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내 나이 구순, 새해의 결의
며칠 전 일이다. 마켓에서 식료품을 사서 차에 실었다. 후진용 스크린이 없는 차여서 앞, 뒤, 옆을 확인하며 후진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내 자리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한인 운전사가, 이 영감이 왜 이렇게 차를 빼지 못하고 있는가,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후진 스크린이 그만큼 중요하다.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스크린을 달아 줄 수 있느냐 문의했다. “그 차는 너무 늙어서 스크린을 달 수 없다”고 한다. 아내가 운전하던 2011년형, 13년이 된 주행 9만 마일, 고물차지만 새 차나 다름없이 말을 잘 들었다. 작년에 아내는 운전면허를 반납했다. 그 차를 팔거나 버리기도 아까워서 골동품처럼 모시고 있다. 매주 한 번 마켓에 가서 바람을 쐬고 온다. 그러나 후진 스크린이 없는 차를 운전하는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안전 관리 분야에서 일한 나는 알고 있다. 후진 스크린이 없던 시대에 사고의 약 80퍼센트는 후진 사고였다. 스크린이 있어도 후진할 때 조심해야 한다. 천천히 후진하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코스트코 같은 복잡한 주차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빨리빨리 성질이 급한 사람을 제외하고 느리게 후진한다고 나무라는 사람이나 티켓을 발부하는 경찰이 없을 것이다. 우리 시니어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운전할 수 있는가이다. 내가 아는 시니어 가운데 운전대를 놓는 사람이 늘고 있다. 운전이 삶의 질을 유지하는데 큰 몫을 한다. 운전을 못하는 나의 삶을 상상해 본다. 병원, 약국, 시장, 교회에 가는 차편을 남에게 의지해야한다. 운전을 못하면 날개 부러진 새가 된다. 나이는 숫자뿐이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 체력과 인지능력 저하로 운전하는데 영향을 받는다. 만일 내가 운전하다가 교통사고에 개입되는 경우, 경찰은 내가 90세를 넘긴 것을 알게 되면 운전면허를 빼앗길 수도 있다. 사고를 예방하려면 운전 실력을 유지해야 한다. 인지능력과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올해부터 하루에 한 시간의 두뇌 운동으로 인지능력을 키우고 한 시간의 체력 운동으로 몸을 유연하게 유지할 것을 결심했다. 구순을 넘긴 나는 중앙일보와 LA타임스를 구독하고 독서와 글을 쓰고 있다. 신문 구독료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인지 능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투자다. 가장 하기 힘든 것은 운동이다. LA 피트니스는 매달 회비를 빼가지만 게을러서 나가지 않고 있다. 운동은 지루하다. 나는 게으른 사람의 운동(lazy person’s exercise)를 시작했다. 군대 행진곡 녹음을 틀어놓고, 발목에 각각 5파운드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양손에 5파운드 아령을 들고, 저녁 ABC 뉴스를 들으며 45분간 에어로빅스 율동을 한다. 아내가 나를 보고 깔깔대며 웃었다. 올해부터 이 광대춤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추겠다. 음악과 뉴스는 씁쓸한 운동의 당의정(糖衣錠·쓴 알약의 겉을 달콤한 것으로 감싼 것)이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나이 새해 후진용 스크린 후진 스크린 한인 운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