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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블랙핑크와 전체주의

블랙핑크가 워싱턴에 오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에 맞춰 걸그룹 블랙핑크의 워싱턴 공연이 있을 거란 소문이 돌았지만, 얼마 후 바로 ‘없던 일’이 됐다. 세간에 알려진 대로 안보실장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누락해 그렇게 됐는지는 본인들만 알 이야기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워싱턴 인사들은 백악관부터 이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미 짜인 투어 일정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특히 비용 부담이 문제였다. 한국 대기업을 포함해 민간 후원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당장 법적 논란이 불가피했다. 사실상 백악관에 대한 뇌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 장소로 거론된 케네디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수만 명이 모일 블랙핑크 팬을 수용할 공간도 없었지만, 국가적 대형 행사를 아무 절차없이 선정해 치렀다가 특혜 논란에 휩싸일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연방정부의 이해 충돌에 민감했다. 당장 이게 법적 문제까지 되진 않더라도, 다음 선거 때 공화당 측으로부터 공격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얼마 전 한국에선 세계 잼버리 대회의 거듭된 파행에 대기업과 민간 대학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수십만 명분 음료를 지원하고 현장 환경미화엔 신입사원들까지 동원됐다. 모두 ‘국가 이미지 실추’라는 풍전등화 위기 앞에 자발적으로 나선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이들 연수원·기숙사에 잼버리 참여자를 수용하라고 통보를 했다. 식사나 시설 이용에 대한 아무 지침이 없었고 당국의 비용지원도 없다고 했다.   모두가 합심해 훈훈한 미담으로 끝나는 모양새지만, 정부가 민간의 역량을 제 주머니서 꺼내 쓰듯 하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공동체·국가를 개인보다 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게 전체주의다.   정부가 보낸 공문 앞에 기업·대학들은 ‘안 하면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한 번쯤 걱정했을 것이다. 이번에 참여한 곳들은 뭔가 보험에 들어 놓은 기분일 수도 있다. 최소한 백악관이 블랙핑크 초청을 접으며 했던 ‘이해충돌’에 대한 고민이 한국 정부에선 전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고 말했다. ‘공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드리워져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필규 / 한국 중앙일보 워싱턴 특파원글로벌 아이 블랙핑크 전체주의 걸그룹 블랙핑크 워싱턴 공연 한국 대기업

2023-08-25

[문장으로 읽는 책]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사랑의 계명은 우리에게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의 나머지 60억 명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이 계명이 우리에게 권하는 것은 누구도 증오하지 말라는 것이다. … 사랑은 몇몇 사람을 향해서만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하지만, 증오는 수백만 명의 사람이나 한 국가, 한 인종, 다른 피부색이나 다른 말을 쓰는 인간 집단들을 향해 나와 내 이웃의 가슴을 분노의 불꽃으로 뜨겁게 한다.   움베르토 에코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독재 체제와 포퓰리즘은 대중에게 증오를 요구한다. 심지어 사랑을 표방하는 종교도 근본주의에 빠지면 증오를 부추길 때가 많다.”   작가·비평가 에코의 촌철살인 에세이집이다. 2016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이탈리아 시사 잡지 ‘레스프레소’에 연재하던 칼럼을 모았다. 인터넷과 SNS, 포퓰리즘과 전체주의, 증오와 차별 등 ‘미친 세상’에 대한 세태 비평이 시차 없이 읽힌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무가 뭔지 몰라 일일이 지시 내려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필사적으로 찾는 나라는 불행하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바로 그것이 『나의 투쟁』에 담긴 히틀러의 이념이었다.” “역설적으로, 모든 가짜 음모 뒤에는 어쩌면 우리에게 그것을 진짜 음모로 믿게 만듦으로써 이익을 보는 사람의 음모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돌을 던진 뒤 재빨리 손을 숨기고는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숱하다. 그래 놓고는 또다시 지금까지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 용서를 구하는 데는 전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방법 전체주의 증오 가짜 음모 비평가 에코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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