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이 아침에] 마추픽추에 다녀와서

수영장 친구 애나씨의 권유로 페루를 다녀왔다. 몇 해 전 친구들이 잉카 트레일을 백패킹할 때 못 가서 아쉬웠던 터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고된 트레킹 대신 기차와 버스를 이용한 관광객 입장이지만 세계 여행자의 로망이라는 마추픽추에 간다고 생각하니 설렜다. 유튜브 몇 개 보고 고산증약만 처방받았다.   페루의 수도 리마를 거쳐 쿠스코로 향했다. 고대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는 스페인 침략의 영향으로 유럽의 중세도시가 연상된다. 자갈길 골목마다 화려한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잉카의 후예들이 공예품을 파는 아기자기한 가게가 즐비하다. 진홍색 제라늄과 흐드러진 넝쿨 백장미, 연보라의 자카란다, 새빨간 부겐빌레아는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도 꽃을 사랑하는 이 도시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태양신의 직계 후손이라는 자부심은 어디로 갔을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호객행위를 하는 인디오를 보면 씁쓸한 기분이 든다. 귀여운 알파카를 안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동물 학대이니 원주민에 응대하지 말라며 청년 가이드가 말한다. 힘든 농사를 짓기보다 관광객을 상대로 손쉬운 돈벌이에 급급한 것이 부끄럽다고 한다. 페루의 문제는 부정부패라며 이전 다섯 대통령이 모두 감옥에 있단다. 교육으로 의식을 개혁해서 잉카제국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애국청년이다.   안데스산맥의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우루밤바 강을 끼고 달리는 기차를 타고 한참을 왔으나 다시 가파른 절벽의 산비탈 길을 굽이굽이 버스로 가야 한다. 잉카의 위대한 유산인 ‘마추픽추’로 가는 길은 멀기도 멀다. 안데스의 높은 봉우리로 겹겹이 둘러싸여 하늘 위에서만 도시 전체를 볼 수 있어 ‘공중 도시’라고 불린단다. 안개에 싸인 공중 도시는 몽환적이다. 골이 깊어 구름이 산 중턱에 걸려있다. 오랜 세월만큼 바위에는 이끼가 가득하고 돌 틈에 피어난 이름 모를 야생화가 운무 속에서 돋보인다.   수레도 기중기도 없이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철기를 사용하지 않고 거대한 돌을 깎고 면도날 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쌓아 올린 정교한 건축술이 신비롭다. 태양신을 섬기는 신전, 귀족과 사제들의 거주지역, 일반인 거주지역, 농작지로 나뉜다. 산악지대라 부족한 농업용지 해결을 위해 계단식 밭이다. 우루밤바 강물을 이용, 수로를 만들어 도시 전체로 물이 흐르게 한 것도 놀랍다. 무력에 파괴된 잉카의 흔적을 보면 애잔함과 분노가 치민다. 우루밤바 강물은 잉카인의 가슴 아픈 사연을 싣고 바다로 흘러갔을까.   한가롭게 풀을 뜯는 라마와 알파카를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을 온 듯싶다. 알파카와 양, 라마의 털로 실을 뽑아 천연 재료인 곤충과 식물을 이용해 염색하고 전통 방식으로 옷을 짓는 여인들을 보았다. 때 묻지 않은 자연, 그 자연만큼이나 순박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고산증에 좋다는 코카 차를 권한다.   유럽의 침략자들이 잉카문명을 짓밟고 황금을 약탈해 간 슬픈 역사를 들어서일까. 남미 특유의 경쾌한 음악도 애잔하게 들린다. 잉카의 역사와 경이로운 문화유산을 간직한 채 여행자들의 발길과 마음을 붙잡는 도시, 화려하고 정교한 석조문화가 돋보이는 마추픽추에 올라 잉카인들 삶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기회가 온다면 다음에는 관광객이 아니라 배낭 짊어지고 잉카 트레일을 걷고 싶다. 최숙희 / 수필가이 아침에 마추픽추 고대 잉카제국 잉카 트레일 공중 도시

2024-06-26

[살며 생각하며] 잉카제국 페루를 가다

지난주 소속 교회가 파송한 선교팀의 일원으로 페루의 수도 리마를 다녀왔다. 오래전 출장차 베네수엘라 등 몇몇 남미국가를 여행한 적은 있지만 선교목적으로는5년 전 지교회가 있는 멕시코 티지민 이후 처음이라 가슴 설레는 일정이었다.   흔히 페루 하면 해발 2430m에 자리 잡고 있는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를 떠올리지만 비행기에 기차로 이동, 다시 버스로 험한 산길을 수 시간씩 오르내리는 난코스에 고산병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등 쉽게 접근을 허용하는 곳은 아니다. 그 외 3812m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티티카카 호수, 남부해안 사막 지역에 서울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대자연을 화포 삼아 원숭이, 도마뱀, 거미, 콘도르 등의 형상과 삼각형 또는 사다리꼴 등의 기하학적 도형 같은 것을 그려놓은 신비의 나스카 라인, 브라질의 아마존을 방불케 하는 열대우림, 중동에서나 볼 수 있는 광활한 사막, 6768m의 우아스카란의 만년설 등 지구환경의 대부분을 품고 있는 천혜의 자연 관광국이지만 국민소득 3374불에 인구의 39%가 빈곤층인 데다 빈번한 쿠데타 발생으로 한때는 안전여행조차 담보 못 하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다.   이번에 우리 일행이 다녀온 곳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그냥 자랄 수 없는 굵은 모래언덕이 주를 이루는 메마르고 황폐한 리마시 외곽 만차이(Manchay)라는 지역이다. 1885년 4월 5일, 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딘 언더우드 선교사가 눈 앞에 펼쳐진 기막힌 황폐함을 보며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메마르고 가난한 이곳,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지 못하고 있는 이 땅에….” 라고 기도한 것처럼 우리 또한 발을 디딜 때마다 그런 기도가 절로 나오는 곳이었다. 주거시설이라야 서 있기조차 힘든 경사도 70~80도의 맨땅을 파고 벽을 세우고 양철지붕을 얹은 옛날 서울의 판자촌보다 훨씬 열악한, 거기에 상하수도 시설이 전혀 없다 보니 일주일에 한두 번 배급되는 물을 수조에 받아 식수 및 허드레 용으로 아껴 사용하지만 목욕 같은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곳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본 한 가지 위안은 그들이 보여준 친절과 온화한 웃음이었다.   매일 가가호호를 찾아 찬송하며 부족한 언어로 전하는 복된 소식을 누구 하나 외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소망이 보였고 오히려 우리가 은혜를 받는 귀한 여정이었다.   잉카제국의 몰락은 1532년 정복자 프란시스코 파스라에 의해서다. 총의 위력 앞에 국왕이 사로잡히자 왕실 큰방을 가득 채울 만큼의 금을 목숨값으로 내놓았지만 정복자는 그것과 함께 왕의 목숨까지 앗아갔고 항전은 계속되었지만 1572년 제국은 100년 역사를 못 채우고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러다 1911년 7월 마추픽추 발견과 함께 잉카인의 독특한 문화와 건축양식, 수로시설 및 농업기술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고대문명의 한축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아이러니는 제국을 박살 낸파사르를여전히 리마 대성당에 모시고 정복을 정당화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다.   페루는 남아메리카 국가 가운데 한류가 가장 유행하는 나라로 한국인에게 우호적이며 많은 젊은이가 한국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고 한다. 우리 또한 과거 그들처럼 헐벗고 굶주린 동병상련의 애환의 심정으로 신앙과 함께 어떻게 잘사는 법을 전수하며 가깝게 교류하였으면 한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잉카제국 페루 정복자 프란시스코 건축양식 수로시설 사막 지역

2023-09-29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