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가을에 핀 철쭉
시월은 내리고 때아닌 철쭉은 양지의 기를 쪼고 있습니다 절대 만날 수 없는 계절과 계절의 소리를 모아 낸 화판의 자갈색 반점과 보이지 않은 곳을 바라보는 꽃술의 붉은 의지는 철이 없어 아무 때나 핀 꽃이 아닙니다 계절의 욕심도 이 가을의 무엇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무서리를 포개고 내려앉은 저 몸통에 입을수록 추워지는 추억의 옷을 입히고 겁 없이 버텨온 치열한 혼과 아침의 무게를 털어내는 한 울림의 빛깔 이미 가슴까지 꽉 찬 인내의 기운은 거칠 것이 없어 찬 눈물도 얼지 않고 피워낸 황홀입니다 뿌리 깊은 사랑의 번뇌지요 외롭다가 슬프다가 박힌 한 길에서 지워진 그대의 그늘만큼이나 사무치게 서러운 꽃잎 하나 붉게 타는 산을 넘고 있습니다 발아래 뿌리를 두고 젖고 있습니다 손정아 / 시인·롱아일랜드글마당 가을 철쭉 발아래 뿌리 자갈색 반점 꽃잎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