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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텃세가 더 문제다

텃세는 인간군상의 부정적인 모습 중 대표적인 것이다. 시대와 장소는 물론 심지어는 연령대를 불문하고 인간이 모이는 곳엔 텃세가 존재한다. 종교적 모임에서조차 텃세로 인해 상처 받았다는 지인을 만나볼 정도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조차 텃세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직장은 물론이다. 먼저 온 사람이 뒤에 온 사람에 대해 일종의 군기 잡기나 밀어내기의 형태를 띠는 게 흔한 텃세의 부작용이다.  심할 경우 텃세는 소위 ‘왕따’, 더 심하면 학대로도 이어진다.  물론 텃세, 왕따, 학대가 반드시 서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왕따와 학대는 텃세와 달리 반드시 뒤에 온 사람이 피해자이고 먼저 있던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텃세를 부리는 직원 때문에 고민을 안고 찾아오는 고용주를 자주 만나게 된다. 이런 직원 때문에 새로 들어오는 직원들이 못 견디고 나가게 되고 심지어는 왕따 문제로 커져 자칫 직장 내 소송의 빌미도 되기 때문에 고용주들로선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축구팀에 들어간 아들이 연습이 끝나고 툴툴거렸다. 팀원 한 명이 자기에게 시비를 건다는 거다. 직감적으로 ‘텃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팀원들도 그러냐고 했더니 유독 한 명만 그런다고 해 다행히 왕따 상황은 아니었다. 텃세는 앞으로 어디를 가나 극복해야 할 과제이니 심하지 않은 이상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지켜만 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봐도 어디를 가나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텃세는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같은 팀이 된 걸 두 팔 벌려 환영해 주는 사람이 많고 나의 맨탈이 어느 정도 강하다면 그런 텃세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런데 텃세의 희생자가 어느 시점엔 텃세를 부리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슬픈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을 항상 뒤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흔히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추종자들의 ‘트럼피즘’을 백인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 트럼피즘은 백인 우월주의에 근거한 인종차별보단 미국식 집단 텃세 (영어표현으로 nativism)의 발현이다. 네이티비즘 문제는 사실 트럼피즘뿐만 아니라 이를 비난하는 민주당과 진보쪽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선거 기간 한인여성후보의 영어발음을 민주당 후보가 비아냥거린 것도 크게 보면 네이티비즘의 한 모습이다.     미국의 역사는 잘 알다시피 이민의 역사이고 먼저 온 이민자그룹에 의한 텃세가 역사 저변에 흐른다. 백인 사이에도 이 텃세는 아주 심했다. 미국에는 17세기와 18세기 영국과 북서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19세기에 온 아일랜드, 이탈리아,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을 극도로 차별한 흑역사가 있다.  트럼프 지지층의 상당수가 백인인데 지금은 백인이란 하나의 이유로 하나가 되어 배타적 장벽을 같이 쌓고 있지만 이들의 조상들 사이엔 텃새의 가해자와 피해가가 있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19세기 중국인 이민자에 대한 차별은 텃세와 왕따, 학대가 어우러진 삼종세트였다.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갱스 오브 뉴욕’이란 영화를 보면 네이티비즘에 대해 어느 정도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뉴욕에 먼저 정작한 백인들과 다른 종교,문화를 가진 새 백인 이민자들과의 충돌을 배경으로 한다.     트럼프에 열광하는 지지자 가운데는 흑인, 히스패닉도 있다는 사실이 이 네이티비즘 문제를 설명해 준다.     트럼프를 통해 다시 표면으로 드러난 네이티비즘이 트럼프와 함께 종말을 고하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트럼프가 사라져도 강도만 다를 뿐 네이티비즘은 계속될 것이다.     이민자 커뮤니티인 한인사회는 문화, 종교가 다른 이민 후배들에게 배타적 감정으로 텃세를 부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김윤상 / 변호사중앙시평 텃세가 문제 텃세가 역사 텃세 문제 왕따 문제

2022-11-28

[중국읽기] 시진핑 알려면 마오 공부하라

‘공소사(供銷社)’. 꽤 낯선 단어다. 뜻풀이하면 ‘공급판매사’다. 뭘 공급하고 판매하는 회사인가. 1994년 출판된 ‘쉽게 찾는 중국 경제용어’를 들춰보니 ‘공소합작사(供銷合作社)’는 ‘농촌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도시에 내다파는 집체(集體) 소유 형태의 상업조직’이라고 적혀 있다. 농민은 공소사에 가서 농산물을 팔고 생필품을 산다. 또 대출도 여기서 받는다. 농촌에서 생산과 유통, 신용의 삼위일체 역할을 하는 곳으로 농민은 공소사와 유리된 삶을 생각할 수 없다. 마오쩌둥 치하 계획경제 시대의 대표적인 산물로 1950년 7월 처음 등장했다.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계획경제가 퇴출당하면서 공소사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은채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였는데 시진핑 집권 3기 들어 화려하게 컴백하고 있다. 시진핑 1기 중반인 2015년부터 부활의 몸짓을 보이더니 2018년 1만개, 2019년 3만2000개로 급증하는 등 지금은 중국의 농촌을 기본적으로 다커버할 수준으로 성장했다.   중국 당국은 현대농업을 진흥시키기 위해 공소사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장년층 이상의 중국인이 공소사에 대해 갖는 기억은 씁쓸하다. 공소사 하면 크게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첫 번째는 물자 결핍이다. 공소사에서 사야 하는 생필품이 언제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뭐든지 사려면 표(票)가 있어야 했다. 곡식은 양표(糧票), 기름은 유표(油票), 고기는 육표(肉票)가 필요했다. 문제는 표가 있다고 해서 꼭 원하는 걸 살 수 있는 게 아니란 점에 있었다. 이는 두 번째 아픈 추억인 부패로 연결된다. 모두가 바라는 물건은 흔히 당 간부에게 뇌물로 먼저 제공됐다. 또는 점원과의 관시(關係)가 중요했다.   이런 ‘결핍과 부패’, 그리고 계획경제의 대명사와도 같은 공소사 부활에 시진핑은 왜 열을 올리는 걸까. 마오시대 중국 당국 입장에서 공소사의 가장 큰 역할은 농산물의 계획수매와 계획판매를 통해 농민을 통제하는 데 있었다. 마오의 농촌 장악 수법이다. 3연임에 성공한 시 주석은 후계 구도를 없앤 채 장기집권을 노린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전체 인민의 밥줄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한다. 이 중 5억 농민에 대한 통제를 바로 공소사의 부활을 통해 꾀하고 있다. 시 주석은 치세(治世)의 많은 노하우를 어릴 적 우상인 마오쩌둥의 치술(治術)에서 찾고 있다. 시진핑 집권 3기의 중국이 가고자 하는 길을 제대로 알고자 한다면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부터 차근차근 다시 공부하는 게 순서다. 유상철 / 한국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중국읽기 시진핑 공부 공소사 부활 농촌 장악 마오쩌둥 치하

2022-11-28

[삶의 뜨락에서] 사람 구경

구경거리 많은 축제의 거리를 다녀온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이 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축제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사람 구경만 실컷 하고 왔네.” 산속에서 혼자 사는 소위 자연인이 아니면 사람들은 매일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서로 바라보며 다른 말로 조금 이상하게 표현하면 사람 구경하며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행사장을 갔다 와서 인파 속을 헤맸던 시간을 특별히 사람 구경 했다고 말한다. 매일 만나보던 사람이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의 처음 보는 표정과 행동거지를 대하고 나서 구경했다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     무엇을 구경하고 있는 것인가. 동물원에 가서 울타리 저편의 원숭이를 구경하노라면 그 원숭이도 가만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람 비슷한 털복숭이 짐승이 신기하여 바라보고 있고 그 원숭이들 역시 자기들과 비슷하지만 옷이라는 것을 걸친 털 없는 사람들을 “뭐 하는 것들인가” 하며 바라보고 있다. 밀림 속에서 자유롭게 오가며 살고 있을 때보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 구경을 하며 동물원에서의 하루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그들은 사람 구경이 재미있을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생각이나 삶의 색깔을 바라보기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의 몰랐던 생활의 한 면을 보며 재미있어한다. 특별한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그려내는 그런 종류의 책자나 잡지 같은 것이 여전히 만들어지고 팔리고 읽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많은 영상 자료들 역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사람 구경이라 말하기는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기는 하지만 자기 아닌 타인의 삶과 그 모습에 관심을 갖는 것이 흥미를 갖고 구경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기는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의 모습에서 배우고자 하는 그런 열망이 더 큰 경우도 많이 있다. 타인의 삶과 모습을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과 자기의 그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보여주고 보이는 어떤 그림들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별다른 공감과 감동 같은 것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이 싹트기도 하고 미움이라는 것이 솟아나기도 한다.   어떤 여행기를 읽어보면 여행지의 풍경이나 훌륭한 유적 등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곳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풍습을 더 흥미 있게 관찰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황야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 잘 꾸며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 오래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눈빛 등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과 분위기가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 되고 있음을 본다. 사람이 문제라는 말처럼 사람들이 보여주는 어떤 것이 그곳의 인생이나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끌었던 사람들의 행렬, 격동하는 세계의 경쟁을 견디어내지 못하고 망국의 길로 끌고 가던 사람들, 초원을 달리며 바람처럼 살아가던 사람들과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지평선을 향하여 달려가는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이 방법이 옳습니다” 하며 한 나라를 뒤집던 사람들의 행렬과 결국에는 다름없는 종말로 쓸쓸히 퇴장하던 사람들, 사막의 모래 폭풍처럼 일어났다 저물어 간 사람들, 로마를 대제국으로 일으켜 세웠던 사람들의 행렬 그리고 결국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들의 행렬이 사람 구경의 어떤 면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사람들은 보여주고 보이며 긴 행렬을 이루고 지나간다. 지금이라는 시간에 이르기까지 보아 왔던 사람들을 기억해 본다. 사람 구경하는 어느 자리에 서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사람 바라보기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된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구경 사람 구경의 축제 구경 행렬과 결국

2022-11-28

[재정칼럼] 감사(Thanksgiving)한 이유

파워볼 상금이 무려 20억4000만 달러였다. 이 복권의 잭팟에 당첨될 확률은 2억9200만분의 1이었다. 벼락에 맞을 확률은 100만분의 1이다.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복권을 샀지만, 당첨자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꿈으로 끝났다.   ‘삶의 질을 높이는 대부분이 천천히 진행되므로 사람들이 인식하기 어렵다’고 모건 하우설은 말한다. 삶의 질이 어떻게 향상되었는지 함께 나누어 본다.   ▶일반 성인은 50년 전과 비교해 수입이 3배 이상 늘었다. 물가상승도 고려한 수치이다. 1960년대에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컴퓨터, 휴대폰, 당분 없는 음식 등을 접할 수 없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028달러였다.     ▶세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어도 식량 생산은 그 이상 증가했다. 흉년 등으로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은 접하기 어렵다.   ▶결핵, 말라리아, 홍역, 황달, 콜레라, 에이즈 등과 같은 질병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19도 주춤해지고 있다.   ▶1800년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39세, 1900년은 49세, 1950년은 68세였다. 하지만 현재는 80세가 넘는다. 평균 은퇴 연령도 62세로 변했다. 62세면 얼마 전만 해도 하늘나라에 이미 도착해 있을 나이다.   ▶1933년에는 신생아 사망률이 1000명당 58명이었지만 현재는 6명 미만이다.     ▶1952년에는 3만8000명이 소아마비에 걸렸지만, 현재는 300명 미만이다. 뇌출혈도 사망 비율이 75% 감소했다.   ▶1870년도에는 주말, 휴가, 은퇴 등으로 평생 휴식 시간이 11년이었지만, 1990년에는 35년으로 증가했다. 평균 수명을 고려해서 현재 시점으로 계산하면 약 40년이다. 인생의 반 정도를 일하지 않고 즐긴다는 뜻이다.     ▶1960년에는 10집 중 한 집만 에어컨을 소유했지만 1973년에는 49%로 증가했고 현재는 89%가 소유하고 있다.       ▶흑인의 문맹률이 1900년대에는 45%였지만 현재는 거의 0%이다.     ▶미국인이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1850년에는 66시간, 1909년에는 51시간, 현재는 34시간이다.   ▶1940~50년대는 핵전쟁이 매우 중요한 기사였다. 그러나 1945년 이후 핵무기로 사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지난 70여 년 동안 중요하고 화제였던 기사 내용이 실제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람은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한다.   ▶연 수입이 3만4000달러면 세계에서 수입 상위 1%에 속한다. 세계 10%에 속하기 위해서는 1만2000달러, 20%는 5000달러, 50%는 1225달러면 충분하다. 당신의 연간 수입이 7만 달러라면 당당히 연 수입 상위 0.1%에 입성한다.     ▶올해 주식시장은 약 15.6% 하락했다. 그러나 지난 3년 연평균 수익률은 10.22%, 5년은 10.44%, 그리고 10년은 12.79%이다. 수익률 12%란 투자 돈이 6년마다 2배로 증가한 놀라운 수익률이다.   세상에 태어날 확률은 1조분의 1이다.  우리는 복권 당첨보다 훨씬 더 어려운 놀라운 기적을 모두 경험하고 태어났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4%만이 미국에서 살고 있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은 그중 한 사람이다. 감사한 마음뿐이다. 이명덕 / 박사·RIA재정칼럼 thanksgiving 감사 수입 상위 연평균 수익률 연간 수입

2022-11-28

[오늘의 생활영어] all together; 전부 다

(Lloyd is talking to Roger at work…)   (로이드와 로저가 사무실에서…)     Lloyd: That’s a great shirt. Where did you get it?   로이드: 셔츠 멋있네. 어디서 산 거야?   Roger: At that new store at the mall.   로저: 샤핑 몰에 새로 생긴 가게에서 샀어.   Lloyd: I really like it.   로이드: 마음에 쏙 든다.   Roger: I got it on sale. I got this shirt a pair of pants and a sweater.   로저: 세일할 때 산 거야. 이 셔츠하고 바지랑 스웨터 샀어.   Lloyd: Was it expensive?   로이드: 비쌌어?   Roger: Not a bit. All together I paid just $30.   로저: 전혀 안 비쌌어. 전부 다 합해서 30달러 밖에 안됐어.   Lloyd: Just $30 for a shirt pants and a sweater?   로이드: 셔츠하고 바지 스웨터가 30달러라고?     Roger: You heard right.   로저: 그렇다니까.   Lloyd: That’s a steal!   로이드: 공짜네!   Roger: You should go there. The sale ends next Friday.   로저: 한 번 가봐. 다음주 금요일이면 세일이 끝나.   기억할만한 표현   *not a bit: 전혀 아니다.   Jim: "Are you angry that I ate the last slice of pizza?" (짐: 마지막 남은 피자 한 조각을 내가 먹어서 화났어요?)   Roger: "Not a bit. I didn't want anymore." (로저: 전혀 아닙니다. 난 더 먹지도 못해요.)   *You heard right: 맞습니다.   Jim: "Is it true that Jay is getting married?" (짐: 제이가 결혼하는 게 사실인가요?)   Roger: "You heard right. He's getting married next month." (로저: 맞아요. 다음 달에 결혼해요.)   *That's a steal: 거저나 다름없다.     Jim: "I paid only $50 for this leather jacket." (짐: 이 가죽 재킷은 50달러 밖에 안해요.)   Roger: "Really? That's a steal." (라저: 정말요? 거저네요.)   California International University www.ciula.edu (213)381-3710오늘의 생활영어 roger at getting married shirt pants

2022-11-28

[우리말 바루기] ‘콜라보’ 대신 ‘협업’

많이 듣는 용어 가운데 하나가 ‘콜라보’다. 음악·미술·공연 등을 비롯, 다양한 분야에서 이 말이 쓰이고 있다. “콜라보한 곡이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디자이너와 콜라보한 제품을 선보였다” 등처럼 사용된다.   ‘콜라보’는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팀을 이루어 함께 작업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로는 ‘collabo’이며 ‘collaboration’의 줄임말이다. ‘콜라보’란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외래어표기원칙에 따른 표기는 ‘컬래버’다. ‘collaboration’이 ‘컬래버레이션’으로 발음되므로 줄임말인 ‘collabo’ 역시 ‘컬래버’로 적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콜라보’든 ‘컬래버’든 문제를 안고 있다. 영미권에선 이 말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영어사전에 ‘collabo’를 입력하면 대부분 속어(slang)라고 나온다. ‘collaboration’의 정확한 약어는 ‘컬래버(collabo)’가 아니라 ‘컬랩(collab)’이라고 돼 있다.   왜 ‘콜라보’란 말을 사용하게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コラボ(콜라보)’라는 일본식 영어 표현에서 온 말이라 보는 사람이 있다. 일본에서도 이 말을 우리와 똑같은 용법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정리하면 우선 ‘콜라보(collabo)’의 표기는 ‘컬래버’가 맞다. 그러나 이것은 영미권에서 쓰는 용어가 아니며 정확하게는 ‘컬랩(collab)’이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콜라보’나 ‘컬래버’를 ‘컬랩’으로 바꿔 쓰자고 하기도 뭣하다.   이러한 문제를 말끔히 해소하는 방법은 우리말을 쓰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합작’ ‘협업’ ‘공동작업’ 등의 대체어를 제시한 바 있다.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한 작품을 선보였다”처럼 우리말을 사용해도 의미를 전달하는 데 문제가 없다.우리말 바루기 협업 영어 표현 유명 디자이너 용어 가운데

2022-11-28

[기고] '로켓맨'의 실수를 막는 방법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김정은을 ‘로켓맨’이라 불렀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에 집착해 얻은 별명이다. 만약 김정은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도발을 감행한다면 본인은 물론 조선인민공화국도 종말이 온다는 것쯤 알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최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추진하고 있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자국 내 핵무기 배치 가능성을 시사해 주목을 받았다. 양국 총리는 지난 1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핵무기 배치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는 “우리는 미래를 위한 어떤 문도 닫아두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도 “스웨덴과 핀란드는 핵무기 배치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할 것이며 똑같은 형식을 취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에 놀란 스웨덴은 중립국 지위를 포기하고 나토(NATO) 합류를 선언한 데 이어 핵무기 반입까지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국가 안보에 대한 스웨덴의 이런 단호한 태도는 조만간 예상되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을 앞두고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만약 북한이 7차 핵실험을 통해 전술핵무기 개발까지 성공한다면 한국의 안보엔 끔찍한 재앙이 될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 기습발사 능력을 갈수록 고도화해 한국의 킬 체인(Kill Chain, 선제타격)을 무력화하고 있으며, 낮은 고도로 날아오다 비행 막판에 튀어 오르는 ‘풀 업 기동’을 하는 신형 미사일을 개발해 요격도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다 김정은이 전력을 다하는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까지 실전 배치되면 그야말로 한국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서게 되는 악몽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상대의 핵무기 사용을 억제하려면 우리도 핵무장을 해 ‘공포의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다는 게 군사안보의 영원한 진리다. 물론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쓰면 미국이 핵으로 보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겠냐”고 따졌던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말처럼, 미국이 유사시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LA를 기꺼이 북핵 위협에 노출할 것이란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미국의 핵우산은 미국 정치 사정과 내부 여론에 따라 얼마든지 번할 수 있는 불확실한 공약이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독자 핵무장을 위한 장기 플랜을 세우고, 장기간에 걸쳐 미국을 끈질기게 설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무장을 해제할 경우 한국도 그에 맞춰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하면 된다. 그동안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및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 핵 개발 잠재력 확보 등도 검토해야 할 대목이다.     언젠가 한국의 야당 대표는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반도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책임한 얘기”라고 주장했다. 또 지난 4일엔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응한 한미 연합훈련 연장에도 반대하고 대북특사를 제안했다. 북한 정권으로부터 그토록 욕을 듣고도 야당은 아직 대북 대화에 미련이 남은 모양이다. 마치 김정은에게 핵무기 좀 포기해 달라고 사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모름지기 독재정권이 알아듣는 건 힘의 논리밖에 없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후퇴하고 있는 건 젤린스키의 연설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에 세게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또 시진핑이 대만 침공을 망설이는 건 민간인 피해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대만을 신속하게 제압할 확신이 아직 없어서다. 마찬가지로 김정은이 핵 무력 사용을 포기하는 건 핵무기로 공격하면 자신도 핵무기로 반격을 받아 끝장이 난다는 게 아주 명백해질 때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로켓맨 실수 전술핵무기 개발 핵무기 배치 핵무기 사용

2022-11-28

[J네트워크] 한국의 호의? 미국의 권리?

지난달 현대차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기공식을 취재하러 서배나에 갔을 때다. 공장 부지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고속도로변 관리구간에 차를 세우고 장비를 설치하고 있는데 경찰차가 다가왔다. 그간 경험에 비춰봤을 때 썩 좋은 소리 못 듣고 철수해야 할 게 분명했다. 고압적인 자세로 쫓아내지만 않아도 다행일 상황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만면에 미소를 지은 경찰은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조심해서 잘 취재하고 가라”면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런 분위기는 지역 인사들 사이서도 마찬가지였다. 행사장에서 만난 공무원·시의원들은 인터뷰를 자처했고, 현대차와 관련 없는 기자에게 셀카를 찍자고도 했다. 돌아온 뒤엔 언제 서배나에 다시 오면 저녁 식사 같이하자는 e메일까지 와 있었다. 환대도 이런 환대가 없었다.   사소한 일이지만, 과연 55억 달러의 힘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런 효과 덕분일지, 이날 행사에 참석해 카메라 앞에서 첫 삽을 떴던 주요 정치인들은 당적 상관없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공화)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고도 재선에 성공했고,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민주)은 아직 결선투표가 남았지만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던 상대 후보를 꺾었다.   이런 투자를 지렛대로 삼은 건 조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연설에서 기회가 나면 한국 기업이 미국의 노동력을 높게 평가해 투자했다고 자랑했다. 정작 그 기업에 불이익을 주게 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과시키고 “역사적인 법안”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우리 입장에선 일단 ‘선거니까 그러려니’ 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선거가 끝나자 유럽연합(EU)은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미국에 전기차 공장을 짓기로 한 독일차 BMW 등에게도 IRA 차별조항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 유럽산에 대해 미국산과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는 게 EU의 요구다. 반대로 한국은 선거 후 잠잠해진 모습이다. “한국의 우려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던 워싱턴도 어느 순간 “IRA가 꼭 한국에 손해는 아니다” “현대차만 1, 2년 잘 버티면 될 일”이라는 식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뒤통수 맞고도 그냥 넘어가는 게 전례가 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한국의 고층건물을 보며 “미국 덕에 한국이 존재한다. 모든 (방위) 비용을 미국이 대고 있다”고 말했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 같은 이가 집권하게 된다면 특히 더 그렇다. 불이익을 참고 그냥 넘어간 한국의 호의는 미국 정권에는 그저 권리로 비칠 수도 있다. 김필규 / 워싱턴특파원J네트워크 미국 한국 한국 기업 전기차 공장 이번 중간선거

2022-11-28

[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제비족

중년 세대에게 제비족은 카바레에서 매끈한 외모와 화려한 춤 솜씨로 돈 많은 사모님들을 등쳐먹던 파렴치한 족속이다.   반면 요즘 MZ세대에게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개념 있는 사람들이다.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비건(Vegan)’ 라이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제로웨이스트는 일상의 소비활동에서 쓰레기·폐기물을 없애자는 운동이다.   제품과 포장재 폐기 과정에서 지구 환경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물질을 배출하지 않기 위해 거절하기, 줄이기, 재사용하기, 재활용하기, 썩히기 등을 실천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비건은 고기·우유·달걀 등 동물성 식품을 일절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채식주의 단계를 말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채식주의자 전체를 일컫기도 한다.   더 넓게는 전 세계 온실가스의 50%가 축산업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하루 한 끼라도 채식을 하자”며 채식 식문화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을 통칭한다.   이들 제비족이 요즘 집중하고 있는 캠페인 중 하나가 ‘용기내 챌린지’다. 음식 포장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비닐·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다회용기에 식재료·음식을 포장해 오자는 캠페인이다.   ‘용기(container)’ 사용을 ‘용기(courage)’ 내보자는 것. 미처 인식하지 못한 습관성 과대포장은 없는지도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아이스커피 테이크아웃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뚜껑과 종이 홀더 같은 것 말이다. 뜨겁지도 않고, 받자마자 한 모금 마시면 이동 중에 흘릴 염려도 없는데 왜 우린 “필요 없어요”라고 용기를 못 낼까.  서정민 / 중앙SUNDAY 문화선임기자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제비족 이들 제비족 채식주의자 전체 습관성 과대포장

2022-11-28

[중앙칼럼] ‘교토삼굴’과 추억의 재떨이

선거가 늘 그렇듯 11·8 중간선거에서도 우리는 불편한 순간들을 겪어야 했다. 한인사회 일각에서 캐런 배스 LA시장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도 그중 하나다. 4·29 폭동 당시 ‘미러클’ 발언을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너무 우려먹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고, 한인단체 전·현직 회장들이 나선 기자회견을 우려하는 반응도 있었다.   9월 말 한인축제 때는 퍼레이드에 릭 카루소 후보가 그랜드 마샬로 등장했다. 일부는 주최 측의 균형감을 상실한 결정에 우려를 나타냈다. 만약 배스가 당선되면(실제로 당선됐다) 한인사회가 눈 밖에 날 수 있다고 걱정했다. 내년 50주년인 한인축제의 의미를 더욱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날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42명으로 구성된 한인정치력신장위원회는 14명의 후보에게 13만 달러를 전달했다. 한인사회의 존재감을 알리고 소통창구로 활동한 점은 의미가 있었다. 다만 누군 파티를 해주고, 다른 누군 조용히 지원금만 준 점은 조금 아쉽다. 현역의원인 후보와 만난 뒤에는 보도자료까지 돌렸지만, 상대방인 정치 신인에게는 지원금만 조용히 전달했다. 지원 후보를 정하기 위한 내부 결정 과정에서 특정 후보에게 100% 가까운 몰표가 나온 점은 진지하게 되짚어볼 부분이다.   2023년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을 앞두고 사자성어 교토삼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날쌔고 똑똑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파고 산다는 뜻이다. 우리는 모 아니면 도, 못 먹어도 고, 올인, 몰빵에 끌리지만, 중국인은 교토삼굴을 좋아하고 오랑캐로 오랑캐를 치는 이이제이를 최고의 전략으로 친다.   사이즈에만 집착할 것 같은 미국인도 계산에 빠른 면모가 있다. 투자자와 기업인을 연결하는 리얼리티 TV쇼 ‘샤크 탱크’만 봐도 그렇다. 10만 달러 투자하면 회사 지분 10%를 주겠다는 기업인의 제안에 투자자는 20만 달러에 30%를 요구하거나, 50만 달러에 회사 전체를 인수하겠다는 식으로 역제안한다. 배스 비난에 다른 커뮤니티도 동원하는 이이제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썼더라면, 카루소와 배스 모두 퍼레이드 마차에 태웠다면, 후원금을 주며 뒷말이 없도록 형식적인 형평성이라도 지켰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다른 차원에서 불편한 순간 중 하나는 지미 고메스 연방하원의원 캠프가 경쟁자였던 데이비드 김 후보를 겨냥해 ‘아시안이니 찍어주면 안 된다’고 유권자들을 부추긴 사건이었다. 일부는 가주 공정정치위원회(FPPC)에 제소를 제안했지만 한가한 소리다. FPPC는 2016년 이후 현재까지 미결 사건이 1101건에 달한다. 이빨 빠져 물지도 못하고 최근에는 짖는 소리도 뜸하다. 몰표로 참교육했어야 했다. 미셸 스틸 의원이 제이 첸 후보를 겨냥했던 공산당 논란을 부적절하다고 말한 이들도 있지만 첸은 지난 4월 스틸 의원의 영어 발음을 비꼰 전력이 있다.   정치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근 재외동포재단이 발행한 ‘세계한상대회 20년사’ 논란도 불편하다. 미주 첫 한인 상의인 LA한인상공회의소(구 남가주한인상공회의소)가 책자에서 실종됐는데, LA상의는 원인 규명을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저 “아쉽다”, “황당하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정도였다. 내년 10월 세계한상대회가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남가주의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리는데 홀대도 감내하는 점잖음인지 헷갈린다. 교토삼굴은 유비무환의 좋은 전술이지만 일단 굴 하나를 정하면 전력을 다해 뛰어야 한다. 추억의 한국 영화 ‘넘버3’에서 도강파 행동 대장 재떨이는 묵직한 재떨이 하나로 꼬인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류정일 / 사회부장중앙칼럼 재떨이 교토 카루소 후보 현역의원인 후보 지원 후보

2022-11-28

[이 아침에] 나와주세요! 세로토닌

요즘 계절성 우울증(seasonal depression)으로 힘들다는 내담자들이 많아졌다. 사실 매년 이맘때면 듣는 고정 멘트다. 따뜻한 봄이나 여름보다, 가을 겨울은 우울한 사람들에겐 아주 힘든 계절이다. 우울한 기분에는 세로토닌이 답이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은,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나 불안 같은 감정을 총괄 지휘하여 안정시키고, 행복감을 성취하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물질이다.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대부분이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SSRI)라는 긴 이름을 가진 이유도, 세로토닌이 세포로 너무 빨리 흡수되어 우울한 기분 통제가 안 되는 것을 억제해주는 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더라도, 세로토닌 분비를 돕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첫째, 햇볕이다. 계절성 우울증이 일조량 부족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보니, 결국 답은 햇볕이다. 햇볕의 감소는 바로 세로토닌 분비의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망막 속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뇌를 자극하여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한다고 하니, 시간 되는 대로 햇볕 따뜻할 때 밖에서 30분이라도 햇볕을 쬐자.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햇볕 쬘 때 피부에서 합성되는 비타민D를 복용하자! 비타민D의 중요성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비타민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비타민D라고 많은 의사는 말한다. 나도 내담자들에게 반드시 비타민D 복용을 권한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방에는 비타민D 램프를 설치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두 번째로 세로토닌 분비에 도움되는 것은 운동이다. 우리 뇌는 85%가 수분으로 되어 있어 마치 물에 둥둥 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걷거나 몸을 움직이면 뇌도 움직여지면서 운동이 되어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된다. 연구에 의하면, 걷기 시작 5분 후부터 세로토닌이 분비되기 시작하여 15분 후에는 최고도에 오른다고 한다. 이왕이면 햇볕을 쬐며 걸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무나 물 등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자연 속에서 걷는다면 금상첨화겠다.     마지막으로는 생활방식이다. 친구 하나는 피검사 결과가 매번 A 플러스다. 그런데도 당뇨약 먹는 나보다 더 건강하게 음식을 먹는다. 건강한 식습관은 건강한 신체뿐 아니라 세로토닌 분비에도 큰 도움이 된다. 카페인 섭취를 줄이는 것도 도움된다고 한다. 사람에게 긍정적 말을 들을 때도 뇌의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뇌간이 자극돼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된다고 한다. 우울도 전염되고 불안도 전염된다. 우울할수록 긍정적인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책을 읽으며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채우기를 권한다.     우리 기분 조절에 이렇게 중요한 세로토닌의 합성능력을 저하하는 주범은 무얼까? 바로 스트레스다. 이 스트레스를 잡기 위해서는, 예쁜 노트를 장만하여 매일 10가지 감사 제목 써나가기를 추천한다. 스트레스의 천적은 바로 감사이기 때문이다. 해 본 사람은 모두 체험하는 감사의 파워, 우리 모두 감사가 풍성하여 우울함이 들어올 틈이 없는 추수감사절이 되었기를 기원한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이 아침에 세로토닌 세로토닌 분비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 계절성 우울증

2022-11-2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만남에 대하여

누구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이 될 터이고, 직장 동료이거나, 학교 동기, 선후배, 교회 친구들. 각종 모임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은 잠깐일 수도 있지만 때론 나의 생을 통하여 오랜 기간 동안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알아가며 돕고 기대며 살아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만남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는 진실함이 아닐까 생각 된다. 만남에서뿐 아니라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태도가 진실함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처음 만난 사람 사이에서 신뢰와 믿음이 쌓이게 될까? 무엇이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사람에게 가까이 가게 되고 또 그 사람과 있으므로 행복해질까? 이건 어떤 도움을 주고 받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에게 끌리는 인간의 본성으로 말미암은 것일 것이다.     서울방문 때 여러 문인들을 가까이 만나게 되었다 서로 처음 뵙는 분들이어서 조심스럽긴 하였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음을 열게 되었다. 문학에 대하여, 창작 활동에 대하여, 살아 가는 어려움에 대하여, 격의 없는 대화를 여러 번 가질 수 있었다. 나의 짧은 문학 활동에 비하여 많은 경험과 과정을 통해 쌓아온 본인의 노하우를 가감 없이 이야기 해줄 때 나는 진심으로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만남은 이런 것이다. 살아가면서 진정한 만남을 갖지 못하였다면 나는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지 못했을 수 있으므로 상대방을 탓하기보다 나를 먼저 돌아 볼 일이다. 언젠가 다시 만날 사람도 있겠지만 만나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 사는 일이여서 다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을 것이지만 사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세상에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그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헤어지고 나서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잊을 수 없는 사람을 떠 올리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사람은 나에게 진심으로 대해 주었던 사람일 것이다. 그것이 비록 내 인생의 짧은 만남이 되었을지라도 나에겐 큰 설레임으로 남겨질 것이다. 나의 삶에 큰 영향력을 주는 사람과의 만남은 행복이요, 축복일 수밖에 없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요 그 만남으로 나의 삶의 질이 만들어진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사는 나의 인생이지만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인생의 길을 함께 찾아 나서는 만남은 나의 행복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은 내게 선생이 되고, 친구가 되고, 때론 연인이 되기도 한다. 소중한 만남은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지만 쉽게 지워지지도 않는다.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지는 아픔은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 누구도 이별을 전제로 만남을 시작 하지 않았기에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이별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세상에서 영원히 이어지는 만남은 없다. 태어나면 그로부터 우리는 죽음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문을 향하여 걸어 가듯이, 이별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우리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모습으로 서로에게 기억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함께였을 때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로 여겨졌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서로에게 마주 했는지? 마음을 다하고 표현하며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그러므로 만남에는 후회가 없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만남의 매 순간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가장 나답게 사는 것이 나에게 가장 옳은 것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은 나로 돌아와 가장 나다운 만남을 가지는 것이다. 나를 속이는 만남은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만남은 당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아픔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남에 있어 가장 먼저 있어야 할 덕목은 진실함이다. 그 진실함은 서로의 만남에 신뢰와 확신을 선물로 준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문학 활동 교회 친구들 창작 활동

2022-11-28

[송호근의 세사필담] 아름다운 사람들

온 국민이 넋 놓고 하나의 열망으로 수렴된 시간은 얼마 만인가. 정쟁의 소음을 벗어던지고 멋진 한 골을 고대한 시간은 얼마 만인가. 카타르 그라운드를 적토마처럼 누비는 우리 청년들의 모습은 듬직했다. 철벽 수비였다. 상대가 공을 가로채면 모두 쏜살같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각자의 영역에서 공격을 막아내는 투혼의 앙상블은 FIFA 랭킹 16위 우루과이의 헛발질을 유도했다. 가나전은 양쪽이 뚫렸다. 제자리 지키기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하나라도 자리를 이탈하면 상대의 매서운 눈초리에 걸려 패배의 쓴맛을 봐야 한다. ‘1%보다 낮은 가능성이라도 올인한다’-손흥민의 평범한 결의는 괜스레 감동적이었다. 빈틈 노리기가 그의 평생 역(役)이다. 주어진 역에 자신을 쏟아붓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막식 무대를 선사한 BTS 정국이 절규했듯 ‘드리머스’(Dreamers)의 소망은 제자리 지키기로 실현된다. 오래 동안, 곁눈질 하지 않고, 겸손하게 말이다. 세계가 알아주는 K팝, 영화, 패션, 화장품, 반도체, 전기차가 그렇게 탄생했다. 옛말로 하면 수분공역(守分供役)의 미학, 분수를 지키고 자기 역할에 매진하는 겸양윤리. 제자리 지키는 선수들의 투혼은 수분공역의 미학을 선사하는데 혹민 경쟁에만 몰입하는 지도층 정치는 붕괴했고 이젠 종교인가 원래 반상차별의 신분질서를 유지하려는 통치 의도였지만, 현재로 의역하면 오버하지 말고 직업윤리에 충실하라는 뜻으로 풀이해도 좋겠다. 통치계급이 범부(凡夫)에게 수분공역을 외치려면 자신들이 먼저 안민익국(安民益國)에 솔선해야 한다. 지도층의 사리분별과 보국(輔國)이 수분의 전제조건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다. 그런데 범부는 몸을 던져 뛰고, 지도층은 혹민(惑民)과 해국(害國)을 일삼는 게 오늘날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백성을 현혹하고 국익을 해치는 것. 폴 크루그만(P. Krugman)은 이런 지도층을 선동 좀비로 불렀다. 그러니 어찌 제자리 지키기는 청년들이 아름답지 않으리. 좀비가 뭘 발견했다는 듯 말했다. 원수지간이 된 연인 사이라도 그런 어법과 사고방식은 패륜일 터에, 빈곤포르노! 라고. 필자는 이 말뜻을 몰랐다. 전기가 부족한 캄보디아에서 설령 조명을 좀 켰다고 해서 그리 문제가 될까? 문(文) 전대통령의 연출을 도맡은 탁현민처럼 세련된 솜씨가 아니라서? 빈민과 어울리지 않는 김건희 여사에게 조명을 켜고라도 그리하라 윽박질러도 시원찮지 않은가? MBC기자가 도어스테핑에서 대통령에게 고함친 장면이 방영됐다. ‘뭐가 악의적인가?’라고. MBC 기자 전용기 탑승 금지를 발령한 대통령실의 결단도 군색하지만, 고함친 기자도 제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고함칠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 공격수 앞에 수분(守分)하러 묵언의 투혼을 다하는 월드컵 선수들에겐 부끄럽기 짝이 없다. 권리의 경계를 넘어서면 윤리가 가로막는다. 제자리를 박찬 어법은 종교에서 터져 나왔다. 혹민경연(惑民競演) 그랑프리다. 대전교구 사제와 대한성공회 원주 나눔의 집 신부가 ‘추락을 비는 염원’을 SNS에 타전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기체결함이 일어나기를, 추락하기를. 이쯤 되면 증오의 축문, 천주교와 성공회를 주술과 무격으로 강등시키는 언행이다. 추락한 것은 비행기가 아니라 그 종교였다. 하민과 천민의 고통을 지켰던 천주교 전통에 비추면 검찰 출신, 그것도 얼룩이 묻은 채 갑자기 등극한 대통령이 눈에 차지 않을 거다. 거야(巨野)의 먹이가 된 정권, 뚜렷한 비전과 로드맵 없이 흔들리는 정권이라도 고작 출범 6개월에 증오의 비기(秘記)를 그렇게 중얼거려야 했는가? 상제(上帝)의 나라에 천주의 숨결을 전해주고 혹세무민의 현실에 구원의 은총을 내렸던 천주교의 고투, 박해와 순교로 얼룩진 성령의 강림을 송두리째 내다 버린 꼴이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 대원군이 처형한 베르뇌 주교가 형틀에 묶인 채 말했다. 형리의 치도곤을 맞아 정강이가 부러진 채였다. “당신이 나를 죽이려는 뜻과 내가 천주의 품에 안기려는 뜻이 하나도 다르지 않소이다. 나는 기쁘게 당신의 칼을 받으려 하오.”(샤를르 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새남터로 끌려가는 다뷜리 신부에게 구경꾼들은 욕설을 퍼붓고 돌을 던졌다. 그가 힘겹게 말했다. “성령의 축복을 전하지 못해 미안할 뿐 불쌍한 건 당신들이오”라고. 바람과 비와 햇살에 깃든 천주의 은총을 전하는 신부가 저주기도를 퍼부었다면 천진암 강론에서 싹튼 240년 성혼의 축제를 짓밟은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새남터 백사장은 1만여 명 순교자 피로 얼룩졌다. 그 모래로 지어 올린 명동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그 사제는 어떤 기도를 할까. 독재 시대가 아니기에 종교의 정치 참여는 정치 양식 전반에 비판과 항의를 제기하는 것이 정도다. 주말마다 광화문을 점령하는 종교집회도 마찬가지다. 조선에서 순교한 12인의 신부는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 탄핵을 외치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다. 왜 선거를 했는가? 민주화 시대에 정치인은 혹민 경쟁의 선동 좀비로 변했다. 정치가 무너진 지는 오래, 이제는 종교 차례인가. 종교의 추락은 사회의 총체적 붕괴를 초래한다. 수분하고 공역하는 ‘제자리 지키기’의 무서움이 여기에 있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2022-11-28

[예영준의 시시각각] GPS가 고장나면 길을 잃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외교 무대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 중에 GPS란 말이 있다. 윤 대통령이 국정 목표로 내건 글로벌 중추국가(Global Pivotal State)의 영문 이니셜이 위성항법장치의 이니셜과 일치한다는 점에 착안해 윤 대통령과 박진 외교장관 등이 기회 있을 때마다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엔 ‘고장난 GPS’란 말이 나온다. 경위는 이렇다. 지난 16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는 러시아에 강제 병합된 크림반도에서의 인권 문제에 관한 규탄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져 찬성 78, 반대 14, 기권 79로 채택됐다. 2016년 이후 해마다 11월 같은 결의안이 올라와 표결로 채택되는 관례대로의 일이다. 한국이 기권표를 던진 것도 해마다 마찬가지다. 하지만 달라진 사정은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교체돼 글로벌 중추국가를 목표로 삼고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중시하는 국정기조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인권 논의에 적극 참여하겠다”고 표방한 데 있다.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은 한반도 중심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중시하고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대접에 걸맞은 역할을 하겠다는 공약이었다. 외교부 당국자가 “기권이 더 많지 않냐”고 한 것은 우리가 마땅히 서야 할 자리를 망각한 발언이었다. “보편 규범, 인권 중시” 공약해 놓고 크림 결의, 신장 규탄서 모두 빠져 “한국은 압박 통하는 나라” 자처 꼴 유사한 일, 아니 어쩌면 더 심각한 일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지난달 31일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중국 신장 위구르 인권탄압 규탄 성명을 발표했는데, 미국·영국·일본·호주 등 자유민주 진영 50개국이 참여했다. 한국은 이 명단에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별반 새로울 것도 없다. 문제는 그보다 앞선 지난달 6일 신장 위구르 인권 문제와 관련한 유엔 인권이사회의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에서 20여 일 만에 정반대로 방향을 틀었다는 데 있다. 같은 유엔에서 같은 내용을 놓고 한쪽에선 찬성하고, 다른 한쪽에선 슬그머니 빠져버린 것이다.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난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있었던 한·중 정상회담과 연관해 생각하면 그 내막이 눈에 들어온다. 인권이사회 신장 위구르 인권 토론회 개최에 한국이 찬성하자 중국의 강한 압박이 들어왔다. 전례로 볼 때 중국은 한·중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고 압박 카드로 활용했을 것이다. 정상회담을 기필코 성사시켜야 하는 외교부 실무진의 입장에선 더욱 더 수세에 몰렸을 것이다. 비슷한 무렵 방한하려던 폴란드 국방장관 전용기의 영공 통과를 중국이 거부하는 일도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한·중 정상회담은 성사됐고, 한국 정부는 회담에서 논의된 내용보다는 만남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발리와 방콕에서 열린 다자회의에 참석한 길에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중단한 정상외교 공백을 일거에 만회하듯 19개국 정상과 회담을 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웃 나라 정상들을 주로 만났다. 만일 한국이 신장 인권 규탄 성명에 동참했다면 한국을 ‘왕따’시켰을지, 아니면 그래도 회담을 했을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런 식으로 같은 사안에 대해 한국 입장이 왔다갔다하면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고심이야 있었겠지만 입장을 뒤집는 건 아주 안 좋은 일이다. 중국에 한국은 압박이 통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신장 인권에 관한 유사한 기회가 다시 올 텐데, 그때 찬반 중 어떤 입장을 취하건 한번 훼손당한 한국의 일관성과 신뢰를 회복하기란 대단히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적어도 신장 이슈에 관해서만은 한국은 카드를 하나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다. 가치외교와 GPS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한국이 지향해야 할 목표임에 틀림없다. 다만 그것을 일관되게 지켜나갈 의지와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공허한 구호에 그치고 만다. GPS가 고장나면 운전자는 길을 잃게 마련이다. 예영준(yyjune@joongang.co.kr)

2022-11-28

[시론] IT강국 무색한 ‘디지털 재난대응 시스템’

이태원 참사는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핼러윈 축제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충분한 사전 대비가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의 도로 통제나 지하철 무정차 통과 등 대규모 군중에 대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참사 당일 현장에서 시민들이 다급하게 112로 절박한 상황을 신고했지만, 사람을 타고 전파되는 보고 라인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참사가 벌어진 현장에서도 경찰과 소방, 응급의료팀은 역할 조율과 소통이 원만하지 못해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그 와중에 시민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른 채 이태원으로 계속 밀려들었다. 이태원 상황 보고 잘 작동 안 돼 안전관리체계 디지털 대전환을 기업·시민역량 최대한 활용해야 사람을 통한 재난의 판단·전파·보고·조치의 재난 대응 시나리오는 세월호 참사 때뿐만 아니라 이번 이태원 참사 상황에서도 여지없이 한계를 드러냈다. 사람은 자리를 비울 수도, 잠을 잘 수도, 당황해 적시에 판단을 못 할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디지털에 힌트가 있다. 지금은 성숙한 디지털 기술이 사회·경제의 작동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디지털 혁신 시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위성, 우버 앱 같은 GIS 아르타 프로그램, MS 애저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이 총동원돼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중국 항저우에서는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시티 브레인이 시내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 5만여 대의 데이터를 분석해 인공지능으로 도시 전체의 차량 흐름, 대중교통 및 공공 안전을 관리 중이다. 이를 통해 차량 통행 시간을 평균 15% 줄였고 구급차 도착 시각도 14분에서 7분으로 단축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보기술(IT) 강국이다. 국민의 95% 이상이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통신 속도를 자랑한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는 1조5000억을 들여 경찰·소방·의료 등 재난 관련 기관이 긴급 재난 상황에서 혼선을 막고 원활히 소통하도록 재난안전통신망을 갖췄다. 전국 방방곡곡에는 CCTV가 설치돼 있으며, 용산구에도 CCTV 1800여 대가 설치돼 있다. 이동통신 3사는 기지국 수집 데이터를 통해 실시간 지역별 인구 혼잡도 분석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의 제반 환경이 훌륭히 갖춰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 이태원 참사 와중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모토로 내걸고 연결과 활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미 갖춰진 디지털 구슬을 잘 꿰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의 작동과 운용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디지털 혁신은 매우 더디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구축하는 일에 연연하고 있다. 스마트폰, 재난안전통신망, CCTV, 통신사 밀집도 분석 등 ‘디지털 블록’들은 사람 중심의 인식과 전파 체계에 갇혀 있다. 그러니 존재했으나 작동하지 못했다. 소중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디지털 이전 시대에 만든 사람 중심의 재난 대응 틀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디지털 체계로 확실히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 7일 대통령 주재로 민관 합동 국가안전시스템 점검 회의를 열어 국가 안전관리 체계의 대전환을 논의했다. 디지털 혁신 시대에 걸맞은 국가 안전관리의 대전환을 위해 잊지 말아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백신 예약 시스템 개선이나 공적 마스크 앱 사례처럼 국가적 위기 대응의 주체를 정부에서 기업·시민·정부 모두로 확대해야 한다. 공공뿐 아니라 통신사의 인구 밀집도 데이터 같은 민간 역량도 반드시 함께 활용해야 한다. 서울 중랑구는 1인당 1959대의 CCTV를, 영등포 등 11개 자치구는 1인당 1000대 이상의 CCTV를 육안 관제 중이다. 전국 관제 센터에 민간의 인공지능 기반 CCTV 관제 서비스를 즉시 도입해 부실한 관제를 극복해야 한다. 혹여 이를 막는 구시대적 규제는 과감히 타파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이 도시 전체의 데이터를 종합분석한 결과를 심각 정도에 따라 적재적소에 자동 전파해 사람의 부재로 인한 장애를 해결해야 한다. IT 강국이지만 활용하지 않는다면 백약이 무효다. 꿰지 않은 서 말의 구슬은 보배가 아니다. 국민의 생명이 달린 일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은주 지능정보사회진흥원 클라우드기술지원단장

2022-11-28

[삶의 향기] 빌려올 것인가, 훔쳐올 것인가

1988년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실린 컴퓨터 산업 소송 관련 기사.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운영체제 개발팀을 이끌며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이 명언을 늘 마음속에 되새겼다’고 보도했다.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한다. 반면,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 온다.’ 그런데, 정작 피카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훌륭한 작곡가는 모방하지 않는다. 훔쳐 온다.”(『20세기 음악』, 1967, 피터 예이츠) 피카소와 동시대를 산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 이고리 스트라빈스키(1882~1971)가 한 말이다. 이런 버전도 있다. “미흡한 예술가는 빌려오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 온다.” ‘무에서 유’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 이미 있는 것에서 도출한 새로움 그것이 창의성과 고유성의 본질 잡스가 피카소와 스트라빈스키를 혼동한 것을 비웃지는 말자. 20세기 초 파리에서 함께 작업한 예술적 동지이자 친구로서 피카소는 스트라빈스키 드로잉을, 스트라빈스키는 엽서 뒷면에 ‘피카소를 위한 소품’을 남겼다. 게다가 ‘훔치기(?)’라면 피카소를 능가할 이가 별로 없을 터이니 잡스가 혼동할 만도 하지 않은가. 한데 스트라빈스키 역시 그 말의 원조가 아니다.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지만, 원숙한 시인은 훔친다.”(T S 엘리엇, 1888~1965) 시인이 작곡가로, 예술가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말 아닌가? 언행일치(言行一致)라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고 해야 할지…. 이쯤 되니 동해안 미시령 너머에 즐비한 순두부 식당 중 진정한 원조가 어느 집인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져본다. 이런, 19세기 영국 저널리스트 W H D 애덤스(1828~1891)가 ‘모방하는 자와 도용하는 자’(1892)라는 글에 이렇게 썼단다. “위대한 시인은 모방하고 개선하는 반면, 부족한 시인은 훔쳐 와 그것을 망친다.” 도용(盜用)과 표절(剽竊), 즉 ‘정신적 산물을 훔치는 짓’에 대한 날 선 비판이다. 그러면 그렇지, 저들이 왜곡된 가치관을 지닌 것이지, 어떻게 파렴치한 도둑질을 위대한 시인이나 예술가, 심지어 컴퓨터 엔지니어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나. 그런데 저들이 이룬 업적은 실로 위대하지 않은가. 그러니 그것을 그릇되다 치부하기에 앞서 본의를 살펴보아야겠다. ‘모방·도용·빌리기·훔치기.’ 모방은 뒤따르는 이가 앞선 이를 따라가는 유일하고 비교적 쉬운 길이다. 언젠가 추월할 날이 오리라는 기대를 하고 최선을 다해 쫓아가지만, 거기에는 고유성이 없다.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 드디어 추월한다고 해도 노선을 달리하지 않는 한 ‘따라쟁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빌리기는 어떤가. 원제작자의 허가(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한 공산품쯤 되지 않겠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빌려온 것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으니까. 도용? 남의 것을 내 것인 양 내세워보았자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끄러움뿐이다. 이제 남은 것 하나는 훔치기. 법적·윤리적 차원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짓을 저들은 왜 한목소리로 창의력의 근원이라고 했을까. ‘훔쳐 온 것’과 ‘따라 한 것, 빌려온 것, 몰래 쓴 것’의 가장 큰 차이는 결과물 소유권의 소재에 있다. 훔쳐 온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소유권은 그 도둑(?)에게 귀속된다. 언젠가는 드러난다고? 천만에. 엘리엇이 “나쁜 시인들은 그들이 취한 것을 손상하지만, 훌륭한 시인들은 그것을 더 나은 것, 적어도 ‘다른 것’으로 만든다”라고 했듯이, 창의적인 이는 그것을 자신 외에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수준으로, 최소한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는 수준으로, 특허가 있다면 그것을 회피해서라도 본래의 것 이상의 결과물을 기어이 만들어내고야 만다. 그리하여 도둑이 아니라 최고의 작가·예술가·엔지니어로 자리매김한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지혜의 왕 솔로몬의 말이다. 그러니 스트라빈스키와 잡스가 말한 ‘훔치기’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가져와 새로이 해석하고 조합하여 고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위대한 성취의 기반임을 웅변하기 위해 선택한 자극적 단어일 뿐이다. ‘빌리지 말고 훔치라’는 도발적 발언은 “창의성(고유성)의 비결은 그 출처(소재)를 감추는 방법을 아는 것”이라는 말(발언자 미상)과 만나 온전히 그 의미를 드러낸다. ‘무(無)에서 유(有)’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본래의 것을 초월한 그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창의성과 고유성을 향한 왕도(王道)라고 말한다. 그것이 그들의 비결이라고 솔직하고 용감하게 고백한다. 전상직 서울대 음대 교수

2022-11-28

[서소문 포럼] 무전기를 함께 썼던 한·미

오래전에 물러났던 전직 국방장관이 장교 시절 경험했던 일화이니 벌써 수십 년도 더 된 얘기다. 한국이 없이 살던 시절이었다. 한·미 부대가 함께 훈련하던 중 한국군 부대 무전기가 고장이 나 미군과 통신이 쉽지 않았다. 미군 지휘관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자연스레 무전기 불량으로 인한 고충을 알려줬더니 자기가 어떻게 알아보겠다고 했단다. 몇달 후 정말로 이 미군 지휘관이 하와이에서 무전기를 조달해와 한국군에 제공했다. 전직 장관이 “그땐 한·미가 함께 쓰는 사무실에서 미군 비품을 우리 것처럼 여기며 썼다”면서 들려준 경험담이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훈훈하지 않다. 한국의 몸집이 커진만큼 주둔 비용을 더 대고 국제적으로도 더 역할을 하라는 게 미국 요구이고, 한국은 평택 험프리스만한 미군 기지가 전 세계 어디에 있느냐며 매번 줄다리기한다. 그런데도 수십 년 전 무전기 에피소드를 꺼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 하는 한·미 관계의 특징이 여기에 담겨 있어서다. 한국군이 미제 무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이임을 뜻한다. 같은 주파수에 있으니 무전기를 공유하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군서 무전기 받아 썼던 한국군 정보공유 가능한 동맹 관계 상징 북한 안 바뀌면 미군 철수는 불가 무전기 공유를 확대하면 무기체계 공유가 된다. 한국군 비축탄을 미국이 수입할 수 있는 건 미군이 그 탄을 그대로 쓸 수 있어서다. 미군 F-16은 한국군에선 코리아의 K가 붙어 KF-16이 된다. 한국이 다시 불곰사업을 일으켜 러시아제 T 시리즈 최신 탱크를 들여와도 피아 식별이 최우선인 실전 운용에선 제한이 있다. 같은 무기체계라는 특징이 효과를 본 게 이번 폴란드 무기 수출이다. 폴란드에 대규모 방산 수출을 가능하게 해준 출발점은 러시아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쳐 들어가면서 인접국 폴란드에 ‘다음은 우리’라는 강렬한 충격을 줬다. 폴란드는 당장 전력 증강이 필요했고, 이참에 구소련제 무기 체계에서 나토 무기 체계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폴란드는 과거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었다. 이런 폴란드에 한국의 K-9 자주포, K-2 전차, FA-50 경공격기가 들어간다. 폴란드에 ‘당장, 안정적으로, 대량으로, 가성비가 있으면서’ 동시에 ‘나토 무기체계에 부합하는’ 무기를 공급할 나라는 그간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하면서 무장을 갖추고 전쟁 투입 훈련을 계속해온 한국 정도였다. 외교·안보는 철저하게 현실의 이익 논리에 맞춰 작동한다. 프랑스가 뜨면 영국과 유럽 대륙 전체가 나폴레옹 차단을 위해 손을 잡고, 고구려가 남하하면 나제동맹이 만들어진다. 불과 수년 전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던 백악관이 원유 수급 불안에 봉착하자 슬그머니 베네수엘라에 가했던 원유 수출 제재를 풀어주고 있다. 한·미 관계에서도 대원칙은 상호 이익이다. 한·미 동맹의 접착제는 동맹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모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미군 주둔에 돈을 대고 국제사회에서 미국 손을 들어주고, 그 대가로 미군을 인계철선 삼아 제2의 남침을 차단하면서 나라의 자원을 교육과 경제 인프라 구축에 돌릴 수 있었다.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자유주의 시장 블록에도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미국 역시 동북아 지상군 주둔으로 중국의 진출을 막고, 역내 미국 영향력을 유지하는 방파제를 구축했다. 양국 이익의 교집합이 만들어진 가운데 전력증강사업에 매진해 왔던 한국은 방산 수출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냈다. 무전기 동맹이 50년, 100년 후에도 지금처럼 유지될까. 그때도 한·미가 국익을 공유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지금 명확히 따질 건 우리가 누구와 무전기를 공유할 수 있는가다. 주말마다 도심을 마비시키는 윤석열 정부 비난 집회에 ‘미군 철수’ 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식이 있다면 답은 나와 있다. 지금 북한은 대화를 거부한 채 핵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위협하고 있다. 한때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던 북한은 이젠 공식적으로 “후대에 ICBM을 남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일관되게 연합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한·미 군사동맹 해체를 요구한다. 북한은 남한에서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이런 주장을 던진 뒤, 남한 정부가 일축하면 대놓고 핵 개발을 했고, 이를 받아들여 대화에 나서면 비밀리에 핵 개발을 했다. 지금은 백두혈통 대대로 핵 무력을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예고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무전기를 함께 쓴다면 누구와 할지는 답이 나와 있다. 북한이 이른바 민족해방, 즉 적화통일과 핵보유국이라는 목표를 바꾸지 않는 한 한반도의 대결 구도는 해소되지 않고 미군도 뺄 수 없다. 이를 부인하면 둘 중 하나다. 뻔히 알면서 세상을 속이려 하는 것 아니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채병건(mfemc@joongang.co.kr)

2022-11-28

[김용하의 이코노믹스] 공유지의 비극…건강보험 진료비 올해 100조원 넘어

비상등 켜진 건강보험 재정 건강보험 재정에 비상등이 켜졌다. 2022년 건강보험 진료비가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한다. 2016년 64조5768억원이었던 진료비가 2021년 93조5011억원으로 1.45배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 진료비가 전년동기 대비 11.6% 증가한 50조845억원임을 비추어 볼 때, 2022년 전체로 1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건보재정 불안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과정에서 홍역을 치렀던 건보재정이 인구의 초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2023년 1조4000억원 적자로 전환된 이후, 적자 규모가 점차 확대되어 2027년 6조8000억원, 2028년 8조9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2021년 말 기준 20조2400억원이었던 건강보험 적립금이 2028년 -6조4000억원을 기록한다. ‘2020~2060년 건보 장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2040년에는 누적 적자가 678조원, 2050년 2518조원, 2060년 5765조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제73조에 의한 건강보험료율 상한 8%를 전제하였을 때 예상되는 수치이고, 수지 적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건강보험료율을 2022년 현재 소득대비 6.99%에서 2060년경에는 24% 내외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건보는 공공재, 이용자 절제 안 해 병원, 진료 많이 할수록 수입 증가 건보 적립금 2028년 적자로 전환 누적적자 2060년 5765조원 전망 국고지원 늘려도 임시방편일 뿐 의료남용 막고 지급체계 고쳐야 의료·노인장기요양보험 모두 위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의료급여 지출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사회보장재정통계센터의 ‘2021년도 사업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8조5287억원이 지출된 의료급여는 2030년 17조2025억원, 2060년에는 52조9621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비중은 2021년 0.4%에서 2030년 0.59%, 2060년에는 0.88%까지 커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별개 법으로 관리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지출의 증가속도는 더 가파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급여지출은 2010년 2조3916억원에서 2021년 10조1840억원으로 증가했다. 장기적으로 2021년 소득대비 0.79%인 장기요양보험료율을 2060년 6% 내외로 인상해야 늘어나는 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 전망이다. 2060년대에는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보험료율 합계만 해도 소득대비 30% 수준이어서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제4차 중장기 사회보장 재정 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보건부문 공공복지지출의 GDP 비중은 2020년 5.0%, 2030년 6.6%, 2040년 8.9%, 2050년 11.4%, 2060년 12.9%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20년 기준으로 보건부문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5.3%임을 고려하면 낮지 않다. 기대수명 83.5세 vs 건강수명 66.3세 건강보험 진료비가 빠르게 증가하는 제1차적 요인은 노인 인구 증가라고 할 수 있다. 전체 진료비 중 노인 의료비 비중은 2016년 38.7%에서 2021년 43.4%로 높아졌다. 1년에 1%포인트가량이 늘어나는 구조다. 노인 인구 비율은 2016년 13.5%에서 2021년 16.6%로 변동했다. 통계청 전망대로 노인 인구 비율이 2070년에 46.4%로 높아지면, 노인진료비의 대폭적 증가는 불가피하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2020년 83.5세로 세계적 수준이지만 건강수명은 66.3세로 생애 기간 중 유병 기간이 17.2년이 된다는 점은 건강한 장수를 위한 국가 차원의 건강증진 정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우리 건강보험은 진료할 때마다 진찰료·검사료·처치료·입원료·약값 등에 따로 가격을 매긴 뒤 합산해 진료비를 산정하는 행위별 수가제(fee-for-service)를 의료보험 도입 당시부터 채택하고 있다.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의 양에 따라 비용 지급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료공급자의 과잉진료를 유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에 포괄수가제(diagnosis related group)는 진료 내용이 유사한 입원 환자군에 대해 사전에 일정한 급여액을 정해 진료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지급 단위의 포괄화로 의료기관의 진료비 산정과 심사가 간소화될 수 있다. 의료기관 입장에서 행위별 수가제는 진료량 최대화를 추구할 수 있고 포괄수가제는 진료비용 최소화를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보험재정 안정화 측면에서 포괄수가제가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정해진 비용 범위 내에 진료가 이루어지므로 의료서비스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지불 보상체계 조정은 보험자·의료소비자·의료공급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므로 대승적 차원의 합의가 요구된다. 본인부담금 제도로 도덕적 해이 막아야 건강보험을 적용받는 환자의 의료이용 행태도 의료이용량을 늘릴 수 있다. 보험 없이 환자가 의료비 전액을 지급한다면 이용하지 않았을 의료서비스를 보험이 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이용할 때 진료비 지출이 증가할 수 있다. 보험이론에서는 이를 도덕적 해이로 보아 보험의 시장실패 원인 중의 하나로 꼽는다. 보험가입자의 남용을 억제하기 위해 진료비 일부를 본인이 부담토록 하는 본인 부담금 제도가 활용된다. 그러나 건강보험의 본인부담금과 비급여를 덜어주는 목적으로 판매되는 민영 의료보험으로 도덕적 해이를 저지할 수 있는 기제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진료비가 증가하고, 민영 의료보험도 부실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건강보험과 민영 의료보험의 비용 효과적인 역할 조정이 요구된다. 의료서비스는 자유재가 아닌 경제재로서 정상적인 비용을 지급하고 정상적인 편익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건강보험 제도가 의료서비스를 모호한 공공재로 만들면서 ‘공유지의 비극’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공유지의 비극은 공공자원의 이용을 개인의 자율에 맡긴 결과 서로 이익을 극대화함에 따라 자원이 남용되거나 고갈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따라서 아예 영국이나 스웨덴과 같이 의료서비스를 완전 공공재화 하든지, 아니면 경제재로서 보험시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고령자 늘수록 지속 가능성 더 낮아져 재정 안정화 대책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민건강보험법과 건강증진법을 보면 정부는 건보료 예상수입액의 14%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반회계(국고)에서 지원하고, 건강증진기금에서 6%를 지원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 법규의 일몰 시한은 2022년 말이어서 국고 지원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정부 지원을 늘리면 보험료 인상 부담의 일부는 완화되겠지만, 국고도 국민 세금으로 조달된다는 점에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국고 부담 수준을 낮추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일몰 규정을 없애는 방안은 검토해야 한다. 한편 건강보험료율 8% 상한 규정 역시 사수하는 것이 이미 불가능해진 만큼 새로운 재정 안정화 방안 마련 시 삭제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국민연금·고용보험·산재보험과 같이 국고가 극히 미미하게 투입되는 사회보험도 공공기금으로 관리되고 있는 만큼, 예상수입액의 20% 상당을 국고와 건강증진 부담금에 의존하고 있는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당연히 기금화해서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금까지 이럭저럭 버텨왔지만,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인구의 절반이 고령자가 되는 미래에서는 지속가능성을 확신하기 어렵다. 건강보험은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므로 재정 안정화를 위한 제도 개편이 힘들지만, 죄수의 딜레마 게임처럼 당사자가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공멸할 수도 있다는 판단하에 한발씩 양보해 지속 가능한 건강보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2022-11-28

[서경호 논설위원이 간다] 소득세·부가세 실효세율 높이자는 제안 반갑다

증세 필요성 제기한 KDI 보고서 “기초연금 정책을 최근의 우리 정치권처럼 가볍게 다루는 것은 정말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나랏돈으로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정치인들의 태도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창수 한국연금학회 회장(숭실대 정보통계보험수리학과 교수)이 지난 11일 열린 연금학회 정책세미나 ‘한국의 공적연금 지속 가능한가, 갈림길에 선 기초연금’ 자료집에 올린 개회사 성격의 ‘모시는 글’이다. 절절한 호소 담은 세미나 인사말 이 교수는 “국가의 세금으로 재원을 충당하니 당장 혜택을 보는 노인세대의 지지는 쉽게 얻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미래세대의 어려움에 대해 심사숙고하였는지 묻고 싶습니다”라며 정치권의 기초연금 인상 움직임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통상 감사 인사 같은 무난한 얘기나 점잖게 나누는 세미나 인사말에 이렇게 절절한 호소를 담는 건 이례적이다. 기초연금 인상은 여야의 포퓰리즘 미래세대 어려움 심사숙고 했어야 2060년 국가채무비율 기준선 145% 최악의 경우 231%, 국채도 못 발행 증세의 정치적 부담 정권간 나눠야 “정부의 강력한 정책 리더십 필요” 실제로 기초연금 인상이라는 포퓰리즘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현재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한다. 윤석열 정부는 기초연금 지급액을 40만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국정과제를 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0만원 인상과 함께 기초연금을 노인 100%에 지급하고, 부부 감액(20%)을 폐지하는 안을 제안했다. 이러니 정치권이 아무리 청년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목청을 높여도 신뢰가 안 가는 거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주 ‘코로나19 이후 재정 여력 확충을 위한 정책과제’ 보고서를 냈다. 지난해 냈던 논문을 요약하고 재가공했다. 보고서 골자는 이렇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2060년에 우리나라의 기준선 국가채무비율은 144.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기준선 전망에 사용된 인구 추계와 재량지출 전제가 실현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장기 재정여건은 더 악화할 것이다.” 기준선 재정 전망은 현행 법·제도·관행 등이 유지된다고 가정하고 재정 수입과 지출의 미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인구와 거시경제, 재량지출은 이렇게 전제했다. 첫째, 인구는 2019년에 통계청에서 발표한 중위 기준 장래인구 추계를 원용했다. 이에 따르면 2060년의 총인구는 4280만 명으로 2021년의 82.7% 수준이다. 둘째, 장기 경제성장률은 2020년 장기재정전망협의회 자료를 이용했다. 2021~2060년간 경상성장률은 추세적으로 낮아져 연평균 2.8% 수준에 그칠 것으로 잡았다. 셋째, 재량지출은 좀 복잡하다. 미래 정부의 정책 의지나 당면한 경제 현안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가령 코로나19 같은 예상하지 못한 보건 위기가 다시 터지면 재량지출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단 그런 비상상황은 없다고 가정하고 잡았다. 2021~2025년의 재량지출은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수치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14.7%를 그대로 사용했다. 2026~2030년 매년 0.57%포인트씩 낮춰 코로나19 위기 발생 직전의 GDP 대비 재량지출 비율 평균인 11.8%로 낮추고 2031년부터 이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가정했다. 큰 위기 없어도 2060 국가채무비율 세 배 이게 기준선이다. 현재의 국가채무비율(2020년 43.8%, 올해 전망치 49.7%)의 세 배 수준인 2060년 국가채무 비율 144.8%조차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대형 위기가 없다는 낙관적인 기대를 품고 있다. 인구 고령화로 연금 수급자가 늘어나면서 국민연금은 2036년부터 적자로 전환돼 적립금이 줄기 시작해 2054년에 완전히 고갈된다. 국민연금 등 4대 사회보장기금 수지는 2038년 적자로 돌아서 2060년에는 -5.7%의 적자비율을 기록한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당연히 수치는 더 나빠진다. 첫 번째 전제가 어긋나 인구가 중위기준이 아니라 저위기준으로 더 떨어지면 2060년 총인구는 2021년의 73.7% 수준인 3800만 명 수준으로 낮아진다. 성장률은 하락하고 세수는 줄어 나라 살림은 더 팍팍해진다. 이 경우 KDI는 2060년 국가채무비율이 기준선 대비 25.4%포인트 늘어난 170.2%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보고서 작성자인 김학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합계출산율이 저위기준 가정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우리나라의 재정여건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만약 세 번째 전제가 틀어져 정부가 재량지출 통제를 못 하고 코로나19로 늘어난 재량지출이 2060년까지 14.7%로 그대로 유지되면 2060년의 국가채무비율은 기준선 대비 86.1%포인트 늘어난 230.9%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과연 이러한 수준의 국가채무 조달을 위한 국채 발행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지방교육교부금 학령인구 변화 반영을 재정 파탄을 피하기 위해 KDI는 세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빠르게 줄고 있는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개편하는 것이다. 1972년에 도입돼 50년간 유지돼온 현행 제도는 초중고 교육재정에 내국세수의 20.79%를 기계적으로 투입한다. 예산의 효율성과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에는 국세 수입의 호조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81조원이나 이전됐다. 교육청마다 예산을 다 사용하지 못해 난리라는 보도가 나왔다. 교육교부금 제도를 학령인구 변화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고치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을 기준선보다 28.2%포인트 축소할 수 있다. 둘째, 정부가 재정 허리띠를 더 졸라매는 것이다. 2031~2060년간 매년 0.023%포인트씩 경상GDP 대비 재량지출 비율을 줄여 2060년에 11.1%에 도달하면 어떻게 될까. 국가채무비율 개선 효과는 2060년 기준선 대비 10.1%포인트에 달하게 된다. 셋째, 증세와 비과세 감면 축소다. KDI는 소득세와 부가세 실효세율(명목세율이 아닌 각종 공제, 감면 조치를 반영해 실제 국민이 부담하는 세율)을 1%포인트씩 인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지난해 기준 약 2조8600억원의 비과세 감면을 정비할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 같은 세입 기반 확충으로 국가채무 비율을 18.9%포인트 줄일 수 있다고 했다. 결국 KDI가 제안한 세 가지 해법을 이행하면 2060년의 국가채무 비율은 기준선인 144.8%보다 57.2%포인트 낮아진 87.6%가 된다. 국책연구기관이 증세의 필요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건 참 반가운 일이다. 어느 정부든 증세를 거론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국민의 수용성을 감안해야 한다느니 따위의 변명을 앞세우며 눈앞에 훤히 보이는 증세의 불가피함을 정부 스스로 외면하곤 했다. ‘재정비전 2050’에 증세 방안 담아야 지난 25일 한국경제·재정·행정학회와 조세재정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재정비전 콘퍼런스’가 열렸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기조연설에서 “재정위험과 재정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재정개혁은 지금 시작해도 20~30년 후에나 가시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향후 5~10년이 마지막 재정개혁의 기회란 각오로 ‘재정비전 2050’ 수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재정개혁을 주제로 열린 이 날 콘퍼런스에서 나온 7건의 발제 제목 중 세금 얘기는 없다. 내년 상반기 발표되는 ‘재정비전 2050’에 증세를 비롯한 세입 확충 방안이 빠진다면 실망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KDI 보고서는 해법으로 제시한 3대 정책과제 모두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재정개혁 수준의 이러한 정책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썼다. 중장기적 증세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많다. 정치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안도 이미 나왔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시절인 올해 초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앞으로 10년간 매년 GDP 대비 0.5%씩 세수(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기여금 포함)를 증가시키고 이를 복지지출 재원으로 연계시키는 ‘증세 부담의 정권 분산론’을 제안했다. 증세가 특정 정부의 부담이 되지 않게 세수 증가를 여러 정부에 걸쳐 분산하자는 것이다. 재정학자인 전주성 이화여대 교수도 올해 출간한 『재정전쟁』에서 연금·조세개혁의 정치적 부담을 정권 간에 나누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번 정부에서는 전문가 집단이 오직 최선의 시안을 만들고 실행은 다음 정부에서 하도록 합의하자는 것이다. 결국 여야가 소통하고 정치가 좀 돌아가야 미래의 증세 얘기도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데 지금처럼 사생결단식 드잡이가 일상이면 기대난망이다. 헌법이 정한 예산 처리기한(12월 2일)이 코앞인데도 내년 예산과 예산 부수 법안인 세법 개정안이 당장 어찌 될지조차 예상하기 힘들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장기 증세와 재정의 미래를 고민하라는 주문을 해도 되나 잠깐 고민했다. 그래도 하기로 했다. 중요하니까. 귀 기울일 때까지 반복해서. 서경호(praxis@joongang.co.kr)

2022-11-28

[박홍규의 한반도평화워치] ‘강제 징용’ 성급한 성과보다 국내 설득에 눈 돌려야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로드맵 한·일 정상은 지난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회담했다. 2019년 12월 이후 약 3년 만에 열린 정식 정상회담이다. 회담 이후 대통령실은 보도자료를 내고 “두 정상이 양국 간 현안과 관련해 외교 당국 간에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음을 평가하고 조속한 해결을 위해 계속 협의해 나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이 회담에서 현안인 징용자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지는 못했지만, 대통령실은 양국 실무진 사이에 징용자 문제 해법이 한두 개로 좁혀지고 있으며, 이를 가지고 양국 정상은 문제를 신속히 풀어가자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출범 이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부단한 노력이 종착점에 다다랐다는 희망이 엿보였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징용자 합의’가 발표될 듯한 인상을 받았다. 분명 징용자 문제는 해결의 문턱에 가까이 왔다. 그러나 문턱 너머 나타난 문이 ‘천국의 문’인지 ‘지옥의 문’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의 악몽이 좀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일 정상, 지난 프놈펜 회담에서 징용자 문제 조속 해결 합의 피해자·야당 설득 없인 진보·보수 역사전쟁으로 번질 수 있어 대일 경제·안보·교류와 과거사 화해라는 두 바퀴를 함께 굴려야 정부 차원 한일화해위원회 필요…미래 세대에 큰 길 열어줘야 ‘천국의 문’ vs ‘지옥의 문’ 문재인 정부 때 닫혀버린 한·일 외교를 재개하고자 윤석열 정부는 진심을 담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피해자 측의 견해를 확인하며 그들과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한편, 일본을 상대로 빈번한 실무자 교섭과 고위급 회담을 거듭하면서 상호 신뢰의 기반을 차근차근 쌓음으로써 마침내 정상회담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민관협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는 4차에 걸친 협의회를 통해 기본안을 마련했다. 기존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주체가 되어 한·일 양국 기업으로부터 기금을 모아 대위변제한다는 것이다. 이 안이 합의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요구된다. 하나는 일본 정부·기업의 사죄 표명과 일본 기업의 기금 참여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의 동의다. 바로 이 두 조건이 문턱 앞에 버티고 있어 양국 정상은 프놈펜 정상회담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문턱을 넘고 싶은 윤 대통령과 문턱을 넘을지를 고민하는 기시다 총리 두 사람이 공유한 인식의 산물이 정상회담 직후에 제공된 보도자료의 짧은 문안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 측의 기금 참여와 사죄 표명을 들고 피해자의 동의를 구해 대법원 판결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수출 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위안부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한·미·일 삼각 협조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그 성과를 바탕으로 난맥처럼 흩어진 내치에 매진하고자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반면 기시다 총리는 한국 측의 진심을 담은 화해의 손을 선뜻 잡지 못하고 있다. 그가 고민하는 이유는 일본의 일관된 기존 주장을 철회해야 할 뿐 아니라, 설사 양보해서 합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 번복될 수 있다는 위안부 합의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의 우려를 불식시켜 줄 묘약이 없는 한 징용자 합의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애매한 타협은 또다른 갈등 낳아 지성이면 감천이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국 측의 지속적인 구애에 결국 일본이 호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결단해도 문제는 디테일에 남아 있다. 합의 내용을 각자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 애매한 타협이 된다면 갈등의 씨앗이 된다. 피해자가 흔쾌히 수용할 수 있는 명백한 표현이어야 하고, 이면 합의가 존재해서도 안 된다. 천신만고 끝에 합의에 이른다 해도 또 다른 문제가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지난 10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한 간담회에서 대한변협 일제피해자인권특위 부위원장인 박형래 변호사가 병존적 채무 인수를 통한 대위변제도 채권자인 피해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민관협의회에 참석했던 그의 이러한 주장은 피해자의 동의 없이 대위변제를 시행하려는 정부 안과 배치된다. 간담회에서 정부 간 합의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논리와 명분이 제시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여야 간의 사법 전쟁, 이태원 참사 사태 처리를 둘러싼 정권 퇴진 시위 등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만약 여기에 징용자 문제가 진영 간 역사 전쟁으로 비화한다면 그 폭발력은 막대할 것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윤 정부에게 성급하게 가시적 성과를 내려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고 싶다. 섣불리 문턱을 넘기보다는 재촉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깊이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한국은 일본에 충분히 성의를 다했다. 한국 측의 입장과 성의 있는 호응 요청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지속해서 전달했다. 저자세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뉴욕에서 기시다 총리와의 약식회담을 가졌고, 욱일기 경례가 굴욕적이라는 논란을 무릅쓰면서 일본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도 참가했다. 국민 전체에 대한 설명 과정 필수 그러나 정작 국내 구성원을 향해서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진정성을 갖고 최선을 다해 피해자를 설득했는가. 야당에 협조를 요청했는가. 국민에게 설명했는가. 지금은 일본을 설득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겠다는 유혹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방향을 국내로 돌려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설득하고 호소해보기를 권한다. “친애하는 피해자 어르신, 야당 의원, 그리고 국민 여러분, 정부 출범 이후 징용자 문제 해결을 위해 사력을 다한 결과 마침내 정상회담까지 가졌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일본은 성의 있는 호응을 전해오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일본의 호응을 기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정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과거 우리 정부가 부족하고 미력하여 피해자들의 한(恨)을 충분히 풀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가슴에 남아 있는 그 한을 우리 정부가 정성을 다해 풀어드리기 위해 ‘포스코 역사기념 의식’을 구상했습니다. 청구권 자금과 일본 기업의 기술 지원으로 건설된 포스코 현장은 극일(克日)의 자랑스러운 장소입니다. 포스코의 위대함이 피해자분들의 땀과 피와 눈물의 대가로 이루어졌음을 선언하고자 합니다. 포스코 내에 추모 공간을 조성하고 선언문과 피해자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를 세워 피해자분들을 모시고 온 국민이 경축하고자 합니다. 정치 협상을 통해 총액 결정 방식으로 수령한 청구권 자금에는 강제동원 피해 보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성격의 자금이 포괄되어 있습니다. 무상자금 중 상당 금액을 피해자의 구제에 사용할 도의적 책임에 따라 1975년 박정희 정부에서 첫 피해자 보상을 했고, 노무현 정부는 오랜 기간 고통을 겪어온 강제동원 피해자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도의적·원호적 차원과 국민 통합의 측면에서 2차 보상을 했습니다. 이제 윤 정부는 역대 정부의 방침을 계승하여 3차 보상을 하고자 합니다. 3차 보상이 시행되면 피해자분들은 대법원 판결로 획득하신 채권을 정부에 양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일본과 협의해가며 정의롭고 당당하게 처리하여 결코 피해자분들에게 또다시 한을 남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투 트랙’ 성과 없어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문희상 전 국회부의장을 일본 특사로 파견했다. 당시 문 특사는 기시다 외무상에게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할 수 없지만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한·일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맺어나가길 희망한다고 전하며, 투 트랙으로 한·일 관계에 임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내내 투 트랙은 작동하지 않았다. 프놈펜 정상회담에서 경제·안보·인적 교류라는 한쪽 바퀴가 굴러가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를 통해 화이트 리스트와 지소미아 문제를 종결짓고, 전 분야에 걸친 협력을 확대해가자. 이와 동시에 국내적 설득을 바탕으로 역사 화해라는 다른 쪽 바퀴도 서서히 굴려보자.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이 있었던 1998년으로부터도 한 세대가 지났다. 이제 중장기 로드맵을 갖고 새로운 한·일 시대를 열어가자. 이를 위해 대통령 혹은 총리 산하에 ‘한일화해위원회’를 설치하여 일본과 긴밀히 협의하며 역사 화해를 추진해 나가자. 피해자의 바람을 깊이 명심하고, 반드시 여야 합의를 기반으로 하여, 양국의 미래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는 방향으로 과거사 문제를 처리하자. 그토록 높아만 보이던 문턱 앞에서 주저하고 갈등하던 양국이 그 문턱을 훌쩍 넘어 동아시아 지역 협력과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조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게 되기를 고대한다. 박홍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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