해 흡수된 미세플라스틱이 과일과 채소에서 검출되고 있다. 심지어 환자의 혈액 속으로 주입되는 수액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나오고 있다. 일회용 컵이나 포장재·배달용기 등 일상의 플라스틱 소비는 인체가 플라스틱에 노출되는 출발점이다. 유출된 플라스틱 쓰레기 오염을 통해서도 미세플라스틱이 인체로 들어온다. 1972년 1월 미국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미국인 100명 중 86명의 몸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당시 신문은 “인간이 이제 조금씩 플라스틱이 되고 있다(Humans are just a little plastic now)”고 표현했다. 50년이 지난 지금 환경호르몬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조각이 아예 인간의 몸속을 떠돌고 있다. ‘인간의 플라스틱화’가 한층 진행됐다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다. 미세플라스틱 인체 건강 위협 소비감량·대체·재활용 대책 시급 11월 부산 ‘정부 간 회의’ 성과내야 플라스틱 사용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매년 4억6000만 t을 사용하고 있는데 70년 전보다 230배 많은 양이다. ‘물질의 황제’로 등극한 플라스틱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60년에 12억3000만 t을 사용할 거란 전망이다. 석유화학업체들은 석유 연료 수요 감소를 우려하면서도 경쟁적으로 플라스틱에 투자하고 있다. 석유 에너지 퇴출이 오히려 플라스틱 사용을 촉진하는 아이러니다. 심각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약이 진행되고 있다. 2022년 3월 유엔 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국제협약 제정을 결의한 이후 지난해까지 세 차례의 정부 간 회의(INC)를 개최했다. 오는 11월 마지막 5차 회의를 끝으로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석유계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자는 구속력 있는 합의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산유국들과 석유화학산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생산량 감축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유해성을 입증할 과학적 증거와 석유 원료 대안이 명확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5차 회의에서 협약 제정을 완료하고자 할 경우에는 감량에 대한 원칙적 선언과 국가별 자율 감축 계획을 밝히는 정도로 마무리될 가능성도 높다. 재활용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이 또한 쉽지 않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현재 10% 남짓이고, 높아질 전망도 어둡다. 플라스틱 재질 및 첨가제의 복잡성을 고려할 때 같은 재질의 플라스틱을 모아서 녹이는 물리적 방법엔 한계가 분명하다. 모으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물성 악화로 재활용 횟수의 제약도 있다. 재활용을 반복할수록 오염물질이 농축되는 안전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플라스틱을 분해해 기름을 뽑은 다음 플라스틱 원료로 사용하는 화학적 재활용 방법은 어떨까. 물리적 방법보다는 좀 더 넓은 범위의 쓰레기를 재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고, 오염물질이 배출되는 약점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힘들더라도 석유계 플라스틱 생산 감축에 대한 분명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탄소배출 감축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기후변화 협약과 플라스틱 협약 모두 석유 사용 감축 및 종국적 퇴출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석유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소비 감량, 대체, 재활용의 순으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회용품 및 일회용 포장재 사용 금지, 세금 부과 등의 강력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재사용 용기의 사용을 촉진할 수 있는 국제 규범을 이번 협약을 통해 제시해야 한다. 어느 한 국가의 노력과 민간의 자발적 캠페인만으로는 플라스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대기와 해양 방출, 쓰레기 수출을 통해서 플라스틱 오염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힘을 합쳐야 한다. 국제협약을 통해서 모든 나라가 오염 종식을 위한 강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오는 11월 마지막 회의는 부산에서 열린다.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도 오염 종식을 위한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2024-04-25

[주정완의 시선] 청년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제목의 미국 영화가 있다. 같은 제목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2008년)에서 작품상 등 4관왕에 올랐다. 2024년 대한민국에선 이렇게 바꾸고 싶다. ‘청년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는 말이다. 지난 22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원회의 발표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이날 시민대표단의 다수안으로 발표한 내용에선 청년 세대에 대한 배려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아서다. 특히 태어난 지 얼마 안 됐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 세대에는 핵폭탄급 충격이라고 할 수 있다. 천하람 국회의원 당선인(개혁신당)이 “미래 세대 등골을 부러뜨리는 ‘세대 이기주의 개악’”이라고 비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22대 국회에서 흔치 않은 30대 당선인인 그는 “미래 세대에 더 큰 폭탄과 절망을 안겨야 하느냐. 이러다가 미래 세대 자체가 없어질지 모른다”라고 토로했다. 공론화위 다수안, 개혁 아닌 개악 17년 전 연금개혁 노무현도 배신 미래 세대의 등골 빼먹기 멈춰야 공론화위원회의 다수안이 왜 문제인가. 청년 세대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무거운 짐을 떠넘기는 독소 조항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현재 40%에서 50%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듣기 좋은 말로 ‘더 내고 더 받기’라고 했지만 겉포장에 속으면 안 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도대체 소득대체율 40%는 언제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원래 이 비율은 70%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8년 12월 이 비율을 60%로 낮췄다. 당시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외환위기의 충격이 역설적으로 연금개혁의 원동력이 됐다. 그래도 연금 재정의 구조적 적자는 심각했다. 이번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섰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7월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그 결과물이다. 여기엔 소득대체율을 단계적으로 40%까지 낮춘다는 내용을 담았다. 물론 노 전 대통령 혼자 다 했다고 할 순 없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의 개혁 의지와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았던 유시민 작가는 이런 회고(『한국 대통령 통치 구술 사료집 5: 노무현 대통령』)를 남겼다. 그는 “법안을 만들어 여당(열린우리당)에 주기 전에 먼저 야당(한나라당)하고 협상한 걸 대통령이 일일이 다 보고받았고, 그래서 백지 위임장을 받고 협상해 나갔다”고 말했다. 물밑 협상에서 법안 통과의 대가로 야당이 요구하는 것에 대해선 “(노 대통령이) 뭐든지 다 해주겠다고 했다. 뭐든지 다”라며 “(협상이) 막힐 때마다 전 과정에 대통령이 개입했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성사된 게 2007년 2월 9일 당시 노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여야 영수회담이었다. 유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은) 영수회담이란 말 자체를 봉건적이라 그래서 싫어하셨는데 ‘그래도 여야 영수회담을 해줘야 됩니다. 그쪽에서 원하기 때문에’라고 말씀드렸다”고 회고했다. 이날 영수회담에선 공동 발표문까지 채택했다. 여기엔 “국민연금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향의 국민연금 제도 개혁”이란 내용이 들어갔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그해 4월 국회 본회의에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올라갔지만 야당 의원들의 주도로 부결됐다. 당시 임채정 국회의장은 부결을 우려하면서 법안 상정을 망설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직접 임 의장에게 전화해 “정부가 책임질 테니 표결에 부쳐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법안 부결의 여파로 유 장관은 사퇴하고 한덕수 총리가 야당과의 협상에 나섰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겨우 여야 합의에 이른 게 현재의 소득대체율 40%다. 인제 와서 재원 대책도 없이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건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것일 뿐 아니라 이른바 ‘노무현 정신’도 배신하는 것이다. 미래가 암울할 때는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던 1980년대 얘기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참모의 보고를 받고 이렇게 질색을 했다고 한다. “국민연금이라니, 나라 말아먹자는 얘기 아니오. 국민연금 하다가는 우리도 영국처럼 망해요.” 과도한 연금 적자로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던 영국처럼 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2020년대 대한민국은 1980년대 영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연금 재정의 부실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나라가 거덜 날 수밖에 없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적 성향이나 진영을 떠나 연금 적자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 주정완(joo.jungwan@jtbc.co.kr)

2024-04-25

[이익주의 고려, 또 다른 500년] 소문난 효자, 페미니스트, 100세 넘겨 고려 최장수…

평범하고도 특별했던 최루백의 삶 역사학자라면 누구나 옛날 보통 사람의 삶을 복원해보고 싶어 한다. 고려·조선의 보통 사람들이 현재 우리의 조상이고, 현재 우리도 모두 보통 사람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역사학자의 호승지심(好勝之心)을 부추기는 요소가 있다. 남아 있는 사료 거의 다가 소수 지배층의 시각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통 사람의 삶은 사료를 거꾸로 읽어야 복원할 수 있다. 어려운 만큼 보람 있는 일이지만, 사료의 한계는 절대로 쉬 넘어설 수가 없다. 특히 고려시대가 그렇다. 고려 앞의 삼국시대는 오히려 『삼국유사』 같은 데 평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설화가 남아 있고, 조선 시대는 유명하지 않은 인물의 일기가 여럿 남아 있지만, 고려는 그런 사료가 없다. 그런 가운데 최루백(崔婁伯)은 참 반가운 사람이다. 여러 사료에 조금씩 나오는데, 그 조각들을 찾아 모으면 고려시대 보통 사람의 삶을 얼마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료 부족 ‘보통의 삶’ 복원 한계 최루백 예외, 그를 통해 추정 가능 “이름 경애…함께 못 죽어 애통” 첫째 아내 죽자 애틋한 묘지명 자녀 유교식 이름, 장례는 절에서 큰딸 남편과 사별 뒤 친정 돌아와 아버지 해친 호랑이 죽여 복수 최루백의 이름은 우선 『고려사』 열전(列傳)에 나온다. 열전이란 개인의 전기를 모아놓은 것으로 고려시대 인물 약 1000명이 올라 있는데, 그 가운데 효자·효녀 17명을 따로 모은 효우편(孝友篇)에 들어있다. 그에 따르면 최루백은 수원의 향리 최상저(崔尙翥)의 아들이라고 했다. 이 말은 그의 본관이 수원이며, 조상들은 아직 중앙의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대대로 수원에서 향리 직을 세습하며 살았다는 뜻이다. 열전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최루백이 열다섯 살 때 최상저가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에게 해를 당했다. 최루백은 이 호랑이를 잡겠다고 나섰는데, 어머니가 만류하자 “아버지의 원수를 어찌 갚지 않겠습니까?”라며 도끼를 메고 호랑이를 쫓아갔다. 호랑이가 배가 불러 누워 있는 것을 보고는 “네가 내 아버지를 잡아먹었으니 나도 너를 잡아먹어야겠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호랑이가 꼬리를 흔들며 엎드리자 도끼로 내리쳐 죽인 다음 그 고기를 담아서 개울가에 묻었다. 또 아버지의 뼈와 살을 골라내서 장사지낸 뒤 여막을 짓고 무덤을 지켰다. 상기가 끝나자 묻어두었던 호랑이 고기를 가져다 먹었다. 이 일로 최루백은 고려시대의 효자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 뒤 과거에 급제했는데, 향리 집안의 자제가 급제해서 관리가 되는 것은 고려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고려사』 다른 곳에는 1153년(의종 7년) 11월에 기거사인(起居舍人) 최루백을 금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는 기록과 1158년 9월 국자사업 최루백이 국자감시의 시험관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기거사인과 국자사업은 과거에 급제한 문신만이 오를 수 있는 관직이고, 외국에 사신 가는 것과 과거의 시험관이 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 나름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단히 특별한 경력은 아니었고, 최루백을 특별하게 만든 것은 하나의 유물이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봉성현군 염씨 묘지명’이라는 유물이 있다. 봉성현군이라는 외명부(外命婦, 관리의 부인에게 주는 관직)를 가지고 있던 염씨(廉氏) 부인의 묘지명이란 뜻이다. 묘지명이란 죽은 사람에 대한 기록으로, 돌에 새겨 무덤에 묻는 풍습이 있었다. 염씨 부인의 묘지명을 새긴 석판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인데, 이 묘지명을 지은 사람이 바로 염씨의 남편 최루백이었다. 최루백은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을 기리며 이 글을 썼다. 그런데 이 묘지명에 아주 특별한 점이 있다. “아내의 이름은 경애(瓊愛)이다”라고 해서 그 이름을 밝혀놓은 것이다. 부인과 딸의 이름을 남기다 고려 500년 역사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여성의 이름은 거의 없다. 여성에게 이름이 있었는지를 의심할 정도다. 하지만 염경애의 존재는 그 의문을 깨끗이 씻어준다. 여성도 이름이 있었지만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을 뿐이다. 마침 염경애의 친정어머니 심씨의 묘지명도 남아 있는데, 그에 따르면 심씨의 이름은 지의(志義)이고, 정애(貞愛)라는 둘째 딸이 있었다. 또 염경애의 묘지명에는 귀강(貴姜)·순강(順姜) 두 딸이 있다고 되어 있다. 다른 묘지명들은 모두 딸의 이름을 감추고 첫째 딸, 둘째 딸 하는 식으로 기록한 데 비해서 최루백은 아내뿐 아니라 딸들 이름도 모두 알렸으니, 그 시대의 페미니스트라고나 할까? 심지의·염경애·염정애·최귀강·최순강 다섯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시대 여성 이름 전부라고 하면 좀 놀라운 일일까? 최루백이 지은 염경애 묘지명은 이렇게 시작된다. “황통 6년 병인년(1146년) 정월 28일에 최루백의 처 봉성현군 염씨가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 순천원(順天院)에 빈소를 마련했다가 2월 3일에 화장하고 유골을 봉해서 서울 동쪽 청량사(淸凉寺)에 모셨다가 3년이 되는 무진년(1148년) 8월 17일에 인효원(因孝院) 동북쪽에 장사지냈으니 아내의 아버지 묘소 곁이다.” 여기서 고려시대의 장례 풍습을 엿볼 수 있다. 먼저, 불교국가답게 장례의 단계 단계마다 절이 등장한다. 또 빈소를 차렸다가 닷새 되는 날 화장하고 3년 만에 장사지냈는데, 요즘 많이 하는 화장 후 매장 풍습이었다. 장지는 친정아버지 곁으로, 친정어머니 심씨는 남편 곁에 묻혔으니, 부모와 딸이 사후에 한데 모인 것이다. 조선에서는 생각도 못 할 일이다. 묘지명에 의하면, 염경애는 스물다섯에 최루백과 결혼했다. 고려시대 남녀의 결혼 연령을 알 수 없는 우리에게 이 자료는 매우 중요하다. 또 아들 넷과 딸 둘을 낳았는데, 고려시대의 평균 자녀 수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또한 귀중한 자료이다. 아들들 이름은 위부터 단인(端仁)·단의(端義)·단례(端禮)·단지(端智)라고 지어서 단을 돌림자로 하고 유교의 4덕(四德)인 인·의·예·지를 이름자로 썼다. 그러면서도 4남 단지는 출가해서 승려가 되었다고 했으므로 유교와 불교가 어우러진 고려사회의 모습이 보인다. 또 큰딸 귀강은 남편이 죽고 집에 돌아와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절대 출가외인(出嫁外人)일 수 없는 고려 여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최루백의 덤덤한 기록은 고려 사람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준다. 고려시대 여성 재혼도 거리낌 없는 일 묘지명은 고인에 대한 기록인 ‘묘지’와 고인을 칭송하는 운문인 ‘명(銘)’으로 이루어진다. 최루백은 묘지 뒤에 다음과 같은 명을 붙였다. “믿음으로써 맹세하노니, 그대를 감히 잊지 못하리라. 함께 무덤에 묻히지 못하는 일, 매우 애통하도다. 아들딸이 있어 나르는 기러기 떼와 같으니, 부귀가 대대로 창성할 것이로다.” 먼저 떠난 부인을 애틋하게 그리워하며, 함께 죽지 못함을 애석해하는 남편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남편이 부인이 죽은 뒤 재혼을 했다. 이 사실은 최루백 본인의 묘지명이 남아 있는 바람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의 묘지명에는 “처음에 ▤▤▤와 결혼해서 4남 2녀를 두었다. 유▤▤와 다시 결혼해서 3남 2녀를 두었다”(▤는 읽을 수 없는 글자)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최루백의 재혼은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고려시대에 재혼은,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에게도 거리낌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재혼이 가능하다고 해서 일부다처제였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고려는 엄격한 일부일처제 사회였고, 상처 후의 재혼이 오히려 그 근거가 된다. ‘해주오씨 족도’에 최루백이 또 한 번 등장한다. 족도(族圖)란 본격적인 족보가 만들어지기 전에 한 집안의 계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을 말한다. 이 족도는 1401년(태종 1)에 만들어졌는데, 조선 전기 가계 기록답게 자기 집안뿐 아니라 처가의 조상까지 기록했고, 그 덕분에 4세 오찰(吳札)의 처증조로 최루백의 이름이 오르게 되었다. 뜻밖의 곳에서 그 이름을 만나니 반갑기까지 하다. 최루백의 묘지명에는 그가 세상을 떠난 해가 ‘전몽적분약(旃蒙赤奮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갑자(古甲子)로 전몽은 을(乙), 적분약은 축(丑)이니, 을축년 즉 1205년이 되는데, 첫 부인 염경애가 세상을 떠난 지 무려 59년 뒤이다. 염경애의 생년이 1100년이므로, 두 사람이 동갑이면 최루백의 향년이 105세이고 5년 연하라도 100세가 된다. 젊어서 호랑이 고기를 먹어서였을까. 아무튼 고려의 최장수 기록이다. 이렇게 고려 사람 최루백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이익주 역사학자·서울시립대 교수

2024-04-25

[이재승의 퍼스펙티브] 한국 실용외교의 카드는 제조 역량과 문화 파워

혼돈의 국제질서, 한국 외교의 길은 국제 정세의 거대한 체스 보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쟁 지역이나 주요 국가들 모두 국내 정치와 국제 관계에 있어 혼돈기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 대선과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동북아 갈등도 1년 뒤를 내다보기 어렵다. 국제 질서와 규범의 파편화는 안보와 경제 두 차원에서 외교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에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더욱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혼돈의 시기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리셋의 시기이기도 하다. 한국은 국제 질서를 논의할 핵심 그룹에 점점 다가가고 있다. 그게 ‘주요 7개국(G7) 플러스’일 수도, 다른 형태일 수도 있다. 초청장 여부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른다는 자조는 G7의 작동구조를 이해한다면 난센스다. 오히려 형식이 아니라 실력으로 그 리그에 당당히 들어가는 게 중요하고, 그게 그리 불가능한 전망만은 아니다. 대신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더욱 적극적인 시도를 해야 한다. 한·미·일 협력체제는 자산…동맹 플러스 차원에서 실용외교를 가치와 실용은 대척점에 있지 않아, 맹목과 단순화 경계해야 조용하면서 강한 외교력 발휘하는 유럽 국가들 눈여겨봐야 정부·의회·학계·기업 간 소통 강화하는 외교 자문기구 긴요해 재임 기간 내 성과에 강박감 금물 한편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맹외교의 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명분과 가치보다 실리를 우선시하자는 실용외교의 논리는 현실정치에서는 새로운 것이 아니고, 실제로 모든 국가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용외교는 누구와 할 것인지에 대한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방법론의 문제다. 외교는 점과 선과 면으로 구성된다. 점점이 놓여 있는 핵심 인사들을 관리하고, 기업과 기관들과 연계를 만들고, 그걸 바탕으로 국가 간의 관계가 형성된다. 점을 찍고, 모으고, 선을 잇는 작업을 통해 대외적으로 비치는 면의 외교가 완성된다. 특히 안보와 동맹 관리에 있어서는 큰 방향을 보여주는 그림을 갖출 필요가 있다. 격을 따지고, 의전을 갖추고, 거대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면’에 집착하는 외교는 자칫 공허해지기 쉽다. 촘촘하게 갖춰진 점과 선이 없이 만들어진 외형은 잠시 열광하다가 사라지는 홀로그램과 같다.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이 또 다른 면을 급조하는 것이라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재임 기간 내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감은 단임제 정부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실용외교가 가장 피해야 할 걸림돌이기도 하다. 허식을 벗는 게 실용외교다. 그 인식을 지도자와 국민이 공유해야 한다.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를 다루는 경제외교는 큰 차원에서의 담론뿐만 아니라 미시적인 차원에서 얽혀 있는 수많은 개별 사례들을 풀어내야 한다. 여기서는 얼마나 많은 점과 선을 잇는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점과 선이 있으면 빠르게 면을 만들고 모양새를 복원할 수 있다. 실용외교의 근간을 이루는 이들 네트워크는 종종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신뢰와 협상력이라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비(非)우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은 이러한 점과 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의외로 할 수 있는 영역들이 많다. 빈틈없는 계산과 정책 일관성 중요 유럽의 몇몇 나라들은 이러한 실용외교를 잘 추진한 사례로 꼽힌다. 경제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력을 세계 곳곳에 깔아두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가진 것보다 하나씩 적게 내보인다. 그 신중함이 협상력을 높인다. 네덜란드는 고도의 개방성과 실용성을 과학 혁신과 접목하는 한편, 국제 규범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세계 경제의 필수불가결한 축을 만들어왔다. 인접한 옛 소련으로부터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동서 진영의 가교 역할을 하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켜낸 핀란드도 생존 전략에 있어 실용성을 깔고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인구 500만의 국가인 핀란드는 국제 평화 중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말과 감정을 아끼면서도, 빈틈없는 계산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 데 있다. 한국이 눈여겨봐야 할 사례들이다. 문화 소프트파워 활용 공간 넓어져 한국은 실용적인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세 개의 카드가 있다. 첫 번째 카드는 제조업 역량이다. 자동차에서 반도체, 소프트웨어에서 방위산업에 이르는 산업의 전 분야를 집약적으로 보유한 국가는 전 세계에 얼마 없다. 서울을 중심으로 세 시간 비행거리 안에서 전 세계 반도체와 휴대전화의 압도적 물량이 생산되고, 조선과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가 집중돼 있다. 배터리와 반도체는 해외 경제안보의 거점기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을 파트너로 하게 되면 집약된 제조업과 지리적 접근성의 장점을 누릴 수 있다. 그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두 번째의 카드는 문화적 소프트파워의 증가다. 문화적 친밀감은 한국이 보유한 점과 선을 연결하는 데 있어 진입장벽을 낮추고 호감도를 높인다. 콧대 높았던 유럽에서부터 글로벌 사우스라고 불리는 제3 세계권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소프트파워를 통해 활용할 공간이 늘어났다. 문화 역량이 경제적·정치적 자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 번째 카드는 지난 수년간 엑스포 유치를 위해 발로 뛰어다닌 경험이다. 비록 유치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까지 눈으로 보고 수많은 점을 찍고 다녔다. 묻어버리고 싶은 과거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네트워크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만큼 밑밥을 던져놓았는데 낚싯배를 띄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효가 남아있을 때 전략적으로 중요한 관계들을 선별해 이어 나가야 한다. 비싼 수업료를 낸 것은 반드시 그 가치가 있다. 동북아 연계할 상상력 발휘해야 하지만 이러한 카드들을 실용외교에 성공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과제가 수반된다. 첫 번째 과제는 안전판이 되어줄 동맹과 우방의 확보다. 이미 세계는 다극화된 파트너십으로 묶여가고 있다. 한·미·일 공조체제는 현시점에서 가장 확실한 외교적 자산이다. 감정의 골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일본과의 관계개선은 한국 외교의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다자 무대에서 활동 공간을 넓혀주는 치트키다. 외교 일선에서 뛰어본 사람들은 한·일 적대관계가 얼마나 큰 비용을 치르게 했는지 뼈저리게 안다. 협상력을 가지는 실용외교는 ‘동맹 플러스’로 확대됐을 때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동맹만 보는 것도, 동맹을 경시하는 것도 실용외교의 실패로 귀결된다. 두 번째 과제는 동북아를 연계할 상상력의 발휘다. 일본과 중국은 우방을 따지기 이전에 지리적으로 인접한 거대 경제권이다. 북한은 숙명적으로 공존해야 하는 한반도의 절반이다. 핵 억지에는 여전히 동맹이 필요하고, 경제 안보에는 중국이 함께 해야 한다. 이런 한국의 딜레마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주체는 결국 자신밖에 없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은 엄중하지만, 여기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협상력을 역으로 중국과의 경제관계에 투사해야 한다. 산업 차원에서 일본과의 연계 강화는 미국·중국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프랑스는 2차대전 이후에 석탄철강공동체라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면서 유럽통합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합리적인 상상력이 발휘되면 실용외교는 힘을 받는다. 민간 외교 역량 강화도 지원하길 세 번째 과제는 극단적 감정과 단순화된 흑백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파트너를 수시로 바꾸는 무원칙의 실용은 존중받지 못한다. 외교가 정쟁화되고 감정적으로 흘러가는 것은 역으로 경쟁국들이 가장 반기는 상황이다. 한국이라는 중요하면서도 견제해야 하는 나라가 쉽게 분열되고, 쉽게 잊어버리고, 스스로 약한 모습을 드러낸다면 내심 반길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냉소와 가십의 대상이 되는 외교가 상대에게 존중을 받는 경우는 없다. 때론 포커페이스도 필요하다. 실용외교의 본질은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굳어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실용외교의 국내적 기반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강력한 국내 비토 그룹의 존재는 치밀한 전략이 받쳐준다면 협상력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새로운 국회가 출범하는 시점에서 정부·의회·학계·기업 간의 소통을 강화하는 초당적 외교 자문기구를 구상해 볼 수 있다. 외교와 국방은 최고지도자 고유의 권한 영역이지만, 소통의 확대를 통해 정쟁의 대상이 아닌 지속적인 외교전략을 논의해 보는 것은 분명 가치가 있다. 아울러 민간 부문이 보다 주도적으로 움직이도록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정부 간 관계로만 풀기에는 국제 관계의 현실은 너무도 복잡하고 엄중하다. 이재승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2024-04-25

베니스부터 광주까지, 비엔날레 이제 달라질 때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외국 관람객들이 월전 장우성의 1943년 수묵채색화 ‘화실’과 이쾌대의 1940년대 유화 ‘두루마기를 입은 자화상’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지난 20일 개막한 세계 최대 미술축제 베니스비엔날레(비엔날레 디 베네치아) 본 전시에서였다. 장우성과 이쾌대의 그림은 다양한 비서구 화가들의 20세기 초반 초상화 100여 점을 한데 모은 ‘초상화’ 섹션에 있었다. 그 많은 그림 중에서 장우성과 이쾌대의 그림 앞에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이 유독 많았다. 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그림 속의 한복을 가리키며 “코레아…”라고 대화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 또한 K컬처의 세계적 유행의 여파가 아닌가 싶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월전·이쾌대 ‘제3세계’ 벗어난 한국 상기시켜 식상한 서구의 ‘비서구’ 담론에 ‘변종’ 한국이 대안 제시 가능 그런데 이것을 바라보는 한국인 일행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와, 장우성과 이쾌대 그림이 인기 많네”하고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데 ‘제3세계’ 작품들의 일부분으로서 섞여 있는 게 뭔가 기분 좋지 않네”라는 이들도 있었다. ‘외국인’을 주제로 한 베니스비엔날레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의 주제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국인’은 문자 그대로 타국인 혹은 이주민, 난민 등을 가리키기도 하고, 상징적인 의미의 이방인, 즉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는 성 소수자 및 서구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토착민 등을 아우르기도 한다. 장우성과 이쾌대 그림이 있는 ‘초상화’ 섹션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예술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을 접한 상황에서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수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 초상화를 재조명한다”는 취지다. ‘글로벌 사우스’는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의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을 아우르는 말이다. UN 기준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이기에 여기에서 공식적으로 제외된다.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도 이를 의식했는지 “엄밀히 말하면 더는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지 않는 싱가포르와 한국의 작가들도 이 섹션에 포함되었는데, 이는 (장우성과 이쾌대 등의) 작가들이 작품을 창작할 당시에는 이른바 제3세계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공식 설명문에서 언급했다. 1940년대에 우리는 최빈국 식민지였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장우성과 이쾌대의 그림이 이 섹션에 걸려있는 것을 보는 기분은 묘하다. 우리가 과거 제3세계였다는 자각, 그러나 이제는 ‘선진국’이며 제3세계로 묶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런데 그런 식으로 다른 제3세계 나라들과 ‘구별 짓기’를 하는 태도가 올바른 것인가 하는 자문, 서구인의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한 기쁨과 ‘우리는 기껏 명예 서양이 되고 싶은 것인가’ 하는 자괴감의 교차 등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이다. 이 복잡한 마음은 한국인이 베니스비엔날레를 대하는 마음, 나아가 서구 진보 진영이 지배하는 국제 문화예술의 장을 대하는 마음일 것이다. 서구 예술계, 한국 다루기 어려워해 사실 한국인만큼이나 서구인, 특히 서구 진보진영이 한국을 대하는 마음도 복잡하다. 한국은 한때 제3세계였으나 더 이상 아니며, 서구화와 근대화로 인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더 많고, 그것으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혼종’ K컬처를 만든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베니스비엔날레 등 주요 국제미술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서구 진보진영의 담론인 ‘후기 식민주의, 토착문화 재조명, 서구인으로서의 원죄의식이 담긴 반(反)서구주의, 반(反) 자본주의 모더니티’에 뭔가 잘 들어맞지 않는 ‘변종’이다. 서구 문화와 자본주의의 제국주의적 전파에 희생자가 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렇다고 서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 진보진영 학자와 예술가들은 한국을 다루기 껄끄러워하는 듯하다. 이는 이런 담론의 중심지인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 기자가 유학하던 시절 체감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구에 의해 쉽게 규정되지 않는 변종인 동시에 경제적·문화적 힘을 갖춘 한국이야말로 늘 비슷한 담론을 되풀이하고 있는 서구 문화예술의 장에 대안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 베니스비엔날레 역시 ‘비서구와 소수자,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서구인 관점에서 본 비서구와 소수자’라는 담론의 반복이었다. 서구 남성 위주의 유명 작가들 대신 세계 방방곡곡의 미처 몰랐던 좋은 작가들을 발굴해서 보여준 것은 분명 성과였다. 그러나 담론이 식상해서 울림이 크지 않았다. 문제는 한국의 대표 비엔날레인 광주비엔날레 역시 담론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광주비엔날레는 올해 최초로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의 외국인 큐레이터가 된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뮤지엄 관장이 총감독을 맡았었다. 제1부는 현대의 모든 압박(정치권력부터 소수자에 대한 편견까지)에 대한 저항과 연대를, 제2부는 토착 문화에 기반을 둔 탈현대성을, 제3부는 후기 식민주의를 다뤘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도 매우 비슷하지 않은가? 당시 이숙경 감독은 작가 소개에 국적 대신 그들이 태어난 지역과 지금 활동하는 지역을 넣어 그들의 초국가적이며 복합적인 정체성을 강조했다. 알려지지 않았던 매력적인 작가도 많이 발굴했다. 이러한 장점 또한 이번 베니스비엔날레가 이어받았다. 단점이나 장점이나 닮은꼴인 것이다. 새 담론 제시 못하는 비엔날레들 한국에서는 지자체마다 우후죽순 생기면서 관광용 지역 축제 정도로 오해되고 있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비엔날레의 정신은 미술관 전시로는 힘든 대규모 국제전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담론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미술계에서는 이제 세계 비엔날레들이 담론을 이끌지 못하고 급변하는 현실에 뒤처지고 있다는 탄식과 비엔날레 무용론까지 나타나고 있다. “베니스, 광주, 그밖에 주요 세계 미술제이 너무 크고 막연하고 비슷한 담론을 되풀이해온 게 사실입니다.”라고 박양우 광주비엔날레제단 대표도 말했다. 그는 베니스비엔날레의 공식 병행전시인 광주비엔날레 30주년 아카이브 전시 ‘마당-우리가 되는 곳’을 위해 베네치아를 방문 중이었다. 그는 덧붙였다. “그래서 올해 광주비엔날레 니콜라 부리오 예술감독에게도 그 점을 신경 써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좀더 특화된 주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저래 달라질 길을 모색 중입니다.”. ‘변종’ 한국은 문화예술계에서 수십년째 되풀이되어 온 서구 진보 주도 담론을 넘어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역량이 있다. 그 발판이 한국의 비엔날레이길 희망한다.

2024-04-25

[글로벌 아이] 워싱턴에서 조금씩 커지는 한국 핵무장론

‘어쩌면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가 먼 미래의 일이 아닐지 모른다.’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부차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전력개발담당 부차관보 등 미국 내 손꼽히는 외교안보 전략통을 최근 인터뷰하면서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다. 이들은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이며 미 본토 공격 능력을 갖췄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핵우산)에만 의존하는 데 대한 한국 내 우려와 의문을 이해한다는 전제도 같다. 볼턴 전 보좌관은 “확장억제 능력이 가상이 아니라 바로 한국에 있다는 확신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고, 롤리스 전 부차관은 ‘나토식 핵 공유’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 시 유력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거론되는 콜비 전 부차관보의 경고는 더욱 극적이다. 미국이 대(對)중국 군사적 우위를 잃은 상황에서 “뒤처진 핵 균형을 위해 핵무기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4월 한·미 핵협의그룹(NCG) 신설을 골자로 한 ‘워싱턴선언’의 한계를 지적하며 미국이 자국의 도시를 북한의 핵공격에 희생하면서까지 한국 안보를 지켜줄 거라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한 대목은 오히려 솔직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사실 그는 5년 전만 해도 “한국의 핵무장에 반대한다”(2019년 VOA·미국의소리 인터뷰)고 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간 북한의 거듭된 폭주에 지금은 “미국의 재래식 전력 지원에 대한 기대를 줄이고 직접 한반도를 방어해야 한다”며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한다. 미국 정부의 공식 기조는 여전히 ‘한반도 비핵화’에 맞춰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공약’을 재확인했다. 한국 핵무장시 동아시아 핵확산의 시발점이 될 거란 우려도 미 조야(朝野)에 여전하다. 다만 금기시해 오던 한국 핵무장론이 ‘중국 견제’라는 대전제 속에 공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상황은 분명 심상치 않아 보인다. 비핵화의 길이 난망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한·미 군사동맹을 고도화하고 자주국방 역량 또한 획기적으로 강화해 확장억제 역량에 대한 의문을 불식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남북 물밑대화에도 계속 힘써 우발적 충돌을 미연에 막아야 한다. 북핵 문제는 손이 묶인 상황에서 손을 써야 하는 난제 중 난제가 됐다. 김형구(kim.hyounggu@joongang.co.kr)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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