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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잔인한 10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있는 10월은 과학계도 들썩이는 계절이다. 극소수 수상자에겐 영광이, 다른 연구자에게는 분발의 계기가 된다.   아시아 국가 중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배출한 나라는 일본이다. 무려 25명이나 된다. 이어 중국이 3명으로 뒤를 잇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아직 과학 분야에서 한 명도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10월은 한국 과학계엔 잔인한 달인 셈이다. 그동안 한국의  문제점은 수없이 지적됐다. 그러나 매년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9월과 10월에 반짝하다 곧장 사라진다.   최근 알래스카에서 94세인 한 일본인 과학자의 강연이 있었다.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야외 관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상식을 벗어난 일에 전념하라는 진심 어린 충고를 남겼다. 이 과학자는 20대에 알래스카로 와 평생 오로라 연두에 몰두했다. 소위, 한 우물만 판 것이다. 그 결과는 최고의 업적이라는 성적표를 남겼고, 미국과 유럽에서 오로라 연구 관련 최고상을 받았다.   그는 내가 알래스카대학에 왔을 때 초대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젊은 연구자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다. 관련 분야의 과학자들을 소개해 줬으며, 어떤 연구든 참신성과 창의력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때 그의 나이가 이미 70세였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021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마나베 슈크로 박사(93·프린스턴 대학 수석연구원)와의 만남도 큰 축복이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일본 과학기술청 프런티어 연구 시스템 지구 온난화 연구 책임자로 일한 마나베 박사는 호기심이 넘치는 아이처럼 연구 내용을 꼼꼼히 듣고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이들 일본 과학자를 만난 것은 큰 축복 중 하나였다. 두 석학에게서 배운 것은 학문을 대하는 태도였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충고는 두 석학의 공통된 조언이었다. 실패 속에서 새로운 개념이나 정설을 세울 수 있다는 격려가 아직도 귓전에 남아 있다.     또 하나는 비판과 비평을 곱씹으라는 것이다.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고,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처럼 남의 비판을 새겨듣고, 앞으로 정진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한국과 공동연구를 한 지도 10년이 넘어간다. 연구비를 받는‘을’의 입장과 연구비를 주는 ‘갑’의 입장은 천지 차이다. 먼저, 한국 공무원들은 3년간의 보직 재임 기간에 성과를 내야만 승진에 유리하다. 그러다 보니 승진에 목을 매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연구자에게 매년 뚜렷한 연구 실적을 요구한다. 그런데 이게 과학자 입장에서는 어불성설이다. 연구 결과는 예측하는 대로 나오는 법이 절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학 선진국과의 차이다.   기초과학 분야는 그 성과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노벨상 수상자는 20대에서 40대 초반의 연구 성과가 30~40년 후에 개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한 기초 과학 분야는 없다. 특히, 지구온난화와 관련된 분야에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2021년이 최초였으니 말이다.   국가의 지원이 생산력이 높은 분야에 집중되는 것은 미래 먹거리 마련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그렇지만, 생산력이 높은 분야의 근본도 기초학문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숲을 보려면 숲속이 아니라 숲을 벗어나야 제대로의 숲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초과학 분야에 임하는 과학자의 마음 자세다. 우선, 대학에서 이들을 위한 최상의 교육이 필요하다. 1000명의 인재 중에서 한 명이라도 특출한 인재를 만들면 그 인재로 인한 파급효과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함없는 국가적 투자를 부탁하고자 한다. 정권에 따라 변하는 교육은 미래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왜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가를 명심해야 한다.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과학자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연구에 전심을 다 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기초 과학자들에게는 매년 10월이 잔인한 달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이들의 연구를 지켜주지 못한 환경과 시스템 잘못도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도 기초학문이자 종합학문이다. 특히, 극지 연구는 산학연의 집합체가 응집된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잔인 과학자 입장 노벨상 수상자 이들 과학자

2024-10-27

[살며 생각하며] 잔인한 달 4월을 보내며

2022년 4월 30일, 4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달 내내 천로역정 이야기에 몰두하며 세월을 잊고 살았던지 길 건너 이웃집 울타리를 장식한 노란 빛 개나리의 만개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늦게나마 둘러보니 사방이 봄치례로 한창인데 내일이면 벌써 5월이다. 이대로 4월 보내기가 민망하다.   4월 하면 흔히 잔인한 달로 치부한다. 기독교에서 4월은 십자가와 죽음이 있는 잔인함도 있지만 소망의 부활이 혼재한 고마운 달이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4월은 제주 4·3사건, 4·19의거,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참혹하기 그지없는 달이다. 4월이 ‘잔인한 달’로 자리매김 당한 원인은 미국 태생 영국시인 엘리옷(T.S Eliot 1888~1965)이 쓴 시 ‘황무지(The Waste Land)’ 때문이다. 여기에 2005년 결성된 한국 인디 록밴드 ‘브로콜리너마저’가 ‘4월을 잔인한 계절’이라고 덧칠을 해 재론의 여지를 봉쇄해 버렸다.   “사월은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는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겨울은 따뜻했었다. 대지는 망각의 눈으로 덮어 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구근으로 먹여 살려주었다….” 433행에 이르는 황무지의 시작 부분이다.   “거짓말 같던 사월의 첫날,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데, 왠지 나만 여기 홀로 남아, 가야 할 곳을 모르고 있네… 나만 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없는 나의 지금은, 깊어만 가는 잔인한 계절,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가슴 설레기엔 나이를 먹은, 아이들에겐 갈 곳이 없어, 봄빛은 푸른데.”   브로콜리 너마저 의 ‘잔인한 사월’ 노랫말이다.   흔히 엘리옷의 ‘황무지’를 두고 방향과 의욕을 잃은 채 의미 없이 살아가는 서구 현대인들의 모습과 정신세계를 적절히 묘사한 시대의 넋두리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의 핵심은 4월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들어 깨우지만…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구근으로 먹여 살려주니… 겨울이 더 좋다는 귀여운 억지 논리와 인위적 역설이 전체를 아우르는 시다.   사실 20세기 초반 서구를 강타한 종교적인 불신(不信), 기쁨조차 사라진 불모(不毛) 재활의 희망조차 없는 듯 한 불활(不活)의 시대에, 희망없이 퀘세라 세라 하며 겨울같이 살던 사람들에게, 아니야! 아직 소망이 있어, 아직 가능성의 문은 열려있어 하며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기를 독려하는 4월의 모습은 교활한 희망 고문이자 그들을 한없이 볼품없게 만드는 잔인한 처사가 아니냐는 것으로 지금도 상당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엘리옷은 1910년 프랑스 유학 시절 장 베르드날이란 한 의대생을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한다. 두 살 아래였던 베르드날은 제1차대전에 참전, 1915년 갈리폴리 해전에서 전사한다. 슬퍼할 기력조차 잃었던 엘리엇은 쫓기듯 한 무용수와 결혼했지만 생활은 불행했다. 고민 끝에 1921년 스위스 로잔으로 요양을 갔고 거기서 ‘황무지’를 완성한다. 따라서 시에 등장하는 라일락, 추억과 욕망, 봄보다는 겨울이 따뜻하다는 등의 역설은 친구 베르드날을 떠나보낸 뒤 찾아온 아픔과 인생의 허망함을 토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잔인 라일락 추억 19의거 세월호 서구 현대인들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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