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맛과 멋] 너무 움직이지 마라
지병 때문에 일 년에 서너번씩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 아닌 시술을 하는 나는 할 때마다 체력이 떨어진다. 워낙 오래 투병생활을 하는지라 시술받고 나서도 혼자 해 먹는 게 귀찮을 뿐만 아니라 첫째는 힘에 부쳐서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연초에 막상 한번 또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세상에 좋은 게 너무 많은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하다. 그래서 좀 더 살기로 작정하고 식생활 개선부터 시작했다. 아침 공복에 레몬과 올리브 오일 한 스푼씩 마시는 이탈리안 보톡스가 건강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그것을 실천한다. 아침 식사는 요거트다. 혈압과 콜레스테롤에 좋다는 청국장 가루를 크게 두 스푼 넣고, 잣과 호두, 아몬드, 해아라기 씨, 바나나와 사과 반 개씩, 키위 하나, 블루베리 한 스푼을 넣으면 한 사발 가득하다. 그 거대한 요거트 볼을 조금씩 먹으면서 커피를 마신다. 요거트가 맛이 없어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된다. 비록 냄새는 없다지만, 청국장으로 도배한 요거트가 맛이 있으면 이상한 거지. 그래도 상큼한 사과가 씹히는 맛에 커피를 반주 삼아 의무로 먹는다. 그렇게 먹어서인지 평생 동반자였던 만성피로와 변비가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몸의 컨디션이 많이 정상적으로 환원되고 있다는 말이 더 올바른 표현일 것 같다. 문제는 기력 쇠퇴. 기력이 없다는 게 부엌에서 음식 한 가지만 만들어도 허리가 아프고 주저앉고 싶다. 김치만 담가도, 나물 하나 볶아도, 된장국 하나 끓여도 몇 번씩 부엌과 침대를 오락가락해야 한다. 외출은 더더욱 문제다. 하루에 한 가지만 해야지 두 가지만 해도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한다. 마음은 아직도 창공을 훨훨 나르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고역이 이만저만 아니다. 얼마 전, 친구가 ‘너무 움직이지 마라’라는 책이 작년에 자기가 읽은 책 중에 최고라며 그 책 얘기를 해줬다. 이 책은 일본의 젊은 철학자 지바 마사야가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철학을 자기 식대로 재해석한 책이라고 한다. 나는 너무 움직이지 말라는 제목이 맘에 들어 친구의 얘기를 흥미있게 들었다. 사실 우리는 ‘더 성공하기 위해 트렌디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더 ‘건강히’ 잘 살기 위해 요가와 명상과 운동을 하고, 더 좋은 인맥, 더 좋은 모임, 더 좋은 맛, 더 좋은 곳, 더 좋은 정보, 더 좋은 변화, 더 좋은 그 무엇을 탐하는 욕망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나만 ‘뒤처지는 삶’인가 싶어 불안해진다. 이것은 ‘근면한 일벌레가 언제나 옳다’는 그릇된 기독교의 근면 주의에 깔려 짓눌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강요에 갇혀 있지 말고 ‘쓸모없어 보이면서도, 무용한 유희, 무용한 산책, 무용한 대화, 무용한 놀이, 무용한 유유자적이 우리 삶에 왜 존재해야 하는가’하는 존재 이유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친구는 굉장히 철학적으로 논리적으로 많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쉽게 말하면 성공하기 위해 너무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때로는 너무 움직이지 말고 관조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학자들은 쉬운 말도 어렵게 한다. 처음에 병 자랑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힘든지 장황하게 얘기했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이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나를 그 책에 이입해서 마치 내가 그렇게 너무 움직이지 않고 살고 있음에 슬그머니 어깨가 올라갔다면 망상일까, 착각일까. 이영주 / 수필가뉴욕의 맛과 멋 천일 철학자 지바 천일 동안 청국장 가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