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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나우] 중국 경제, 한 달 괜찮다고 ‘봄’은 아니다

올해 여름 중국 경제의 출발은 부진했다. 많은 투자자가 거시 경제 지표를 보고 낙심했다. 8월 이후에는 중국 경제 활동이 안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비스 부문 소매 판매가 치솟았다. 세계 경제에서 중국 제품·용역에 대한 수요가 ‘덜 약하게’ 보이는 가운데 중국의 산업 생산은 시장의 예상을 능가했다. 또한 8월 중국 인민은행(PBOC)의 예상치 못한 금리 인하도 신용 수요 개선에 한몫했다. 9월의 고빈도 지표들(high-frequency indicators)은 3분기의 나머지 기간에도 긍정적인 경제 활동 모멘텀이 지속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제 부양책의 효과가 아직 완전히 나타나지 않았지만, 3분기 중국 경제는 성장률 상승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 정부의 연간 성장 목표인 약 5%도 여전히 가능하다고 기대할 수 있다.   과연 중국 경제가 ‘바닥’을 쳤을까. 우리 의견은 중국 경제가 바닥을 치긴 했지만 여전히 장기 침체 속이라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정부의 부양책으로 인한 경기 반등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현장 분위기도 여전히 취약해 보인다.   경제 데이터는 개선됐지만, 금융 및 시장 데이터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CSI-300 지수’에 속하는 중국의 대형주들은 수년래 최저 수준 근처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외국 투자자들은 2016년 기록이 시작된 이후 최장 기간 중국 주식의 순매도를 기록 중이다.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취했지만, 위안화는 미국과 중국의 금리 격차가 더욱 확대됨에 따라 약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약한 투자심리와 강한 거시경제 데이터 사이의 차이는 단기 자극 재정 정책으로 인한 경기 반등이 일시적이며 경기가 구조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확신을 강화한다. 즉, 투자자들은 정책결정자들의 경제 지원이 지속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 하는 상황이다.   중국 당국은 더 많은 조처를 할까. 역사적인 경기 부양 사이클을 고려할 때, 중국 당국은 경제 부양을 위한 많은 정책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대규모 자금 조달이나 민간 기업에 대한 큰 폭의 규제 완화가 그런 예들이다. 중국 정부가 구사할 수 있는 이러한 정책 대안을 생각한다면 중국 경제의 ‘경착륙’ 시나리오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적당히 만족스러운 8월 데이터를 근거로 중국 당국이 그동안의 경제 대책이 충분했다고 자평할 가능성이다. 민간 부문의 신뢰감이 여전히 취약한 이 시점에 당국이 경기 부양책을 철회해 회복을 방해한다면 이야말로 큰 리스크가 될 것이다. 루이즈 루 / 옥스퍼드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마켓 나우 중국 경제 거시경제 데이터 경제 부양책 경제 활동

2023-09-25

[살며 생각하며] 오이지

친구 A는 마켓만 오면 남편과 싸운다고 한다. 더운 여름에 마켓오는 게 힘든데, 온 김에 다 사고 싶은데, 남편은 뭐든지 못 사게 한다는 것이다. 오이 냉국도 먹고 싶고, 냉면에 들어갈 무도, 닭도리탕에 들어갈 당근과 양파도. 친구는 장바구니를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장을 볼 때는 다 해 먹을 것 같았지만 집에 돌아오니 사정이 달라졌다. 다음 날, 의사 체크 업 간 김에 점심 먹고 들어오고, 저녁은 고구마로 때우고, 주말엔 딸이 와서 오더해 먹었다. 냉장고에 넣은 채소들은 삼사일 지나니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채소들을 보다 못한 남편이 시장 보지 말고 사 먹자고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마켓에만 오면 나쁜 버릇이 고개를 든다. 무엇을 해 먹을지 몰라서 주섬주섬 다 담고, 필요 없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서 또 담고. 마켓이 몇 시간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닌데, 안 사 놓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위기감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오래전, 안방에 다락이 있었다. 따뜻한 아랫목의 벽 가운데를 크게 차지하던 벽장은 무슨 금고처럼 높이 달려 있었다. 애들이 함부로 열거나 하면 안 되는 곳이었다. 그 안에 말린 오징어, 리츠 크래커, 통조림 같은 것이 쌓여있었다. 어두컴컴한 그곳에 먹거리를  모아두는 어머니가 이상했다.     오전 11시경, 나는 뜨거운 해를 피해서 밀짚모자를 쓴다. 장갑을 낀 손에 가위를 들고 목에 장바구니를 걸었다. 그냥 나갔다가 가지 꼭지에 난 날카로운 바늘에 손을 찔린 적이 있다. 길쭉한 보라색 가지 세 개를 땄다. 그 앞에 있는 고추밭에서 빨개지는 거대한 고추는 그냥 두고 말랑한 연한 고추를 한 움큼 낚아챘다.     이제는 무엇을 딸까? 마당을 휘휘 둘러보았다. 담벼락을 차지한 넝쿨이 얼마 전부터 흉해졌다. 늦여름 해 밑에서 줄기는 노끈이 되고 잎은 누렇게 말라 버렸다. 사나운 몰골을 뜯어내려고 다가갔다. 그런데, 녹색의 길쭉한 오자미 같은 것이 달려있다. 죽는시늉 하면서도 어린 오이를 키우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니 오이는 팔뚝만큼 굵어졌다. 금방 딴 오이는 온몸에 송곳이 쭉 돋아있다. 제 몸 보호 장치가 서슬이 퍼렜다. 이번에는 물을 넣지 않고 오이지를 담갔다. 오이 10개 정도에 설탕, 소금, 식초를 동량으로 넣었다. 식초는 바닥에 조금 깔렸을 뿐, 두 겹으로 쌓인 오이는 멀뚱멀뚱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이지가 되려나? 다음날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오이 5개 정도가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매일 조금씩 오이에서 물이 나왔다. 일주일이 지났다. 오이는 서로서로 노랗게 익혀 주었다. 변덕스러운 여름날 퍼붓는 빗물을 제 몸에 품었다가 늦둥이에게 물을 주더니, 마지막에는 제 몸을 쪼그라뜨리면서 아삭한 오이지가 되어갔다. 다락 속에 먹을 것을 감추어 놓았던 어머니가 생각났다. 어느 궁진한 겨울 저녁에 파인애플 깡통을 따는 어머니 옆에 우리는 올망졸망 모여들었다.     오이지와 가지 복음, 구운 고추로 점심을 먹었다. 몇 달 동안 마켓을 가지 않았다. 과중한 내용물에 헉헉대던 냉장고는 휑해져서 냉기가 왕성하고,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쌓여있던 팬트리는 바닥이 드러났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커피 한 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부추는 하얀 꽃을 흔들어 대고 있다. 몇 번을 잘라 먹어서 지금은 뜨악해졌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꽃대를 내보냈다. 다섯 흰 꽃잎들이 사선으로 흔들거린다. 9월의 앞마당은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오이 오이 냉국 고추로 점심 연한 고추

2023-09-25

[우리말 바루기] ‘오이소박이’

오이소박이는 향긋한 오이 향과 아삭아삭한 식감으로 떨어진 입맛을 돋우는 데 제격이다. 오이는 수분 함량이 많아 여름철 수분 공급에도 좋고 비타민K가 많아 뼈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그런데 ‘오이소박이’ ‘오이소배기’ 어느 것이 바른 표기인지 헷갈린다. ‘오이소배기’뿐 아니라 ‘오이소백이’나 ‘오이소바기’ 등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발음이 비슷해 어느 것으로 적어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오이소박이’만이 맞는 표기다.   ‘-박이’는 무엇이 박혀 있는 사람이나 짐승·물건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점박이’ ‘차돌박이’ ‘금니박이’ 등처럼 쓰인다. ‘오이소박이’를 뜯어보면 ‘오이+소+박이’의 구조로 돼 있다. 오이를 갈라 파·마늘·고춧가루·부추 등을 섞은 소를 박아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박이’가 붙은 것이다.   ‘-박이’는 ‘장승박이’처럼 무엇이 박혀 있는 곳이라는 뜻을 더하거나 또는 한곳에 일정하게 고정돼 있다는 의미를 더하는 접미사로도 쓰인다.   ‘-배기’는 어린아이의 나이를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그 나이를 먹은 아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쓰인다. ‘한 살배기’ ‘세 살배기’ 등이 이런 경우다. 그런 물건이나 사람이란 뜻을 더하기도 한다.  ‘진짜배기’ ‘생짜배기’가 이런 예다. 또한 그것이 들어 있거나 차 있음의 의미를 더하는 접미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이배기’ ‘알배기’가 그렇다.우리말 바루기 오이소박이 접미사로 사용되기 여름철 수분 수분 함량

2023-09-25

[오픈 업] 한국어 이중언어 교육의 효과

필자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배웠다. 그리고 고교 때는 제2 외국어도 선택했어야 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사셨던 부모님 세대는 일본어만 배우고 써야 했다. 부모 세대와 우리 세대가 받은 어학 교육의 차이는 한글 교육의 존재 여부이다. 광복 이후의 세대는 한글 교육을 토대로 다른 언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이중언어 습득이 뇌 기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학적인 보고서는 1970년대 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는 저소득층 청소년의 두뇌 발달에 긍정적 효과를 준다는 내용도 있다. 컬럼비아 대학의 연구보고서(Fron. Neurosci., 04, Sept, 2014, Natalie H. Brito, Kimberly G. Noble)에 따르면 5세 이전 빈곤층에서 자란 아이들의 지능지수(IQ)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5~13점이 낮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이중언어를 배울 경우 뇌표면적이 월등히 넓어져 지능지수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영국의 인지신경 과학자 토마스 백 교수가 2014년 발표한 연구보고서도 이런 사실을 증명한다. 백 교수는 2008~2010년 사이 70대 시니어 853명의 인지도, 지성, 읽기 능력 등을 평가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이중언어를 한 그룹이 한 가지 언어만 사용했던 사람들보다 측정 결과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경제적인 면에서도 윤택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에는 성인이 된 후 이중언어를 습득해도 효과가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두 가지는 꼭 하는 것 같다. 차세대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과 한인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인 이민 선조들도 사탕수수밭과 오랜지밭, 그리고 한인 교회에서 이런 일들을 했다.     요즘 한인 차세대들은 주로 주말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배운다. 그리고 정규학교에 개설된 한국어반은 타인종 수강생이 많다. 현재 LA지역에만 80여개 학교에 한국어반이 개설되어 있고 등록 학생은 8500여명에 달한다. 참고로 전국의 각급 공립학교 재학생 숫자는 5000만 명이고 이중 약 20%인 1100만 명의 학생들은 가정에서 400여 개의 다른 언어로 소통한다고 한다. LA통합교육구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90여 개 정도로 알려져 있다.   미국도 참 많이 변했다. 지난 1998년 가주에서는 ‘프로포지션 227’이 통과됐다. 주내 공립학교에서의 수업은 영어로만 진행되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부모나 조부모가 이민자일 경우 그들의 모국어가 아이들에게는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한 것이다. 결국 대법원은 학교에서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가주는 2016년 ‘프로포지션 58’이 통과되면서  다시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자료를 찾아보니, 미국은 과거에도  유럽 출신 이민자들을 위해 이중언어 교육을 시행했다. 버지니아주에서는 17세기에 폴란드어-영어를, 오하이오주에서는 1839년부터 독일어-영어, 루이지애나주에서는 1847년부터 프랑스어-영어, 뉴멕시코주에서는 1850년부터 스페인어-영어 이중언어 교육을 시행했다. 그러다 세계 1차 대전으로 독일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모든 이중언어 교육이 중단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역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중언어 교육이 중단되면 영어가 서툰 학생들의 학력 저하는 뻔하다. 이는 이들에게 열등감을 갖게 하고 결국 경쟁에서 뒤져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기 쉽다고 본다.     미국 교육에서 어떤 언어를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 미주 한인 사회는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과 한글 교육의 장점을 알리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K-팝, K-드라마, K-푸드, K-뷰티 등 한류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 8월에 한인 학생 비율이 1%도 되지 않는 학교 두 곳에서 한국어를 세계언어 선택과목 중 하나로 채택했다.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요구해 벌어진 사건(?)이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한인 사회의 위상도 높아진다.  류 모니카 / 종양방사선 전문의·한국어진흥재단 이사장오픈 업 이중언어 한국어 이중언어 습득 한글 교육 어학 교육

2023-09-25

[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길티 플레저

‘길티 플레저’는 영어 길티(guilty·죄책감이 드는)와 플레저(pleasure·즐거움)를 합성한 신조어다. 어떤 일을 할 때 죄책감·죄의식을 느끼지만, 또 동시에 엄청난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다.   할리우드 영화 제목으로 쓰였다면 ‘조커(사진)’같은 사이코 살인마를 떠올리겠지만, 이 신조어를 설명할 때 언급되는 ‘죄’의 종류들은 대부분 소소하다. 친구들끼리 나누는 SNS 대화, 또는 TV 예능프로그램 자막에선 오히려 반전매력을 위한 가벼운 고해성사로 이용될 때도 잦다.     학창시절 부모님 몰래 만화방 가기, 자율학습 땡땡이치기, 수업시간 야한 잡지 보기 등을 해본 적 있다고 고백하는 건 나쁜 짓을 했다기보다 어른들이 하지 마라니까 일부러 삐딱하게 행동해서 ‘반항의 달콤함’을 즐겨봤다는 일종의 자랑이다.   악취미를 즐기거나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사람을 설명할 때도 쓰인다. 남들이 알면 부끄럽고 민망한, 또는 스스로 생각해도 오글거리는 상황을 즐기는 취향과 태도를 비꼬거나 자조하는 경우다. ‘막장 드라마’라 욕하면서 실은 본방송 시청이 일상이고, ‘인생 샷’을 위해 수시로 출입금지 구역을 드나들고, 클래식이 아니면 음악도 아니라면서 휴대폰 앱은 트로트로 꽉 차 있는 사람들. 다만, 이 경우도 남에게 상처를 주진 않는다.   사실 죄책감과 기쁨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누군가에겐 디지털 ‘댓글’이 익명으로 화를 배설할 수 있는 쓰레기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개구리에게 던지는 돌이 될 수도 있다. 신조어 사용에 좀 더 신중하길 바라는 이유다. 서정민 기자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플레저 길티 플레저 신조어 사용 사실 죄책감

2023-09-25

[열린 광장] 핀란드의 영어교육이 시사하는 것들

국민의 영어 구사력에 대해 한국이 가장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나라가 핀란드일 것이다. 핀란드의 인구는 550만 명 정도인데, 국민의 70% 이상이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런데 핀란드어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처럼 영어와 같은 언어 구조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군에 속해 영어 배우기가 쉽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나라가 공교육만으로도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를 불편 없이 사용한다고 하니 영어 교육에 많은 돈을 쓰고도 영어 말하기 능력은 하위군에 속하는 한국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관심을 반영하듯 이미 한국에서는 핀란드의 영어 교육에 대한 책들이 소개됐고, TV다큐멘터리로도 방송됐다. 영어교사 참관단이 핀란드의 학교수업을 직접 보며,수업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핀란드의 영어 교육 방법은 한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간략히 소개한다. 핀란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공부가 시작된다. 학교에서는 말하기 위주로 수업하고, 숙제는 쓰기가 많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초등학교에서는 외국인 교사가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방송(EBS)이 한국과 핀란드의 영어교육을 비교한 것을 보면 목적은 의사소통으로 같다. 하지만 교육 방법은 다르다. 한국 중·고교는 문법 위주의 접근 방식으로 시험을 중시했고 핀란드는 말하기 연습 위주로 시험을 위한 공부는 하지 않았다.   한국인에게 ‘콩글리쉬’가 있듯, 그들에게도 ‘핑글리쉬’라는 특유의 발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한국인은 이를 부끄러워해 말을 피한다는 게 차이점이다. 이런 특징은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든다.   핀란드에도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세계시민이 되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 가운데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버드대학에는 ‘교정에서는 지혜를 키우고, 밖에서는 더 나은 인류, 사회를 위해 봉사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문이 있다고 한다. 학교 교육이 대학 입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치열한 경쟁만 있을 뿐 시민 정신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한국 교육의 현실을 깊이 성찰해 봐야 한다. 이들이 이끌어갈 미래사회가 걱정된다면 말이다. 사교육 없이 교육 경쟁력 1위,학업 성취도 1위, 행복도 1위인 핀란드는 우리가 연구해 볼 가치가 충분한 나라다.     미국에 사는 한인 가운데도 영어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는 교회 문화학교에도 영어 클래스는 없는 곳이 많다.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1세들이 아예 영어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공부가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는 생각 대신 지력을 높이는 것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또 취미로 영어공부를 해보겠다는 발상의 전환은 어떨까. 시도를 안 하면 얻는 것도 없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열린 광장 영어교육 핀란드 영어 교육 영어교사 참관단 한국 교육

2023-09-25

[중앙칼럼] ‘마음 표현’이 중요한 이유

‘극단적 선택’, 천부인권을 쥐고 태어났다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독한 결단’을 실행하기도 한다. 동물 가운데는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집단자살 현상이 목격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유의지 발현에 따른 사회적 자살은 인간이 유일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선택, 자유의지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찬사 이면에는 독사과를 품은 사유라는 존재가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르네 데카르트의 말은 인간의 이중성도 보여준다. 성찰은 우리네 인생의 의미를 곱씹게 하는 지혜의 힘을 주지만, 동시에 공허의 소용돌이에 빠져 무의미라는 자각에 허우적거리게 하기도 한다.     공허의 소용돌이에 빠져본 이는 알겠지만,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오죽하면 인간은 의미를 찾기 위해 사는 존재라는 말로 삶의 연속을 긍정할까.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질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질문을 파고들수록 인식의 확장이란 지적 희열을 주지만, 수틀리면 냉소와 허무 앞에 무릎 꿇게 만든다.   극단적 선택은 자유의지가 품은 독사과의 발현으로 볼 수 있다. 인간에게 발현하는 생각하는 힘의 무서움이다. 내가 듣고 보고 느끼는 현실을 스스로 중단하는 행위, 삶을 이어가지 않겠다는 냉혹한 판단이자 실행력이다. 자살을 함부로 재단하기엔 한 존재의 사유와 고통이 너무 깊다. 삶의 힘겨움을 아는 시기가 되면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연민과 공감마저 든다. 내 삶이 소중한 만큼 남의 삶도 소중하다는 간단한 세상 이치를 알아서일까. 어느 순간 자살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자살하면 왜 안 되는가’라는 질문도 있다. 이런 되물음은 충동적 호소일수도, 우문현답일 수도 있다. 당장 삶의 희망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흔한 객관식 답변이 호소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정신건강 전문가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자각’에 잠식당해서라고 한다. 공허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자살이라는 선택지만 보인다고 한다. 지금까지 버틴 삶의 노력, 삶의 이야기 속에 꿈꾸던 미래, 인생의 의미를 느끼게 한 관계 등이 한순간 붕괴하면 극심한 고독과 고통을 반복해서라고 한다. 그렇게 삶과 죽음이란 선택지만 몰두하다 후자에 관심을 두게 된다.   다만 극심한 고독의 상황에서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마음 표현’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가족과 친구, 지인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솔직함을 주저할 필요도 없다.  공허의 소용돌이 속에 꼭 두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죽음은 두려움의 영역이다. 그 두려움 만큼 ‘삶에 대한 미련’도 강렬하다. 전문가는 공허의 소용돌이에 빠질 때 타인과 진솔한 대화를 나눠보라고 당부한다.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다른 선택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자각할 수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족과 주변인은 자세다. 고민을 털어놓은 당사자에게 ‘그런 생각 말아라. 다들 힘들어도 산다’는 단편적 반응은 당사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살고 싶다’는 외침을 외면하지 말자.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공감은 삶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   극단적 선택은 때론 충동적일 수 있다. 평소 본인의 심리상태와 정신건강을 돌보는 자세도 중요하다. 의학적 기준에서의 우울증 항목은 ▶슬프고 울고 싶은 감정 ▶평소 흥미를 느꼈던 활동에 대한 관심 저하 ▶체중 및 식욕 변화 ▶과한 수면 또는 불면증 ▶무기력증 ▶자존감 저하 및 잦은 죄책감 ▶사고력 및 집중력 감퇴 ▶자살 등 죽음에 대한 관심  ▶삶의 의욕 상실 등이다. 위 항목 중 5가지 이상 해당하고, 증상이 2주 이상 나타난다면 당장 주변에 속마음을 표현해보자.  김형재 / 사회부 부장중앙칼럼 마음 표현 마음 표현 선택지 인생 극단적 선택

2023-09-2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이제 트랙 위에 발을 올려 놓습니다. 녹색의 트랙 위로 세개의 하얀줄이 길게 뻗어 있습니다. 오른쪽엔 RUN, 가운데 길엔 JOG, 아래 농구대가 보이는 난간 쪽엔 WALK라고 쓰여있네요. 코너를 돌 때는 딴짓을 하면 안됩니다. 그대로 걷다 보면 벽에 부딪히기 때문이죠. 하얀 선을 따라 둥글게 돌면 됩니다. 구불구불 그어진 선은 없으니 긴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등 뒤로 땀이 송송 맺힙니다. 이제 트랙을 바꾸어야 합니다, RUN에서 JOG로 다시 WALK로 숨이 가빠집니다. 고만할까 생각하다 생각을 고칩니다. 마지막 한바퀴도 그렇게 잘 돌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걷고, 뛰고, 달리는 하루 하루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날은 걷다가도 불현듯 찿아오는 일로 뛰어야 하고 때로는 앞 뒤 쳐다볼 여유도 없이 마구 달려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 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느린 하루를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돌아보면 그런 패턴의 시간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섬찟 놀라게 되는 것은 그런 시간은 내 일생에 단 한번 찿아온다는 사실이지요. 하물며 사람과의 인연은 어떨까요.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묻기를 “손으로 쥐어 그 손에 쥔 모래알갱이의 수가 몇 개이겠는가?” 제자들이 답하기를 “무수히 많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다시 제자들에게 묻기를 “그렇다면 황하의 모래 알갱이 숫자는 어떠 하겠는가?“ 제자들이 답하기를 “손에 있는 모래도 헤아릴 수 없이 많거늘 어찌 황하의 모래를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때 석가모니는 제자들에게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조건 또한 이처럼 헤아릴 수 없으니 인연을 귀하게 여겨라.“라고 설하셨답니다. 오늘 내가 가는 곳,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되어지는 모든 일들이 소중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인, 화가)    한 번의 인생        어디 가시나요? /  갈 곳은 있으시나요? / 저도 왠지 가고 싶은 곳이 있답니다 /  겹겹이 산들이 펼쳐 있는 곳 / 나무에 해먹을 두르고  누우면 솔 향기 / 솔솔 나는 곳으로 가고 싶답니다 / 바쁜 시계추 멈춰있는 고요 속으로 // 무얼 들으시나요? / 귀 기우려 듣고 싶은 게 있나요? / 가까이 다가가 듣고 싶은 것이 있답니다 / 아침에 피었다 지는 나팔꽃 입 다무는 소리 / 거리를 유지한 나무 위로 잔가지 부딪히는 소리 / 온종일 슬피 부서지는 파도 소리 듣고 싶답니다 / 그리워 떠나지 못하는 물새 소리 귀담아 봅니다 // 무얼 보고 싶은가요? / 아른아른 지워지지 않는 게 있나요? 물으신다면 / 새벽 눈뜨면 커피 향과 함께 먼동의 하늘이 / 자고 나면 꽃 피우는 뒤란의 행복이 / 뛰어가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언덕의 노을이 / 기차길 옆 손 흔드는 갈대의 서글픔이 / 하루가 멀어져 가는 달빛 아래 한 사람이 // 시계의 초침을 잡아 매고 쏟아지는 빗속으로, 바람에 흘러가는 구름나라 하늘로, 싸리문 열면 발그란 얼굴 과꽃 가득한 본향으로, 떠나지 않는 물새의 궁금한 발자국 찿아, 눈을 감아도 어른거리고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너의 모습 너의 소리 // 단 한 번의 인생이기에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석가모니가 제자들 물새 소리 구름나라 하늘

2023-09-25

[중앙시평] 과학이 보여주는 진취적 기상

옛날 인간들은 세상이 평평하다고 믿었다. 국지적으로는 산과 계곡 등 여러 가지 지형이 있지만 큰 그림을 볼 때는 거대한 평지에 약간 울룩불룩한 정도이지 않은가. 그리 멀리 어디 가 보지 못한 사람들이 지구가 둥글다고 상상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그래도 꽤 오래전부터 지구는 둥글고 그것이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모든 천체는 그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는데, 중국 등 다른 지역에서는 땅덩이가 공 모양이라는 ‘지구’ 개념을 강력히 거부했다고 한다.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중국이 글자 그대로 세계의 중심에 있는 국가여야 하는데, 구형의 표면에는 중심이 있을 수 없다는 문제였다고 한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 증거를 편한 대로 선택해서 해석 과학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자세 항상 더 배우고자 하는 게 진취성 그런데 요새도 지구가 평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상하게 선진국에는 더 많다. 과학자처럼 그 지구평면설(또는 지평설)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꽤 있으며, 자기들끼리 모여서 정기적 학회를 열고 서로 연구결과 발표도 활발히 한다. 소위 ‘지평인’이라 일컬어지는 이들은, 도리어 자기들을 깔보고 비웃는 ‘지구인’들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맹신하도록 세뇌당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평인들은 증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증거를 아주 선별적으로 취급하며 특이하게 해석한다. 지구가 명백히 동그랗게 보이는 사진도 나사(NASA)와 같은 정부기관에서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아니, 당신이 직접 우주선을 타고 올라가서 본 적은 없지 않은가.) 한편 자기들 주장에 도움이 되는 증거가 어쩌다 나오면 그것을 다들 인용하며 되풀이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어떤 배가 굉장히 먼 거리에 나갔는데도 해안에서 그 모습이 보였다는 보고가 있었다. 지구가 둥글다면 그 굽어 있는 물의 표면을 따라 나간 배가 어느 정도 멀어지면 시야에서 수평선 밑으로 들어가므로 모습이 사라져야 한다. 지구가 둥글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이상한 관찰결과를 일시적인 대기현상 때문에 일어난 빛의 굴절이 빚은 착시였다고 해석한다. 그러면 지평인들은 지구인들이야말로 편한 대로 증거를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는 이런 식으로 과학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하는 학자 중 하나다. 그는 그들을 우리가 무조건 무시하고 짓눌러서는 안 되고 그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평인들이 정말 어떤 생각과 주장을 하는지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2018년도 국제 지평설 학술대회에 참석하였고 거기서 지평인들과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다. 지평설이 옳다면 이러이러한 관측과 실험결과가 나와야 할 것이고, 그것을 같이 시험해 보자고 권했다. 한 예로, 현재 주류 지평설에 의하면 납작한 원형으로 생긴 세상의 중심은 북극이다. 남극이란 것은 없고, 그 대신 엄청난 길이의 바깥쪽 원주에 얼음벽이 쳐 있다. (재미있는 것은 유엔 깃발을 보라. 거기에 나온 세계지도는 바로 이런 형태이다.) 지평인들은 그렇기 때문에 지구인들이 ‘남반구’라고 말하는 외곽지역에서 동서의 거리는 지구인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길다고 본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에서 뉴질랜드까지 가는 거리는 너무 멀어서 직행 항공편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항로가 있지 않은가? 매킨타이어는 지평인 한명과 거기에 대한 내기를 하게 되었다. 매킨타이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그런 비행기를 타 보기로. 그런데 그 약속을 했던 지평인은 결국 시험장에 나오지 않았다. 매킨타이어는 과학적 태도의 정수는 증거에 따라 기꺼이 이론을 바꿀 용의가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포퍼(Karl Popper)의 그러한 주장에서 영감을 얻는다. 과학적 태도가 안 된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장 아끼는 믿음이 흔들리게 될까 봐 진짜로 새로운 경험은 피한다. 그와 정반대인 것은 항상 뭔가 새로운 것을 배워보려는 과학자의 욕망이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과학자라 하는 사람들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론만 계속 믿고 입증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특정한 과학이론을 종교처럼 숭배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그런 잘못된 과학자 집단은 파벌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과학적 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하는 과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참 어려운 것은 과학을 공격하는 사람들까지도 과학적 태도로 대해주는 일이다. 과학도 틀릴 수 있고 과학지식은 항상 개선되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과학지식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갈 필요가 있다. 진취적 기상을 살려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많이들 하는 이야기다. 옛날 학교에서 도덕 시간에도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 전통이 서양과학의 정신과 제대로 통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선호하는 이론만 방어하는 소극적이고 침체된 태도를 벗어나서, 자신의 현재 믿음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버릴 각오를 하고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가자는 과학의 정신이 정말 진취적 기상이 아닐까.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과학철학

2023-09-25

[최민우의 시시각각]이재명 제치니 정청래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여권에선 “그냥 부결시키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는 말이 돌았다. 민주당이 이재명 간판으로, 방탄 이미지로 총선을 치르는 게 여권에 더 유리하지 않겠냐는 의미였다. 체포안 가결로 이 대표가 수감되고 퇴출당한 뒤 제1야당이 환골탈태해 거듭나면 국민의힘엔 오히려 악재라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재 민주당 돌아가는 판세는 최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21일 표결 당일 밤, 온건파 박광온 원내대표를 완력으로 몰아낸 건 ‘친명 일극체제’의 서막이었다. 당 투톱(당대표ㆍ원내대표)이 부재하자 이튿날 회의에서 마이크를 잡은 건 강경파 정청래 최고위원이었다. 그는 가결표 의원을 겨냥해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되는 비정한 짓을 저질렀다.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면서 “윤석열 정부 정적 제거 공작에 놀아난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해당 행위다.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정치생명을 끊어놓겠다”는 노골적인 협박에 비명계는 허겁지겁 ‘부결 인증’을 공개하거나 “당원들이 사퇴하라면 사퇴하겠다”(고민정 최고위원)며 꽁무니를 빼기 바빴다. 계파 대격돌이니 반란 운운은 언감생심이었다. 체포안 가결로 당 변화 예상 깨고 비명 숨죽인 채 친명색채 더 강화 구속돼도 '이재명 체제' 굳건할 듯 당 밖은 더 흉흉했다. 표결 직후 친야 커뮤니티엔 ‘수박 당도 측정법’이란 게 유포됐다. 체포안 표결이 무기명 투표라 가결표 색출이 현실적으로 어렵자, 이를 추정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든 것이다. ‘개딸’의 거듭된 요구에도 ▶공개적으로 부결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자 ▶부결 여부를 묻는 문자ㆍ전화에 답변하지 않은 자를 우선 추리고, 이 대표 단식 중에 ▶농성장을 방문하지 않은 자를 포함하면서, ▶지난 7월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에 동참한 자(31명) ▶검사 탄핵소추안 발의에 불참한 자(62명) 등 공식 수치를 취합한 것이다. 지표 중 4개 이상 해당하는 현역 의원은 ‘수박 당도 4 혹은 5’로 측정돼 가결 확실로, ‘당도 1ㆍ2’는 가결 의심으로 분류된다. 단지 추정에 불과한 이 같은 ‘가결 리스트’가 내년 민주당 총선 공천을 좌우할 것이라고 한다. 이 대표 구속을 전제로 한 ‘옥중 공천’을 넘어, 이 대표 본인도 인천 계양을에 ‘옥중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비명계에겐 이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이 외려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온다. 이 대표가 풀려나면 통 큰 정치인으로 포지셔닝을 하기 위해 포용의 제스처를 취할 테지만, 이 대표가 수감돼 현재처럼 ‘극성 친명계’가 더 설치는 상황이 오면 비명계 공천 학살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설명이다. ‘이재명 제거’가 민주당 변화의 트리거가 되기는커녕, 이처럼 더 극렬한 ‘이재명 시즌2’로 변질되는 건 왜일까.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가 심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현재의 윤석열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다. 특히 이 대표 단식 농성장에서 큰절을 올린 여성을 떠올려 보라. ‘이재명교(敎)’에 교화된 신도(개딸)에게 윤석열 정부는 ‘지옥불’인 것이다. 그런 엄혹한 현실에서 내 편의 작은 허물을 들추다니, 그건 용서될 수 없는 반역이다. 혹여 윤 대통령이 이 같은 개딸 정서를 간파하고 강경 기조를 여태껏 유지했던 것이라면, 가히 정치 9단이 아닐 수 없다. 2017년 대통령 탄핵-대선 패배 이후 자유한국당은 이듬해 지방선거에서도 2대14(광역단체장)로 참패했다. 우파 진영에선 그게 바닥이라고 여겼다. 아니었다. 지하는 더 깊었다. 당명만 바꾸었을 뿐 황교안 대표가 들어서면서 우파 성향은 더 뚜렷해졌고, 그 결과는 2020년 총선에서 역대급 패배였다. 하물며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로 석패했고, 168석이나 가진 거대 야당이 스스로 혁신한다?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다. ‘이재명 체제’는 어떤 우여곡절에도 내년 총선까지 갈 것이다. 지하실로 들어서기엔 아직 빛이 환하다. 최민우(choi.minwoo@joongang.co.kr)

2023-09-25

[시론] 통계 조작은 ‘㈜대한민국’ 상장 폐지 사유

1962년 제정된 통계법은 지금까지 17회나 개정됐다. 그중 최근 가장 많이 알려진 개정은 2016년 1월에 있었다. 여러 민주당 의원들이 2013년 여름 통계법 개정안을 앞다퉈 발의한 결과다. 그해 6월 통계청이 전년 11월 고소득층 가구 소득을 보정한 ‘새 지니계수’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대선을 한 달 앞두고 공표하지 못했다는 ‘지니계수 논란’이 있었다. 지니계수는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옛 민주당, 통계 중립 입법 남발 감사원 “문 정부 통계조작” 적발 ‘통계 주도성장’ 행위 엄벌해야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너도나도 통계의 중립성 확보를 위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현미 의원은 “작성된 통계를 공표하지 않는 행위 역시 통계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고, “통계청에서 작성한 통계가 공표되기 전에 다른 행정기관 등에 유출되는 것은 통계 결과 및 공표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공표 전에 통계를 유출하는 행위에 대하여 제재를 가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통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안민석 의원도 “공표 전에 통계를 열람하거나 제공받은 자를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통계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를 강화하여 통계의 중립성을 확립”하자며 법안을 발의했다. 정청래 의원은 “통계 조작에 대한 처벌도 너무 가벼워 통계 조작을 방지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처벌 강화를 꺼냈다. 박남춘 의원은 통계청장 임기를 4년으로 법제화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박근혜 정부도 통계 작성·공표 과정에서 영향력 행사 금지를 골자로 하는 통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들을 심의·통합해 2016년 1월 통계법이 개정됐다. 그 과정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은 자못 비장했음이 당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 회의록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훗날 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되는 윤호중 의원은 “통계청장에 대해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대통령 임기보다도 훨씬 더 길게 임기를 보장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고 일갈한다.(2014년 11월 17일) 김현미 의원은 “통계 자료를 미리 줘서 마사지한다고 그러지요. (중략) 그런데 이게 청와대나 기재부가 통계청에 업무 수행에 필요하니까 요청을 하면 24시간 이내에 줄 수 있는 거잖아요. 24시간이면 충분히 자료를 마사지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것으로 과연 통계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지적한다.(2015년 11월 20일) 그는 통계가 어떻게 마사지될 수 있는지 너무나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토록 통계의 중립성과 통계청장 임기 보장을 주장하던 민주당이 탄핵으로 집권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은 정말 가관이다. 최근 감사원 발표에 따르면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을 조작하도록 지시했다. 국토부는 한국부동산원 직원을 불러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장관은 김현미 민주당 의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후 소득분배가 오히려 악화했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청와대 경제수석은 통계청 직원들에게 아예 원자료를 들고 들어오라고 해서 통계를 다시 만들도록 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통계주도성장’이었다. 그 무렵 황수경 통계청장은 청와대의 불법적인 자료 제공 요구를 거부하다 경질됐다. 정권이 조직적으로 자행한 ‘통계 농단’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상장회사가 조직적인 분식회계로 주주와 시장을 속이면 상장폐지(상폐) 사유다. 국민과 세계를 속인 문재인 정권의 통계 농단은 ‘주식회사 대한민국’으로 치면 상폐 사유가 된다. 실제로 2000년 재정 적자 규모를 속인 그리스는 2010년 구제금융을 받고 유럽연합(EU)의 ‘법정관리’를 받는 신세가 된 일이 있다. 통계 조작이 반복되면 대한민국도 그리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을 조작하려고 “조직과 예산을 날려버리겠다”고 압박한 2019년 서울 아파트 시가총액은 약 1234조원이었다. 0.01%만 속여도 1234억 원이다. 버스 기사가 버스요금 800원만 횡령해도 해고 사유가 되는 세상이다. 말도 안 되는 통계주도성장이 다시는 자행되지 못하도록 통계 농단을 법이 정한 최고 수준으로 엄벌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송영훈 법무법인 시우 변호사

2023-09-25

[김창규의 시선] ‘깡통 상가’ 속출, 흔들리는 부동산

요즘 세종시는 ‘자영업자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면서 텅 빈 상가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올 2분기 소규모 상가(2층 이하, 연면적 330㎡ 이하) 공실률은 15.7%로 전국 1위이다. 중대형 상가는 20.1%로 울산(21.6%)에 이어 2위이다. 세종시 상가 건물 곳곳에는 ‘임대’ 안내문이 수두룩하다. 일부 상가에는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현수막까지 걸려있다. 신도시 등 자영업자 폐업 늘어 상가수익률 1년 전의 반 토막 주택시장에 미칠 후폭풍 우려 세종시 일부 지역에는 이른바 ‘깡통 상가’도 많다. 이들 지역은 공실률이 60%에 달한다. 당초 세종시를 계획할 때는 2020년에 인구가 4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올해 7월 현재 세종시 인구는 38만여 명에 불과하다. 인구를 과대 예측하는 바람에 상가를 과잉 공급한 탓이다. 결국 꾸준히 월세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상가에 투자한 개인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세종시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의 ‘신’도시나 ‘혁신’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 나주 빛가람혁신도시는 조성된 지 10년째가 됐지만 상가 공실률이 70%에 달한다. 한국전력 등 16개 공공기관이 2014년부터 단계적으로 이주한 이 도시는 당초 2020년이 되면 인구가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지구단위계획 변경 등으로 상가 공급을 크게 늘렸다. 조성된 상가만 6000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곳의 인구는 3만9000여 명에 불과하다. 6.5명당 상가 한 곳이 있는 셈이다. 혁신도시는 노무현 정부가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계기로 조성했다. 상당수 다른 혁신도시에서도 상가가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비어있다. 지난 10여년 새 조성된 신도시도 마찬가지다. 하남·위례·광교·김포·마곡 등 수도권에 위치한 신도시에서도 곳곳에 ‘임대’ 문구가 붙어있는 상가가 흔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에도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갈수록 움츠러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13.5%로 1년 전(13.1%)보다 0.4%포인트나 늘었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지난해 6.6%에서 올해는 6.9%로 뛰었다. 고금리, 영업 비용 상승 등으로 소상공인의 체감 경기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수익률도 뚝 떨어졌다. 올해 2분기 소규모 상가 투자수익률(3개월간 부동산 보유에 따른 투자성과)은 0.66%로 전년 동기(1.43%)의 반 토막 수준이다. 연간 수익률로 환산해도 2%대이다. 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4.5∼6.5%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절반을 밑도는 셈이다. 이 때문에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상가에 투자했다가 인생 파탄 났다’고 하소연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빈 상가가 넘쳐나는 데도 공급은 그칠 줄 모른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17년과 2018년 2만개 내외였던 상가 입주 물량이 2019년엔 4만개에 육박하더니 그 후엔 3만개 내외에 이른다. 이렇게 매년 상가가 쏟아지다 보니 ‘공실 도미노’는 강남 등 서울의 핵심 상권으로 번지고 있다. 상가 과잉 공급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건설 주체는 규제가 심하고 시장 파급력이 큰 주택보다 상가를 통해 이익을 남기려 한다. 그러다 보니 상업용지 경쟁이 치열하다. 건설업체는 상업용지를 높은 가격에 낙찰받은 뒤 상가를 분양할 때도 이윤을 충분히 남기려 한다. 여기에 비싼 가격에 상가를 산 투자자는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높은 임대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지역 상가의 분양가가 3.3㎡당 1억원을 넘어설 정도다. 하지만 자영업자는 높은 임대료에 사업을 포기하거나 임대를 한다 해도 1~2년을 버티지 못한다. 결국 상가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비어 있게 된다. ‘비싼 땅값→고분양가→높은 임대료→공실 증가’의 악순환이다. 요즘 자영업자는 빚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지난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60조7000억원으로 2019년 말보다 40% 급증했다. 문제는 자영업자 대출의 상당수가 주택 등 부동산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문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면 주택 시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상가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주택이다. 지금 상당수 소상공인이 투자 여력이 없어 상가에 눈조차 돌리지도 못한다. 상가 미분양이 속출하는 이유다. 안 그래도 고금리와 경기 위축으로 자금이 부족하던 건설업체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달 들어서만 5개 건설회사가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올해 들어 8월까지 폐업한 건설업체 수가 지난 3년간(2020~2022년) 폐업한 업체 수보다 많다. ‘퍼펙트 스톰’이 부동산 시장에 몰려오고 있다. 김창규(teenteen@joongang.co.kr)

2023-09-25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좌와 우를 넘어” “분열 대신 통합” 미완의 숙제

한국 현대사 빛낸 ‘실패의 순간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과거에 있는 모든 일이 다 역사는 아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일 중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뽑아서 모아놓은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을 역사 속에 서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에는 역사에 포함되었던 사건이 시간이 흘러 다른 시대에는 역사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시대의 상황에서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이 새롭게 역사 범위에 포함되는 것이다. 역사의 범위가 모든 과거를 다 포괄하지 못하다 보니 실패한 사건이나 감추고 싶은 사건은 역사 서술 속에서 사라지거나 점차 그 비중이 줄어든다. 성공의 역사가 오늘의 현실을 만드는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던 만큼 역사 속에서 더 부각된다. 하나의 민족이 국가를 형성하는 민족국가 시대에 들어와 그러한 경향은 더욱 가속되었다. 때로 실패했지만, 성공한 역사보다 더 소중했던 역사가 있다. 농지개혁 합의한 해방 후 좌우합작, 여운형 암살로 사라져 김구·김규식의 남북협상, 조봉암의 ‘제3정당’도 결국 무산 1997년 DJP 연합, 야합 비판에도 금융위기 신속하게 극복 2005년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극한 대립의 현재 되비춰 3·1운동과 이승만의 유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의병운동과 3·1운동이다. 두 운동의 목표는 독립이었다. 두 운동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3·1운동은 대한민국 수립의 정신적 기초가 되기 때문에 헌법 전문의 가장 첫 문장에 등장한다. 대한민국 국회 개원식 날 이승만 의장은 다음과 같이 개회사를 했다. “나는 이 대회를 대표하여 오늘에 대한민주국이 다시 탄생된 것과 따라서 이 국회가 우리나라에 유일한 민족대표 기관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합니다. 이 민국은 기미년 3월 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혀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야 민주주의에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불행히 세계 대세에 인연하여 우리 혁명이 그때 성공이 못되었으나 우리 애국남녀가 해내해외에서 그 정부를 지지하여 많은 생명을 바치고 혈전고투하여 이 정신만을 지켜온 것이니 (중략)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여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오, 이 국회는 전 민족을 대표한 국회이며, 이 국회에서 탄생되는 민국정부는 완전한 한국 전체를 대표한 중앙정부임을 이에 또한 공표하는 바입니다,” 이승만은 대통령 취임 후 국회가 ‘민국’ 연호 대신 ‘단군’ 연호를 쓰는 데 대해서도 많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부각하려고 노력하면서 막상 그가 정통성의 근거로 내세웠던 임시정부를 폄하하려 했으니, ‘민국’ 연호를 쓰려했던 역사 역시 실패했지만, 기억해야 할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46년 좌우합작운동의 추억 성공하지 못했지만,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역사도 있다. 사실 지금까지는 역사 속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주목받지 못했고, 또는 성공의 가능성이 낮은 정치적 노력으로 평가받았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만 하는 역사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정치적 목표를 놓고 볼 때 어느 한쪽에 대한 확실한 목소리보다 중간에서 분열을 막고 급진적이지 않고 합리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 정체성 논란에 빠질 수 있으며, 상대 진영을 이롭게 한다는 ‘2중대’로 규정될 수도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결코 성공하지 못한 역사였다. 1946년 시작된 좌우합작위원회는 미군정에 의해 시작되었다. 분열보다 통합을 원했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우익의 민주의원과 좌익의 민주주의민족전선은 대표를 파견했다. 좌우합작위원회는 농지개혁과 친일문제 해결을 포함한 7개의 원칙에 합의하였지만, 미군정 하 입법기구의 수립을 놓고 대립하다가 결국 여운형의 암살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반공주의자 김구의 예상된 실패 유엔의 결정에 의해 38선 이남에서 선거가 실시될 때 마지막까지라도 분단정부 수립을 막겠다는 의지로 북으로 갔던 김구는 당시 가장 강력한 반공주의자였다. 그는 1940년까지 독립운동 시기 좌파 독립운동가들과의 어떠한 합작도 거부하고 임시정부를 지켰다. 1945년 말부터 시작되었던 신탁통치 반대운동은 강대국 위임통치에 대한 반대의 의미도 있었지만,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반공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김구는 이렇게 강한 반공 의지를 갖고 있었음에도 분단 정부 수립이 결국 전쟁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노선을 꺾었다. 중도 우파의 김규식과 함께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을 만나기 위해 38선을 넘어간 것이었다. 이 협상은 실패했다. 북한은 약속과 달리 자기들만의 선거를 실시했고, 남북협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어쩌면 김구나 김규식 역시 예상했던 결과였을 수도 있다. 미군정은 김구와 김규식이 북으로 간다고 했을 때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지만, 김규식은 합작과 통합을 위한 노력이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고 했다. 그러한 노력은 1950년대 이후에도 계속되었지만, 남북협상도 그 자체로서는 실패했다. ‘제3의 길’ 찾은 조봉암의 최후 비록 통합을 위한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정책정당을 만들겠다며 제3정당을 만든 것은 조봉암이었다. 당의 이름은 진보당이었고, 얼핏 보면 진보, 또는 좌파들만의 당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 진보당의 강령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사이의 제3의 길을 주장한 것이었다. 진보당은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국민은 평화를 원하고 있었고, 어느 한쪽의 극단보다 중간에 서 있는 정치인과 정책정당을 원했다. 극심한 관권 선거 속에서도 그는 200만표 넘게 득표했다. 1958년 총선을 앞두고 진보당 사건이 터져 이듬해 당은 해체되었고, 조봉암은 처형되었다. 이후 유신체제를 거치면서 정치지형은 독재와 민주화 세력으로 양분되면서 좌우, 보수·진보의 화합을 추구하는 노력은 진행될 수 없었다. 민주화 이후 1990년 민주자유당이 탄생하면서 보수 진보의 정치지형이 형성되면서 다시 한번 중간에서 극단적인 정책보다는 합리적이고 화합적인 정책을 지향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왔다. 정부 수립 후 첫 대연정 ‘DJP’ 1997년의 DJP는 어쩌면 그 첫걸음이었을 것이다. DJP를 보는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눈은 사뭇 매서웠다. 양쪽의 입장에서 DJP는 화합이나 중간의 길이라기보다 정치적 ‘야합’이었다. 단지 정권을 잡기 위해 충청과 호남의 표를 합치고자 한 것이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당시의 이러한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한국 정부에서 보수와 진보 사이의 대연정이 이루어졌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서 보수, 진보 정책이 모두 어우러짐으로써 한편으로는 빅딜, 성장 정책을 통해 금융위기의 빠른 극복이 이루어졌고,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대체하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입법되었다. DJP의 또 다른 성과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 사이에 이루어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6·15 남북 공동선언이었다. 이 두 선언은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보수적이었던 닉슨 대통령이기에 마오쩌둥과 합의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DJP 대연정은 5년을 가지 못하고 결국 갈라섰다. 이후 한국의 정치는 겉으로는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겪는 것 같았지만, 실상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통합이나 화합은 보이지 않고, 유신시대에도 있었던 대통령과 야당 총수 사이의 영수회담도 모습을 감춘 지 오래되었다. 지역주의 해체 제안한 노무현 지금은 모두에게 잊혔지만, 2005년 7월 28일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 야당에 제안했던 ‘대연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그렇지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도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실상 노무현 대통령은 “폭탄은 저쪽을 향해 던졌는데 오히려 우리 편 등 뒤에서 터져버렸다”고 얘기할 정도로 대연정 제안의 후폭풍이 컸다.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 주장은 지역주의 해체를 위한 제안이기도 했다. 너무 일렀던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10년 앞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대연정이 49%의 목소리가 묻혀버리는 현재 한국의 정치체제에서 부적절한 제안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뿐만 아니라 한 정당 내에서의 대립까지도 극한으로 내닫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통합을 위한 노력은 그 어느 것도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극단적 분열의 극복이 절실한 지금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과거에 야합이라고 평가받았던 노력까지도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다. 대연정을 위한 내각제 개헌이라도 해야 할까.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2023-09-25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입시 공정경쟁 이뤄져야 한국경제 역동성 회복한다

개천마다 용 나는 대학입시 만들기 개천에서 용들이, 그것도 수많은 용이 나던 시대가 있었다. 1960년대 이후 30년간, 여러 지역과 계층에서 나온 수많은 용이 한국 경제를 떠받치며 성장률의 고공행진이 지속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나는 용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나라의 성장률도 힘을 잃고 추락해 왔다. 개천에서 용 났던 1960~80년대 과거 수많은 개천에서 용들이 튀어 오르는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은 우리의 대학입시였다. 어느 사회나 대학입시는 젊은 인재의 능력을 평가하는 공공재 역할을 한다. 만약 한 사회가 지역·계층 상관없이 뛰어난 인재를 가려낼 수 있는 입시제도를 갖추면 그들에게 보다 많은 국가적 자원이 배분되면서 경제성장이 촉진된다. 우리의 1960~80년대가 그랬다. 대학입시는 인재 판별 공공재 자원배분 효율화로 성장 촉진 30년간 부모 경제력 격차 확대 고비용 사교육, 대학입시 좌우 분배 형평·자본주의 효율 저해 대학입시가 이런 자원배분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두 가지가 요구된다. 첫째,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을 입시에서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인터넷에서 클릭 한 번이면 찾을 수 있는 쓸모 없는 지식까지 얼마나 많이 암기했는지로 평가하는 시대착오적인 입시를 이제는 지양하고, 이 시대 최고의 인적 자산인 창의력을 핵심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일부 지역·계층에서가 아니라 나라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축구 국가대표를 뽑을 때 한 동네가 아니라 나라 전체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들을 뽑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이 진짜 실력만으로 공정한 경쟁을 하는 입시제도가 필수적이다. 필자는 2014년에 쓴 논문에서 타고난 잠재력과 공부에 투자한 노력에 비례하여 학생이 얻는 진짜 실력을 ‘진짜 인적자본’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학생의 진짜 실력을 알아내고자 대학은 입시에서 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 출신 학교 등을 보고 평가한다. 그러나 대학이 평가하는 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겉보기 인적자본’일뿐 학생의 진짜 실력과는 상당한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고비용 사교육은 학생 실력 과대포장 현재의 지식암기형 입시 시스템에서는 특히 고비용의 사교육 등 다양한 치장법을 이용하면 진짜 실력보다 과대 포장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수능에 나올 수 있는 문제 1만 개 중 9000개나 습득한 학생이라도 자신이 공부하지 않은 문제 중에서만 수능에 나오면 겉보기 인적자본은 0점이 될 수도 있다. 반면에 1000개만 익힌 학생도 자기가 공부한 문제 중에서만 나오면 겉보기 실력은 100점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겉보기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험에 나올 수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 공부해야 하는데, 그 정보는 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입시학원이 가장 잘 안다. 그 결과 입시학원에서 고비용 사교육이란 치장법을 구입한 학생이 입시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 특히 부모 경제력이 높을수록 다른 학생들은 수강하기 어려운 고비용 학원 교육 등의 도움을 받아 진짜 실력 이상으로 겉보기 실력을 키워 합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서울대 합격률, 강남구가 강북구의 20배 특히 지난 30년간 성장률 추락과 함께 부모들의 경제력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학생들의 겉보기 인적자본 차이도 점점 벌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 진짜 실력만으로 겨루는 공정 경쟁 체제가 크게 약화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서울시 데이터를 보면 아파트값이 비싼 지역 학생들의 서울대 합격 확률이 타 지역보다 훨씬 높다. 물론 잘사는 지역 학생들이 타고난 잠재력과 진짜 인적자본 자체가 더 높아 합격 확률도 더 높아졌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점이다. 통계자료를 분석해 보면 2014년도 일반고 학생의 서울대 합격률이 강북구는 0.1%인데 비해 강남구는 그 20배인 2%나 되었다. 필자가 2015년 류근관·손석준 교수와 제한적인 데이터를 갖고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 요소로 결정된 진짜 인적자본’에 따른 서울대 합격확률이 강북구는 0.5%, 강남구는 0.84%로 추정되었다. 타고난 잠재력만으로 선발했다면 강남구 학생들이 1.7배 정도 더 많이 서울대에 합격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강남구 학생들이 20배나 더 들어갔다. 입시 공정경쟁 위한 교육개혁 추진해야 이러한 입시 공정 경쟁의 약화는 분배의 형평성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의 효율성까지 크게 저해해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시대착오적인 모방형 교육과 함께 한국 교육의 또 다른 치명적 아킬레스건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김세직의 이코노믹스’ 2022년 9월 20일 자 참조). 따라서 우리 자본주의 체제의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창조형 교육제도와 함께 입시 공정 경쟁을 양대 축으로 하는 교육개혁을 국가적 차원에서 초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개혁을 위해 우선 입시와 관련된 객관적인 빅데이터 구축이 긴요하다. 미국에서는 대학별 입시 데이터와 국세청 소득 데이터가 구축되어 하버드대 라즈 체티 교수의 최근 연구 등 다양한 실증적 입시 연구들이 수행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기관들의 데이터 비공개로 인해 객관적인 데이터와 실증적 증거가 없다시피 하다. 이로 인해 자신의 자녀 한두 명만의 교육을 통해 얻은 개별적 경험을 일반화한 국민 간 주관적 의견 대립만 있게 되어 개혁 추진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국민적 합의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제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각 대학 입시 자료와 소득 데이터 등을 연결한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특정 정당이나 이념과 무관한 비정치적 학자들이 과학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실증 및 이론 연구에 따른 객관적 증거에 기반을 두어 모든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최적의 공정 경쟁 대입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혁신된 대입 제도를 통해 여기저기 개천에서 수많은 진짜 용, 진짜 인재들이 나와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분배의 형평성을 동시에 회복하고 다시 한번 성장의 황금시대를 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정 경쟁과 창의성 촉진하는 입시 제도 성장의 황금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검토해 볼 유효한 입시 제도들이 있다. 내신 상위 10% 학생들을 무조건 뽑아주는 미국 텍사스 주의 ‘텍사스 톱텐 제도’ 혹은 필자가 제안한 ‘비례경쟁 선발제’다. 비례경쟁 선발제는 대학에 지원한 학생들의 평가를 두 단계에 걸쳐 한다. 1단계에서는 같은 학교(혹은 지역) 학생들끼리만 비교 평가하여 그 학교 학생 수에 비례하여 뽑는다. 2단계에서는 1차에 뽑힌 모든 학생을 학교·지역 관계없이 비교 평가하여 대학 입학 정원만큼 최종 선발한다. 이런 비례경쟁 선발제는 전국에서 지원한 모든 학생을 학교·지역 상관없이 한꺼번에 선발하는 ‘전국단위 평가 선발제’가 가진 정보 불평등 문제를 없애준다. 전국단위 평가의 경우에는 평가기관의 기출문제 분석 등을 통해 출제 가능성이 높은 문제들을 파악한 입시학원에서 정보를 확보한 학생들과 그렇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 정보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비해 ‘비례경쟁 선발제’의 경우 1단계 평가에서 이용되는 학교 시험에 대한 정보는 같은 학교 학생들에겐 똑같이 제공되기 때문에 학생들 간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가 사라지고 치장법도 힘을 잃는다. 학교·지역 간 학생들의 능력 분포가 차이 나는 경우에도 비례경쟁 선발제는 2단계에서 우수 학생이 많이 분포된 학교의 학생들을 더 많이 뽑기 때문에 부유한 지역 학생들을 역차별하게 되지 않는 효율적인 선발시스템이다. 비례경쟁 선발제의 1단계는 학교에서 꼭 배워야 할 핵심 지식 중심으로 평가하되, 2단계에서는 시험·면접 등을 통해 창의력 중심으로 평가하는 방안을 연구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과라면 ‘시간을 저축하는 창의적인 방법은?’과 같이 사교육이 답해줄 수 없는 창의력 평가 문제를 낸다. 혹은 면접에서 ‘남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평가 교수들이 꼬리 물기식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이런 평가방식은 피동적 사교육에만 매몰되지 않고 학교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며 창의력을 쌓은 전국 각지의 진짜 용, 진짜 인재들을 효과적으로 가려낼 수 있다. 더해서 우리 자녀들이 온갖 지엽말단적 지식까지 외우는 대신 새 시대의 생존수단인 창의력을 키워 장차 나라를 이끌 진짜 용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강력히 유도한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23-09-25

해운대선 2년 만에 43억 시세차익…규제 틈새 파고든 '생숙' [안장원의 부동산 노트]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가을로 가는 길목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뙤약볕 아래 빼곡했던 인파가 사라진 백사장은 초록으로 무성했던 잎이 드문드문해진 가을 산을 연상시킨다. 바다와 백사장 못지않게 방문객 시선을 사로잡는 게 있는데 바로 옆 초고층 엘시티 복합단지다. 국내 최고층(84층) 아파트 2개 동과 이보다 더 높은 랜드마크타워 동(101층)으로 이뤄져 있다. 아파트보다 비싼 생활숙박시설 같은 단지지만 바다 조망권 값이 다르다. 랜드마크타워 동이 아파트보다 비싸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182㎡(이하 전용면적) 85층이 지난해 최고 56억원까지 거래됐다. 현재까지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186㎡) 최고 실거래가가 48억원이다. 전세보증금의 경우 아파트가 올해 20억원(실거래가)까지 나갔는데 랜드마크타워 동은 호가 기준으로 24억~28억원이다. 아파트형 호텔을 주거용 변경 전국 9.6만실 중 절반이 '불법' 주택시장 규제 틈새 반사이익 세금 중과 부담 없이 시세차익 랜드마크타워 동에 살지 않으면서 잠깐 바다 조망을 즐기는 방법이 있다. 매입이나 임대하지 않고 숙박하면 된다. 호텔 예매 사이트에 보면 다음 달 초 182㎡ 평일 1박 요금이 84만5000원이다. 어떻게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주거와 숙박이 공존할까. 생활숙박시설(엘시티더레지던스)이어서 가능하다. 생활숙박시설이란 일반적인 호텔과 달리 오랫동안 생활할 수 있도록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조와 기능에서 사실상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다 보니 주거용으로 쓰이게 됐다. ☞생활숙박시설 욕실·샤워실만 갖춘 일반숙박시설과 달리 장기 투숙자를 대상으로 취사·환기시설까지 갖춘 '아파트형 호텔'이다. 건물 일부를 숙박시설로 쓰려면 객실이 30개 이상이어야 한다. 개인은 숙박업 신고를 하고 위탁운영사에 운영을 맡기면 된다. 하지만 주거용은 불법이다. 숙박시설은 숙박업 신고를 하고 ‘손님이 잠을 자고 머물 수 있도록 시설·설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업’을 해야 한다. 주거시설로 쓰면 불법 용도변경에 해당한다. 불법 용도변경이 성행하는 것은 생활숙박시설이 규제의 사각지대여서다. 절반가량이 숙박업 신고 문재인 정부가 제도 도입 9년만인 2021년 뒤늦게 주거용 생활숙박시설을 규제하기로 했다. 건축기준 등 관련 규정을 보완하며 대신 단속을 2년간 유예했다. 다음 달 14일까지다. 이때까지 숙박업 신고를 하거나 계속 주거용으로 쓰려면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라며 용도변경 요건을 일부 완화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8월 기준으로 전국 생활숙박시설 9만6000실 중 절반가량인 4만7000실이 숙박업 신고를 했다. 나머지 4만9000실이 불법 용도변경한 셈이다. 각 자치단체를 통해 확인한 결과 숙박업 신고 현황이 엘시티더레지던스 561실 중 219실, 부산 초량동 협성마리나G7 1028실 중 500실, 인천 송도 랜드마크푸르지오시티 1990실 중 772실 등이다. 6월 준공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오이 음지 젤 408실 중 140실이 신고했다. 숙박업 신고가 꽤 이뤄졌지만, 오피스텔 용도변경은 미미하다. 업계는 전국적으로 1000실 정도로 본다. 자치단체에 따르면 해운대 에이치스위트해운대(560실)에서 숙박업 신고 없이 4실이 용도 변경했다. 송도 오네스트(468실)도 2실이 오피스텔 용도변경만 했다. 대부분 오피스텔로 갈아탄 곳도 눈에 띈다. 제주시 연동 메종프라임연동 164실 중 131실이 지금은 오피스텔이다. 엘시티더레지던스는 오피스텔을 설치할 수 없는 인허가 조건이어서 용도변경이 불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오피스텔 용도변경 건축기준을 완화했지만, 해당 지역 도시계획상 용도변경을 할 수 없거나 건물 구조상 완화된 건축기준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예기간 만료가 다가오며 생활숙박시설 소유자들의 반발이 커지자 정부가 25일 유예기간을 내년 말까지 늦추기로 했다. 다만 오피스텔 용도변경 요건 완화는 다음달 14일로 종료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완화가 끝나더라도 건축기준에 맞으면 오피스텔로 용도변경은 계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가표준액 10% 이행강제금 생활숙박시설 소유자들은 어려워진 용도변경이 물 건너간 셈이어서 숙박업 신고를 고민해야 한다. 불법 용도변경에 따른 이행강제금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불법 용도변경으로 적발되면 용도를 원상복구까지 매년 한 차례씩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시가표준액의 10%다. 엘시티더레지던스의 시가표준액을 산출한 결과 실크기에 따라 2900만~5600만원으로 예상된다. 182㎡가 4600만원 정도다. 이행강제금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법 용도변경으로 적발되면 건축물대장에 ‘위반건축물’ 딱지가 붙어 대출을 회수당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이후 담보 건축물의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담보 교체나 여신 회수를 진행한다"고 말했다. 생활숙박시설은 주택이 아니어서 주택만큼 강한 담보대출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대개 거래가격의 70~80%까지 대출을 받았다. 국토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2019년 말 입주 후 지금까지 거래된 엘시티더레지던스 실거래가가 평균이 33억원이다. 평균 대출금액이 20억 원대다. 숙박업 신고를 하려면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는데, 반환할 전세보증금이 적지 않다. 엘시티더레지던스의 경우 10억~20억원 선이다. 생활숙박시설이 골칫거리로 떠올랐지만, 규제 논란의 와중에 이미 빠져나간 단타족에겐 '로또'였다. 문 정부 부동산 과열기 때 규제가 극심하던 주택시장에서 나온 투자 수요가 ‘틈새 상품’의 하나로 꼽힌 생활숙박시설로 몰리며 몸값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30억원이던 엘시티더레지던스 205㎡가 준공 2년 2021년 말에 73억원에 거래됐다. 30대가 경기도 남양주시 생활숙박시설 46층 펜트하우스를 10억원에 분양받아 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고 2년간 임대해 보유한 뒤 7월 19억원에 팔았다. 생활숙박시설이 주택이 아니어서 양도세·종부세 다주택자 중과 적용을 받지 않아 매도자는 차익 대부분을 손에 쥐었다. 안장원(ahnjw@joongang.co.kr)

2023-09-25

[글로벌 아이] 한 재일동포 작가가 말하는 ‘내가 책을 쓴 이유’

지난 19일 도쿄(東京)도 마치다(町田)시, 커피숍에 자리를 잡았다. 시원한 주스 한 잔을 쭉 들이키더니 일본어로 빠르게 말을 하기 시작한다. 재일동포 작가 박경남씨다. 그를 만나게 된 건 100년 전 일어났던 간토(關東)대지진 때문이었다. 1992년 그가 내놓은 『두둥실 달이 떠오르면』엔 당시 조선인 300여 명을 구한 쓰루미(鶴見) 경찰서장 오카와 쓰네키치(大川常吉·1877~1940)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괴담에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무참히 살해당한 비극. 그 속에 존재했던 오카와 서장의 이야기를 그는 어떤 연유로 책에 담았을까. “저는 돗토리(鳥取)현에서 태어났어요. 학창 시절, 할아버지가 대지진 당시 도쿄에 갔다가 살해당할 뻔한 이야기를 들은 뒤론 마음속에 공포가 움텄어요. ‘만약 이런 대재난이 또 일어나면 내 친구들, 이웃들은 나를 구해줄까’ 그런 생각이요. 일본 속 자이니치의 이야기, 조선반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40대가 되고서야 글 쓰는 일을 시작했어요. 우연히 오카와 서장 이야기를 들었고, 희망을 품게 됐어요.” 어렵사리 만난 오카와 서장의 아들은 당시 자료들을 그에게 보여줬고, 서장의 이야기는 그렇게 책에 담겼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책을 본 한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오카와 서장 이야기를 들려달라며 연락을 해왔다. 서장의 아들은 고령이라 동행하지 못했고 대신 손자 오카와 유타카(大川 豊)가 그와 1995년의 어느 날 한국을 찾았다. “강연 뒤 손자분 인사 차례가 됐어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조부가 그렇게 칭찬받을만한 일을 한 걸까 생각했습니다. 조부가 한 일은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평범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왜 조부의 이야기가 미담이 되고, 책에 실리게 된 걸까요. 당시 일본인이 조선인에게 너무 심한 짓을 했기 때문에 당연한 일조차도 칭찬받게 된 겁니다.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 한마디밖에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이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오카와 서장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오히려 조선인 학살 사실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고요.” 그는 이 이야기를 또다시 책에 담아 알렸다. 도쿄에서 간토대지진 100주년 행사가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지난 100년이 그러했듯, 불과 한 달 만에 무참히 스러져간 조선인들의 이야기가 잊히는 건 아닌가 조바심마저 난다. 한·일 관계가 훈풍을 탔다는데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우리 정부도 뒷짐을 지고 있다. 박 작가의 말이다. “적어도 무엇이 중요한지, 사실을 전하는 것부터가 중요하지 않나요?” 김현예(hykim@joongang.co.kr)

2023-09-25

[삶의 향기] 나는 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그 옛날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오늘까지도 유효하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되거나 자기가 누군지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드문 일인가. 게다가 날이 갈수록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가까운 지인들 사이에서도 밥 같이 잘 먹다가 기분이 상하기 일쑤다. 같은 일에 대해 너무 다른 견해를 갖고 서로 옳다고 우겨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눈치 보며 말없이 밥만 먹는 자리는 피곤하고 재미없다. 내 가까운 사람의 진짜 속내도 모를 판에 매스컴에서 매일 보는 정치인을 너무도 잘 아는 듯 핏대 올리며 욕하든지 역성드는 사람들을 보면, 참 순진하고도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도 때론 외계인처럼 보여 모르는 일에 핏대 내는 사람들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것 아닌가 우리가 누구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오래된 인연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낯선 외계인으로 느껴진 경험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가 길에서 처음 본 사람보다 더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런데도 우리는 매 순간 누군가에 관해 그를 잘 아는 듯 생각하고 말한다. “그 사람은 내가 잘 알아”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가 그렇지 않다는 건 내가 보장해” 등등.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점점 이런 확신이 사라져가는 게 정상이다. 그게 누구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욕을 하거나 무작정 편을 들지는 말자고 생각한다. 비록 그 상대가 내 혈육이거나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 비현실적인 과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무조건 자신에게만 관대한,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자기애성 성격장애, 심하면 자기애성 인격 장애라 부른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그런지 인식 못 하는 채 그 병에 걸려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성향을 지닌다. 습관적으로 모든 게 거짓말이기 일쑤이고, 수치심과 죄의식,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잘못을 뒤집어씌우기 일쑤다. 결국 자신마저 감쪽같이 속이는 병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성향의 사람들은 늘 우리 가까이 편재해 있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한동안 그 옆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몹시 개인적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린다. 그때는 몰랐으나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자기애성 인격 장애 환자에게 내 허약한 영혼을 기대 본 사람은 안다. 한때 혹은 오래도록 우리가 기댔던 그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가 정작 자기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미성숙한 존재라는 사실을 완전히 파악하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오래전에 이렇게 예언했다. “대다수의 편에 서는 게 꼭 옳은 건 아니다. 우리는 광기 있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는 걸 삶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무릇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다. 생각 없이 무조건 믿고 따르는 건 사이비종교의 속성을 떠올리게 한다. 칼 융에 의하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판단하는 건 사고하는 일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저 사람보다 좋다고 생각하고, 이 자식이 저 자식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편애하고 더 잘해주고, 그렇게 생각에 속고 휘둘리며 살아왔다는 걸 너무 뒤늦게 알게 되는 우리는 늘 어리석다. 다음 생이 있다면 지혜롭게 살리라.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지닌 지혜는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게 다일지 모른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수명은 인간이 그렇듯 무한하지 않다고 말한다. 매 순간 죽어가는 지구인, 우리는 누군가 말하듯 “악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악한 사람들이다. 이 사실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를 너그럽게 대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브리지드 딜레이니 『불안을 이기는 철학』) 하지만 인간은 계속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며 살다가 죽는 게 일반적이다. 만일 그렇지 않은 개인이, 그렇지 않은 세상이 존재한다면 인류의 전쟁은 오래전에 종식되었을 것이다. 언젠가 우리가 끝없이 되풀이해온 분노와 복수를 드디어 끝낸, 아직 태어나지 않은 지혜로운 세대를 감히 우리가 꿈꿀 수 있을까. 뿌연 거리감이 걷히고 세상 풍경이 또렷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하는 또 가을이다. 문득 엉뚱한 문장 하나가 떠오른다. “내 사랑은 얼마인가요?” 내게 그것은 “내 그림은 얼마인가요?” 같은 질문으로 들린다.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는, 물질이 마음을 이긴지 오랜 세상, 오늘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살아있다는 건 참 쓸쓸하고도 아름다워라. 황주리 화가

2023-09-25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위대한 예술가를 추모하며

피아노 3중주는 피아노·바이올린·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 양식이다. 그런데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왼쪽 사진)는 이 세 악기가 동시에 울리는 소리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생 피아노 3중주곡을 단 하나만 작곡했다. 그가 평소 꺼리는 양식에 손을 대게 된 것은 가까운 친구인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오른쪽)의 죽음 때문이었다. 루빈스타인이 파리에서 연주 여행 도중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차이콥스키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는 루빈스타인의 후임으로 모스크바 음악원장으로 부임해 달라는 부탁을 뿌리치고 친구의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 여행길에 올랐다. 그리고 이 여행길에서 루빈스타인을 추모하는 피아노 3중주 ‘위대한 예술가를 추억하며’를 썼다. 이 작품의 피아노 파트는 루빈스타인의 위대한 음악성에 대한 일종의 헌정이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예술가를 추억하며’라는 제목이 없이도 이 작품은 무언가를 회상하고 추억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분산화음으로 조용히 시작되는 피아노에 이어지는 표정 풍부한 첼로와 바이올린 선율이 깊은 호소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가슴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비애와 애수, 그리고 아련한 향수가 비로소 구체적인 청각적 실체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 그래서 마치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던 옛 추억의 이야기가 조용히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작품은 일생의 친구를 잃은 차이콥스키의 애수와 고독을 음악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그가 사랑하던 친구 루빈스타인을 위해서 평소 거부감을 가졌던 피아노 3중주라는 형식을 받아들인 것은 그의 나이 마흔두 살 때의 일이었다. 그가 이렇게 일생 동안 이 형식을 아꼈던 것은 어쩌면 루빈스타인을 위한 최후의 걸작을 만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단 하나의 유일한 작품으로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축복해 주었던 것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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